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
임종수 지음 / 모아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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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

2026. 5. 20(수)

저자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고 직장인’이다 라고 말한다. 수십 년간 직장에서 일을 한 후 은퇴하고 자주 산에 오르는 정도라면 수긍할 수 있다. 30여 년에 걸쳐 전국 100대 명산을 다 오른 경험을 가진 저자를 평범하다고만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저자는 책으로 산행이나 인생에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낸다.

 

『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의 핵심 주제는 산행과 인생살이이다.

‘01 이 산에 서면 저 산이 그립다’ 에서 전국에 있는 100대 명산에 오른 이야기다. 100대 명산 중 가장 낮은 산(홍천 팔봉산 300m급)을 앞에 배치하였다. 산이 낮아 쉽게 보여도 실은 쉽지 않음을 말하려는 뜻이다. 산마다 가진 매력이 다르고 같은 산이라도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을 맞이한다.

“오르막 없는 정상은 없듯이 고통 없는 삶도 없다.(p.62)”라며 산행과 인생을 표현한다. 누구나 산에 오른 때면 힘들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정상에 오르려 노력하듯이 인생도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 상실, 외로움, 실망을 겪게 마련이다. 산행에서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반드시 불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등산로가 직진코스만 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뉘고, 중간에 쉼터도 있다는 현실과 인생행로는 같았다. 삶에도 오르내림이 있고, 더 긴 세월을 살다 보면 롤러코스터 등산로 같다는 것을 실감한다.”(p.70)라는 문장도 산행과 인생을 표현한다. 멀어서 미루어두었던 고성 연화산을 다녀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고 밝힌다. 이런 경험으로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을 마주하고 회피할 생각부터 한다면 되는 일도 안된다. 정면 돌파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해졌고, 이왕 시작한 일이면 최상의 목표를 언들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로 연결한다. 가끔은 멀리서 봐야 좋다면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삶의 태도를 산행에서 배운다. “삶은 행복함과 팍팍함이 서로 반복되는 인생 여행이다.”(P.61)

이외에도 세월유수, 여조과목, 불광불급, 과유불급, 다다익선, 호사다마, 새옹지마, 사근취원 등의 사자성어로 산행과 인생살이를 쉽게 풀어가니 읽기 쉽다.

 

『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를 읽어가며 가보고 싶거나 다시 가야 할 산들이 있다.

“2월 하순에 남쪽 지방의 땅속에서 가장 먼저 머리를 내밀고 하얀색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가 변산바람꽃이다.”(P.38) “계룡산에 다시 가지 말라 했다.”(P.84) 변산과 계룡산은 가까우니 철에 맞게 다시 가보고 싶다.

“무등산 등산을 여러 해 다니면서 느낀 것은, 어느 곳에서 정상을 오르내려도 편안하다는 것이다.”(P.110) 눈이 쌓인 무등산에 가보는 것이 꿈인데, 겨울을 기다려야 하니 이번 주말에 다녀와야겠다.

“눈꽃 산행의 백미를 보고 싶으면 두말 말고 영동 민주지산으로 가라”(P.133)를 읽으며 소백산 눈꽃을 보려 기차를 탔던 추억이 떠오른다.

사진으로 책에 실어준 ‘돈대봉에서 내려다본 관매도의 봄’(P.194)을 보니 내년 봄이면 진도에 가서 배를 타고 관매도에 들어가 유채꽃을 보고 싶다.

 

책에 여기까지만 소개돼 있다면 아쉬울 뻔했다.

