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워크문명의 이론 - 동아시아 관점의 새로운 문명관
황태연 지음 / 청계(휴먼필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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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워크문명의 이론

책을 읽는 기쁨 중 하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다. 이미 옳다고 알고 있던 것이 틀릴 수도 있다. 전혀 몰라 고민하다가 새로운 진리를 알게 되거나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았을 때 ‘유레카’를 외치는 것도 배움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학령기 공교육에서 배웠고 졸업 후 지식을 접했던 것은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생(先生), 지식인으로부터 전승된 것이다. 독서를 즐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을 것이다. 선생과 지식인이 가진 관점이 왜곡된 것이라면 나도 왜곡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끝없이 배우는 자에게 프랑스 분석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모든 진실은 연속된 오류의 수정이다.”라는 명제가 가슴에 와닿는다.

『패치워크문명의 이론』은 왜곡된 관점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17~18세기 서구이상주의자 중 한 명인 라이프니츠는 세계의 여러 문명이 상호교류를 통해 융해되어 단일한 세계 문명, 또는 보편 문명으로 융합한다는 문명융합론을 주장한다. 여기서 융합이란 동화(assimilation)를 뜻한다. 이를 ‘문명융합론’이라고 한다. 첨단 교통수단이 발달한 현대에도 기독교 문명, 불교 문명, 이슬람 문명, 힌두 문명, 유교 문명이 훨씬 더 신속하고 다층적인 교육, 영향, 모방 속에서도 뚜렷이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고 분립하고 별도로 존재한다.

이와는 달리 새뮤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 갈등론’을 주장한다. 탈냉전기에는 문화 및 종교적 정체성(문명) 간의 대립이 국제 갈등의 중심이 될 것이다. 서구 가치(민주주의, 인권, 자유주의)의 보편화 시도가 비서구 문명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특히 이슬람 문명 및 중화권과의 충돌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그러나 문명권들이 뚜렷이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고 존재함에도 다른 문명권에 속한 나라 간의 우호적 국제 관계는 동일 문명권에서 살벌한 적대관계에 비하면 차라리 갈등이 적은 평화 상태에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황태연은 문명융합론과 문명 갈등론을 비판하고 역사적 사실에서 ‘패치워크 문명론’ 이론화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서구에서 교육받고 서구의 시각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계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극복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기에 읽을 책으로 선정했다.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 서구화 속에서도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유교 문명권의 현재 상태를 분석하고 오늘날 유교 문명권은 패치워크 된 상태라고 결론짓고 이론적 구조를 설명한다.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의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재부상과 동아시아의 정신적 잠재력을 설명하고, 이에 대비되는 ‘철학의 빈곤’, 정신적 공황 상태를 바로 보고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공자 철학의 재건과 미래 발전의 길을 ‘공자주의’라는 화두로 던진다.

독자가 주목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있다. p.75~169에 걸쳐 소개한 ‘극 서유럽의 공자 철학 패치워킹과 ‘근대유럽’의 탄생’에 소개된 내용들의 핵심은 17~18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에 전해진 공자의 사상과 중국의 각종 제도가 유럽인의 관점에서 놀라운 것이었고, 여러 사상가, 철학자들이 공자 철학과 중국의 제도를 유럽 사회에 확산시켰다. 덕분에 유럽을 근대화한 사상으로써 ‘계몽사상’이란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계몽사상이 없었다면, 유럽의 근대화는 기대하기에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치워크문명의 이론』은 저자의 전작인 『공자와 세계 1, 2, 3, 4, 5』,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 이은 『서양 경험론과 정치철학-베이컨에서 홉스까지』에도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이다. 주목할 것은 서구의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 Ⅰ-불에서 프로이드까지』,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 – 21세기 지정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중언부언하자면, 내가 배운 것이 다가 아니고,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모든 진실은 연속된 오류의 수정이다. 그러기에 배움은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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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정학 - 5000년 문명사를 통해 보는 세계질서의 대전환 ㅣ 그레이트 하모니 3
아미타브 아차리아 지음, 최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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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정학 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

