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그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일본편>이 나왔길래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에 규슈를 여행했던 적도 있지만, 이 책을 보며 신선한 시각을 얻게 되었다. 규슈는 한국과 가까운 곳에 있다보니 곳곳에 한국과 연관된 문화유산들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의식을 가지지 않고 여행했기에, 그와 관련된 유적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규슈에는 가라쓰, 아리타, 이마리, 가고시마 등 유명한 도자기의 고장들이 많이 있다 보니 책에서도 그 지방의 답사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도자기들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일본이 납치해 간 수천여 명의 도공들과 그 후손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저자는 단순히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일본에 핍박받은 도공들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선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라쓰야키의 이런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부터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일어난다. 일본은 우리 도자기 기술을 가져다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도자기왕국으로 발전했는데 우리는 그 원조 격이면서 왜 그러지 못했는가에 대한 한탄이다.
혹자는 임진왜란 때 도공들이 다 일본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끌려온 조선 도공들의 고향을 보면 공주, 남원, 김해, 울산 등 삼남지방이지, 조선시대 관요(官窯)가 있었던 경기도 광주에서 온 진짜 뛰어난 도공은 현재까지 한 명도 알려진 바 없다. 일본에 끌려온 이들은 조선시대 지방 가마의 도공들이었다.
(중략)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도자기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조선 분청사기가 뛰어나다는 주장만 했지 생활 속에서 그것을 즐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 도자의 가치를 일본인들은 일찍이 알아챘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마냥 즐기고 있다. 우리는 고유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고, 일본은 그 고유기술을 통째로 가져가 자신들의 위대한 도자기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반성할 대상은 우리 자신에 있다. (123)
또한, 도공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막연히 생각하기를 일본에 온 도공들은 왜놈들에게 포로로 끌려가 이국땅에서 도자기를 굽는 고된 일에 노예처럼 사역되었고 고향이 그리워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불쌍한 인생이라고 깊은 동정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그 실상엔 다른 면이 있었다. 조선에 살 때 이들은 지방가마의 도공으로 천민이었다. 이들은 도자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지어야 했고, 각종 역(役)에 나가 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 이들은 도자기 기술자, 즉 장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상대한 것은 번주라는 지방 최고통치자들이었다. (중략) 사쓰마 번주는 조선 도공에게 사농공상에서 사(士), 일본의 사무라이(侍)와 같은 신분을 제공했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던 대접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아예 일본 성(姓)으로 바꾸고 일본인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그 후손들은 더이상 조선인이 아니다. 다만 '한국계 일본인'으로 대를 이어 살아가는 것이다. (175)
물론 저자는 조선의 산하와 닮은 마을에 정착한 일화나 일본인들의 텃세에 시달린 일화 등, 고향을 잃은 도공들의 애환에 대해서도 상세히 저술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이 도공들을 납치해 가 도자기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을 규탄한 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이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그 배경에는 도공들의 장인정신을 존중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저자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본 문화유산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인용한 문단에서 드러나듯이 일본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시각으로 칭찬할 만한 점은 칭찬하겠다는 공정한 관점이 드러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 문화적 교류를 강조하고 있는 책이었다.
언젠가는 이 책을 들고 규슈를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나고야(名護屋, 사가현)성이나 가라쓰, 이마리 등에도 가 봐야겠다. 도자기를 살 경제적 여력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순히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답사 과정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들도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답사에서 일본 가요인 "황성의 달"을 부른 이야기나, 차를 마시다 갈 곳을 못 간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부분을 읽다 보면, '답사'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답사 중의 소소한 일화들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다른 시리즈를 읽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좀 곁가지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본문이 아닌 부록이어서 저자가 신경을 덜 썼던 것일까? 동아시아의 조공질서에 대해 설명한 다음 문단에는 옥의 티가 있다.
중국이 조공만으로 안심하지 못한 곳은 조선과 베트남이었다. 그래서 한때 한나라는 한반도와의 경계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고 광둥성과 베트남 지역에 한구군(漢九郡)을 설치했었다. 668년 고구려 멸망 직후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고, 비슷한 시기인 679년에 하노이에는 안남도호부를 두었다. 동쪽과 남쪽만 안정시키면 나머지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과 베트남은 중국의 조공이라는 외교적 형식에 응하면서 독립국가로 나아갔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 중 모국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의 조선족과 베트남의 안남족밖에 없다. (341, 342)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모국을 갖고 있는 민족은 몽골족, 카자흐족, 우즈벡족, 타지크족, 키르기스족, 러시아족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A4%91%EA%B5%AD%EC%9D%98_%EB%AF%BC%EC%A1%B1#cite_ref-9). 저자가 "안남족"이라고 부르는 베트남인은 물론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데, 중국에서는 안남족 대신 경(京)족, 월(越)족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듯하다(
http://zh.wikipedia.org/wiki/%E4%BA%AC%E6%97%8F).
또한 이 문단을 보면, 안동도호부와 안남도호부만 존재했던 듯한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당은 두 도호부 외에 안서도호부(타림분지), 안북도호부(외몽골), 선우도호부(돌궐), 북정도호부(준가르)를 설치하고 있었고, 모두 6도호부라 부른다(
http://zh.wikipedia.org/wiki/%E9%83%BD%E8%AD%B7%E5%BA%9C). 저자는 중국이 한국과 베트남만을 특별히 경계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다소 부정확한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