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택리지 - 시공간 초월 조선 핫플 탐방기
권재원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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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택리지

2025. 3. 28()

 

택리지는 이중환이 지은 조선 후기 최고의 인문지리서다. 양반 신분으로 살기에 알맞은 곳과 알맞지 않은 곳을 찾아 서술한다. 장풍득수가 전통적 풍수였다면, 이중환은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기준으로 가거지(可居志)를 선정하였다. 지리는 물길, 산의 모양, 흙을 성질을 다루고, 생리는 생활에 얼마나 이로운가, 즉 산업과 고통을 고려하였다. 인심은 주민의 예절, 도덕, 풍습을 포함하며, 산수는 훌륭한 경치를 즐기며 놀 만한 장소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생리를 기준으로 남원~구례, 성주, 진주를 꼽는다. 인심을 기준으로 보면서 주관적 편견이 보이기도 한다.

 

21세기 택리지33년간 중학교 사회교사로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월별로 주제를 삼아 12 지역을 소개하고 청송, 진주, 남해, 공주와 부여, 거제시를 덧붙이고 있다. 선정한 지역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피고 산업과 인구 등의 특성을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여행을 다녀올 만한 곳임을 밝힌다. 여행안내서의 성격과 지리서의 성격을 조금씩 담고 있어 여행하려는 사람이라면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읽고 선택하도록 돕는다.

 

평창, 정선, 태백 1960년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연탄 수요의 폭발로 탄광 주변으로 인구가 급증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 사실상 탄광이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눈과 관련된 축제가 활성화되었다. 수도권 인구의 급증시기에 고랭지 농업이 성하다. 이를 저자는 흑색, 백색, 녹색이란 색감으로 지역성을 표현한다.

안동 전통 정신문화의 보물 창고라고 부를 수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이상향이었으나 근대화 이후 소외되었지만, 사찰과 서원이 빚어내는 풍경이 안동이 가진 큰 자원이다.

통영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란 점을 활용해 만든 가장 훌륭한 클래식 음악당이 있다. 파란 바다, 항구, 배들, 섬들이 그리는 선과 어우러진 풍경, 벽화마을인 동피랑 마을 이 매력이다. 수군통제영에서 통영을 명명했고, 임진왜란이후 평화시기에 수공업 제품, 특히 나전칠기를 만든다. 작은 도시이지만 통영이 가진 매력 탓에 오버투어리즘과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된다.

구례~하동 봄이 아름다운 고장인 구례와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합작품이다. 토산인 지리산 자락에 맑은 섬진강이 흐르나 역사의 곡절과 아픔을 겪은 곳이다. 구례중학교 산악회 연하반의 노력으로 지리산이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화엄사, 쌍계사, 천은사는 지리산 3대 사찰이다. 대표적 문학 작품인 토지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경주 젊은이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로 관광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다. 황리단길도 오버투어리즘의 문제를 안고 있다. 경주 인구의 30%가 울산에 살면서 출퇴근한다고 한다.

광주 권율 장군의 왜군 격파, 광주학생항일운동, 5.18 민주화 운동 등으로 나라를 구하고 구했으나 보답 대신 편견으로 고통받았다. ‘무등이란 평등이 너무 당연해 평등이라누 개념조처 사라진 상태를 일컫는 불교 용어다. 인구 중 문화, 예술인 비율이 다른 도시 보다 높아 예향이라 부른다.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정신을 알리는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려 한다.

춘천 낭만이 필요했던 70년대 낭만을 찾던 도시다. ‘예맥 천년 고도’, IT, 바이오 기업이 자리잡아 오면서 젊은 인구가 늘어날 예정이다. 서울에서 전철이 다니고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수도권과 가까워졌으나 땅값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영동지방 기온이 온화하고 풍경이 아름다워 조상들도 인정한 최고의 피서지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1970년대 이후 관광산업이 성장세를 띈다. 양양은 젊은이의 성지로 불린다. 영동지방은 오버투어리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철원 한탄강은 길이에 비해 유량이 많다. 동강, 내린천과 함께 래프팅의 성지다. 유네스코는 한탄강 일대를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궁예가 도읍으로 삼았고 강원도 제일의 곡창지대이다. 비무장지대는 지질학적, 역사적, 환경적으로 한반도의 타임캡슐이다.

내포지방 이중환도 인정한 가거지다. 당진시, 아산시, 평택시, 서산시 지역은 대기업 공장들이 많아 창원, 부산, 울산 일대의 동남권 벨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천안시는 비수도권도시 중에서 청년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 한용운, 이동녕, 김좌진, 윤봉길 등 애국지사를 낸 곳이다.

군산, 익산, 완주 근대화와 일제 수탈의 탁류가 흐른다. 새만금은 주민들의 희망을 모두 모아 놓기만 한 것은 아닐까

강화 해돋이와 해맞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고인돌, 고조선(첨성단) 시대부터 근현대사, 분단의 역사까지 품고 있다.