2026. 8. 1(토)~10.9(금)

우리가 서구의 발명품이라고 가정하는 많은 사상이 실제로는 다른 문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외교, 경제적 상호의존성, 해양자유, 전쟁과 평화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원칙, 환경보존, 주요 강대국 간의 협력 등 세계질서의 핵심적인 매커니즘과 가치들은 전 세계에 걸쳐 몇천 년 동안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p.11) 이 문장에서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을 떠올렸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구가 냉전에서 승리한 후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확대 추세가 불가피하고 공산 중국조차도 결국 민주주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며, 서구 사상과 관행의 지배력이 더욱 강해지리라 예상되었다. 이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것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이론이 생겨났다. 이념 전쟁은 끝나고 서구가 영원히 승리하리란 것이다.

2026년 기준, 독자의 판단으로 후쿠야마의 생각은 틀렸다. 미국에서 팔란티어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가려는 상황에서 ‘국가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는 국제 무대에서 강력한 행위자였으며 문화적 다원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한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상호작용 하듯이 세계질서는 종종 그들이 정복하거나 지배했던 세계질서까지 포함한 다른 세계질서와 상호작용하여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제1장 최초의 기반

세계질서에 존재해 왔던 공통 개념 중 하나인 ‘혼돈과 질서’는 고대 이집트, 수메르, 페르시아, 그리스, 인도(힌두교 및 불교 교리), 중국(책에서 제외하였지만 독자의 판단으로 삽입), 몽골, 아즈텍, 근대 유럽, 2차대전 이후의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질서가 서구 역사와 서구 정치사상, 특히 자유와 민주주의의 파생물이라는 서구에 널리 퍼진 개념에 반대한다. 영어의 세계적 지배력은 강하다. 이런 언어적 유산은 전 세계 학자들과 전문가들로 하여금 표현된 사상들이 그리스와 로마, 즉 서구에서 발명되었다고 가정하게 했다. 이는 다시 이 학자들로 하여금 다른 문명 언어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가진 용어들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서구 편향의 주요 원천이다.

서구의 부상은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가 1490년대에 아메리카와 인도를 ‘발견’한 때부터 19세기 중반 극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서구 제국주의는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와 관련한 결정적 사건은 아편 전쟁에서 중국의 패배, 영국의 인도 반란 진압,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에 의한 아프리카 분할이었다.

문명이나 세계질서의 부상은 전적으로 스스로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문명, 특히 선행하는 문명으로부터 정치적, 문화적, 기술적 사상과 혁신을 차용함으로써 도움을 받는다. 역사의 긴 흐름에서 서구의 지배는 단지 잠깐 동안의 현상에 불과했다. 글로벌 문명은 문명들 간의 일종의 근본적 상호 연결성을 의미할 것이며, 이들 문명은 경쟁하면서도 문화적 정치적 차이를 유지하면서 협력한다.

제2장 그리스 신화와 페르시아의 힘

서구인의 마음속에서 고대 그리스는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이며, 현대 자유 민주주의 삶에서 근본적 사상과 관행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그리스는 서구 역사가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존경을 받아왔으며 그 결과 서구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업적을 과장하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그리스의 의존도를 과소평가한다.

고대 근동, 특히 이집트, 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신성 왕권, 제국, 강대국 외교, 평화조약 체결 등 세계질서의 핵심 제도들이 출현했다. 그리스는 도시국가 체제였으며 헤게모니 세력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국가들은 전쟁 후 승리자 편에 서지 않음으로써 반패권주의적 자세를 유지했다. 국가의 패권 추구를 반대하는, 세력 균형의 원칙으로 알려진 이 원칙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 체제의 주요 특징이었다. 그리스에게는 세계질서가 일종의 균형 잡기였다면 페르시아에게는 신성 왕권과 보편 제국이라는 두 가지 사상의 확장이었으며, 이후 많은 세계질서가 이를 채택했다.

