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 - 하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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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물은 왠지 경직된 계급체계 아래 피비린내 나는 얘기가 가득할 것 같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단편 모음집 “철도원”을 읽고 작가의 인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기품어린 문체에 매력을 느꼈던 기억을 갖고, 작가 아사다 지로가 쓴 사극 “칼에 지다”를 기대반 우려반으로 펴게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챕터에서 생각지 못한 액자식 구성이 출현하며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살아온 가장으로서의 처절한 투쟁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자, 겉잡을 수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주인공이 서술하는 자신의 심정과, 이러한 주인공을 바라봐왔던 동료들이 남기는 주인공에 대한 얘기가 교차되며 주인공 요시무라에 대한 깊은 동경과 가장으로서 본분을 다하는 이야기의 뭉클함이 내 가슴에도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아버지의 이름을 받았으나, 아비도 자신도 정작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던 막내가 아비의 고향으로 돌아와 환영 받는 장면은 긴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더 없이 훌륭한 피날레였다. 인과 의가 옅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실리가 아닌 의미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두고 살아왔는지 되돌아 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번역자인 양윤옥이 쏟아부은 성심을 느끼는 것도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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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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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로인해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지 마라. 그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이 책의 핵심 메세지는 딱 이것 하나다. 이 패턴이 360여 페이지에 걸쳐 반복된다. 그래서 지겨울 수 있지만, 여러 사례에 적용한 부분이 있으니 정독해 보면 좋다.

그리고 이 책은 한 번 정독 후, 뭔가 내 에너지가 소진된다 싶을 때 다시 펼쳐보고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내가 극도로 억제되고 있는 건 아닌지 진단해 볼 만 하다.

참고 살아야 하나, 참지 말아야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쩔 수 없는 ’타인’이기에 바꾸려 하지말고 반응에 신경쓰지말고 의도를 추측하지말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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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주역 - 팔자, 운세, 인생을 바꾸는 3,000년의 지혜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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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꽤 현실적인 조언을 볼 수 있었던 주역.
잘 되는 배를 골라 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은 원래 노력하는 만큼 상향하는 삶을 결국 살게 되는 곳이라고 인식하고 살게된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노력을 해도 그 성과가 없거나 부족한게 원래 내 인생이구나 하고 인식하고 살게된다. 얼마나 큰 차이의 삶인가.

그리고 세상에 사람이 아닌 사람, 즉 비인에게는 적당한 예의만 차리고 진심을 보이는 예를 다 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아예 섞지 않아야 겠으나 그러다 보면 비인인 상대의 분노를 살 수 있으니 겉으로만 적당히 대하지 절대 진실된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내 인생의 왕은 나이니 윗 사람이 나를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하지 먼저 찾아가지 말아라. 내게 간청하나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두번 거절하고 세번째 들어주는 패턴을 반복하여 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라.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 불편할 필요 없는게, 그게 세상의 이치라 그렇다.

오십의 벗은 같은 길을 걷는 정신이 통하는 사람과의 교분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그런 사람으로 판명되면 기꺼이 내 인생에 포함시켜 마음을 다해 교분하라.

물론 열장의 요약본도 부록으로 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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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식 구성의 소설은 처음 읽어 보았는데 그 구조가 꽤나 독특하다. 소설의 본편에 해당하는 가여운 것들의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흡사 프랑켄슈타인을 오마쥬한 의사와 그가 창조한 여성을 통해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고 지배계층의 추잡한 이면을 보여주는 소설로 보였으나, 본편에 이어 또 다른 액자를 통해 보여주는 편지는 본편의 내용에 빠져있는 독자의 엉덩이를 냅다 후려차서 정신차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확연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본편에는 편협하고 부담스러운 감정의 기복, 세련되지 않은 고전소설의 투박하고 장황한 문체들이 만연하여 읽는 동안에도 신경을 거스르는 부분이 많았다. 반면, 뒤이은 편지의 글은 단호한 메세지가 세련되고 간결한 문체로 글쓴이의 상당한 필력을 엿 보인다. 작가가 계획한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부분이 본편과 편지의 저자가 다른 만큼 글의 수준과 필력 역시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의도적으러 창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입체적인 액자식 구성을 만들어낸 것이라 놀랍다.

영화만 보았을 때에는 독특한 소재와 사회적 의식이 엿보이는 줄거리와 연출로 꽤 독창적이고 좋은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원작을 읽어보니 영화는 그저 원작에서 군데군데 차용한 자극적인 설정으로 인조인간 벨라 벡스터의 일대기에만 집중한 반쪽의 이야기였다. 원작은 여성의 인권을 포함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사상적 충돌이 난무하는 격동의 시기를 한 편의 소설에 오롯이 담아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책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창작능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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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특별판)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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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 쓰기 방식은 저 마다 다르고 독특한 루틴 역시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읽었던 글쟁이들의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에서는 모두 “어느 순간 부터는 통제하기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난 작가는 아니지만 그 느낌을 어렴풋이 알것 같았다. 나 역시 습작을 끄적여 보면 예상치 못한 구간에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나를 끌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작가들은 큰 플롯과 작품의 근간이 되는 장치들은 분명 마음에 하나즈음은 그려놓고 글쓰기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일종의 목적지를 나타내는 깃대와 거기까지 도착하게 만드는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는 동안 나는 작가인 앤디위워가 이 책에 쓰려고 고안한 깃발과 장치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제작되었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과학적 사고와 지식의 범주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또 해결책을 마련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분명 즉흥적인 이야기의 흐름만으로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 자부한다(소심해서 자부하는 성격이 절대 아닌데).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수 많은 별들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아스트로파지를 닮은 추진력으로 각자의 종의 생존을 위한 방법을 찾아내느라 고군분투한다. 그 사이에 싹트는 이종간의 우정은 차갑고 혹독한 환경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680여 페이지의 이야기를 훈훈하게 데워준다.

이 소설의 장면을 상상하거나 “와우 기발한데?!”라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 책은 과학적 기본 소양을 다소 요구한다. 그래도 쉽고 간결한 문장이 머리의 부담을 덜어준다. 내 생각에 번역가가 출판 대리인이나 작가와 주고 받은 이메일이 꽤 많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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