 

청송 신성계곡과 응회암 지형인 주왕산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농경지의 절반 이상 면적이 사과 재배지이고 고추 농사의 비중이 높다. 청양고추는 청송과 영양군에 있는 종자회사 시험재배장의 앞 글자이지 충남 청양과 무관하다. 몬산토로 유전자 정보가 넘어간 것이 아쉽다. 독특한 것은 공장, 축사 건설을 금지하고 2023년 대중교통 완전무료를 선언했다. 대신 공해가 없는 교도소를 유치하는 발상의 전환을 본다.

진주 이중환이 부러워했던 진주는 천 년이 넘도록 경주, 상주와 함께 경상도 3대도시 역할을 했던 풍요로운 도시다. 충절의 도시, 교육의 도시, 청춘의 도시다. 조선시대 경사 우도는 좌도에 비해 부유했으나 오늘날은 역전된 상태다.

남해 대부분이 바위산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남해도엔 다랑이 논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남해대교, 노량대교, 삼천포대교, 창신대고 덕분에 육지와 다르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장과 독일마을이 있다.

공주와 부여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어 남아 있는 유적이 적어 아련하고 애틋하다. 익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무령왕릉과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거제 부산에서 거제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고 한다. 몽돌해수욕장, 매미성, 외도, 조선산업의 핵심지역이다.

 

저자는 21세기 택리지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창문으로 풍경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지도를 펼치거나 구글 위성 지도를 봐가며 지역을 확인하고 떠날 여행지를 골라보자. 책은 중학교 교사의 안목으로 여러 지역을 살피며, 쉽게 서술하고 있어 청소년이 읽기에도 적합하다. 교과서 배운 것 외에 역사, 환경, 산업, 문화, 인구와 관련한 사실들은 성인에게도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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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 -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고병권 지음 / 돌베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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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

2025. 3. 25()

야학이란 단어를 들을 때 내 인식은 4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서울에서 운영하는 노들야학 철학 교사의 글을 현재 시점에서 읽는다는 것은 두 가지 지점에서 일상을 벗어난 일이다. 하나는 21세기 지식과 정보가 자본과 함께 집적된 서울에서 야학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고, 야학에서 기초적인 문해 교육이 아니고, 양보해서 인문학 강의도 아니고 철학을 가르친다는 점도 일반 상식 범위 밖에 있다.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 고병권이 가진 관점의 폭과 깊이를 알아가며 내가 아는 세상은 구멍이 숭숭 난 그물이지 싶다. 다만,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으며 느꼈던 것과 프롤로그에서 과거에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소한 장미 한 다발은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문장에서 저자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 있어 위안을 얻는다.

 

저자는 학교란 먹고 사는 삶의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나 야학은 삶의 현장, 생산 현장에 자리 잡은 학교라고 본다. 복지시설에 위문품을 전달하듯이 인문학자가 들고 오는 지식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인식한다. 말의 한계라는 지점의 시각은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풀어놓았다.

 

역사유물론의 핵심은 역사를 관통하는 영원한 법칙 따위는 없으며, 각각의 사회형태는 고유한 법칙을 갖는다”(p.55)는 점이다. 이는 역사 연구에 소홀하지 말야야 한다는 의미다. 레닌은 자본에 대해 통상적인 경제서적과 달리 노동자 계급에서 자본가계급을 비판한 유일한 경제서적이라고 말한다(p.55) 이제야 이런 이론들이 현실 세계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만, 저자는 사유하는 인간이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했을 때 심오한 ’, ‘사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2장은 <개가 짖지 않는 밤>이라 제목을 두고 사회적 모순들을 비판한다.

두 개의 눈. 보여지는 눈과 보는 눈. 타자의 시선의 대상이 된 눈과 그 타자의 시선을 보는 눈. 장애인의 한 쪽 눈은 위선을 꿰뚫어 본다.

저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주제에 감히해외여행을 한 해에 두 번씩이나 다녀온 사람들을 존경한다. 한편으로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존경하고, 사회적 권리를 사회적 채무로 바꾸려는 권력자들의 음흉한 음모에 굴하지 않는 그 정신을 존경한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맞아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탐욕은 멈추지 않으면서도, 감히 주제넘게 두 번이나 해외여행을 했다고 가난한 사람들 목줄을 흔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정부다.

삶이 막연할 때는 기본적이고 절실한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잘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여력이 되거든 애인들을 돌봐야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 만든 선감학원은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p. 93) 8세에서 18세까지의 아이들을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놀랍게도 1982년까지 운영되었다. 정부 인식은 일제 식민주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제레미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이 널리 알려졌으나 그에 따르면 인류의 쓰레기들은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저자는 한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자들에게 인문학은 언어를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들이 정치적 존재가 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정치적 존재로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들은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들을 수 있는가이다.

현행법령은 동물 사체(반려견 등)는 일반 쓰레기라고 한다니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가? 나는 모르겠다.

내 고통은 타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고통이란 너무나 고유한 것이어서 누구도 그 고통을 가져갈 수 없다.

유대인 난민이 밀려왔을 때, 독일이 강요했을 때, 저항했던 국가는 덴마크와 불가리아 뿐이다. 이는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과 토니 주트가 지은 포스트 위 1945~2005에서 언급되어 있다.