서구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문화유산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로마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리스-아시아 또는 그리스-페르시아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를 단일 문명으로 연결하는 것은 현대 유럽 또는 서구의 발명품으로, 그리스의 정체성 발전과 독립적 그리스 도시국가 체제의 생존에 있어서 페르시아의 중심적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서유럽 및 북유럽과 전략적 상호작용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그리스를 유럽 또는 서구 문명으로 간주하는 것은 역사상 가장 근거 없는 믿음 중 하나이다. 오히려 그리스인들은 유럽인들의 지성과 세계질서를 조직하는 능력을 경멸했으며, 아시아인들이 이 분야에서 우월하다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이를 명확히 보여 준다. (p.60)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웃 누구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여겼지만, 문화적 언어적 자부심에 비하면 피부색은 중요성이 덜했다. 어두운 피부를 정신적 열등 또는 야만(barbarism)과 연결하고 흰 피부를 우뤌한 문명과 연결하는 현대 유럽의 관점과는 달랐는데, 이는 피부색에 기반한 인종차별주의가 유럽의 독특한 발명품이라는 생각에 신빙성을 더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서구 학자들과 지도자들은 고전 그리스가 자신들의 조상이라 주장하고, 고전 그리스의 동방과 연결과 연계를 무시한 채 오직 유럽적 또는 서구적 정체성을 부여했다.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은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꾸며낸 전유물이었는지 잘 포착한다. ‘문명화된’ 것으로 식별할 만한 적절한 조상을 찾지 못한 현대 유럽인들은 그리스와 로마로 그 공백을 메꿨다.

브로델은 ‘그리스의 기적’이 바빌론의 선구적인 화학, 이집트의 의학,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 같이 오래전에 확립된 견고한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라 본다. 그리스인의 세계관과 질서 개념에는 합리적 사고 능력과 미신에 대한 극도의 집착(신탁) 모두와 관련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합리주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서구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며 아시아 및 다른 비서구 문명에 대한 서구 유럽 중심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 묘사를 재생산한다. 고대 그리스의 기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사상이다. 서구인들은 그리스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숭배한다. 그러나 그리스 민주주의의 범위와 기간은 매우 제한적이며, 많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폭군이 통치했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현대 인권 개념의 본질인 정부의 침해로부터 개별 시민을 거의 보호하지 못했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의 자급자족과 독립 유지에 지나치게 집착했기에 외부인뿐 아니라 서로가 상호 협력하는 체제를 발달시키지 못한 데다 국제질서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펠로폰네스 전쟁은 협력체제를 발달시키지 못하고 경쟁적인 권력 게임에 몰두한 전형적인 예다. 저자는 “전쟁과 평화 이면에 있는 경제적 도덕적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p.65)며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운명이라는 주장은 부분적이고 단순하다고 평가한다.

그리스가 서구 문명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집트,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중국, 인도를 비롯해 고대 여러 문명이 국가 간 협력, 전쟁과 통치에서의 인도주의적 원칙, 경제적 상호 의존성, 문화적 다양성 등 현대 세계질서의 핵심 측면에 더 실질적 영속적으로 기여했다.

헬레니즘화란 그리스 문화의 확산을 의미한다. 특히 그리스의 시칠리아 식민지화는 문화적으로 배타적이었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인도화와 대조적이다. 남부 아시아로 확장되었을 때는 그리스 문명이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스 체제는 주변 문화로부터 과학, 예술, 조각, 기술, 철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빌려왔고, 폭정과 공존하는 매우 제한된 민주주의 관행을 따랐으며, 다른 폴리스와 치열한 경쟁을 낳았으나 페르시아에 대해서는 공통의 적이자 보호자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아는 최초의 보편 제국은 BCE 550년 키루스 대왕이 건국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BCE 330년까지 지속되었고 일관된 행정 체계가 있었고, 효율적인 통신 및 운송 체계를 유지했으며, 독특한 세계관을 가졌다. 조로아스터가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했으나 정복당한 백성들에게 이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교리는 선과 악의 투쟁으로, 세계 최초의 예언자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가 BCE 1500~BCE 500년경 확립한 것이다.

