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평점 :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논객은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이 아홉 명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쉴 독자라면, 이 목록을 바라보며
착잡하고도 묘한 감회에 사로잡힐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8)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저자보다 6살 젊은 데다가
해외에서 생활한 기간이 긴 나로서는 위의 이름들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접한 허지웅, 한윤형, 박가분, 그리고
노정태와 같은 이름들이 더 익숙하다.) 그나마 유명한 '디워논쟁'때 <백분토론>에 나온 진중권의 이름과 저작들이 가장 낯익다. 한때는
박노자의 글들도 좋아했지만,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천박한 자본주의 운운하며 비판하는 걸 보며 이 분이 주화입마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구나
싶었고, 우석훈에 대해서는 어느 블로그를 읽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1세도 구분 못하는 등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인간이라는 인상이
각인되었다. 고종석은 트위터에서 성희롱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모습을 보고 혐오하게 되었고, 나꼼수 광풍에 대한 진중권이나 허지웅의
비판에 공감하기에 김어준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학교 때,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김대중을 왜 죽여?"라는 사서 형의 핀잔을 듣고 10분만에 읽지도 않은 책(그때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책이었다)을 반납한 것을
제외하면, 강준만에 대해서는 별 기억이 없다.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이 논객들에 별다른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굳이 읽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을 <사기 열전>에
비유하고 있는데, 나는 오자서나 한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마천에 대해서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청년논객" 노정태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 뒷이야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아즈마 히로키는 트위터에서 "문예비평을 쓰는 건 사실
엄청 쉽다. OO는 XX의 문제에 대해서 전기에는 진지하게 다루었지만, 후기에는 회피했다. 혹은 그 반대."(워딩이 정확하진 않지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즈마 히로키의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책의 몇몇 장은 그 말을 연상시킨다. 몇몇 논객들에 대해 저자는 전기와 후기를
구분하며 평가하는데, 그 분기점은 노무현정부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논객시대"는 김대중정부에서 이명박정부에 이르는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노무현정부야말로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강준만은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창당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일관성을 잃은 채
"김빠진 콜라처럼 맥없이 들"리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유시민은 노무현을 당선시키기 위해 논객으로서가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스모폴리탄 개인주의자"였던 김어준은 노무현의 당선 이후 '우리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영원한 전쟁"에 돌입했고, 노무현 시대에 실망한
고종석은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졌다. 2004년 "모든 게 내가 원하던 대로 된 셈"이라고 승리를 선언했던 진중권은 황우석과
디워라는 광풍으로 인해 다시 네티즌과의 싸움으로 돌아왔다. 물론 논객들의 사상적 변천에 노무현시대만이 꼭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다. 김규항이나
박노자의 경우에는 노무현시대가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시대의 좌절과 굴절이 논객시대에 크나큰 굴절과 좌절을 가져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의 당선은 진보진영의 찬란한 승리였고, 강준만, 유시민, 김어준, 진중권 등의 논객들은 이 승리에 일조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되돌아왔고, 그 결과가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의 도래였다. 그 과정에서 논객들은 과거의 총기를 잃고,
네티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이것이 <논객시대>가 그리고 있는 서사다.
저자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논객들의 저작들을
해독해 가며 그 사상의 변천을 추적해 간다. 꼼꼼한 독해도 인상적이고, 문장도 재미있게 잘 읽힌다. 한물간 아저씨들의 책을 읽고 넋두리나
하기에는 저자의 나이가 너무 젊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옛 시대의 막을 내리는 사람의 역할도 필요한지 모른다.
한 시대를 회고함에 있어서는 적절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