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아직 보지 못한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상상했다. 지브리와 산카이마코토 사이의 화풍으로 소설이 묘사하는 장면들을 내 방식대로 그려나가며 읽어 내는 경험이 독특했다. 작가의 마음속에 깊이 박힌 재해에 대한 인식이 정령(?)들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문단속 하는 이야기로 그려졌다. 초 자연적인 환상과 귀여운 캐릭터로 하여금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달달하고도 슬픈 청춘의 로맨스가 코 끝 찡한 클라이맥스를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잔잔한 이야기가 좋다고 중얼거리며 책을 덮었지만, 좀 더 어렸을 때 봤으면, 더 크게 고동치는 가슴을 안고 읽었을 법 하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재능많은 젊은이의 사치스러운 뿌리 찾기 이야기…자기 인생에 대한 공허를 채우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세 남자가 연결되는 순간에서 소설의 세련미를 느끼게 된다. 히어로와 복잡한 세계관이 스크린에 난무한 지금,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두 시간짜리 잔잔한 드라마로 넷플릭스 한 켠에 ‘Recommended’로 자리하겠지만, 9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꽤 주목받는 영화가 되었을 법한 이야기였다. 독백이 많고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많아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울 법한 서사 구조를 가졌음에도, 순식간에 수십장의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폴오스터의 문장력에 감탄했다.
뱀파이어라는 고전적 소재로 현대적인 스릴러를 만들어낸 거장의 두번째 작품을 읽어보니, 스티븐 킹은 이 두번째 작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을 것 같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현하고 서술해내는 것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특히 마을이 점점 뱀파이어 소굴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이야기의 서술력은 마치 욕망을 파는 가게에서 보여준 서사와 유사하여 반가웠다. 악에 맞서는 주인공 벤과 마크의 마지막 모습도 엔딩으로 딱 알맞았다. 그리고 공포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마주대하는 것이라는 교훈이 머릿속에 남는다. 스티븐킹의 소설을 수십권 읽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소설속 주인공들이 한 이야기에서 어벤져스와 같이 만난다면? 그래서 소설의 악이 모두 모인 빌런의 소굴과 함께 맞붙는다면 재미있는 스티븐킹 유니버스의 엔드게임이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