 

비워둠은 삭제함이 아니라 마련함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그를 위한 자리, 그가 깃들어 우리에게 말 건넬 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장애에 관한 두 차원의 생각은 큰 차이가 있다. 장애를 기술만 충분하다면 극복할 수 있는 기능 부전의 문제, 마치 의료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장애를 만들어 내는 것, 장애해방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를 생산하고 차별하는 사회와 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디오게네스가 말하는 장애인이란 배낭을 메지 않은 사람이다에서 배낭은 종속되지 않고 자율적인 삶, 보호장치로서 울타리 바깥에서의 삶,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돌보는 삶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주권자로서 투쟁할 수 없는 삶을 의미한다.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를 비교하는 관점을 배운다.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풀러 줄 영웅이 올 것이란 예언을 실현한 자는 헤라클레스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마음속에 맹목적인 희망을 심어놓았다. 희망이란 미래를 보면서 갖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없는 맹목에서 나온다.

 

묵묵에서 저자 고병권의 삶을 본다. 실천적 지식인의 삶이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검색하게 한다. 소개글을 보니 사야 할 듯하다. “고병권은 책과 세상을 리뷰하지만, 그가 관찰자나 평론가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글에서 낯설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거리'의 낯섦은 고병권이 삶에 대한 긍정과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투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극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기에 가지는 낯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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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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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2025. 3. 16(일요일)

흔히 보는 철학책과 다른 제목이다. 아마도 기획자가 TV 프로그램 알뜰신잡에서 쓸모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잘 팔리는 철학책이지만, 감동을 준다거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아쉽다.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번역도 껄끄럽지 않지만, 단문으로 벌려 놓아 만연체의 글이란 느낌이다. 철학의 쓸모는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관하여 어떤 태도와 자세로 풀어가는 것이 좋을까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답하려고 시도한다.

 

인간은 육체적 고통, 영혼의 고통, 사회적 고통을 겪는 존재라는 전제와 범주에서 벗어난 흥미로운 고통들도 마주한다고 전제한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삶의 대부분은 본질적이면서도 무상하고 무엇도 예측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무상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불교의 연기론은 스피노자의 인과율과도 다르지 않다. 철학의 쓸모는 이런 전제를 두고, 철학이란 우리의 고통을 진정시켜 주는 진통제와 연고를 처방해 주는 일종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키르케고르는 철학의 역할을 정신의 가장 큰 불행, 즉 인생을 살아가면서 절망에 빠져 고통을 겪는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 바꾸거나 위임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이같은 교훈을 이끌어낸 이들은 스토아학파다. 스토아 철학이 제시하는 치료의 원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시몬 드 보봐르의 시선을 말하며 자크 데리다의 고양이의 시선이라는 낯선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몽테뉴 같은 이들은 삶이란 사소한 것이며 중요한 것은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인문학이 출발한다고 본다. “병에 걸렸을 때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병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 뿐이다라는 문장에서 현대의학의 역할을 기대하지 못했던 시대의 말이라고 제처 둘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늙음에 대한 처방으로 한나 아렌트가 소개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즉 탄생성(natality)의 실천에 귀를 기울인다.

열정에 대하여소개하는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이야기한다. 두려움에는 용기, 쾌락과 고통에는 절제, 분노에는 온유함이 중용이다. 이에 견주어 스토아학파는 중용이란 치명적 열정의 치료법이 될 수 없으니 열정을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본다. 어떤 것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의연함인 아파테이아(apatheia)’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은 토론의 기술도, 감정의 공유도 아닌 이성으로 개념을 생산하는 일종의 개념 제작소.(p. 109)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나는 어떤 삶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삶에서 실패나 좌절을 겪을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이 문장도 인문학의 출발점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헤겔은 자기 하인에게도 영웅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영웅은 일상에서 벗어나 있을 때만 영웅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선지자는 가족과 이웃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은 매일 반복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학과 예술, 철학이라는 향미제와 조미료가 필요한 것이다.

 

p. 142에서 세이렌의 노래에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 범선의 돛대에 자신을 결박한 오디세우스의 방법, 즉 거부함이 의지박약을 극복하는 방법이란 점에 끄덕이기 쉽지 않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의 상처에 빠져 무기력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오직 행동하는 것뿐이다. 누가 뭐라해도 권태나 우울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육체노동이다.

 

실패를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여기고 이상화하면서 경험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보며, 현실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더 멋있게 실패하는 법 뿐이라는데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다. 아둔한 칠면조가 되고 싶지 않다면, 경험의 힘을 믿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대신,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고독을 그저 외롭고 부정적인 상태로 여기지 말고 진정한 자유를 체득하고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여라.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정치인이든 상인이든 관리든 학자든 노예에 불과하다는 니체의 말이다.(p.241) 우리를 구별 짓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있다가 퇴임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귀 기울여야 할 문장이다.

