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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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횡단 특급>은 한국의 SF소설의 대표적 존재인 듀나의 12편의 SF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수록된 단편들은 표제작 <태평양 횡단 특급>을 포함하여, <히즈 올 댓> <대리 살인자> <첼로> <기생> <무궁동> <스퀘어 댄스> <허깨비 사냥> <꼭두각시들> <끈> <얼어붙은 삶> <미치광이 하늘> 등이다. 수록된 소설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이 아니라 각각 다른 세계관과 주제를 가진 단편들이다. 이 글에서는 <태평양 횡단 특급> <기생><무궁동> <끈>을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단편도 있고, 별로인 단편도 있다. 예를 들어 <대리살인자>는 별로였다. 영화 <SAW>가 7편인가까지 나왔는데, 어떤 잔혹한 살인자가 평범한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함으로써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린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이 2002년에 나왔음을 생각하면, 이 책의 잘못은 아니다.

 

반대로 표제작 <태평양 횡단 특급>은 마음에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도 이 단편을 읽고 영화 <설국열차>를 떠올렸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면 유사성이 확실히 드러난다.

 

 

내가 태어난 곳은 베이징을 막 지나치는 유라시아 횡단 특급의 B-27번 침대차 2번 객실이었다. (중략) 내 인생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가끔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철로 밖에 있는 단단하고 고정된 땅에 서 있어야 할 대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철로에 속해 있었고 철로 또한 나에게 속해 있었다. (9, 10)

 

 

영화 <설국열차>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기차 또한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이루고 있으며 평생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또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 국제철도회사의 사장인 이 소설의 1인칭 화자가 회사의 사업을 위해선 가족도 숙청할 수 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라는 점에서 시드니 셀던의 소설 <게임의 여왕>을 떠올리기도 했다.

 

<태평양 횡단 특급>의 세계관은 상당히 독특하다. 1인칭 화자의 국제철도회사는 전세계의 철도를 말 그대로 지배함으로써,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치는 전지구적 초국적기업이다. 350년 전에 시작된 국제철도회사는 "회사 밖의 사람들이 세계정복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세계 평준화라고 부르는, 회사의 목표"(16)를 가지고 대서양과 지중해,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완성한다.오늘날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SF의 상상력이다. 소설은 태평양 횡단 특급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가 보았던 것은 폭 21미터, 높이 57미터, 길어 15,400킬로미터의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괴물이었다. 이 괴물들이 해수면 181미터 위에 뜰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2,556,764개의 기둥들은 그 하나하나가 초모룽마의 높이에 견줄 만 했다. 그러나 부피와 길이는 다리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수많은 화학 공장과 발전소, 그리고 이를 돌리는 수십만 명이나 되는 인원에 비하면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었다. (20)

 

 

이러한 묘사는 <태평양 횡단 특급>의 세계관이 인류문명의 진보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나라들은 아즈텍, 만주국, 프랑크, 테베 등의 오래 전에 멸망하고 지금은 없는 나라들이다. 역사상 이 나라들이 존재했던 시대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또한 이 소설의 주요한 무대는 인신공양이 이루어지는 '아즈텍 신성 공화국'이다.

 

초미래적인 과학기술과 이미 멸망한 전근대의 여러 나라들이 공존하는 세계관, 나는 여기서 인류문명의 진보와 퇴보가 공존하는 기묘한 세계관을 읽는다. 이 소설에서 인류문명은 단선적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과학기술은 기차가 바다를 건널 정도로 진보하지만, 인간의 정신문명은 인신공양을 계속할 정도로 퇴보하는 것이다. 물론 <태평양 횡단 특급>의 결말부은 인신공양의 희생양이 될 뻔한 아즈텍의 소년이 국제철도회사의 철도를 타고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진보에 대한 희망을 남긴다.

 

그에 비해, 또다른 수록작인 <기생>은 인류문명의 진보와 퇴보가 뒤엉킨 아이러니를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기생>은 기계들이 인류에 반란을 일으켜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들은 기계들에게 붙잡혀 소시지 공장에서 소시지로 가공되지 않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 선생'은 살아남은 인간들을 규합하여 기계들의 지배에 반항하며 공략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회 선생'의 반란은 실패로 끝나는데, 바로 '사회 선생'의 친구이자 생존자인 '역사 선생'이 기계들에게 이 반란 모의를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선생이 반란을 밀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도시에 매료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녀가 도시 문명의 미래에 굉장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녀가, 인간들이 그들을 넘어 먹이 사슬의 맨 위에 서는 것처럼 부당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시는 서서히 인간의 가치를 넘어 자신만의 문명과 지성을 발전시키는 중이었다. 사회 선생의 반혁명이 성공해 우리같이 밑천 떨어진 바보들이 다시 지구를 점령한다면 이 모든 것들은 허사가 될 것이다. (1401,141)

 

 

여기서 '역사 선생'과 그녀에게 감화를 받은 1인칭 화자인 '나'는 인류가 기계들보다 더 나은 문화적 성취를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고, 기계 문명의 지배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다음과 같은 대목은 인류 문명의 무한한 진보를 부정하고, 오히려 기계 문명이 더 진보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문명의 진보와 퇴보를 전복시킨 상상력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종종 그녀가 나에게 넘겨주는 인공 지능의 창작물들을 감상한다. 지금까지 그것들은 인간 예술의 모방이었다. 하지만 인공 지능 문화 소비자들이 발전하는 것과 속도를 맞추어 도시의 인공 지능 예술가들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141)

 

 

인류 문명의 진보를 포기하고 저자가 새롭게 제시하는 셰계관은 무한한 반복과 순환이다. <무궁동>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음악 용어 '페르페튬 모빌레(perpetum mobile)'의 역어라는 무궁동(無窮動)은 무한한 반복과 순환의 모티프를 드러낸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한데, 심리학자인 1인칭 화자에게 여성 환자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환자는 자신이 엄마가 먼저 죽은 '누나'를 대신하여 만든 클론(복제인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토로하고 이는 사실로 드러난다. 환자의 엄마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14 년 뒤 화자는 환자가 죽은 엄마의 클론을 만들어 딸로 만들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제목과 엔딩은 이들 '모녀'가 똑같은 비극을 무한히 되풀이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무궁동>이 개인적 차원에서의 순환과 반복을 드러낸다면, 전인류적 차원으로 이를 확장시킨 단편이 <끈>이다. 여기서 1인칭 화자인 소설가 이영수(작품 밖 세계에서는 저자 듀나의 또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에게 자신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전생으로서 기억한다고 호소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화자인 이영수글 비롯하여 나폴레옹, 히틀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전생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지구에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사람의 전생이거나 내생이라는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한다.

 

 

아시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또 앞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 하나입니다. 그들은 제 전생이거나 다음 생입니다. 시간의 얽힘 때문에 동시에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있을 뿐이지요. 지구 역사는 원맨쇼에 불과합니다. 전 지금 선생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간을 넘어선 독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14)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가 사실은 한 사람이고 그의 원맨쇼라면, 인류의 문명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히 순환하고 반복하는 뫼비우스의 끈일 뿐이다. 더구나 '그 이상한 남자'는 자신이 몇 번 전생을 거듭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미래는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역사는 진보할 수 없고, 닫혀진 틀 속에서 무한히 순환과 반복을 거듭할 뿐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개재하게 된다. 그러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야말로 듀나의 SF소설에 볼 수 있는특징이 아닐까 싶다.

 

듀나의 대표작 중 하나인 <태평양 횡단 특급>의 주제들 중 하나는 역사의 단선적인 진보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무한한 순환과 반복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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