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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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정희에게는 만주군과 남로당 경력에 대한 친일, 친북 논란이 흑역사로 남아있다. 특히 친일 논란은 진보좌파에서 박정희를 비판할 때 꼭 나오는 단골메뉴인데,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정희가 박정희의 창씨명인 다카기 마사오를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기억에 남는다. 윤동주도 일본으로 유학하기 위해 '히라누마 도주'라는 일본 이름으로 개명했을 정도이니, 일제강점기 말기에 어느 정도 공적인 활동을 위해서 창씨개명이 강제되었던 사정을 참작한다면 '다카기 마사오'라는 일본식 이름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입학 자격 연령을 초과한 만주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혈서까지 썼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일제 패망 전년도에 만주군의 보병 소위로 임관한 박정희는 친일파로서도 말단의 존재에 불과했다는 변명은 가능할 듯하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해방 직후 반민특위의 기준에서도 박정희의 친일 행위는 악질 친일파로 분류되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제목의 책은 흥미롭게도 박정희의 만주국 경험이 단순히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 중위로 패망을 맞이한 7년간으로 끝난 게 아니라 유신정권 시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만주국이 낳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군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 전후 일본과 해방 후 군부독재 시기의 한국을 잇는 매개로 만주국에 주목한다.

조선을 침탈한 이후, 중국 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일본은 만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듬해(1932), 일본은 명목상으로는 '입헌공화국'을 표방하는 괴뢰국가 만주국을 건국한다. '왕도낙토(王道樂土)'라는 슬로건으로 만주국을 일종의 이상향으로 선전한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혁신관료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을 통제경제의 실험장으로 삼았다.

한편 차별과 빈곤에 허덕이던 식민지의 조선인들에게 만주는 기회의 땅이었다. 일본은 만주국을 일본인, 조선인, 한족, 만주족, 몽골족이 함께 어우러진 '오족협화(五族協和)'의 땅으로 선전했고, 많은 조선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만주로 건너갔다. 대부분은 농민이나 상공인이었지만, 말단의 행정관료나 군 간부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한 박정희는 그러한 케이스였다.

일제(와 그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이 패망한 이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인생은 전락하게 된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박정희는 남로당 활동으로 인해 사형을 구형당한다. 그러나 냉전체제의 확립으로 미국이 보수우파들을 지원함에 따라 둘은 기사회생하여 정계의 주역으로 재등장한다. 기시 노부스케는 방면되어 보수정당 자민당에서 1957년 총리가 되어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추진하다 역풍을 맞고 사임한다. 만주군 장교였던 백선엽의 구명과 한국전쟁으로 군에 복귀할 수 있었던 박정희는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 만주국 고급 관료였던 기시 노부스케와 만주군 중위였던 박정희는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는데, 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메이지 유신 지사들을 본받아 부국강병에 힘쓰겠다"(18,19)고 말했다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는 이미 총리를 사임하고 있었지만, 이후 한일 양국의 만주국 인맥은 한일기본조약 체결 등에 활약하게 된다. 기시 노부스케는 몇 번이고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통제경제, 새마을운동의 규율화 등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정책들의 기원을 만주국 모델에서 찾기도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만주국 건국으로부터 80주년이 되는 2012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혈연을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두 사람이 한일 양국에서 각각 정치적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일주일 뒤인 2012년 12월 26일,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가 자민당이 다수당이 된 의회에서 일본 총리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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