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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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13호 캐비닛’에 대해 우아하고 낭만적인 상상을 떠올리는 짓은 일찌감치 집어치우기를 권한다. 그런 상상을 한다면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작가가 이래도 되나, 하지만 난 그가 시키는 대로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가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루저 실바리스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도 그냥 ‘뜸금없네’ 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화산 폭발로 인해 사라진 도시 상피에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몇 십 년 동안 은둔의 생활을 하며 자신의 고향에 대해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희대의 거짓말쟁이다. 그렇다. 그는 거짓말쟁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에 대해 더 이상의 상상은 작가는 용납지 않는다. 그러니 그에 대해 우아하고 낭만적인 상상을 떠올리지는 마라. 그가 미리 경고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도 그냥 넘어갔다.

 

백칠십팔일 동안 캔맥주만 마신 남자가 있다. 백칠십팔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드는 저녁까지 캔맥주를 마시는 생활을 반복하다 백칠십구일 째 되는 날 아침, 맥주 마시는 일을 그만둔 남자. 오로지 캔맥주와 땅콩만으로 백칠십팔일을 버티어온 남자. 그는 공기업의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지만,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한두 시간이면 처리할 간단한 업무를 끝낸 후 사무실 구석자리에서 화분처럼 조용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일을 하기 위해 고시원과 학원가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고, 13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개껌이라도 질근질근 씹어먹고 싶은 무료함을 견디다 못한 그는 13호 캐비닛이라는 이상야릇한 세계로 발을 한 발짝 내딛게 된다.

 

그가 왼쪽에서 열세 번 째 놓여 있는, 유일하게 자물쇠가 달려 있는 13호 캐비닛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무료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딱히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심심했을 뿐이었다.

 

13호 캐비닛 안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믿거나 말거나’ 에 나와야 할 것 같은 특이한 사람들에 대해 기록해 놓은 파일들이 가득하다. 손가락에서 은행 나무가 자라는 사람, 고양이가 되고 싶은 남자, 남자의 성기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 매번 자신의 분신을 화장해야 하는 샴쌍둥이, 눈 깜짝할 새에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사라지는 타임 스키퍼 등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변화된 종의 징후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심토머들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공대리는 심토머들에 대한 파일을 읽기 시작한 후 심토머들을 연구하는 괴짜 권박사의 협박에 못 이겨 심토머들의 전화를 받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만나서 술 한잔도 기울이는 등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보관하는 일을 7년간 계속한다.

 

그렇게 공대리를 통해 심토머들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 들려줄 것 같던 작가는 권박사가 병에 걸려 사망하기 직전부터 어이없게도 스릴러 첩보물로의 변화를 꾀한다. 모기업에 의한 협박과 납치, 고문 등 책의 장수를 늘리는 게 목적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것이다.

 

기괴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이 반복적으로 나와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유머러스하고 능청스러운 문장이 무척 유쾌하고 재미 있었다. 하지만 첩보물로 변하는 순간부터 늘어지기 시작한 이야기는 더 이상 재미를 유발시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설득력이 약한 궁색한 결말을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작가의 문학동네 수상작다운 면모는 소설 중간 중간에 나타난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심토머들의 증상에 관한 기록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물을 보는 듯 허무맹랑하지만 공대리를 등장시킴으로 인해 현실적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고, 감칠맛 나는 작가의 재치 넘치는 글 솜씨와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그만의 독특한 창의력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앞으로의 그의 행로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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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20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에서 조금 긴장감이 떨어졌지만 '창의력' 면에서 저도 점수를 높이 주고 싶었어요. 문학의 매력은 그런 데에 있는 것 같아요. ^^