‘02 우리 산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서는 계절별로 가보면 좋은 산을 소개한다. 봄에 가면 더 멋진 산은 산청 황매산, 지리산 바래봉, 지리산 세석평전, 홍천 팔봉산, 홍천 공작산, 창원 무학산, 무등산국립공원 안양산, 부안 내변산. 여름에 가면 더 멋진 산은 인제 방태산 아침가리, 양평 유명산, 과찬 관악산, 문경 대야산, 제천 월악산 용하 야영장,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계곡, 포항 내연산. 가을에 꼭 가봐야 할 주제는 억새와 단풍산행이라며 청송 주왕산 절골, 평창 오대산 선재길, 포천 소요산, 정읍 내장산, 장흥 천관산, 창녕 화왕산, 포천 명성산, 장수 장안산, 울주 신불산을 추천한다. 겨울에 가면 더 멋진 산으로 제주 한라산, 평창 계방산, 영동 민주지산, 원주 치악산, 진안 운장산, 무주 덕유산을 추천한다. 더불어 계절마다 다르게 등산 채비를 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지도를 자주 보는 독자라서 아쉬운 것은 소개한 산마다 적당한 크기와 색감을 가진 지도를 곁들여 놓았다면 등산 초보자에게 산행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산행이란 등산과 여행이라며, 은퇴자에게 ‘재정과 건강이 보장되어야 인생 2막의 목표 설계와 취미생활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라는 조건을 이야기한다. 눈에 확 들어오는 문장은 “느림의 미학을 아는 이, 특히 저질 체력을 지닌 이들에게 산행은 완전히 멋진 일이다.”(P.270) 빨리 정상에 오르는 것이 좋다고 여기던 독자에게 바삐 서두르지 않아야만 즐겁고 행복하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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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전 - 헌정 수호를 위한 뜨거운 전쟁
이금규 지음 / 모아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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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전

2026. 4. 24(금)

2024년 12월 3일 내란 발발부터 해를 넘겨 2025년 4월 4일, 내란 수괴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까지도 가슴 졸이며 뉴스를 봐야 했다. 그 탓에 책을 읽기보다는 유튜브 시사 프로를 보게 되었고, 퇴근하면 매불쇼와 스픽스를 알게 됐다.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아침에 시작하는 유튜브는 나를 당기지 못한다.

 

『탄핵 열전』은 크게 두 가지를 다룬다.

첫째 탄핵과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을 고찰하고, 탄핵의 의미와 역사, 탄핵 소추된 대통령들을 다룬다.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교양으로서 탄핵을 배우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을 재판할 때 헌법 재판관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를 살필 수 있다. 법 조문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을 어겼을 때조차 가벼운 것인지 혹은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가도 중요한 판단 요소임을 밝힌다.

둘째, 대통령 윤석열 탄핵으로 본 탄핵의 조건과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법률대리인으로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단상’이란 이름으로 서술하고 있다.

『탄핵 열전』이 가진 특징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상세히 살핀다. 저자는 그 이유를 트럼프 탄핵 사건과 윤석열 탄핵 사건이 닮았고 두 사람은 너무 많이 닮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피청구인 윤석열의 거짓말과 심판정 태도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공개된 뉴스와 유튜브를 통해 본 것과 같다. 두 번째 특징은 위자료 청구 소송 운동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전국의 모든 법원에서 윤석열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이 들불처럼 일어나, 헌법상, 형법상 책임은 물론 민사상 책임까지 지우게 함으로써 국민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사람은 누구라도 반드시 패가망신하게 하여 우리 헌정사에서 그 누구도 다시는 이와 같은 반헌법적인 행위를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해야 하겠다”(p.258)라는 뜻을 밝혔다.

맺음말에 ‘손해배상 청구의 소’ 소장과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의 선고에서 승소하였음을 판결문을 공개하여 알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법률대리인, 채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보로 활동한 이금규 변호사는 『탄핵 열전』을 통해서 아직 끝나지 않은 내란 재판을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에 여러 나라에서 퍼지는 민주주의의 퇴행은 합법을 가장하고 있기에 가랑비에 옷 젖듯 교묘하고도 전략적으로 진행되어 행 사실을 눈치채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상기하라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대니얼 지블렛이 말한 “민주주의의 전복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들은 하나같이 합법을 가장한다.”(p.29)를 인용한다.

 

탄핵의 현대정치적 의미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파면할 수 없거나 수사기관이 사실상 소추할 수 없는 대통령, 법관 등 고위직 공무원을 의회에서 소추하여 파면하거나 처벌하는 행위나 제도를 말한다. 탄핵은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 특히 행정부와 그 수장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다. 탄핵 심판 제도는 민주적인 모습의 탈을 쓴 헌법과 민주주의 파괴자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성패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제도의 운용’에 달렸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도 국정 운영이 민주적이지 않다면 민주 정부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집권 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와 비판, 감시가 꼭 필요하다.