현대 서구 출판물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경쟁을 서양의 도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제시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광고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투쟁을 ‘동양의 절대주의와 서양의 자유로운 제도 사이의 근본적 갈등을 내포함으로 묘사’한다. P.72)

하지만 그리스와 페르시아 통치자는 상당히 협력하기도 했다.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모두 잔혹한 폭력을 저질렀음에도 서구 역사가들은 페르시아인을 보편적으로 잔인한 사람으로, 그리스인을 온건하고 절제된 사람으로 일반화하여 묘사하는 데 몰두했다. 서구 역사가들은 편향된 그리스 기록에 의존해 그리스 사회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제국이 피지배자들에게 제공한 개방성과 문화적 포용성을 과소평가했다. 구약성경에 나와 있듯이 키루스는 네부카드네자르가 바빌론에서 추방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다. 현재 영국 박물관이 소장 중인 ‘점토 원통’에는 키루스가 현지 주민의 노예 노동을 중단시키고, 이웃 국가들의 사원과 종교적 숭배를 복원했으며, 유대인들에게 허락했듯이 바빌론에 추방된 사람들의 귀향을 허용했다고 명시한다. 일정 부분 이러한 관용 덕분에 명성을 얻은 키루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토머스 제퍼슨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통틀어 세계 지도자들의 롤 모델이 되어왔다. 제퍼슨은 <키로파에디아: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이 키루스를 이상적인 통치자로 보았음>를 읽고 지배적인 종교 없이 다양한 문화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페르시아 모델에 매료되었다.

그리스 철학의 기원(BCE 580~BCE 500년으로 추정)은 페르시아의 아나톨리아 정복 시기와 겹친다. 정치적으로는 그리스 도시 국가 상당수는 아테네나 스파르타보다는 페르시아의 통치나 보호를 선호했다(P.76) 페르시아의 군사 및 행정 체제에 종사한 그리스인들도 많았고, 살라미스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가 등을 돌리자 피난처를 찾아 페르시아 궁정으로 도피했고, 그곳 총독으로 여생을 보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집 Ⅰ.P189~215) 더욱이 페르시아는 여러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보호하면서 약탈을 일삼는 이웃 그리스 국가들에게 독립을 빼앗기지 않도록 도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의 몰락은 스파르타 해군력을 증강시킨 페르시아의 자금 지원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종종 페르시아의 균형자 역할에 의존했다. 이오니아 반란을 지원한 아테네를 응징하려 페르시아가 그리스 본토 문제에 개입하였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찬양과 비서구 문명에 대한 비난은 역사에 대한 편협하고 편향된 시각이며, 세계가 새로운, 탈미국적 세계 서로 치닫는 상황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식 공화정보다 동양식 군주제를 선호했고 페르시아 체제를 모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가 무정부적인 폭도 정치를 낳는다고 믿었으며, 군주제가 통치자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공동선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페르시아 군주제를 폭정으로 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키루스 대왕을 이전 통치자인 메디아인으로부터 백성을 해방시킨 덕망있는 왕이라고 칭송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세계질서를 모방하고 채택하고 있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을 융합하여 세계 왕국, 인류의 형제애를 건설함으로써 공통의 정치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는 그리스인들의 고립된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수많은 동서양 통치자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로마 제국을 창시한 아우구스투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숭배하고 본받으려 했고, 묘지를 방문해 꽃과 금관을 올렸고, 15세기 믈라카 술탄국의 창시자 파라메스와라는 자신이 이스칸다르(알렉산드로스의 말레이 이름)의 후손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는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서구와 전 세계는 또한 페르시아의 유산인 종교적 민족적 관용, 타 문하 수용 능력, 광대한 영토 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다.