얼음장수 2007-01-21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저런 이야기를 다 끌어왔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킥킥 거리는 웃음을 참아가며 읽느라 진땀뺐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ryuhwlove 2007-01-2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김언수 작가의 창의력~ 정말 높이 살만하죠?^^
얼음장수님~ 정말 그렇죠? 저도 웃음 참느라 진땀 좀 뺐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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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타자, 투수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 밖에는 없지만,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랬기에 2006년에 개최된 WBC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에 열광하던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틈에 끼고 싶어 기웃 기웃거렸을 테니 말이다. 응원에 열을 올리던 그들을 쫄래쫄래 쫓아 다니며 "타율이 뭐야? 병살타가 무슨 말인데, 이닝은 뭐고?"   쉬지도 않고 질문을 해댔다. 그런 나를 귀찮다는 쳐다보면서도 알아야 야구 용어들을 나열해가며 열심히 설명을 해준 그들의 열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만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나는 야구가 어려운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헷갈려 하다 결국 야구에서 눈을 돌렸다그나마 다행인건 대신 손과 도구를 쓰는 다를 , 학창 시절 심심찮게 했던 발야구랑 비슷하구나 하는 야구에 대한 나의 견해를 간단하게나마 정의 내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가 책에 관심을 가지게 순전히 나의 오만함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책을 여태껏 읽지 못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으니, 남에게 뒤지는 싫어하는 데다 욕심이 유달리 많은 나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지 않나 싶다. 나의 그런 성격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동안 읽은 책이 헤아릴 없을 만큼 많아야 정상일 테지만 실상을 살펴보자면 다른 독서 애호가들에 비해 명함도 내밀 정도로, 그야말로 세발의 피라고 하기에도 모자랄 만큼 수는 많지 않다. 그러니 책을 선택하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세울 없는 오만방자한 욕심쟁이의 되도 않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있겠다.

 

각설하고, 이러한 연유로 책을 손에 들긴 했는데, 어랏,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야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니 당연하게도 야구 용어만 나왔다 하면 책을 뒷전으로 밀어버렸던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진땀 꽤나 흘렸다. ,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야구 용어가 빼곡히 나와있는 야구 용어집은 절대 아니니까...

 

연일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우울과 절망이 가득한, 희망을 찾으려면 귀를 쫑긋, 눈을 희번덕거려야만 간신히 있을 정도로 빡빡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들 발버둥 치기에 여념이 없다. 쉬지 않고 달려온 만큼 즐겁고 행복한 미래가 보여야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으니 조바심이 더욱 열심일 밖에 없다. 삼미의 주인공인 ‘나’가 보여주는 또한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창 시절에는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전교 1 자리를 고수하고, 일류대에 입학해서는 일류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린다. 그러다 일류 기업에 입사하여 한시름 놓나 싶지만 새벽 출근, 새벽 퇴근의 반복이다. 뒤를 돌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주구장창 달리다 고개 들어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떠나고, 회사에서는 정리해고를 당한 힘없는 ‘나’만 있을 뿐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제자리를 찾을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는 ‘나’를 보며 불알친구 조성훈은 말한다. “지면 어때?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9 아웃에서 스트라이크 쓰리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4 내내 그렇게 살았지? 조금 들어온 .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그러니까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이상은 속지 .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공은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다”는 삼미의 정신을 이어 받은 조성훈은 ‘나’와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다. 프로만이 살아남는 사회에서 만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 삼미의 아마추어적인 정신과 실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였고, 같은 이유로 유년기 ‘나’의 인생에서 삼미는 수치스런 존재였다. 잠시 머문 동안 누구도 깨지 못할 수많은 기록을 세운 삼미가 해체되면서 ‘나’의 유년도 끝이 났다. 하지만 조성훈을 통해 되살아난 삼미의 느긋함이야 말로 ‘나’가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조성훈과 함께 삼미의 마지막 팬클럽을 창단함과 동시에 ‘나’만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프로 야구에서 삼미는 그들만이 있는 노히트 노런의 어처구니 없는 기록, 최다 연패 기록 짜고 친다 해도 나올 없을 정도의 최하 성적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하지만 프로만이 대우 받고 살아 남는 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프로정신이 아닌 삼미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아닐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박민규 작가 특유의 재치로 가볍게 풀어나가 읽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문장 문장 곱씹으며 쉴새 없이 웃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어찌나 아쉬운지 앞으로 넘겨 다시 읽기를 번이나 반복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음에 다시금 속이 상했지만, 지금이라도 접하게 되어 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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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야구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었지만 이 작품 너무 즐겁게 보았어요. 덕분에 박민규 팬이 되었죠. ^^
 
제 멋대로 키운 아이 더 크게 성공한다 - 내 아이 성격에 꼭 맞는 성공 교육법
윤태익 지음 / 더난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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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 멋대로 아이를 키우라니, 그렇지 않아도 제 자식만 애지중지하는 부모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그런 부모들을 부추기는 이런 책들까지 나오다니 말세군, 말세야.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아무리 가지각색이라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이 사람, 대체 어떤 말들을 쏟아낼지 기대가 되는군. 

