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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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은 언제나 그렇듯 시끌벅적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따라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보자. 지하로 내려가는 미끄럼틀을 타고 계단 벽에 그려진 멋진 벽화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도서관이다. 도서관 입구에는 흔들 그네가 보이고 바닥 한가운데는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꿈을 키울 수 있는 커다란 지도 한 장이 끼워져 있다. 더 안쪽을 들여다 보면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골방이 있고,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만든 아늑한 방도 보인다. 고개 들어 책꽂이 위를 바라보면 큼지막한 그림책 포스터가 붙여져 있어 도서관을 한층 더 밝게 해준다. 구석 곳곳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저자의 따스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도서관이면서도 전혀 도서관답지 않은 공간을 만든 저자는 놀이가 삶인 아이들이 책도 놀면서 만날 수 있길 바랐다. 그랬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쏙 빼앗아 놓은 멋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다. 이 도서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문화 불모지였던 용인의 작은 마을에 희망의 빛이 되었다.

책은 물론이요 아이들을 위한 놀잇거리가 많은 곳이니만큼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보다 놀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은 당연지사. 어떤 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 책을 읽지 않는 아이는 없다. 처음에는 만화책을 보기 위해, 아이들과 놀기 위해, 또는 밖에서 뛰놀다 물만 마시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지만 어느 순간 책을 펼쳐 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책에 붙여진 레이블을 보고 누가 먼저 책을 꽂는지 시합도 벌이고, 새가 나오는 책, 벌레가 나오는 책, 기차가 나오는 책 등 책 찾는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놀이가 된 책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이 없어지게 되자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제멋대로 드러눕고 엎드리거나 돌아다니는 등 책 읽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 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아 진 것이다. 또한 아이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던 엄마들도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잃었던 꿈도 다시 꾸게 되고 도우미 활동도 하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아이에게만 국한되었던 사랑과 정성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쏟으며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 비행청소년 등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한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은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서관이 생기게 되면서부터는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가 박쥐가 새끼를 낳는 포유류임을 알게 되고, 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대기도 하고, 꿈을 잃은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가슴이 따뜻해지고 흐뭇한 마음이 들어 읽는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을 입시에 반영하기 위해 강요에 의해 읽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경쟁위주의 교육을 더욱 부추기는 엄마들의 극성에 아이들은 쉴 곳 마저 잃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제 그만 아이들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통해 이웃과 어울리고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배우길 바라고,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상처받고 신음하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세상을 헤쳐나갈 수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또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꼭두각시 아이들도 책과 함께하며 자극도 받고 잠재력을 키워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자랄 힘을 타고나는데, 부모가 너무 잘 가르치려 하다 보니 오히려 그 힘을 막게 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한 적이 있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가 그것이다.

책이 아이들 삶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면 좋겠다. 사람과 어울리는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쉼을 누리고 상상력을 펼칠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좋아할 권리를 누리게 되면 그 나머지, 어른들이 바라는 지식은 벌써 아이들 손 안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니까.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우리는 등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것 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되길 바랐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사람만 배려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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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 빛나는 어린이 문학 5
이주홍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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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북 치는 곰’에 등장하는 야광귀는 한결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앙괭이라고도 불리는 야광귀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제 발에 맞는 것을 가져 간다는 민간 신앙 속 귀신이다. 올 설에도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지상에 내려갈 계획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다른 때보다 신중해 보인다. 사람들이 야광귀들을 속이기 위해 대문에 걸어둔 체의 구멍을 세느라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내려갈 것인지 여러 의견들이 오갔다. 그 때,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막내 똘똘이다. 가족들의 우려와 비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기세등등하여 지상 나들이에 나선 똘똘이는, 어둡고 조용한 길을 왔다 갔다 하며 헤매긴 하지만 인간들이 걸어둔 체를 보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어둠을 뚫고 한적한 인가를 찾아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간 똘똘이는 생각처럼 신발을 쉬이 찾지 못한다. 그러다 부엌 한 켠에 놓여진 북치는 곰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동한다. 곰 뒤에 달린 태엽을 돌리고 또 돌리자 북을 치기 시작하는 곰. 한참을 그 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며 놀고 있노라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온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쫓기듯 하늘로 올라가지만 어느새 자신의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는다. 순진하고 귀여운 야광귀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솔솔 잠기는 눈을 억지로 비벼대며 열심히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이 생각난다.

야광귀 이야기는 그 옛날 감칠맛 나게 고운 우리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와 같이 포근하고 구수하다.