 

저자는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례를 한국 민주주의가 미성숙(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은 미국에 비해도 우수하다. 대통령의 문제를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으로 보는 저자의 의견에 동감하기 어렵다. 국회로 달려간 시민과 한겨울 추위에 윤석열 탄핵을 외친 시민들이 있다) 하다는 사실과 탄핵이라는 합법적 처방을 통해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했다(P.53)고 보고 있다.

탄핵 심판의 결과가 형사재판을 물론이고 민사소송을 거쳐 금융치료까지 이어지길 희망한다. 이 자식을 이름을 여러 번 써야 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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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 - 지금 유용한, 쉽게 맥을 잡는 ㅣ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방상호 그림 / 북플랫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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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현대편)

2026. 4. 19(일)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영국과 소련 사이에 ‘퍼센트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서부와 남부 유럽은 영국이, 동부와 중부 유럽은 소련이 관리하겠다는 발상이었다.(P. 23)

1940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에 50척의 구축함을 공급하였다. 지원의 대가로 버뮤다,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트리니다드, 인티과, 영국령 기아나 등 영국 영토에서 미국이 99년간 군사기지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였다.(P.25) 이는 『미국, 제국의 연대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41년 미국은 ‘미국 방위에 중요한’ 모든 국가, 특히 영국에 무기를 팔거나 빌려 줄수 있는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켰다. 무기대여법은 이후 더 확대되어 소련 역시 지원을 받았고, 미 해군은 무기를 비롯한 각종 물자를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미국은 일본의 영향력을 독일만큼 철저하게 약화하되 그 자리를 영국이 아닌 중국이 대신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한 원칙에 따라 카이로 회담(1943)에 장제스를 불러들였으며 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독립을 명문화하였다. 1949년 NATO를 설립하여 미국은 유럽 내 전략적 요충지를 마음껏 사용하게 되었으며 유럽 국가들의 군사 정책에 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2026년 도널드 트럼프의 생각은 이와 다르게 보인다.

1944년 브레턴우즈회의는 금본위제와 고정환율제에 근거해 환율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국제 무역을 안정시킨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가치를 고정하였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국내의 우익 세력은 송진우,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조직했다. 미군정의 지원을 받았으며 반공주의를 표방하였다. 지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농지개혁에 소극적이었다.

해방후 농지개혁으로 지주제가 해체되면서 지주들의 토지 지배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토지 매매가 수월해졌으며 농민들이 노동자가 되기에도 유리했다. 즉 국가나 자본가는 보다 수월하게 필요한 토지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농민들 역시 고율의 소작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도시로 가서 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 토지에서 벗어난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따라 부를 축적할 기회를 얻게 된다. 1960냔대 이후의 산업화가 성고을 거둔 배경에 농지개혁이 있었던 것이다.(P.114)

북한의 제도는 소련을 본떴다. ‘민주집중제’라는 원칙에 따라 인민회의, 인민위원회를 기반으로 공산당 지도부가 전권을 행사하는 형태로 구조화된 것이다. 1990년대 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을 때 선배들은 ‘민주집중제’가 아주 민주적인 것으로 호도하였고 의사결정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나는 전교조 활동을 중단했다.

“북한은 남한에 약 3년 앞서 토지개혁에 성공하였다. 토지개혁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민중의 대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가 지적하듯 오늘날까지 북한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토지개혁의 수혜자들이다.”(P.161) 남한에서의 농지개혁이 근대적인 자본주의 생산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토대였다면, 북한은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처단과 결부시켜 공산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에 참여해 국민당과 싸운 한인은 6만 명이 넘었고 전사자만 3,550여명에 달했다. 심지어 북한은 중국공산당의 배후기지 역할을 했다.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김일성은 중국에 지원을 요청할 명문을 갖게 되었다. 중국은 ‘우선 25만을 긴급 투입하고 총 60만 정도를 투입해 북한을 돕겠다.’ 항미원조전쟁. 즉,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을 돕겠다는 발상이었다.