 

하하. 이 사람, 신기가 있나? 아니면 제목에 태클 거는 사람들이 많았나? 프롤로그에 제목에 대한 의미를 명시해뒀네? 제 멋대로는 내가 생각한 방임이나 방치가 아닌 타고난 본성을 얘기하는 거라는군. 아하, 그렇다면 아이만의 본성을 최대한 살려 키워주라는 말인가 본데. 아무리 별의 별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는 하나, 아직까진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걸 잊고 있었군.

 

그럼 이제 저자에 대한 오해도 풀렸으니 마음 편히 저자의 교육법 강의를 들어볼까.

 

저자는 아이마다 타고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여 우선 자신의 아이가 어떠한 본성을 타고 났는지를 파악하여 아이의 유형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의 본성을 크게 세가지로 나누면 지적 욕구가 강한 머리형, 타인과의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갖는 가슴형, 힘과 본능 중심의 장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특성이 잘 설명된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산을 오르기 위해 세 사람이 한 곳에 모였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그들의 목표지만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방식은 모두 제 각각이다.

머리형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등산로는 몇 개인지, 산을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지, 날씨는 어떠한지 등 상황분석이나 정보수집에 가치를 두고 산을 오른다.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중요시 여기는 가슴형 사람은 함께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는지 등을 세심하게 따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산을 오른다. 장형인 세 번째 사람은 본능 중심으로 행동하며, 사람들을 통제하고 이끄는 등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사람마다 목표하는 바는 같아도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방식은 모두 다름을 이해하고,사람의 본성 또한 같을 수는 없음을 인정하라고 저자는 얘기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도 각각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여 아이들이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부모가 제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살펴 보면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은 부모들이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하고 포기해버린 꿈들을 아이가 이루어주길 기대한다. 그렇기에 아이의 기준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의 성격은 고사하고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이제 그만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은 버리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보듬어주면서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몇 해 전,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창 유행하던 MBTI, 애니어그램 등 성격 테스트 프로그램을 받은 적이 있다. 테스트 할 때마다 다르게 나온 결과를 보며 전 세계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느끼고 더 이상 검사를 받지 않았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느낀 기분을 얘기하자면 테스트를 끝내고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의 허무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애니어그램에 기초를 두고서 쓴 책인 것도 그러하고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음직한 식상한 이야기들의 나열, chapter 마다 제목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의 반복이 시중에 나와 있는 자녀 교육서들에 아쉬움을 느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을 들어 자신만의 방법론을 내세운 저자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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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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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을 에는 매서운 바람이 조금은 사그라진 한적한 주말 오후, 페퍼민트 차를 마시기 위해물을 데우는 순간부터 우려진 차를 음미하는 순간까지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경험한다.