 

투머치토커, 잘난 체하며 여성들을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이너(mansplainer), 혼잣말하는 사람들을 사회악으로 보는(p.269) 관점은 새롭다. 침묵은 우리를 더욱 현명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서로 다른 원칙에 따라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불화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국가를 약화시키니 어린이들의 교육을 공동체에 위탁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플라톤은 p.277에서 전사들의 아내는 모두가 공유해야 하고, 어떤 여인도 특정한 남성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되며, 아이들 역시 아버지는 자식을, 자식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게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현재는 수용할 수 없는 플라톤의 의식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면서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감정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부른다.(p.194)는 사실을 엊그제 브런치에서 읽고, 오늘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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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람의 길 - 上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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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孟子 사람의 길 上

맹자 孟子 사람의 길

2025.2.8.()

도올 김용옥은 맹자는 고전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부터 맹자를 읽은 사람이 많았으나 시대적 사상의 제약(주원장은 괘씸하게 여겼고 일본에서는 금서였다. 정몽주에 의해 맹자가 제대로 읽혔다)이 강했고, 뒷받침하는 문헌의 포괄성이 부족했다. 이제는 자유분방한 시대이니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맹자를 읽는다면, 맹자의 사상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기에 옛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수십 종의 맹자가 출판되었고, 홍익출판사의 맹자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맹자 孟子 사람의 길 .는 도올 김용옥의 주석서다. 894쪽 분량에서 430쪽이다. 2024123일 비상계엄을 경험하며 맹자 읽기로 겨울을 버텨내는 중이다. 읽다보니 사마천의 사기세가사기열전을 다시 들춰보게 한다.

 

맹자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당나라 때까지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으며, 인기 없는 한 사상가였을 뿐이었다.”(p.53) 송대 한유에 의해 맹자는 사상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맹자가 제도사적으로 승격된 것은 왕안석에 의해서다. 신법 개혁 사상의 정초로 생각하고 과거과목으로 편입시켰다. 맹자상을 조정내에 세웠고 공묘에 배향하였다. 왕안석의 맹자존숭은 반발도 샀었다. “남송의 주희가 四書集註를 낸 후로부터 맹자의 권위는 확고하게 된다.”(p.55) 맹자관한 주석서는 2세기 조기의 孟子章句가 유일했으나 주희가 孟子集註를 썼다. 우리나라에는 포은 정몽주가 맹자를 읽고 친구인 삼봉 정도전에게 선물하였는데 3년간 시묘살이하며 맹자를 받아들여 조선조 개창 사상에 반영하고, 이후 조선 사림들에게 중요한 경전으로 받아들여져 맹자의 사상이 조선을 이끌어가게 된다. 도올 김용옥은 조선은 맹자의 나라였다.”라고 名言한다. 창덕궁 인정전 편액의 인정(仁政)이라는 말은 맹자에 의해 가장 정확하게 의미가 규정되었다고 한다. 인정이라는 말은 논어에는 없단다. 맹자 孟子 사람의 길 .는 사서집주본을 기본으로 한다.

 

호불호가 있겠으나 도올의 해석인 옥안(沃案)을 읽는 맛에 책을 선택한다. 한자의 해석에 그치면 군더기가 없어 담백하기는 하나 문장에서 맹자의 사상을 온전히 읽기는 어렵다. 옥안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맹자를 적용하는 도올의 얼굴 표정과 몸짓, 성향까지도 거침없이 드러내기에 재미있다. 고금의 동서양 철학을 넘나드는 김용옥의 지적 세계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지적 호기심을 가진 나를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양혜왕장구 梁惠王章句

옥안의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추려 옮긴다. 송대 근사록이라는 책이름의 출처가 된 切問而近思라는 문구는 자하가 자신의 학문적 태도를 일러 말한 것이다. 배움의 세계 속에서 어김없이 지식을 달구어 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자하는 배우고 남음이 있다고 생각되면 벼슬길에 오르라. 學而優則仕했다. 칸트의 물자체를 쇼펜하우어는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로 규정했다. 니체는 힘에로의 의지를 우주의 근본 원리로 삼아 인간세의 모든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변혁하자.“는 것이다. 맥락은 다르다 해도 상앙의 힘의 철학은 니체의 힘에로의 의지와 상통한다고 한다. 니체는 신의 죽음과 동시에 대지에 충실할 것을 권유하고 상앙은 힘의 원천을 땅에 둔다. 그것은 농본주의를 의미한다. 아마도 21세기에는 국가가 힘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근본은 農戰이 아니라 경제전쟁이지 싶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비교한 글에서 전국시대에는 춘추시대 민중 보병부태의 규모가 2~3만 규모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글을 본다. 상앙과 효공의 대화 중 쉽다는 표현은 특수한 사태가 아닌 일반적 사태라는 것이며, 일반적 사태의 전반적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치에 있어서 가장 쉽고 명백한 부강의 원칙일수록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상앙의 법은 단순히 민중을 괴롭히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愛民, 利民의 요체이다. 법이야말로 국치, 국부, 병강의 지름길이다. 우리나라 내란 사태에서 보는 법꾸라지, 법기술자들에게 필요한 내용이다.