나뭇잎들이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가을에 어울리는 ‘은행잎 하나’는 성덕사 큰 절 옆 은행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늦은 가을, 황금빛깔의 노란 잎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은행잎 아이와 은행나무 엄마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만 들어보니,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떼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내년에 또 만날 수 있다는 엄마의 다정한 말에 이내 수긍한 듯 자신이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스케치북 위로 떨어진다. 아이와 함께 한 지 얼마지 않아 개구쟁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잎을 강한 바람이 빼앗아 달아난다. 바람아 바람아 성덕사 가자 울 엄마 날 찾아 울고 있다 은행잎이 홀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바람은 어느새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품 속으로 은행잎을 실어다 준다.

푸릇푸릇하던 은행 잎들이 하나 둘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요즘 가까운 곳에 은행 나무가 있다면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운이 좋으면 그 곳에서 엄마 은행나무와 은행잎 아이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체통’에 등장하는 어린 숙희는 집 앞에 있는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며 넣는 사람은 많은 데 꺼내 가는 사람은 없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다 저 혼자 상상한 것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땅 속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그리로 편지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밥 대신 쪄 준 개떡을 먹던 숙희는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 기름종이에 개떡을 싸서 우체통에 넣는다. 그 후 아버지가 개떡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답장은 고사하고 자신이 보낸 개떡이 그대로 되돌아오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숙희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체통에 개떡을 집어 넣는 장면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참기가 어려웠다.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생각나 숙희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과 그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담백한 그림이 너무 예뻐 읽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내가 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해맑은 순간은 동화를 접했을 때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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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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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작부터 나타나는 범인이라니, 읽으나마나 뻔한 결말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나니 더 이상 책 읽기가 즐겁지 않았다. 게다가 내 짐작이 맞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들춘 게 화근이었다. 결과를 알고 나니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할 거 없는 시작이었다. 한 여자를 남몰래 흠모하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매일같이 도시락을 사러 간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매일 도시락을 사러 오는 이웃집 사람이라는 것과 고등학교 수학 교사라는 것 정도다. 어느 날, 사건은 발생한다. 그 여자는 그녀와 그녀의 딸을 괴롭히던 전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수학 교사가 그들을 도와 교묘히 사건을 은폐한다. 경찰이 찾아오지만 전혀 단서를 잡지 못한다. 천재 물리학자가 나타나 사건의 실마리를 푼다. 결국 사건의 전말이 공개된다.

간단명료하게 줄거리를 요약했지만 내용 자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수학자와 물리학자 두 두뇌간의 대결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주었으며 이들이 나누는 선문답은 다음 장면을 상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단서가 되었다. 수학 자는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그의 호적수인 천재 물리학자는 그 사건을 파헤치려 한다. 추리 소설에 의례 등장하게 마련인 쫓고 쫓기는 자 중, 과연 수학 교사는 쫓는 자였을까? 쫓기는 자였을까?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물리학자가 제시한 답에 대한 수학자의 답을 보면 짐작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수학밖에 모르던, 수학만이 삶의 전부인 이 남자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그녀에게 헌신한 걸까? 어느 날, 삶의 의미를 잃은 그가 죽음을 결심한 순간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가 찾아온다. 그 모녀를 본 순간 자살충동은 사라지고,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고 행복에 겹다. 그러니 어려움에 처한 그 모녀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 여기며 은혜를 갚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의 눈물겨운 지고지순한 사랑에 답답하면서도 더없이 순수하기만 한 그가 안쓰러웠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가 가엾기 그지 없었다. 그에 비해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그 여자에게는 화가 났다. 수학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미웠고, 그 마음을 알고서도 부담스럽게 여기는 그녀가 기분 나빴으며, 그 와중에도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그녀가 미치도록 싫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녀가 밉고 싫어도 그녀가 자수를 택한 것에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수학자의 심정이 어떠할 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미친 듯 오열하던 그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이건 여담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 두 개 정도의 오타는 있기 마련이라 대충 넘어가는 편인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오타가 많다. 특히 조사의 변화에 대해서는 과연 교정을 하고 인쇄를 한 건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작품의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걸 출판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오타 중 “등을 고추세웠다” 라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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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대개 비슷한 것 같아요. 시작부터 범인이 나와서 당황. 그러나 재밌더라, 그리고 오타 너무 심해!
전 못 봤는데 엄청 굼금해지더라구요. 근데 과연 언제나 볼 지 알 수 없어요..;;;