이승만은 오직 이승만을 추종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자유당을 창당하였는데, 전쟁 이후의 고조된 반공주의 등이 그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한민당은 민국당을 거쳐 민주당이라는 야당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식 독재는 ‘개인 카리스마에 의한 동원체제’의 성격을 띠었다. 대한청년단, 호국군이라는 준군사조직, 학도호국단, 국민회(18세 이상의 모든 남녀는 무조건 가입)등을 조직하고 모든 단체의 총재는 모두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비공식적이며 비정상적인 징발체제가 일상화 되었고 이는 그만큼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말, 이후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괴롭힐 일상적인 부정부패는 이때부터 문화화되었다.(P.202)

“미국은 매번 한반도의 모든 현상을 긍정했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인정했고, 4.19 민주혁명이 일어나지 이를 지지했고, 다시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이 또한 받아들였다. 독재건 민주건 반공은 분명하지 않은가. 앞으로도 미국은 이런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P.210) 저자와 달리 냉전이 끝났고, 중국경제력과 군사력의 급상승은 미국의 태도에 변화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마가세력의 입장에서 미국의 이익에 우선이 되는 방향으로 한반도를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4.19혁명 당시 가장 격렬한 요구가 ‘경찰개혁’이었다. 해방 초기부터 3.15부정선거까지 경찰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26년 대한민국 국민의 요구는 검찰 개혁이다. 조작과 조직의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퇴직후 사법카르텔의 일원이 되어 호가호위하려는 검찰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위해 미국은 ‘브라운 각서(1966)’를 준비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미국이 감당하겠다. 한국군의 무기 및 장비의 현대화를 지원하겠다. 베트남 관련 물자와 용역은 가능한 한국 기업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내용이다. 베트남 전쟁에는 2만 4천여 명의 민간 기술자가 파견되었다. 파견된 한국인 기술자의 3분의 2가량이 외국 회사에 취업했다. 참전 군인 중 1,022명이 현지 기술자가 되었다. 이들은 1970년대 중동 진출 당시 중요한 해외 역군이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현대건설, 버마 현대건설 등으로 이직하는 등 한국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65년 일본과 공식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내용은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1964년 벼 육종 전문가 허문회 교수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IR667이라는 교배종을 개발해 귀국하였다. 667회 교배를 통해 성공한 품종으로 이후 ‘통일벼’로 불리며 식량 자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중학교 다닐 때 농업 시험에서 통일벼의 본래 이름을 쓰라는 시험문제에 ‘IR667’을 아무도 쓰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일찍 돌아가신 농업 선생님은 당시 전자시계를 유일하게 차고 계셨었다. 통일벼로 지은 밥은 맛이 없다는 것이 총평이었다. 아마도 자포니카 품종의 쌀을 먹다 보니 인디카 종의 통일쌀은 풀풀 날려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전두환은 언론통폐합(980) 정책을 통해 수많은 방송국과 신문사를 없앴다. 군산에 있던 서해방송이 문을 닫던 날을 기억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언론사는 크게 번성하였다. 조선일보가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P.345) 전두환 정권기 언론사에 대한 각종 혜택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고, 각종 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1980년대는 언론기관이 수백억 매출을 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시기였으며 이 기회를 누렸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언론사들은 보수적인 언론관을 구체화하기도 했다.(P.345)

1987년 6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된 순간 나는 용산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88서울올림픽을 제대하고 머리가 자라기 전에 봤다. 군복무 기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먼 나라로 가야했지만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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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 : 근대편 - 지금 유용한, 쉽게 맥을 잡는 ㅣ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방상호 그림 / 북플랫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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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근대편)

2026. 4. 18(토)

학부에서 교양과목으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샀다. 읽었다고 쓰지는 못한다. 2002년 전국역사모임에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2』, 2006년 김육훈이 지은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읽었다. 기억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로 몇 년 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치렀다. 21세기에 역사학자가 아닌 교사들에 의해 한국사가 출간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은 흘렀고 2024년에 개정판 『단박에 한국사』가 근대편과 현대편으로 나누어 출간돼 통사를 읽는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으니 내가 읽는 교양 수준의 한국사는 소홀하게 다루거나 새롭게 역사에 반영된 부분은 무엇인가 알아보는 정도에 그친다. 20~30여 개 라벨을 붙여 두고 텍스트로 옮겨본다.

『단박에 한국사』는 첫째, 한국사만 다루지 않고 같은 시기 동아시아, 세계사를 함께 다루고 있어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넓게 해줄 수 있다. 둘째, 이와 연관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제국의 폐허에서』, 『포스트 위』, 『암흑의 대륙』, 『값진 왜란과 국민 전쟁』, 『고종시 대의 재조명』,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등이 떠올라 책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셋째,

 

<근대편>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저자의 역사 인식을 살펴본다.