페퍼민트 차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에 흥미로움을 더해주는 폴케 테게토프의 페퍼민트에 관한 이상야릇한 이야기는 페퍼민트에 관한 나의 관심을 한층 더 고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페퍼민트의 짙은 향기와 화려한 색깔을 들이마시고 있을 때 낯선 이가 찾아온다. 뜬금없이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하는 그의 입에서는 가난한 동네 화장실 냄새 같은 불쾌한 냄새가 풍긴다. 그 냄새에 기겁한 나는 물 0.5리터와 포도주 0.5리터를 붓고 끓여 페퍼민트 잎 다섯 개를 집어 넣은 후 남자에게 매일 한잔씩 마시기를 권한다. 그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자신의 전재산인 유리구슬을 꺼내 나에게 선물한다. 그가 나간 후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남자가 찾아와 배도 아프고 가스도 차고 토하는 등 안 아픈 곳이 없다며 하소연한다. 그에게 페퍼민트 잎을 한 자루 따서 건네주며 차를 마시기를 권하자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새 한 리를 꺼내 선물한다. 두 남자의 갑작스런 방문에 어리둥절해 있던 내가 다 식어빠진 차를 마시려는 찰나,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온다. 또 아픈 사람인가 싶어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자, 여인은 밝은 목소리로 우연히 지나가다 향기가 너무 좋아 찾아왔노라 대답한다. 아픈 곳이 없으니 선물도 없겠군 아쉬워하는데 여인이 맛있는 차를 대접 받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법의 가루를 건넨다. 다음 날, 입 냄새 심한 남자와 배가 아픈 남자가 교대로 들어와 나를 부둥켜 안으며 말하기를 어제 나에게 선물한 유리구슬과 새는 딱 한번 마법을 부릴 수 있으니 만약 그것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얻게 되거든, 그 절반은 자신들의 몫이니 잊지 말라고 한다. 그들이 모두 돌아간 뒤 호기심에 구슬을 들여다 본 나는 어느 왕궁의 공주가 죽어 있음을 발견한다. 자고 있던 새를 깨워 왕궁으로 간 뒤 아리따운 공주에게 마법의 가루를 뿌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공주가 깨어나 내게 키스한다. 왕이 건네주는 궤짝 하나를 새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 내 앞에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나타나 서로 자기 몫이라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들을 궤짝과 함께 밖으로 내몰고 나는 느긋하게 페퍼민트 차를 마신다.

 

페퍼민트에 얽힌 이야기와 같이 어릴 적 한 두 번쯤은 들어 본 적 있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식물에 관계된 이야기라는 점이 새롭게 다가와 낯선 식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너무 가까이에 있어 무심하기만 했던 식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동화라는 본분에 맞게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들로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를 인간의 착한 본성, 겸손, 정직, 인내 등 인간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아 이 모든 것을 잊고 살았던 어른들에게 특히나 더 효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17가지 허브에 관한 이야기 중간 중간에 한 페이지씩 자리잡고 있는 독특한 판화 일러스트는 단순하면서도 거친 느낌이지만 정교하고 날카로워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상상력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해줌으로써 상상력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허브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허브의 유래, 효능과 함께 실은 식물 그림 대신 생생한 사진을 실었더라면 기억하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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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인간 1 - 북극성
조안 스파르 지음, 임미경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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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을 쓰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나 더 쉽지 않은 책들이 있다. 나무인간이 그 중 하나인데 책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보다 재미 삼아 책을 읽는 내게 이 책은 쉽게 읽혀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서평 또한 어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줄거리만 따진다면야 나무인간과 그 친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라 쉽게 얘기할 수 있을테지만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야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숨은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안 스파르는 유대 전통 속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유대전설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유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인물들인 나무인간과 떡갈나무를 지키는 땅도깨비 카카를 만들었고, 유대의 카발라 주술을 통해 생명을 얻는 골렘을 그대로 등장시켜 독특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숲 속의 목수인 나무인간은 죽은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한다. 친구래 봤자 자신처럼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나무가 아닌 한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평범한 나무들과 인간 세상을 떠나 숲에 정착한 랍비 엘리아우, 그가 마법으로 만든 진흙 인형 골렘이 전부이긴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숲 속의 하루 하루가 소중하기만 하다.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사악한 무리의 알리트바라이의 왕이 나무인간에게 오래된 떡갈나무인 아틀라스로 피아노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숲을 전부 불태워버린다는 협박을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 알리트바라인들은 평소부터 아틀라스를 없앨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남의 것을 탐내고 시기하는 그들은 자신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이유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아틀라스를 없애려는 것이었다. 생명이 있는 나무로는 어떠한 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나무인간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결국 그들에게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로만 이해하고 읽어 나가다 어느 순간 배신감이 들었다. “나무인간과 그의 친구들은 험한 역경을 뚫고 악의 무리를 해치운 후 아틀라스를 구했다” 라는 당연한 결말을 예상한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평이한 결말에 다소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평범한 나무인간이 영웅이 될 정도의 능력과 의협심이 강한 인물이 아님을 간과했던 나의 안이함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실망감에 지겨워했다고만 생각하면 크나 큰 오산이다.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예상을 깨는 반전에 오히려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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