​

P.S. 나머지 독서노트는 파일로 붙여둡니다.(분량이 A4 25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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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 하와이 대저택 편역 / 논픽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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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

THE ART OF DISTANCE

2026. 10. 22(목)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 번째 책이다. 2016년 <지식여행>에서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조언』으로, 2108년 <자화상>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로 만났고, 2026년 <논픽션>에서 『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으로 발타자르 그라시안을 다시 만난다. 17세기 예수회 신부이자 철학자로 평가받는 그의 글이 시선을 끄는 까닭은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인생의 욕망을 이루도록 돕는 인생론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조언』을 읽을 때 받은 자극은 솔직함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평판을 너무 얕보지 마라. 근거 없는 소문이 신용을 좌우한다”라든가 “적게 노력하고 많이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결점을 지적하고 약점을 들쑤셔봤자 내게 땡전 한 푼 돌아오지 않는다” 등은 내 삶이나 강의에서 자주 강조하는 그라시안의 인생론이다.

 

원제 『THE ART OF DISTANCE』를 ‘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으로 편역한 내용은 118개의 목차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다. 쉽기에 하나씩 화두로 삼아 곱씹어 삶에 기초를 만들 수 있다. 하와이 대저택 편역이라서일까? 처음에 만나 책에 견주면 자극이 작아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을 몇 개 옮겨 본다.

 

패를 보여주는 순간 지배당한다

당신의 바닥을 보이지 마라

거절조차 금빛으로 물들이는 태도

자존을 잃으면 세상의 노예가 된다

본질은 소수만 보고 외면은 모두가 본다

입구는 궁전인데 침실은 오두막인 인생을 경계하라

노력의 흔적을 들키지 마라

한꺼번에 보여주면 내일은 없다

지식의 유행을 타라

우아함은 모든 기술 위에 입히는 최후의 영혼이다

홀로 있을 때조차 세상의 눈앞에 서라

오늘이라는 정점을 살아라

지혜의 시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바보로 살아라, 신념을 가진 자를 경계하라

비극은 신이 보내는 가장 고귀한 초대장이다

나갈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은 눈부시다

풀을 뜯어 먹은 소처럼 독서하라

가끔은 말 없는 위로가 더 절실하다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

용서는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해방이다

낙오된 자를 챙기는 넉넉함

마음을 얻는 자가 결국 판을 지배한다

생각은 깨어 있는 소수처럼 하되 말은 다수와 섞여라

뛰어난 자를 시기하는 것은 자신을 비하하는 수치다

무조건적인 선함은 만만한 호구가 되는 지름길이다

거절하지 못하는 삶은 타인의 오물통이 된다

무례함은 무능의 증거다

피할 수 없는 타인의 결함은 풍경처럼 받아들여라

공손함은 비용 없이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마법이다

불평은 당신의 가치를 헐값에 파는 행위다

고독을 즐기는 자는 신을 닮는다

의심은 당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말은 유언장을 쓰듯 단어를 아껴라

말뿐인 친절은 영리한 사기다

가장 지능적인 복수는 ‘삭제’다

관계를 끝낼 때 파열음을 내지 마라

사랑받되 존경받는 법을 익히라

시간은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보다 강하다

탁월함은 양이 아니라 질에서 나온다

위기의 순간에 빛나는 평정심이 당신을 구한다

시대를 탓하며 주저앉지 말고, 그 흐름에 올라타라

인생의 가치는 생물학적 수명이 아니라 ‘밀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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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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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postcards from no man󰡑s land -

2026.7.17.(금)

디스크가 일부 돌출, 허리와 오른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해 걷기가 고통스럽다. 간호사는 의자에 앉지 말고 누워서 쉬라고 한다. 소설 『노 맨스 랜드』를 읽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메모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에이단 체임버스가 지은 청춘 소설 『노 맨스 랜드』 (부제: 청춘이 머무는 곳)의 줄거리는 약 5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청춘(할아버지 제이콥, 손자 제이콥)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제이콥 토드는 영국인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방황하는 17세 소년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마켓 가든 작전 중 아른헴의 서쪽인 오스테르베크(Oosterbeek) 지역) 했던 할아버지의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홀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게이 소년 톤을 만나고, 남자를 여자로 착각해 묘한 감정을 느끼며, 소매치기를 당해 짐과 돈을 모두 잃는 등 혹독한 신고식을 치릅니다. 네덜란드는 당혹감과 혼란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혼돈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우연히 만난 알마 할머니의 도움으로 단을 만나는 본격적 여정을 시작한다.

