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공모자들 -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한국어판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일본어 원제는 <일본을 의심하는 뉴스의 논점>이라는 괴상한 제목인데, <보수의 공모자들-일본 아베정권과 언론의 협작>이라니, 흥미진진하다.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는 일본 외무성 관료 출신인데,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맹렬히 비판해온 좌파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한국에도 <일본의 영토분쟁>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가 소개되었다. 일본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 한국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일본의 평론가들은 한 번 떴다 싶으면 대동소이한 내용의 책을 찍어내는 경향이 있다. 이 책 역시 기존에 다른 저작들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저자가 주장해 온 내용의 재탕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아베정권이 미국 네오콘 세력의 의향을 일방적으로 따르고 있는 탓에,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이를 일본의 언론들이 정확히 보도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TPP 교섭 참가, 원전 재가동, 센카쿠문제에 대한 과민반응, 오키나와 후텐마기지 이전 모두 아베정권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이 그에 대한 적절한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화제들에 대해 망라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탓에 구성이 다소 두서없이 산만한 감이 있다.

일반 책들보다 작은 사이즈인데다 옮긴이의 말을 제외하면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책이라 술술 읽힌다. 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의 독자들이라면, 아베정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아베에 대한 미국 언론의 평판이 나쁘다며, 폴 크루그먼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1월 13일자에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일탈하는 일본(Japan Steps Out)>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자민당의 정권 복귀를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멸종된) 공룡'의 부활"이라고 단언한 뒤, 아베에 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일본통 사람들로부터 아베를 '좋은 놈'(good guy)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들었다. 외교정책에서 '문제아'(very bad)이며 (아베가 주장하는) 경기부양책도 고전적인 돈 뿌리기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타임스>는 <워싱턴프스트>와 나란히 미국 지식층의 의견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그들의 논평은 설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 신문에 왜 아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잇따라 등장하는 걸까. (100, 파란색은 마고사키 우케루, 초록색은 폴 크루그먼 칼럼의 인용)

그런데 크루그먼의 칼럼 원문을 보면, 저자가 인용한 문단의 다음 문단, 즉 마지막 문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아베는 나쁜 전통을 깨 부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성공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스태그네이션의 선구자인 일본이 우리에게 그 탈출 방법 또한 제시할 것이다.

But none of that may matter. Whatever his motives, Mr. Abe is breaking with a bad orthodoxy. And if he succeeds, something remarkable may be about to happen: Japan, which pioneered the economics of stagnation, may also end up showing the rest of us the way out.
(http://www.nytimes.com/2013/01/14/opinion/krugman-japan-steps-out.html?_r=0)

양적완화정책의 지지자인 크루그먼은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을 지지한다며 이 칼럼을 쓴 것인데, 저자는 아베를 비판하기 위해, 칼럼의 일부를 발췌 인용하며, 전체 취지를 정반대로 왜곡시켜버린 것이다. 저자가 악의를 갖고 왜곡한 것인지 영어 해석능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소개를 보면 "1966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외무성에 입성해 영국, 미국, 소련, 이라크, 캐나다 등에서 36년간 외교 관리로 근무했다"고 하니 아마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긴, 일본 외무성에서 1966년에 채용한 관료들의 영어실력이 그 정도로 엉망이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대형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14)고 역설하고 있는데, 신문이나 TV보다도 저자의 이야기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크루그먼의 칼럼을 읽어본 적이 없었더라면, 크루그먼을 아베정권의 비판자로 오해하지 않았겠는가. 아베 비판도 좋지만 이런 식의 편향된 왜곡은 문제다. 저자인 마고사키씨의 팬으로서 유감스럽다.

또 하나, 저자의 잘못은 아니지만, 오해를 부를 부분이 있다. 저자는 "미국과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은 필리핀에서도 20여 년 전에 미군이 물러남으로써 현재 동남아시아에는 미군기지가 하나도 없다. 아세안(동남아시아연합)이 외국군 기지를 인정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82)라고 말한다. 일본어 원서가 나온 2013년 8월 당시로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의 위협이 심해지면서, 올해 4월 필리핀은 미군에 기지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13/0200000000AKR20140413025200084.HTML?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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