도올은 공자에게 민중의 고난에 대한 열렬한 사명감은 엿보기 어려우나, 맹자는 당대 민중의 고초에 대해 열렬하게 공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공자는 을 말했을 뿐이고 맹자는 仁義를 말한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여민동락 與民同樂이나 오십보 백보’, 교육, 양심, 생활, 선생이라는 말들은 맹자의 텍스트에서 유래한다. 전국시대 강대국은 제환공과 관자로 표현되는 강태공의 나라인 제나라다. 제나라의 수도는 임치로 전국시대 학술활동의 중심지였으며 학술문화를 이끈 것은 순우곤이었고, 마지막은 순자였다. 관자는 관중의 사상 논문집으로 기록을 보니 2012년에 1,00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을 읽고 메모한 기억이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목민관자에서 뽑은 거다. 관자의 정신 중 하나는 사시四時에 어긋나지 않게 정치를 하면(농번기에 전쟁 일으키지 않고, 봄에 장정을 노력에 동우너하지 않기 등) 국가 재정이 튼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의 恒産恒心(5년간 백수로 지내보니 깊게 느꼈다)이란 사상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 “한문을 배우려면 반드시 맹자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혜왕장구 상의 해석 분량은 100쪽을 넘어 읽어가며 지치게 할 수 있다.

 

양혜왕장구 하

조선초부터 궁중과 민간에서 연주되어오는 여민락이란 관현합주곡의 이름이 맹자에서 유래해 맹자사상이 조선왕조에 미친 영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즐거움을 천하와 더불어 하고, 근심을 천하와 더불어 하고서도 천하의 인민이 그에게로 귀속되지 아니 하는 자는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p.183)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에서 환과독고鰥寡獨孤야말로 천하에 빈궁한 사람이니 먼저 보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홀애비), (과부), (자식 없는 늙은이), (고아) 맹자의 왕도론의 중요항목은 정전제, 관료의 봉급을 보장하기,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한 통행세, 물품세 폐지, 군주의 사유지 공개, 연좌제 폐지하고 형벌보다 서민교육으로 도덕을 진작시키기, 환과독고의 최빈자를 최혜자로 다루기등이다. 1b-8(p.198~203)맹자가 조선에 자리 잡는 과정을 상술하며 구한말 동학 역시 맹자의 혁명사상이 없이는, 맹자의 호연지기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사상이라고 말한다. 수호지의 영웅, 양산박의 두령인 송강의 별명이 급시우 及時雨(때맞추어 내라는 비)로 맹자의 若時雨降이란 표현에서 유래한 것이다. “맹자 논리의 위대성은 민중을 변호함에 있다. 군주라도 정치를 잘못하면 인민이 군주에게 항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는 혁명사상이 깔려있다.”(p.215) “외환의 본질은 내우에 있다 작은 나라 일수록 내우를 다스리면 외환의 문제는 해소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p.220)

 

公孫丑章句 上

인간의 화복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 자초하지 않음이 없다. ‘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도저히 도망갈 길이 없나이다’ (p.249)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움직인다.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의 이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이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이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이다. 퇴계와 고봉의 사칠논쟁도 이 장의 해석을 두고 이루어진다. 퇴게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제목으로 출판돼 있다. ‘孺子入井이란 상황은 측은지심의 일상적 예다.

 

公孫丑章句 下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호만 못하다.”(p. 265) 천하에 두루두루 통하는 존귀함에는 셋이 있어 작위, 나이, 이다. 하나만 갖고 있다고 해서 나머지 두 개의 존귀함을 가지고 있는 자를 깔볼 수 없다. 不敢請耳, 固所願이다.

 

滕文公章句 上

여기는 중요한 맹자사상이 표출되고 있는데, 성선의 전제로서 깔려있는 인간평등론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평등하다는 사상이 확보되어야만 인간은 누구든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p.307) 항산이 있는자는 항심이 있으나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 또한 없다가 다시 언급된다. 선비만이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유지한다. 소국인 등나라에 정전이라는 조법의 유연한 제도(경제적 구상)를 활용하여 민중의 삶을 편안케 하고, , , 學校와 같은 서민을 위한 지방학교를 세워 인민대중을 가르쳐야한다고 말한다. 정전제는 토지의 균등분배와 사유를 허용하는 일종의 집단농장체제이며 상부상조의 복지체계이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경자유전의 유토피아가 맹자에서 비롯된다. 親義別序信,“오륜이라는 말 자체는 명대 선종이 편찬한 오륜서를 그 용례의 최초로 삼은 것이며, 이 책을 영종이 널리 보급하여 일반화된 후대의 개념이지 맹자의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는 인륜人倫이란 표현만 썼다.”(p.334)

 

滕文公章句 下

이 세계는 도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가혹하다. “아무리 타협으로 부귀를 누린다 한들 그것은 현세를 지배할 수 있으나 결코 누적되는 역사의 가치가 될 수 없다.”(p.344)는 문장은 멋지다. 위정자 자신이 도덕적으로 정당치 못하면 정치는 행하여질 수 없다. 현재도 명태균 게이트가 증명한다. 장부란 독자적 실존 영역을, 즉 단독자로서라도 삶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자 이어야 하나, 여자는 순종을 도리로 삼아 독자적 실존을 갖지 못한다는 부분은 오늘날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다. 위무威武 즉 국가권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 대장부의 조건 중 하나이다. 사나이의 진정한 용기는 실존 내면의 도덕성에서 우러나온다. 그래서 공자는 삼군의 거대병력에 맞서 장수를 빼앗을 수 있으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인류의 역사란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본다. 천당이나 종말이라는 목적이 없다.