제이콥은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를 돌봐주었던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집을 찾아가 그녀의 가족들과 머문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손자인 단, 그리고 단의 여자 친구 힐레 등을 만나며 자유로운 도시의 다양한 삶의 가치관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경험한다. 현재 헤르트라위 할머니는 불치병을 앓으며 안락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44년, 19세 소녀 헤르트라위의 회고가 이야기의 다른 축이다. 헤르트라위는 현재 안락사를 앞둔 할머니다. 회고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속의 사랑이다. 2차 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오스테르베크 전투(아른헴 전투)를 배경으로, 19세였던 헤르트라위는 상처를 입고 고립된 영국군 소속 제이콥(현재 제이콥의 할아버지)을 숨겨주고 정성껏 간호한다. 6주라는 짧은 기간에 전쟁의 참혹함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두 사람은 팽팽한 긴장감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이는 50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비밀이자 영원히 기억될 청춘의 한 조각이다.

 

인물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영국 부상병 제이콥(제이콥의 할아버지)은 영국에서 결혼한지 3년 만에 전쟁에 투입됐다가 상처를 입었다.

헤르트라위는 19세인 네덜란드인 여성으로 자기 집에 간호를 요청한 부상병을 시골로 데려가 적극 간호하다가 사랑에 빠진 청춘이다. 영국에서 온 제이콥 토드의 손자가 된다.

- 베셀링과 그 부인은 제이콥과 헤르트라위가 숨어 지내던 시골농장의 주인이다.

디르크는 베셀링의 아들로 헤르트라위의 오빠 헹크와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돌아와 헤르트라위의 사정(이미 간호하던 제이콥은 죽었고 임신한 상태였다)을 이해하고 아내로 받아들인 상남자다.

판 리트 부인은 헤르트라위의 딸이다. 제이콥과 헤르트라위가 전쟁통에 만든 사랑의 씨았으로 어릴 적 본이름은 테셀이다.

단은 테셀의 아들이니 제이콥에는 사촌 형뻘이다.

 

‘노 맨스 랜드’는 전쟁에서 어느 한쪽도 점령하지 못한 팽팽한 긴장이 넘치는 무인 지대를 뜻하며, 1944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네덜란드의 접전 지역 혹은 :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가는 시기로 가치관의 혼란과 방황을 겪는 ‘청춘’의 시기를 상징한다. 과거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퍼즐 조각)를 알아가는 과정과, 네덜란드라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주인공 제이콥은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으며 한 뼘 더 성장하게 됩니다. 안락사, 동성애, 성(性), 도덕적 규범 등 청소년 소설로서는 꽤 깊이 있고 묵직한 주제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독서토론에서 이 화두들을 던진다면, 단순한 찬반 논쟁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청춘의 방황과 성장’이라는 본질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작품 속 현재 시점에서 헤르트라위 할머니는 불치병을 앓으며 안락사를 선택한다. 이 소설이 쓰인 배경인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이기도 하다.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지, 그리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과 주변인(제이콥)의 심리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7세의 제이콥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하는 환경은 성적으로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게이 소년 ‘톤’과의 만남, 성별에 대한 착각, 자유로운 가치관을 가진 ‘단’과 ‘힐레’와의 관계 속에서 제이콥은 내면의 큰 혼란을 겪는다. 청춘에 겪는 성적 정체성의 방황과,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주제로 토론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두 주인공이 나눈 사랑과 선택을 평시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도덕적 규범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을까? 라는 발제도 토론에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밀리터리마니아로 영화 ‘머나먼 다리’를 기억해 무려 2시간 55분짜리를 다시 봤다.

영화 ‘머나먼 다리’의 작전명은 마켓 가든 (Operation Market Garden)이다. 1944년 9월, 영국군 몽고메리 원수의 주도로 연합군이 감행한 대규모 진격 작전의 공식 명칭이다.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 본토로 빠르게 진격하기 위해, 주요 요충지의 다리들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수부대(Market)가 선점하고, 지상 전차부대(Garden)가 이를 연결해 나간다는 대담한 계획이었다.

