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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콜로서스
니알 퍼거슨 지음, 김일영.강규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미국을 "미제국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국이 될 것"이라는 책 표지의 큰 글씨 선전문구에 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미국이 '자유주의의 제국'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도전적이고 논쟁적인 책이다.
미국의 몰락이 야기할 '무극체제'가 바람직한가? 국제정치에서 무극체제는 지옥과 다름없다. 미국이 르완다의 제노사이드를 모른 체 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로 이라크에 군림하는 상황이 바람직한가? 현제 시리아 난민 문제의 배경에는 미국이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책임이 있지 않은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제국이 된다면, 그것이 미국 단극체제보다 바람직한 상황이 될 것인가? 그러한 질문을 생각한다면, 비록 무수한 잘못을 저지른 '제국'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저가 나온 2003년 이후, 우리가 봐 왔듯이 미국은 좋든 싫든 그 영향력을 약화시켜왔다. 이라크전쟁의 실패와 리만브라더스 사태 등등이다. 특히 저자는 미국의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미국의 사회보장이 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미국의 과도한 재정 부담의 진짜 원인은 테러리즘과 '악의 축'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노후 보장과 건강보험에 집착하는 미국인들의 태도"(409, 410)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겨우 4년 후면 77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시작한다. 7년 뒤에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은퇴할 때쯤에 미국 노년층은 지금의 두 배가 되는 반면, 그들을 떠받칠 납세 근로자는 겨우 15퍼센트 증가할 것이라고, 정부 공식 통계는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지금과 미래의 노년층에게 연금과 의료보장을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부채의 일부라고 여긴다. (중략) 사실 정치적으로 볼 때 사회보장과 의료보험 혜택을 중단하느니 눈에 보이는 부채 상환을 연기하는 게 편하다. (중략) 보이지 않는 부채는 보이는 부채보다 거대하다. (410)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미국 행정부의 "셧다운" 소동을 보면 재정문제의 심각성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미국은 유럽,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고령화사회에 비하면 젊은 사회다. 재정과 복지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오늘날 현대 국가의 공통적 과제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관점에 대해 찬반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방대한 참고문헌들을 참조하여 이런 스케일이 큰 대작을 썼다는 점 자체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라크전쟁에 대해 조건부 찬성을 피력한 부분은 지금 시점에서는 이상하기도 하고, 제국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정의를 엄밀히 규정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이라는 나라, 현재의 국제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