 

이루장구離婁章句 上

이루의 시력이 있고, 공수자의 기교가 있다 하더라도 규구規矩(콤파스와 곡척)에 의존하지 않으면 정밀한 사각형이나 원형을 만들 수가 없다. “위에 있는 자ㄱ들이 예의를 지킬 줄 모르고, 아래에 있는 민중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백성은 도적이 되어 봉기하기 마련이니, 그리하면 국가의 멸망은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p.385) 행하여 내가 기대한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때는 항상 그 원인을 나에게 구하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아직 갈 길이 멀었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은 절반쯤 온 것이며 아무도 탓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도착했다.”라는 중국 속담과 다르다. 自暴者와는 더불어 가치있는 의론을 할 수가 없다. 自棄者와는 더불어 가치있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오늘알 대통령의 지위에도 폭넓은 교양과 정확한 판단력과 다양한 인식능력을 갖춘 자라야 그 지위에 앉을 자격이 있다. 어떤 일이든 가볍게 말을 내뱉는 놈들은 심각하게 비판할 아무런 가치조차 없다. 맹자는 부귀나 빈천에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위무에도 굴하지 않는 대장부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요구한다. 조선 시대의 선비상이 이런 맹자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라고 말한다. 맹자가 말한 불효의 세 가지는 부모를 불의에 빠뜨림, 부모가 연로하신데 자기 앞가림 못하는 것, 후손을 잇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맹자세미나가 이루어진 현장이고 주관한 인물이 삼봉 정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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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람의 길 - 下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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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람의 길 下
2025.3.1. 토요일
7,000자로 길다
이루장구 하
아래의 글은 모두 도올의 주해인 沃案을 바탕으로 정리한다.
맹자의 논의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라는 신념을 드러낸다. 성선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사단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도올은 조선에서 율곡이 맹자의 대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중”과 “재”이다. 그것은 도덕과 재능이다. 두 가지를 구비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일인 몫을 하고도 남는다. 도덕과 재능을 구비한 자를 “현”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불초不肖”라한다. 사극에서 들어 보는 불초소생이란 말의 불초다. 현과 불초의 양극화를 막으려면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방에 향기가 스며드는 것과 같은 가정에서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己所不欲 勿施於人”이야말로 진실한 도덕이다. 자공이 종신토록 행할만한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에 공자가 ‘서恕’라고 답한다. 서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다.
도올의 관점에서 서구철학의 최대 문제점은 아직도 상식 내에 신화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赤子之心’, 마음이 어린애 같이 순결한 인간이어야 대인이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자득이어야 한다. 진리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의 체험 속에서 깨우치는 것이다.
박학은 설약說約(주제파악)을 지향해야 하고 설약은 박학을 지향해야 한다.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하지만 종국에는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료하게, 단순하게, 간결하게, 요약하여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학이 요약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지식의 질병에 빠지게 된다. 내가 책을 읽을 때 하나의 문제의식을 갖고 수미일관해야 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일신교가) 불변과 영원이 불변의 가치인 양 선전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불안한 심리를 예속시킨다. 공자는 흐르는 물의 아름다움과 같이 우리의 삶이 흐르고 변화하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수용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의 개념도 다르지 않다. 무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금수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근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금수에 비해 인의의 도덕성을 살리고 보존한다. 인의를 통해서, 인의와 더불어, 인의 속에서 행동할 뿐이지 인의를 행동의 목적이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인(수평)하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예(수직)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이다.
군자에게 종신의 우환은 있을 수 있으나 하루아침의 걱정은 있을 수 없다. 하루아침의 걱정거리 같은 것은 군자는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아니한다.
중국 사람들은 ‘易地思之’란 말은 쓰지 않는다. 보통 “易地(則)皆然”이라고만 말한다. 받아들일만 하다.
불효의 다섯 가지는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 놀음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음주에만 빠지는 것, 돈버는 데만 미쳐 자기 부인과 자식만 아끼는 것, 이 세 가지 탓에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다. 耳目의 쾌락만 추구하거나, 쌈박질만 해대면서 부모에게 불명예를 안기거나 부모를 위태롭게 해드리는 것이다.
責善이란 붕우지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도리이며 부자지간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졸저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에서 칼럼으로 수록함)
