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2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담담하고 냉소적인 문장과 흡인력 있는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1인칭 주인공은 돈이 없어서 대학을 자퇴한 여자, 그녀는 철거 직전의 폐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는데, 우연히 만난 화가 지망생 남자가 그 건물에 들어와 살게 된다. 같은 건물에서 여자는 글을 쓰고, 남자는 99마리의 들개를 그리는 생활을 보내는 가운데 벌어지는 일들이 이 소설의 스토리다. 

  사회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소설 속에서 풀어내려는 시도는 훌륭하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입으로 사회 비판을 늘어놓게 하는 것에 그친다면 소설로서는 수준이 낮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 비판을 하면서도 그 비판을 향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자의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객관적으로 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냉소주의자라면 자기 자신도 냉소할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비평가라면 자기 자신 또한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떠들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위 '중2병' 환자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뛰어난 1인칭 소설인 것은 그 때문이다. 1인칭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사회비판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샐린저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충분히 거리를 둔다. 그래서 독자들은 홀든 콜필드의 사회비판에 공감하면서도, 홀든 역시 치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설익은 젊은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들개>의 경우, 그러한 주인공과의 거리 두기에 성공했을까? 소설 속에서 1인칭 화자가 쓴 <새 우리말 사전>을 예로 들어보자. 

 미친개: 사람을 물었을 때 가장 개다운 개. 개 중에서는 어느 모로 보나 가장 품위가 있다고 함.
 돈: 인간을 가장 빨리 더럽히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오물.
 도덕: 아담과 이브 이후 사람이 입어야 할 옷.
 빙하시대: 인류가 냉동 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도둑: 이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특별한 임자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그렇게 만드는 일
. (176, 177)

   만약 중학교 2학년생인 사촌동생이 노트에 적었다면, 귀엽게 봐 주어야 하겠지만, 소설에서 "언어를 통해 고정관념을 파괴"(21)시킨다고 치켜세운다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이외수는 2006년에도 <감성사전>이라는 어떤 단어를 냉소적 의미로 정의하는 책을 출판한 것으로 보아 이러한 말장난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의 어두운 측면을 자신 혼자만 보고 있다고 우쭐대며 냉소적인 체 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민망하기조차 하다.

  그나마 소설 후반부에 가면, 1인칭 화자는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돈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쥐고기를 먹고, 술집에 나가는 등, 사회와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 통찰력을 보인다. 반면에 들개를 그리는 화가 지망생은 아무런 인간적 갈등 없는 완전무결한 성자처럼 그려지고 있다. 여성인 1인칭 화자가 자신의 노트를 훔친 화가 지망생 남성에 호감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는 숭배하게 되는 과정도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아쉽다. 과연 소설 속의 남자가 우상화될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2병적 요소만 참는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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