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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물결 - 20세기 후반의 민주화
새뮤얼 헌팅턴 지음, 강문구.이재영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민주주의에 대한 수업에 나오는 논문들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꼭 언급되는 책이 있다. 바로 새뮤얼 헌팅턴이 쓴 <제3의 물결: 20세기 후반의 민주화>다. 민주화에 대한 여러 논문들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대신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혼합체제를 취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지만, 좋든 싫든 헌팅턴이 만들어낸 '민주화 제3의 물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민주화에 대해서 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민주화에 대한 기본문헌임은 틀림없다. 헌팅턴 하면 <문명의 충돌>이나 <Who Are We?>같은 만년의 저작들 때문에 문화보수주의적 측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원래는 '민주화 제3의 물결'로 더 유명하다.

 헌팅턴에 따르면 민주화에는 여러 국가들이 연달아 민주화하게 되는 세 가지 물결이 있었다. 제1의 물결은 182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 서유럽과 북미, 호주 등지에서 100여년에 걸쳐 진행된 민주화다. 이 물결은 1920년대부터 제2차세계대전 시기까지의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가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킨 제1의 역물결로 종결되었다. 제2의 물결은 제2차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패전국들이 민주화되고, 제국주의 열강들로부터 해방된 신생 독립국들이 민주주의 체제를 출범시킨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남미 등지에서 군부 쿠데타 등으로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로 변질된다. 바로 제2의 역물결이다.

 제3의 물결은 197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독재체제가 민주화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남미 각국, 한국, 타이완, 필리핀 등의 아시아 국가들, 동유럽과 구소련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세 가지 물결 구분이 너무 편의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제1의 물결이 100년이라는 긴 시간인 반면, 제2, 제3의 물결은 20년 전후다. 100년 동안의 민주화와 20년 동안의 민주화를 각각 하나의 물결로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리고 제3의 물결은 1970년대 중반 남유럽의 민주화, 1980년대 초중반의 남미의 민주화, 1980년대 중후반의 아시아의 민주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의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민주화를 포함한다. 각각 다른 시기에 각각 다른 지역에서 각각 다른 원인으로 일어난 민주화를 제3의 물결로 지칭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전세계 각국의 민주화를 파악하기 위해서 "제3의 물결"이라는 용어가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헌팅턴은 20세기 후반에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난 것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정통성이 쇠퇴했다는 점, 경제성장으로 민주주의의 토양이 생겼다는 점, 외부행위자(바티칸, 유럽연합, 미국, 소련) 등이 민주화를 촉진하게 되었다는 점, 다른 국가들의 민주화에 자극을 받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로의 이행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은 민주화 세력의 온건파가 주도했으며, 비교적 유혈사태가 적었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이러한 민주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지침으로 정리했다. "정권에 대항하여 대규모 비폭력 반정부집단을 동원하며, 중도파 또한 필요하다면 보수 우파로부터 지지를 획득하고 좌파의 활동을 제한하며, 특히 이들이 민주화운동의 의제를 좌우하지 못하게 하며, 군부계층의 지지를 획득하려고 노력하고, 서구 언론의 우호적 보도를 유도하며, 미국에게 지지를 요청하는 것이다"(208, 209)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망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데, 대체로 타당한 것 같다. 민주화를 개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좋은 책으로 보인다.

 한국은 제3의 물결로 민주화된 나라들 중에서도 꽤나 모범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제3의 물결로 민주화된 국가들 중 많은 나라들이 권위주의 체제로 후퇴하거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혼합체제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25년간 두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고(헌팅턴에 따르면 민주화의 정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두 번의 정권교체가 있다), 프리덤하우스의 평가를 봐도 한국의 정치적 권리는 1, 시민적 자유는 2로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프리덤하우스 평가는 1점이 제일 좋고 7점이 제일 나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탓도 있겠지만, 한국이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는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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