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
아룬다티 로이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2014년, 인도인민당의 나렌드라 모디가 인도 총리로 취임하였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흙수저' 출신인 모디의 이력을 부각시켰고, 인터넷에서는 악수할 때 지나치게 센 악력(握力)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구자라트 주의 총리였던 시절에 발생했던 무슬림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논하는 인물이 적었다. 1997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구자라트 학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02년 2월, 아요디아에서 돌아오던 힌두교 성지순례단이 타고 있던 열차 객실에 불이 나 58명이 산 채로 타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 직후 나렌드라 모디 주 총리가 이끄는 구자라트 인도인민당 주 정부는 구자라트에 사는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인종 학살을 지휘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으로 전 세계에 번진 이슬람 혐오증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구자라트 주 당국은 2000명 이상이 학살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여자들은 윤간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졌으며, 무슬림 15만 명이 집에서 쫓겨났다.(27,28)
아룬다티 로이의 묘사와 달리 모디 총리나 인도인민당이 구자라트 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는 볼 근거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인도인민당이 힌두지상주의적 우익 성향 정당이며, 모디가 이슬람에 대한 강경한 태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어 총리까지 되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공유되는 견해인 것 같다.
이 책은 9.11테러 이후 인도에서도 이슬람 테러가 빈발하면서 이슬람포비아가 확산되고 우경화가 진행되는 2000년대의 인도사회를 저자가 비판하는 책이다. 이보다 앞서 90년대 말, <9월이여 오라>에서 인도의 핵실험과 댐 개발을 비판한 저자는 이 책에서도 신자유주의, 미제국주의, 힌두파시즘에 대해 격렬히 반대한다. 지금은 잊혀진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이 책의 주요 비판 대상 중 하나다. 지금은 퇴임한 조지 부시와 달리 힌두파시즘의 대표적 인물로 묘사된 모디는 이 책이 출간된 몇 년 후, 인도의 총리가 된다.
중국과 함께 세계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인도는 중국과 달리 다양성과 관용,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권의 측면에서 갈 길이 많다. 2001년 12월 발생한 의회 테러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한 네 명 중 두 명은 누명을 벗고 풀려났고, 형이 선고된 나머지 두 명도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이나 증거 조작 등의 부적절한 인권 침해가 있었음을 저자는 폭로한다.
인도의 10억 인구 중 10%는 이슬람 신자다. 무굴제국 등 여러 이슬람 왕조의 지배 이후로 계속된 종교 갈등은 1945년의 파키스탄 분리이후에도 상흔을 남기고 있다(이후 동파키스탄은 인도의 지원을 받아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공식적으로 폐지된 카스트 제도는 비공식적으로 여전히 남아있고, 급격한 경제성장은 빈부격차라는 또다른 갈등을 낳았다. 이러한 여러 갈등들이 힌두파시즘이라는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파시즘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하층 계급이라고 말한다. '흙수저' 출신의 우익 정치인 모디처럼 말이다.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집단을 수탈하고 내쫓고 박멸하려는 계획에서, 가장 가난한 집단이 보병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구자라트의 달리트와 아디바시, 수천 년 동안 상위 카스트 계급에서 멸시받고 억압받고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이들이 압제자와 손잡고 백지장 차이로 자기들보다 덜 불운한 사람들을 공격한 이유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중략)
불행한 이들이 자신 바로 다음으로 불행한 이들에게 분노와 증오를 내뿜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진짜 적은 접근할 수가 없고, 난공불락에 불가항력적인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68)
흔히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달리트와 아디바시의 인권에 대해 우호적 관점을 가진 저자는 이들이 정작 혐오세력이라는 현실에 모순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나치스의 대두부터 최근의 트럼프 현상에 이르기까지 극우 파시즘이나 인종차별주의를 지지하는 계급이 누구냐에 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파시즘이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인도 극우주의의 향방과 함께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p.s. 모디 총리는 올해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수상을 결정한 사람들은 이 책을 안 읽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