일본이 근대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참근교대제도(산킨고타이제도) 덕분에 전국적으로 교통로가 발달하고 상업, 운송업, 수공업 발전을 촉진했으며 조닌(상인) 계층이 부를 축적, 가부키, 우키요에 등 독특한 조닌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우키요에』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 개혁이 일어나 일본 역사가 극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조슈번은 오늘날 야마구치현으로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메이지 지사들을 길러낸 곳으로 무역에 강점이 있었다. 사쓰마번은 가고시마현으로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으로 논을 사탕수수 재배지로 전환하는 농업개혁, 류큐를 활용한 중국무역, 나가사키를 통한 서양 무기를 수입한 곳이다.

갑오개혁이 여성 차별을 제도적으로 개혁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오래전부터 변화가 있었다. 동학, 천주교, 개신교에서 남녀를 동등하게 가르쳤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여학교 설립 운동은 한국 여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고종은 권력 유지에 급급할 뿐 비전이 없는 지도자였고, 수많은 백성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는커녕 황국협회 편을 드는 등 독립협회의 치열한 노력은 허망하리만큼 폭력적으로 무너져”(p.144)다고 기술하는 대목은 『고종시 대의 재조명』에서 고종의 역할에 긍정적(의병 활동 지원, 한양 도시의 개발, 도서관 설치, 정보기관 운영 등) 인 면이 있었음을 기술하는 것과 배치된다.

“일본의 승리에 열광한 아시아”(p.153)에서 기술한 마오쩌둥, 자와할랄 네루, 호찌민 등은 황인종이 백인종을 이겼다, 아시아가 유럽을 이겼다고 감격해했다는 등은 『제국의 폐허에서』 자세히 다룬다.

애국계몽운동과 의병 항쟁은 정신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애국계몽운동은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하버트 스펜서와 토머스 헉슬리의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 침략을 문병화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으로 중국에서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는 염복이 『천연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였다. 『천연론』을 읽었어도 애국계몽운동과 연결하지는 못했었다.

저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우리 역사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등장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여성들이 주도하는 민족운동, 한국에서 여성사의 시작은 남녀 차별과 참정권 문제가 아닌 구국운동이었다.

포로 감시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징용을 갔던 ‘양칠성’은 일본 패전 후 귀국하지 않고 조선 노동자로 네덜란드와 싸워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하였다는 기록을 만난다.

초기 독립운동사에서 이상설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한다.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단을 세우고, 3.1운동 당시 활약하였고, 파리강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로 활동, 간도에 서전서숙이라는 학교 설립, 대한광복군정부의 정통령을 역임하였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한·중·일이 연합하여 백인들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국보다 앞선 근대국가인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은 세계의 대세를 따르는 기회주의적 행동이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가 무너졌다는 것이 안중근의 지론이었다.

일본 낭인들이 조선에 들어와 흑룡회를 조직하고 일본당국의 첩보원이나, 만주에서 마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홍장을 만나 남중국 분할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진화 결성을 지원하여 조선 병합을 후원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내전이 발생하자 일본은 수만의 병력을 시베리아에 파병하였는데, 흑룡회는 이때도 일본군과 함께 공작 활동을 벌였다. 이본의 시베리아 출병에 관한 일들은 다른 책을 찾아봐야 실체와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차에 일본으로 망명했던 동학의 지도자 손병희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p.194) 동학 부흥 운동에 나섰다. 후에 손병희는 일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을사늑약이 맺어지고 나서 얼마 후인 1905년 12월 1일 천도교를 창도한다. 동학농민운동에서 독립운동의 중심 세력 천도교로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폐하가 책임을 지고 황위를 양도하여 일본에 사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라며 고종의 퇴위를 강요한 송병준. 이완용과 송병준, 흑룡회와 일진회는 나라가 어떻게 되건 이들에게 명분은 명분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출세요, 성공이었다. 이처럼 기회주의적 성실함 앞에서 조선은 멸망하고 만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전쟁 행위는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대하여,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스라엘에 사과하라고 했다는 뉴스를 본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20세기에도 21세기에도 있구나 싶다. 김형준 의원의 ‘이스라엘 대사 초치 요구’를 요구한 사례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우치무라 간조는 러일전쟁을 반대하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비판한 기복교 민족주의자다. 무교회주의자로 김교신, 함석헌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에서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중궁의 혁명가 쑨원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주장된 토지 단일 과세론을 통해 토지의 균등 분배 등에 영향을 받았다.