ryuhwlove 2006-10-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정말 그렇죠? 그래도 마지막의 반전은 예상치 못했답니다. 시간 되시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오타가 거슬리긴 하겠지만 꽤 괜찮은 책이에요^^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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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잠이 많은 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은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났다. 별일이다 싶으면서도 사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고요한 이른 새벽에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그 전날 눈 여겨 두었던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를 손에 들었다. 고풍스런 타샤의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와 다채로운 꽃들의 향연에 폭 빠질 무렵, 문득 예전에 읽은 글귀가 생각났다. “아침 잠이 많은 사람들은 햇볕을 쬐게 되면 생체 리듬이 정상을 되찾게 되면서 아침 잠이 없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그제서야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날 따사로운 햇살이 온 몸에 퍼지는 듯한 기분이 너무 좋아 아파트 주변이며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 결국 호수가 있는 근처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 겨우 하루만의 햇볕 쐬기에 편안한 잠을 자고 이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다니, 타샤 튜더의 전원 생활은 얼마나 멋질까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녀가 오두막 집 문을 열고 나서기만 하면 광활한 대지 위에 초록색 옷을 입은 나무들이 노랗고 붉은 색색의 꽃들을 둘러싸고 있고,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면 넓디 높은 푸른 하늘과 솜털 구름이 가득하고, 그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밝은 얼굴의 해가 있으니 그게 바로 지상 낙원이 아니고 무언가 싶은 마음이 드니 어찌 그녀가 부럽지 않을까.

타샤 튜더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낙천가다. 그녀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생활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여성이다. 동화작가로 많이 알려진 타샤 튜더는 아들이 지어준 집에서 30만평이 넘는 대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맨발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으로 날씨를 예감하는 그녀는 정원 가꾸기와 소젖 짜는 것이 꿈이다. 그녀가 꽃과 함께 있는 모습이라던가, 강아지들과 함께 정원을 거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이 아닌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연과 하나인 듯 보인다. 부지런히 정원과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그녀는 손수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염소 젖을 이용해 버터와 요구르트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녀가 만든 옷은 너무 고풍스러워 꼭 한 번 입어 보고 싶다. 그녀는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좋아한다. 특히 19세기에 유행하던 옷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속세를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진 않다. 하긴 그녀 자신은 상업적인 화가라 고백한 바 있으니 그다지 문제될 건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 삽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아, 본인의 창의력에 흠뻑 사로잡혀 계시는군요' 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상업적인 화가고, 쭉 책 작업을 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내 집에 늑대가 얼씬대지 못하게 하고, 구근도 넉넉히 사기 위해서!

이렇게 행복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의 친구분께 맡겨져 자란 것 하며 – 그 곳에서의 생활이 가장 좋았다고는 하지만 – 자신의 이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멋진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아이들은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긍정적이고 활달한 어른으로 성장했음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녀의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기획하고 옷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등 창의적인 활동들을 많이 하고, 가까운 친지와 이웃들을 불러 파티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나누었다. 그런 그들의 여유로운 생활을 보니 공부에 치여 그나마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TV와 컴퓨터 게임뿐인 요즘의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높디 높은 건물들로 빼곡히 둘러 싸여진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그녀의 삶은 너무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신기루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라는 타샤의 신조를 떠올리며 이루지 못할 꿈일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해 두었던 나만의 꿈을 끄집어 내어 그 동안 억눌렸던 마음의 평안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자녀가 넓은 세상을 찾아 집을 떠나고 싶어할 때 낙담하는 어머니들을 보면 딱하다. 상실감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어떤 신나는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둘러보기를.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러니 홀로 지내는 것마저도 얼마나 큰 특권인가. 오염에 물들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터지긴 하지만,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해마다 별이 한 번만 뜬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생각이 나는지. 세상은 얼마나 근사한가!'

‘직접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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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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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대중매체를 이용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언제나 길을 잃는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도 모르는 채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고 이끌리기를 반복한다.

나는 어느 샌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가, 형 안도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순간 생각해, 생각해 맥가이버 라고 외치는 안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안도는 어딘가 무솔리니와 닮아 있는 듯한 이누카이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안도가 느끼는 두려움은 이누카이라는 인물을 통해 파시즘을 향해 치달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좇아 이리 저리 휩쓸리는 이들의 생각없음 이다.

그는 엉터리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는 신념을 가지고 30보 안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복화술을 이용해 어리석은 그들과 맞서고자 한다.

하지만 거대한 적들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치바의 등장과 함께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안도를 대신하여 미치도록 운이 좋은 동생 준야가 세상과 맞서려고 한다. 안도가 혼자 외로이 그들과 힘겨루기를 한 것과는 달리 준야 곁에는 그의 아내 시오리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그들를 이끄는 이누카이를 두려워하며 반대하는 미츠요와 같은 깨인 사람들이 있다. 이누카이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외친다. 그리고 흐름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형과 동생이 힘을 합쳐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같은 동화 속 해피엔딩은 없다. 다만 희망적 메시지를 남김으로써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무진장 큰 규모의 홍수가 났을 때, 그래도 나는 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언제까지고 꿈쩍도 않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모두 다 괜찮아. 내가 잘할게. 내기해도 좋아

속이 후련할 만큼의 통쾌한 결말을 기대한 나로서는 조금 아쉬운 감도 없잖아 있다.

하긴 이사코 코타로가 반전이나 통쾌감 같은 것들은 버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써보자고 해서 집필한 것이 [마왕]이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왠지 성에 차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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