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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붕괴 - 대내외정책 분석을 중심으로
진창수.신정화 엮음 / 오름 / 2014년 6월
평점 :
비슷한 시기에 제목이 너무나도 비슷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일본 민주당정권의 성공과 실패>와 <일본 민주당정권의 탄생과 붕괴>다. 두 권 모두 일본 민주당정권에 대해 국내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책인데, 둘 중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되었다. 발행일을 보니 <성공과 실패>가 5월 25일, <탄생과 붕괴>가 6월 16일. 발행일이 조금 더 빠른 <일본 민주당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먼저 읽었다.
<성공과 실패>와 비교했을 때, 현대일본학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일본 민주당정권의 탄생과 붕괴>의 특징은 13개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어 민주당의 선거정책, 조직과 지지기반, 정치주도론, 증세 없는 복지확대, 소비세, 원전정책, 지역주권, TPP, 대북정책 등 다양한 논점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쟁점들에 대한 종합적인 논고들을 읽을 수 있었다.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매니페스토는 소득제한 없는 어린이수당 등 증세 없는 복지확대가 주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권교체에서 성공하고 나자, 매장금이나 낭비 삭감으로 얻을 수 있는 재원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에 직면했고, 공약의 대폭 수정, 혹은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토야마내각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 것이 후텐마기지 이전문제였다. 총선에서 하토야마는 오키나와 헤노코로 이전이 결정되어 있던 후텐마기지를 현외, 혹은 국외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집권 후에는 미국의 냉담한 반응과 오키나와 및 연립 파트너인 사민당의 강경한 태도 사이에서 하토야마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하토야마의 뒤를 이은 간 나오토는 참의원 선거 직전, 구체적인 전략이나 합의 없이 소비세를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참의원선거에서 과반수를 잃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참의원에서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서 정권운영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2007년 참의원 선거 이후 민주당이 후쿠다, 아소정권의 발목을 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뿌린 대로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참의원선거 이후 "야당의 태클-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패-여당의 리더십 하락-지지율 하락-야당의 태클"의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아무런 실적도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2012년 총선에서 정권을 자민당에 넘겨주게 된다. 동일본대지진과 센카쿠문제, 세계적 경제불황 등 예상치 못했던 사태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 또한 민주당에 치명적이었다.
간 나오토가 리더십을 잃고 노다내각이 들어서면서부터 민주당정권은 자민당정권과의 차별성을 잃어간다. "자민당 노다파"라는 비아냥까지 들은 노다정부는 외교적으로는 미일동맹 강화로 축을 옮겼고, 관료에 의존하는 형태로 돌아섰다. 소비세 인상, TPP 협상 참가, 원전 재가동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고, 소비세 인상에 반대한 오자와파의 반발 또한 심해졌다. 그 결과, 오자와파가 탈당, 분당하였고,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한 2012년의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를 하게 된다.
일본 민주당의 실패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소선거구제, 양원제, 의원내각제라는 정치제도가 여당의 권력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점. 2010년 참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여소야대상태가 되자, 민주당의 정권운영은 어려워졌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임기가 보장받는 대통령제와 달리 의원내각제에서 지지율 하락과 분점국회는 수상의 리더십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고, 잦은 수상 교체가 일본 정치의 한 특징이 되었다.
2. 일본 언론과 여론의 부화뇌동. 하토야마내각 초기에 70%를 넘었던 내각지지율은 이후 하락을 거듭하게 된다. 애당초 과도한 기대에 기반한 지지율이었지만, 금세 실증을 내 버리는 언론과 여론 탓에 정권 자체는 항상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3.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증세 없는 복지확대'가 집권 이후 재원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후퇴,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이에 대한 여론의 실망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4. 하토야마내각 당시 후텐마 미군기지의 현외 혹은 국외 이전이라는 공약의 표류. 오키나와, 미국, 연립파트너인 사민당과 합의 모두에서 실패하면서 집권 초기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사태를 맞이하였고, 미일관계는 악화되었으며, 사민당의 연립내각 이탈로 중의원에서 3분의 2의석을 잃었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약점으로 생각되었던 안보 및 외교 정책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었다.
5. 2010년의 센카쿠 어선충돌사건과 2012년의 센카쿠 국유화 사태에 있어서의 미숙한 대응.
6. 동일본대지진과 세계적 경기후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와 이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
7. "자민당 노다파"라 불리는 노다 요시히코가 수상이 되면서, 소비세 인상, TPP 협상 참가, 미일관계 중시, 관료 의존, 원전 재가동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자민당과의 차별화 실패.
8. 친오자와파와 반오자와파로 대표되는 계파간 갈등과 여기에 중첩되는 당정갈등. 이는 오자와 이치로의 분당으로 이어졌다.
9. 오자와, 하토야마 등 정권 주요인물들의 정치자금 스캔들.
단일사례라서 변수가 너무 많다. 위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발현한 결과, 민주당정권은 붕괴할 수바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18대 대선에 대한 보고서 <18, 그리고 19>를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실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본 민주당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 역량)가 부족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 여당인 자민당, 공명당은 중의원에서는 3분의 2를, 참의원에서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사분오열되어 민주당, 유신회, 모두당, 묶음당, 생활당, 사민당, 공산당, 신당개혁, 차세대당 등 9개의 야당이 난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의 폭주를 제어할 세력이 없기에 아베내각의 승승장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민주당정권 3년3개월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하면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