후세 다쓰지(1880~1953)는 양심적 행동가였다. 그는 천황 암살의 모의한 혐의로 대역죄 심판을 받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변호하였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나주 지역 500여만 평의 토지를 약탈한 사건에서도 조선 농민의 편에서 소송을 담당했고, 조선의 형평운동(1923~1935)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묵자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회주의자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다. 세종시 부강면에 <가네코 후미코 다실>이 있다.

1910년대 무단통치는 헌병경찰이 식민지를 운영하였으며 치안 관리뿐만 아니라, 세금 징수, 민사소송 업무, 마을 미풍양속까지 관여했다. 즉결 처분권, 태형 같은 권한, 영장 없이 사람 체포, 최대 4개월간 구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하루 80대까지 태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문화통치는 적극적인 친일파 양성을 꾀한 기만적 통치였다. 은사금을 하사하고 작위를 주었다. 1920년대의 문화통치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민족대표가 33인이 된 까닭은 숫자를 늘려서 대표성을 확보하고자 무명의 종교인들이 뭉친 것이다.(P.260) 3.1운동은 3월 초순에 격렬했으며 다시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가 절정이었다. 5월 말까지 운동은 계속되었고 이후에도 몇달 간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다.(P.261) 3.1만세 운동은 조선과 서간도, 북간도, 미주 지역, 멕시코와 하와이, 연해주에서도 일어났다.

대조선국민군단을 결성하는 등 미주 지역에서 무장투쟁 단체를 이끌던 박용만(1988~1928)은 임시정부 외무총장에 선임되었지만 참여하지 않았다. 하와이에서 이승만 세력에게 엄청난 테러를 당했기 때문이다.(P.271) 임시정부에서 “왜 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임되었을까? 외교독립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의 박사학위자, 윌슨의 제자였기 때문(P.273)이다.

소련의 지도자 레닌이 모스크바에서 극동인민대표회의를 열었는데, 150명의 참가 인원 중 한인이 52명이나 됐다. 이러한 노력으로 소련은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했다.(P.275)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만주에 내렸던 봉금령을 1875년 해제하였다. 연해주를 빼앗긴 후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봉금령 해제 이후 조선인들은 본격적으로 간도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신민부 자금 모집에서 흥미로운 점은 김병연 사건이다. 김병연은 밀양의 거부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김태진에게 만주에 땅을 구입하자고 꼬드겨서 3,000원을 받아낸 후 신민부에 보냈다. 1927년의 일인데 신민부 역사상 단일 자금으로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P.302)

강제 동원은 합법적인 탈을 쓰고 진행되었다. 국가총동원법이 포고되었고 해외 징용에 대해서는 좋은 조건이 제시되었다. 높은 임금과 좋은 근무 환경 등이 선전되었다. 일종의 취업 사기였던 셈이다. 일단 동원되고 나면 돌아오기는 불가능했다. 강제성이 분명했다. 징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뱃삯, 배 안에서 먹은 식사 대금, 지급된 옷값 등 소요 비용을 선대금이라는 명목으로 빚을 지웠다. 해외로 강제 동원된 인원은 20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강제 동원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일제의 입장에서는 전쟁 수행을 위한 치밀한 정책의 일환이었고, 정부와 군을 비롯한 모든 행정력이 총동원된 사업이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대규모의 노동력은 결국 일본 재벌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쓰였다. 미쓰비시, 마쓰이, 스미토모, 후지코시, 일본제철, 도와홀딩스, 북해도 탄광 기선(북해도에 3만 3천 명을 동원하였다. 전쟁은 조선인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안겼으나 일본 재벌에게는 엄청남 돈을 벌어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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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권리
앙리 르페브르 지음, 곽나연 옮김 / 이숲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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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권리

2026. 4. 11(토)

