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갑 2면 - 세균의 눈알 이타카 新괴담문학 시리즈 2
오트슨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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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인터넷 상에서 오트슨이 쓴 <갑각나비>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내용은 지금 와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빨려들어가는 듯한 스토리와 유려한 문장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난다.


<갑각나비>라는 소설은 인터넷에서만 떠돌았을 뿐, 책으로 정식 출판되지는 않았다. 그 후, 오트슨은 <미얄의 추천>으로 정식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출판된 소설이 바로 <괴담갑>이다.

<괴담갑>이라는 제목부터가 낯선데, 제목의 '갑'은 상자 갑(匣)이다. 괴담갑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치인데, 여섯 명이 이야기를 적어 상자를 만드는데, 이 상자를 열게 되면 그 안에 적힌 괴담이 현실에 실현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괴담을 지어내 들려주던 마녀선생은 제자 중 한 명인 양수정이 식물인간이 된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이 지어낸 괴담이 실현되었음을 알게 된다. 냉탕할멈이라는 괴담의 할머니는 아이들의 혼을 빼내 사탕 속에 봉인한다.

이 소설에는 상자의 모티프가 되풀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축이 되는 괴담갑, 냉탕할멈이 혼이 담긴 냉동사탕을 보관하는 아이스박스, 그리고 메뚜기들을 잡아 넣으면 서로 잡아먹어 마지막에 한 마리만 남는다는 붉은 메뚜기 상자다. 이 상자들에는 절대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그 원형은 당연히 판도라의 상자에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그랬듯이 상자는 열려야 한다. 그 안에 어떤 재앙이 있다 해도 말이다.

<갑각나비>는 이야기 그 자체를 다루는 소설이었다. <괴담갑>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읽지 않은 책은 상자와 같다"는 소설가 르 귄의 말처럼 상자는 책, 혹은 이야기의 은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자의 본질적 기능은 무언가 내용물을 담는 용기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 혹은 이 소설의 괴담갑은 열려서는 안 되는 상자라는 점에서 그 아이러니가 있다. 어쩌면 괴담갑의 상자는 이야기 그 자체를 은유하고 있다(사실 괴담 자체가 이야기니 은유라기에는 직설적이다). 이야기라는 상자에 담긴 내용물은 교훈 또는 주제라는 메시지이며, 그 메시지를 위해 상자(=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소설관일 것이다.

<괴담갑>은 이 내용물(=메시지)과 상자(=이야기)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괴담을 통해 완성된 괴담갑은 상자 그 자체가 내용물이 된다. 괴담갑을 관통하는 주제는 "괴담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괴담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번식'을 하고 있어. (중략) 세상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가며 괴담을 말살시키려 해. 합리와 논리라는 상자 안에 그것들을 가둬놓고 외면하려고만 하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괴담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그것들이 살아있기 때문이지. 때문에 그것들을 가둬봤자, 언젠가 그것은 나오게 되어있어. 세상의 모든 상자는 결국 열리게 마련이니까 말이야. (45, 46)

저자의 전작 <갑각나비>에서 그랬듯이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 <괴담갑>이다. 전통적인 소설관과 달리 메시지를 위해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를 그린 소설이라는 점이 <괴담갑>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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