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 속의 성리학 ㅣ 성리총서 13
피터 K. 볼 지음, 김영민 옮김 / 예문서원 / 2010년 10월
평점 :
"2011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라고 하는데, 학술서다보니, 내용이 비전공자에게는 어렵고, 페이지 수도 400페이지를 넘는다. 물론 가격도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은, 그동안 단순히 공자왈 맹자왈로 이해되었던 성리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그야말로 "역사 속"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당나라가 쇠퇴하고, 송나라가 등장하면서, 중국은 더이상 세계제국이 아니라, 요와 서하에 압박당하는 국가가 되었다. 동시에 강남 지방을 중심으로 화폐경제와 상업이 발달하였고, 그에 걸맞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요구되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왕안석의 신법이었다.
그러나 왕안석의 신법은 곧 큰 반대에 부딪혔고, 특히 남송대에 정호, 정이형제, 주희가 소위 성리학이라 불리는 이데올로기를 발명했다. 명대에 이르며, 주희가 주석을 달고, 오경에서 분리해 낸 사서가 과거시험의 기초가 되는 텍스트가 되면서 그 확고한 위치를 자리잡게 되었다. 명대 후기에는 왕수인(왕양명)이 경험과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주장하며, 주자학과 대립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성리학과 양명학 모두 신유교의 일종으로 다루고 있다.)
성리학, 더 정확하게는 신유교가 중국 사대부들의 정통으로 자리잡으며, 정치와 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신유교는 고대의 정전제와 봉건제의 이상을 부활시키려 했고,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윤리를 중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서원과 향약을 만들었고,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학문을 발전시켰다. 성리학이 어느 날 갑자기 주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요구로 인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