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 대논쟁 통섭원 총서 2
최재천 지음 / 이음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통섭 논의에 대한 비판적인 논고들만을 모은 책 <통섭과 지적 사기>와 달리 이 책은 사회생물학에 대한 찬반 양론을 전개하는 연구자들의 논고를 모으고 있다. 그래서 <통섭과 지적 사기>를 읽었을 때보다 사회생물학과 통섭에 대한 보다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했다. 그런데 사회생물학적 통섭에 찬성하는 논자들의 글을 읽어도 반감만 생길 뿐, 환원주의가 아닌 다원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장차 사회생물학의 한 분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사회생물학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왜 19세기 후반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반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나치즘은 독일철학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중국 공산당 체제는 얼마나 지속가능한가? K-pop은 어떻게 국제적 컨텐츠가 되었나? 베버의 권력 개념과 푸코의 권력 개념은 어떻게 비교 가능한가? 1965년 한일수교에서 양국의 만주국 인맥이 한 역할은 무엇인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 북유럽 모델의 고용정책은 한국사회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가? 유교민주주의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회생물학이 적실성 있는 가설이나 논증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겠지만, 인간의식이 만든 제도, 사회, 역사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한 인간 고유의 영역들에 대해서는 인간의식이 발전시켜온 개별 학문 분야의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이 타당하게 느껴진다. "인간 본성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회생물학의 전제에 동의한다 하더라도(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유전자가 개별 사회나 개인에게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대한 메커니즘을 해명할 방법을 사회생물학이 찾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으며, 가능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탐구할 때, "인간의 본성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중요한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연구에 있어 불문에 부쳐도 좋을 문제로 보인다. "사실에서 당위를 도출할 수 없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사회생물학의 타학문에 대한 영향은 크게 제한될 것이다. 물론 여러 학문 분야들, 특히 인류학이나 심리학에 대해서는 사회생물학이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사회생물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실제 연구에서 사회생물학이 응용된 실제 연구의 축적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사회생물학 환원주의자들이 사회생물학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적용한 연구를 충분히 축적하지 않는다면,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사회생물학을 배우라고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책에서 김환석은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학적 환원주의 양쪽 모두를 배격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사회학의 한 분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학자가 있는가? 그런데 왜 사회학적 환원주의를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같은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윌슨의 <통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통섭>의] 주장의 주된 문제는 그 저자가 상상하는 한층 통합된 문화가 어떤 것이 될지 이해하기 힘들고, 그런 문화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문화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 실재는 하나지만, 그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은 여럿이고 여럿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다른 수많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250,251)

나는 로티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가지 방식으로 모든 답을 얻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흥미롭다"라고 말했던, 스티븐 제이 굴드는 사회생물학과 환원주의에 반대한 대표적 생물학자다. 그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에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발견을 부적절한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적절히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그 해석에 신중을 기했다면 이러한 비난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겸손함이 없다면, 통섭은 사회생물학의 오만과 편견으로 끝날 것이고, 오히려 자연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의 바람직한 대화를 저해하는 악영향을 끼치고 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