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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다보니 기상천외한 소설이 하나 더 생각났다.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감명받아 샀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원작 소설보다 훨씬 낫다. 기본적인 이야기 골격은 비슷하지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압도적인 영상미와 적절한 연출이 돋보인 걸작인 반면, 원작소설은 평범하다. 물론 내가 영화를 먼저 접하고 소설을 뒤늦게 읽은 탓에 핵심적인 반전을 비롯한 스토리 전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가 워낙 뛰어났던 탓에 소설의 매력이 반감되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봤더라면 둘 다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인도 폰디체리에서 캐나다로 가족들과 이주하러 가던 중, 배가 침몰하고 가족을 모두 잃은 '파이'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파이는 구명보트에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태평양을 227일간 표류하게 된다. 극한의 위기상황에서 주인공 파이는 신에 대한 믿음과 리처드 파커와의 우정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이야기는 수십년 후, 캐나다에 정착한 파이가 소설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아저씨 파이가 과거를 회상하는 어조가 지나치게 무미건조해서, 영화의 활발하고 위트 넘치는 파이의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덜 할 수밖에 없다. 폰디체리에 살던 신앙심 깊은 소년 '파이'와 태평양 바다 위에 떠도는 소년 '파이', 그리고 아저씨가 된 현재의 '파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전반부의 신앙고백 부분은 부담스러웠고, 후반부의 태평양에서 조난당해 표류하는 이야기도 그리 실감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순히 인생의 역경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교훈담일 뿐이었다.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를 던져 주었던 영화와 비교된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소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