신을 인간으로부터 객화시키는 모든 사상은 사이비일 뿐이다.(p. 504)
동방인들은 철학을 어떤 특정한 진리 추구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문학이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문사철을 겸비해야만 사상이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논리를 논리로써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은유나 비유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 휠씬 더 가슴을 파고드는 진실이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만장장구 上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역사상 가장 음흉하고 잔혹한 인물이었다. 장인, 처형, 매부, 아들, 둘째 부인을 살해했다. “6명의 황제가 난립한 시기에 다신론적 사태를 1인의 황제체제 즉 유일신론적 사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기독교라는 유일신종교를 활용했을 뿐이다.”(p.515) 읽어주길 기다리는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에서 언급하는지 지켜 보자.
하늘이 보는 것은 민중이 보는 것을 통하여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민중이 듣는 것을 통하여 듣는다. “오늘날 기독교가 조선땅에서 설치는 것도 맹자 덕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역으로 조선의 건강한 기독교인이라면 맹자가 말하는 민중 즉 인간의 보편성을 하늘의 의지로 수용하는 신앙인이어야만 한다.”(p.537)
만장장구 下
유하혜의 생각,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가 내 곁에서 웃통을 벗거나 전 나체로 있든 그것은 너의 무례일 뿐 그것이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으랴!”(p.560) 공자가 스스로의 학문 세계를 스스로 자평하여 “술이부작”이라 말했다. 공감하기에 나의 첫 책 <독서로 말하라>를 출간하고 경인 방송 인터뷰에서 나도 ‘술이부작’이라는 공자를 따랐다.
서양 문명의 장처는 철학사에 있지 아니 하고, 과학사에 있다. 철학은 과학을 뒤쫓아왔을 뿐이다. 철학은 아직도 우주와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 신화적 단계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p.565)라는 문장은 나에게 더 공부하라는 문장으로 읽힌다.
맹자에게 벗이란 나이, 신분의 귀천, 연줄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내 시간과 정력을 공짜로 빼먹으려 하는가 ! 지식이나 도덕이 공짜일 수 없다. 지식인을 대접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이 정당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 여건을 만들어 주는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p. 574) 모든 강연자가 공감하는 바다.
“사람과 교제하는 데 있어서는 공손한 것이 제일이다.”
맹자의 “所不召之臣”의 신념, 천하에 다스리고자 하는 군주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신하를 곁에 두어야 한다.
친구 사귀기와 독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성현들을 추론하면서 벗 삼아라. 그들의 시를 읊고 책을 읽어라. 그래야 인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산 시대를 논구해야만 한다. “독기서부지기인가호 讀其書不知其人可乎” 그 책을 읽고도 그 사람을 모른데서야 말이 되는가.
성상근야 습상원야 性相近也, 習相遠也. 태어난 그대로의 성은 모든 사람이 서로 가깝다. 그러나 후천적 학습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
고자장구 上
식색食色 그 자체로서 우리는 선악을 논할 수 없다. 식색을 본능이라는 말로 비하시켜서도 아니 된다. 우리의 모든 문화적 활동의 총체가 식색의 문제일 수 있다. 종교, 예술, 정치, 산업, 그 모든 것이 식색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p.615)
측은지심은 인의 발로이며, 수오지심은 의의 발로이며, 공경지심(사양지심)은 예의 발로이며, 시비지심은 지의 발로이다. 인의예지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나에게 덮어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도올은 인간의 염색체 배열 속에 인의예지라는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하니 쉽게 알아볼 수 있다.
6a-7은 沃案을 여러 번 읽어도 (‘주희, 율곡, 퇴계가 말하는 理가 얼마나 유교의 본의와 동떨어진 것인가로 보여주는 위대한 로기온자료다’라는) 소화하기 쉽지 않다.
<牛山의 예>는 성선설은 명료하게 설파한 로기온자료다. 몸에 고유한 선한 마음을 방치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마치 도끼와 자귀로 나무를 계속 베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매일매일 나무를 벌채하여 없애버리듯이 양심을 잘라 내버리니 그 아름다운 마음이 유지될 수 있을까보냐?
“조심操心‘이야말로 맹자 心學의 키워드이며 ”求其放心’의 다른 표현이다.(p.631) 학문의 길이란 별것이 아니다. 그 놓아버린 마음放心을 되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쥐불놀이에서 원심력이 욕망이고 구심력이 도덕이다. 이 양자의 밸런스가 유지될 때 이성이 유지된다. 맹자의 생각에 인은 인간의 내면적 주체성에, 의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관련된다는 생각이 있다.
고자장구 下
인간이라면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도덕적 선의 주체성을 인간보편에게서 확립하려는 맹자의 노력이다. 율곡이 맹자에 정통했음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격몽요결>의 ‘입지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을 파악한다는 것은 양가적 사태를 전관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과 증오, 원망과 사모,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은 모두 같은 차원의 동시적 포섭적 가치일 뿐이다.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표현이 일상적 삶에서 사라지게 되면 인간은 메마르게 되며 인간관계 또한 논리적일지는 모르나 각박하고 냉혹하게 되며 중층적 깊이를 상실한다.”(p.667)
“맹자라는 캐릭터 이외의 모든 인물을 모두 맹자를 빛내기 위한 부속적인 ~ 이러한 오류의 대표적인 주석이 주희의 집주이며, 맹자집주는 사서 중에서도 가장 졸렬한 작품”(p.671)이라는 품평에서 도올 김용옥의 학문적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이런 맛이 도올의 책을 선택하게 하는 매력이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
관중의 규구회맹 – 샘을 폐쇄하거나 물줄기를 전용하지 말 것, 인도주의적인 곡물의 매입을 막지 말 것, 일단 세운 태자를 갈아치우지 말 것, 첩으로써 정처를 대신하지 말 것, 부인들로 하여금 국사에 관여케 하지 말 것(2025 탄핵에서 ‘연’일 듯하다)
