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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랑자의 세계 ㅣ 국가를 바라보는 젊은 중국 지식인의 인문여행기 2
쉬즈위안 지음, 김태성 옮김 / 이봄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사회비평가 겸 작가이자 인문책방 운영자"로 저자 소개에 나와있는 중국의 쉬즈위안(許知遠)의 인문여행기다. 저자의 전작인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가 중국 이곳저곳을 여행한 뒤 쓴 책인 반면, <한 유랑자의 세계>는 인도, 부탄, 러시아, 유럽, 이스라엘, 아프리카, 미얀마 등을 여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저자가 발견하는 것은 중국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러시아를 여행하며 러시아의 후진성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가 공유하는 경험을 의식하고 있다. 냉전 시대의 사회주의 독재와 경제의 자유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강력한 독재적 리더십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엿보인다. 인도에서도 타고르와 네루(책에는 "네루다"라고 나오는데 인도 초대 수상인 자와할랄 네루의 誤記인 듯)의 동양 정신을 논하는 한편, 급격한 경제성장을 하며 '친디아(Chindia)'로 호명되는 중국과 인도의 모순에 대해 논한다. 베를린 장벽의 옛터에서는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의 홍콩을 방문했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마지막 장에서는 민주화가 갓 성공한 2013년 당시의 미얀마에서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의 일종의 모범을 보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몰랐던, 혹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중국과 세계의 관계가 언급되고 있어 흥미롭다. 무엇보다 2010년대 명실상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선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잘 나타난다. 저자는 미국이나 일본의 방문기는 적고 있지 않지만, 이제는 쇠락한 유럽이나 아직 뒤처진 러시아에 대한 방문기에서는 서구에 대한 열등의식을 뿌리치고 중국몽(中國梦)을 꿈꾸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한편으로 최근 들어 중국이 뒷마당으로 만들고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인 기업가들이 현지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내보인다. "1910년 조선이 일본이 병합되었을 때 (중략)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조선은 원래 우리의 속국이었다"라고 생각했다"(111)는 것처럼 19세기까지의 중화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가 세계 어느 곳을 가서도 중국의, 혹은 중국과 유사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중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1930년대 독일의 에른스트 블로흐가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여러 시제(時制)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만들어낸 말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사회문화에 대해서도 자주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폐쇄적 사회주의 국가에서 30여년만에 G2로까지 압축성장에 성공한 중국이야말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도, 급격한 발전에 성공한 인도에서도, 저개발국가인 아프리카에서도,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쇠락해가는 유럽에서도 저자는 중국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이유는 세계 어딜 가든 중국인 화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문기에서도 현지의 중국인 교민이나 유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중국인 화교의 역사를 훑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 모임 내의 선거전을 묘사한 부분은 흥미로운데, 칭화대학 학벌 카르텔을 등에 업은 유력 후보와 조직표는 없지만 특이한 캐릭터로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킨 후보 간의 대립이 중국사회 그 자체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중국의 굴기를 우려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중국이 다시 집단주의를 인정하면서 폐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지성, 반엘리트주의 정서가 갈수록 농후해지는 반면, 협애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흥기하면서 저열한 대중문화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나는 분노와 두려움을 느꼈고 좌절과 절망감을 느꼈다."(393) 어디에선가 저자를 중국판 블랙리스트 작가로 소개하는 것을 보았는데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대해 심각한 통제가 여전한 중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한국의 블랙리스트와 비교하는 건 저자의 용기 있는 언론 활동에 대한 과소평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민주화 직후의 미얀마를 통해 중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여전한 영향력, 로힝야족 문제, 언론 통제 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 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