아른헴 전투 (Battle of Arnhem) 작전명 마켓 가든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던 최종 목적지 ‘아른헴(Arnhem)’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다. 소설 『노 맨스 랜드』에서 헤르트라위가 다친 제이콥 할아버지를 구해준 배경이 바로 이 전투다. 연합군은 독일군의 거센 반격과 보급 부족으로 인해 아른헴 다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결국 이 아른헴 전투의 실패로 인해 마켓 가든 작전 전체가 실패로 끝난다. 숀 코네리, 안소니 홉킨스, 로버트 레드포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오스테르베크(Oosterbeek) 영국군 공수부대가 주로 강하하여 고립된 후 처절한 방어전을 펼쳤던 곳이자, 소설 속 여주인공 헤르트라위가 부상당한 영국군 할아버지를 치료해 준 핵심 배경 공간이다.

 

마켓 가든 작전 : https://www.nam.ac.uk/explore/market-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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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동의 이해
인남식 지음 / 명인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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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동의 이해
2026. 6. 27(토)

저자 인남식은 『현대 중동의 이해』를 통해 첫째, 중동의 공간과 시간 속에 열강의 이익이 개입하여 만들어냈던 모순은 무엇인가, 둘째, 중동의 아랍인들이 열강으로부터 느낀 박탈감을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종교 즉 이슬람을 도구로 서구식민주의가 심어놓은 모순을 제거하려는 노력에 주목하였다. 우리가 중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끊이지 않는 분쟁, 국가 내부의 불안정성 외에도 우리가 가진 중동에 관한 생소함이 한몫한다며 현대 중동을 이해하자고 한다. 책은 중동에 관한 인식, 지리, 역사, 정체성과 이념, 종교(이슬람), 중동의 정치문화, 주요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국제관계, 분쟁, 테러로 장을 구분하여 전체적으로 살피는 개론서의 성격을 지녔다.

읽어가며 라벨을 붙였던 곳에는 이미 알고 있던 것 중 중요하거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1978년에 출간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다루며 중동을 바라보는 인식론적 틀을 재검토하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인다. 서구가 가진 힘과 지식의 불균형 속에서 형성된 이미지(동양은 미신적, 관능적, 비합리적, 여성적, 정체된 세계이고, 서구는 합리적, 도덕적, 남성적, 진보적 문명이라 믿는 이분법적 구도는 서구가 스스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타자를 열등하게 규정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었으며, 영국, 프랑스의 제국주의 팽창기에 강화돠고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며 이어졌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근본주의적 시온주의자들이 구상하는 대이스라엘의 근거는 “애굽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를 야훼가 아브라함 자손에게 약속한 땅(창세기 15:18)으로 묘사하는 데에 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중 이스마엘의 후손은 전통적으로 아랍-무슬림 집단의 조상으로, 이삭의 후손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뿌리로 인식되어 왔다. (p.59)