하늘이 사람들에게 거대한 역사의 임무를 내려주시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에 더없는 고통을 안겨주시고, 그 육신의 근골을 더없이 수고롭게 하시며, 그 몸뚱이를 배고프게 하시며, 그 육신의 삶을 공핍(궁급)하게 하신다(p.709)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 인용하는 글이다.
p.712를 읽으며(고자장구를 주해하는 과정에서 도올이 육체적 고통을 이겨왔음) 그 고통 덕분에 <맹자>를 쉽게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도올의 고자 주해는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느 인간도 감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밴쳐의 역정이었다. 현재의 주석가는 물론 조선왕조의 그 어느 누구도 <맹자>를 나만큼 이해하지 못했다”(p.713)라는 문장에 경의를 보낸다.
진심장구 上
생사를 초월하여 나의 몸을 닦음, 즉 수신에 전념함으로써 나의 몸속에서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입명 立命’의 길이다. 명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일방적인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불운한 죽음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맹자는 인의예지 사단을 말하지만, 인간의 감정 중에서 의와 관련된 ‘수치羞恥’를 특별히 중시한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정의로움과 관련된 수치의 감각은 그의 도덕성을 명백히 드러낸다. 치는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수오羞惡’즉 악을 증오하는 사회적 정의감과 관련 있다. 수치가 외면적인 사회정의감일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향상의 노력의 핵심을 이루는 실존의 동력이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인 것은 범용한 민중이지만, 진정한 지식인은 무항산이라도 유항심하여야 한다. 경험상 무항산은 노년이 아닐지라도 무위고無爲苦를 수반한다. 성취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는 크나큰 고통이다.
사람이 덕행이 뛰어나거나, 지혜가 출중하거나, 지모가 탁월하거나 하는 사람은 거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항상 삶의 진질疢疾(열병진, 환난이나 고난, 재난) 속에 놓여 있어 단련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의 글이 沃案에 자주 보인다. 서얼의 허통許通(벼슬길을 터줌)을 율곡에게 제안한 사람은 율곡의 큰누님 매창梅窓이었다.(p.739) 진심장구에서 인간의 고뇌, 고난, 재난을 바라보는 긍정적 시각, 소외된 계층의 인간을 품어주는 따사로운 맹자의 시각을 본다.
‘학기學記’에 나온 ‘학불엽등學不躐等(밟을 엽)’은 배움이란 단계를 건너뛰고 다음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순과 도척이 갈리는 것은 利를 탐하느냐 善을 실천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어떠한 일은 한다는 것은 비유컨대 우물을 파는 것과도 같다.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중단해버리는 것은 우물 파기를 처음부터 포기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우리나라 법체에 ‘정상참작’의 정상이란 “情狀”이라고 쓰는데 인간의 감정을 고려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이는 유교적 전통에서 계승된 것이다.
칸트의 철학이 물리학을 골격으로 하여 ‘드라이dry’ 할 수밖에 없으나 맹자의 철학은 구체적 삶의 체험 속에서 이야기한다.(p.774)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무화無化시켜야만 한다. 겸허하게 자기를 비우고 낮추어야 한다. 신분을 믿고 현명함을 믿고, 나이를 믿고, 훈로勳勞가 있다는 것을 믿고, 연고를 믿고 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꼭 해야 할 일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다. 本末과 輕重을 가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대인이란 결국 이런 경중을 가릴 줄 아는 時中의 대가들이다.
진심장구 下
민이 가장 귀한 것이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직이며 가장 가벼운 존재가 군(맥락상 제후국의 군주다)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이며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가 되는 것이다. 제후의 신임을 얻은 자가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무도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면 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그러나 민은 갈아치울 수가 없다. 2025년 겨울 대한민국에서민은 깨어있는 민과 어리석은 민으로 나뉘었다. 수출을 몇백억 못하는 것보다 민이 나뉜 것이 더 큰 문제다. 윤부부의 죄는 형법으로 단죄하기에 너무 크다. 이를 담은 ‘진심장구 하’는 맹자에서 인용 빈도가 높은 장이고 맹자의 래디컬한 사상이 드러나 역대 군주들로부터 탄압받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오늘 민주사회의 지도자들도 깨달아야 한다는 도올의 열망을 본다.
선비는 “남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자기 반성하기도 바쁜 마당에 “남의 말”을 해서 자신의 정결한 실존을 더럽히는가! 타인의 평판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자신이 확신하는 정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맹자는 한 나라의 제후가 토지, 인민, 정사를 보배로 삼으라 한다. 오늘날 주권의 개념이 군이 아니라 政事로 돼 있다.
인간으로서 큰 병통 중의 하나는 자기 밭은 내버려두고 남의 밭에 김매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엄청 많으면서 정작 자기가 걸머져야 할 책임은 소홀히 하는 짓이다.
生而知之, 學而知之, 困而知之 하든, 결국 안다고 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본문에 쓰인 Logion은 ‘어록’이다.
포폄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P.S.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지켜보고, 민초로 살아갈지라도 맹자의 가르침에 견주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 도올 김용옥이 주해한 『맹자 사람의 길 上下』(본문 851 쪽 분량임)을 읽었다. 대부분이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말이고 내 감정과 지식의 극히 일부만 보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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