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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노스코리아 -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
안드레이 란코프 지음, 김수빈 옮김 / 개마고원 / 2013년 9월
평점 :
대학원 종합시험에서 북한 관련 문제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북한에 대해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험에 북한에 대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막막한 일이었다.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이자 경제적으로 파탄난 국가, 핵보유국, 무엇보다 대한민국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으며 군사적 도발을 수십년에 걸쳐 거듭해온 나라. 과연 북한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아니, 북한은 어떤 나라인가?
<리얼
노스 코리아>는 북한에 대한, 개관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알기 쉬우면서도 깊이와 밀도에서 만족스러운 책이다. 번역이 위트있는 문장의 묘를
살리고 있어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건국부터 김정은의 등장, 그리고 북한의 미래에 대해 재미있게 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북한 엘리트들이 수많은 주민들의 빈궁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며 한국과 미국에 대한 위협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북한 엘리트들에게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소득격차가 15배 이상 나는 한국의 눈부신
발전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진다면, 북한정권은 붕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북한 엘리트들은 그동안 행해 왔던 수용소와 사상통제에 대한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 엘리트들에게 중국식 개혁 개방과 자본주의의 도입은 파멸을 의미한다. 그래서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도발을
통해, 한국,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최대한의 원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북한 엘리트들의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다. 저자는 "북한 정부에게 가장 이성적인 생존 전략은 개혁을 회피하고, 내부의 반항에 무자비한 정책을 계속하며, 자본주의 제도의
자발적인 성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가능하다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259)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비정상적인 체제가 앞으로
장기적으로 지속될 리가 없고, 북한은 언젠가는 붕괴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한국은 북한의 위험한 벼랑끝전술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으며, 북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는 없다. 과거의 햇볕정책이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지극히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양보만을 이끌어냈을 뿐, 본질적인 개혁과 비핵화를 유도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한 인구의 절반정도가 사는 수도권이 휴전선에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가운데 전면전을 펴는 곳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고, 그 외의 국제적 제재 또한 여러 이유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냥 북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방치해 두면, 북한은 도발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한국으로서는 전쟁을 감수해야 하거나
중국의 북한 병합을 의미할 수도 있다. 북한에 관한 어떤 시나리오도, 어떤 해법도 불만족스럽다. 말 그대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저자는 과거 임수경의 방북이 북한 당국자들이나 임수경 본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우월성을 증명했다는 사례를 예로 들며, 북한과의 인적 교류를 통해 북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체제에 균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다. 물론
그럴듯한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북한에 대한 완전한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발언하여, 언론에 때아닌 통일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가장 낙관적인 통일 시나리오조차도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소득격차는3:1, 현재 한국과 북한의 소득격차는
15:1이라고 한다. 통일이 되면 막대한 통일비용(이 책에서는 2조~5조달러 정도를 그럴듯한 추산이라고 보고 있다)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
주민의 대부분은 전체주의적 사고가 뿌리박혀 있으며, 한국에 대한 적의와 고도의 살인기술을 몸에 익힌 3,40만 명의 북한군이 있다. 그들이 과연
통일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저자는 흡수통일 이후를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많은 북한
사람들은 도시의 매혹적인 불빛을 따라 남한으로 옮겨올 것이다. (중략) 북한에서 온 노동 이민자들은 남한의 비숙련 노동자들을 위태롭게 하여,
임금은 떨어지고 남북 주민들 사이에 상호불신은 커질 것이다. (중략) 이 모든 일들은 예상할 수 있듯 남북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324)
물론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은 "(그 모든 부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대박"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통일이 가져올 혼돈과 부작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십 년 동안 한반도의 사람들은 통일이 한번도에 전례 없는 행복과 화합 그리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중대하고 후련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말하자면 2133년 즈음의 역사가들의 시점에서 볼 때는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통일 직후의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하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이 시기는 격변과 사회 분열 그리고 심대한 충격의 때가 될 것이다.
(317)
흡수통일이라는 시나리오는 좋든 싫든 닥쳐올 지 모르는 미래의 사태다.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라면, 통일논의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여전히 답이 안 나오는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정권이 억압적인 세습 독재 정권이라면 강경책이 잘 팔린다. '우리는 악과 협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악을 무찌른다'는 고매한 주장이
사실상 무책임한 허세일 뿐이고 투표소 바깥의 세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때에도, 그러한 주장은 정치인들의 자부심과 선거 결과 양쪽
모두에 매우좋다.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