632년부터 4대 칼리프 알 리가 사망한 661년까지 30년 동안인 ‘정통 칼리프 시대’의 ‘합의’ 추대 방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형이라는 주장이 있다. 압바시아 왕조(750~1258)는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리스 철학과 인도의 수학, 페르시아의 과학이 한 데로 모아졌다. 바그다드가 중동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한 계기였다. 바그다드는 ‘지혜의 집’이라 불렸다.
오늘날 튀르키에에서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국부로 추앙받는 까닭은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이었으며, 아나톨리아 북부 일부만을 영토로 한정한 1차대전 전후처리 조약인 세브르조 조약(1920년)을 폐기하고 1923년 새로운 로잔조약을 맺어 오스만 제국의 해체와 함께 이스탄불은 물론 이즈미르 등 주요 도시와 보스포루스, 다다넬즈 해협까지 잃을뻔했던 위기를 극복하고 튀르키예공화국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븐 할둔은 『역사서설』을 통해 중동 유목민의 정체성을 사막을 살아가는 부족 단위 귀속감에서 나오는 ‘연대(아싸비야)’에서 찾았다. 중동 사회를 관통하는 정서는 개인 중심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성이다. 움마는 이슬람의 거대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단어다. 아랍민족주의인 ‘까우미야’와 ‘움마’는 식민 제국의 중동 분할로 생겨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중동 나름의 정체성 아싸비야 연대였다. 요즘 아랍 민족주의는 유명무실해졌지만 이슬람운동 즉, 움마의 정체성은 역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슬람부흥운동은 정치와 경제 등 현실 사회의 핵심 영역에서 이슬람의 가치를 준용하여 상황을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일체의 집합 행동을 의미한다. 부흥운동의 배경에는 중세 아랍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거치는 동안 지중해지역의 대부분을 이슬람이 압도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협력기구 57개 회원국 중 시아파가 다수인 국가는 이란(90%), 이라크(63%), 바레인(72%), 아제르바이잔(59%) 등에 불과하다. 카르발라 전투에서 패한 시아파는 혈연계승을 추구하다가 결국 공동체 주류로부터 축출되어 새로운 종파로 등장한 것이다. 수니파는 전통에 따라 합의 추대를 통한 권력 계승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명명된 이름이다. 수니를 직역하면 순나 즉 전통을 따르는 이들이란 뜻이다. 나라마다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중동의 주요 국가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종교성을 통치에 반영하고 있다.

‘지대국가론’이란 국가 수입 부문의 일정 부분 이상이 특정 분야에서 부가가치 창출 노력 없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경우 이를 ‘지대(임대료)’에 비유하여 설명한 이론이다. 세입 비율이 40%를 상회하는 경우 지대국가로 분류한다. 지대국가는 국민들의 근로 의지 저하 및 제조업 분야 취약이라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석유 시대의 종언을 예상하는 걸프 산유 왕정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사람을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동 노동시장의 문제는 높은 청년 실업률과 높은 비정규직 비율이다. 최근 여성 경제 활동은 과거에 비해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전쟁과 아프칸전쟁에서 패한 이후 네오콘의 일방주의를 벗어나 오바마 독트린을 내놓았다. 첫째, 민주주의 확산 대신 비폭력을 전제로 하는 이슬람 등 다원주의 가치 인정, 둘째, 패권적 일방주의 대신 다자주의와 동맹 강조, 셋째, 선과 악으로 세상을 구분하는 도덕적 절대주의 대신 상대주의에 기반한 현실주의였다. 이는 무조건적 이스라엘 편들기와 무조건적 이란 적대시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트럼프가 망가트렸지만. 트럼프는 이란을 다시 적대국으로 돌리고 역내 반이란 세력인 아랍의 보수 왕정 및 공화정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연대시키는 ‘아브라함협정’을 체결했다.

시온주의 운동의 본격 시작은 1896년 테오도르 헤르츨이 <유대국가론>을 펴내면서부터다. 시온주의 운동 초기에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 건국을 찬성한 것은 아니다. 오슬로평화협정(1993년 9월)은 중동평화의 초석이다. 이스라엘 점령지역 중 팔레스타인의 집중 거주지역을 분리해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한다는 ‘두 국가 해법’의 합의를 이룬 협정이다. 후속 논의가 중단된 상태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이스라엘의 장기적 안보를 확보하는 길일 수도 있다.

이슬람이란 단어보다 중동이란 단어를 먼저 인식했었으리라. 학창 시절 교과서로부터 배운 것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란 걸 알게 되고, 하나씩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을 책 읽기를 통해 계속해왔다. 『이슬람 문명』, 『역사서설』, 『지혜의 집』, 『오리엔탈리즘』, 『그리스 사상과 아랍 문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무함마드』, 『꾸란』, 『이슬람』으로부터 이슬람 세계로 부르는 중동이 과거의 영광에 향수를 느낄 거라 짐작한다. 이런 책들이 과거를 다룬 역사라면 『현대 중동의 이해』는 최근의 역사와 현재(책으로 나오는 즉시 과거이긴 하지만)를 다루기에 이슬람 탐구를 마치는 책으로 선택한다. “모든 진실은 연속된 오류의 수정이다.”라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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