아파트 가격의 상승으로 재산 증식을 꿈꾸며, 토지 보상으로 수십억의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물질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가 성찰하기에 알맞은 책이다. 앙리 르페브르의 책은 쉽게 읽히질 않는다. 『공간의 생산』이 그러했고 『도시에 대한 권리』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 철학자라는 지위와 불어를 매끄럽게 번역하기 어려운 데다 추상적인 개념이 많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공간의 생산』이 번역된 후 지리학을 한다는 사람과 건축학, 도시계획자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공간의 생산』보다 먼저 출간한 책으로 인간의 권리에 사회권(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건강, 주거, 여가, 생활의 권리)이 라는 개념이 들어설 1960년대 후반에 세상에 나왔다.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현업에서 퇴직한 2026년에 읽은 독자의 처지에서는 인문지리학 개론, 도시지리학, 도시 사회 지리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낀다.

도시의 권리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계층, 성별, 직업, 재산 수준에 상관없이 인간답게 거주하고, 도시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향유하며, 나아가 도시행정에 참여할 권리’를 말한다. 서유럽, 미국, 중남미 국가에서 급격한 도시화로 사회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도시권’에 대한 개념이 확산하고 활발하게 논의 되어 왔다. 그 배경에 1968년에 출간된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또한 생업으로 택시 운전을 하면서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서 프랑스 공산당에서 활동하다가 주요 정책을 비판했다가 퇴출당하는 등 비주류의 시각은 1968년 프랑스 68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앙리 르페브르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산업화 이후 도시를 비판하고, 상품 혹은 기능으로 전락한 도시에 ‘사회적 상호 작용의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복원할 것과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도시거주민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도시화에서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현실에도 도시를 창의성과 진보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본다.

앙리 르페브르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헤겔, 니체, 마르크스, 엥겔스에 관한 글을 씀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북미에서는 앙리 르페브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연구가 1970년대에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크게 환영(『공간의 생산』 영어판이 3만 부가 팔렸으니) 받는다.

15개 장으로 구성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1장 산업화와 도시화를 읽을 때는 산업화와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폭넓게 그리고 가장 큰 부피로 기술한다. 고대도시, 중세도시, 산업도시, 메갈로폴리스까지 ‘도시의 발달’을 언급한다. 도시의 의사결정과정도 다루며 도시의 교외화, 토지와 건물에 대한 투기, 도시의 순환 구조, 슬럼, 도시 조직, 사회적 문화적 삶, 도심, 소비 장소와 장소의 소비, 도시 내부 구조의 분화, 신도시, 도시행정, 부동산개발업자의 도시계획도 다룬다. 현대 도시지리학이 다루는 영역 대부분에 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도시지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입문서, 혹은 도시철학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도시에서의 가치는 사용 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해 교환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비중을 둔다. 그리스의 아고라라는 오늘날 도시 철학에서 일반적인 도시 사회의 상징이 됐지만 앙리 르페브르는 이를 전형적인 이념 과장으로 평가한다. 그리스 도시가 누리던 자유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도시 자체에만 자유가 부여됐다고 본다. 도시를 정보와 의사결정의 중심이자, 교통과 의사소통의 네트워크로 정의한다고 선언한 것은 절대적 이념의 선언으로 본다. 사회적 측면에서 시간이나 미래 개념은 무시한 채 오직 공간 개념만 중시한다. 도시의 역사와 의식, 사회 문제를 공간의 문제로만 다루는 것은 너무 단순화한 이분법적 사고로 보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오늘날 근대 도시는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거나 의사결정의 중심을 결속함으로써 사회 전반(노동 계층뿐만 아니라 다른 비지배 사회계층) 의 착취를 조직하고 강화한다고 본다. 번역자가 도시[ville]과 도회지[urban]로 구분하는데 도회지는 완성된 책과 같이 체계를 강요하기보다 많건 적건 도시거주민의 작품이어야 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시계획과 관련한 생각과 활동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뿐만 아니라 이런 도시의 문제를 인식하고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잡다한 지식을 덧붙인다. ‘신은 죽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라는 니체의 성찰은 거의 한 세기 전, 유럽과 그 문화, 그리고 문명에 대한 나쁜 조짐이었던 보불전쟁(1870~1871) 중에 시작 되었다.(p.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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