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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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하다.

저자의 호연지기가 독자의 가슴에도 불을 댕기고 바람을 넣는다.

글과 사진은 고전이 주지 못하는 생기를 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조망하는 스케일만 큰 게 아니다. 유라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미래까지 꿰어본다. 특히, 발칸의 젊은 리더와 폴란드 사상가도 만난다. 러시아 푸틴의 책사와 인터뷰는 성과 속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폭도 넓다.

저자의 비정상의 정상화란 개념은 독서를 통해 처음 만난다. 서유럽과 미국이 중심인 서구 세계가 동양 세계를 침탈했던 20세기가 가고 21세기는 중국과 러시아, 아랍, 유럽이 유라시아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고, 그래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구대륙의 문명(유학, 힌두, 이슬람, 그리스 정교)이 서구의 억압과 침탈을 털고 일어나고 있음을 3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2019년 저자는 41살이다.

 

<유라시아 견문 1>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를 읽고 <유라시아 견문 2>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를 선택해 읽었고, <유라시아 견문 3>을 기다렸다. <유라시아 견문 3>에서 리스본, 바티칸, 파리, 테헤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브뤼셀, 사라예보, 베오그라드, 크로아티아, 코소보, 폴란드, 부다페스트, 아테네, 키예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아스타나, 타쉬켄트, 바이칼, 블라디보스토크, 삿포르, 하얼빈, 선양이 견문을 위해 거친 곳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 없다. 1A4 9, 2A4 7장으로 요약했었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 저자의 관점(비정상의 정상화), 개념, 알지 못했던 사실로 구분해 보려한다.

 

1. 관점 :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시간은 중세의 시간’(De-Modern Time)이다. 서구는 서양의 일부분으로 책에서 유럽 기독교 국가로 제한한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의 발견은 이베리아의 확산, 중세의 확대라고 본다. 아조레스 미군 기지를 걸프전, 유고내전, 이라크 전쟁에 폭격의 전초기지로 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포르투갈 총리가 EU 수장에 오른 것처럼, 반기문의 UN총장 당선은 이라크 전쟁 부역의 공. 사서삼경의 유입은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계몽철학 곳곳에 중국의 충격(17~18세기 기독교 없이도 문명국가가 가능한가?)’이 아로 새겨져 있다.(황태연의 <공자와 세계>,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에서 다룬) 계몽주의의 출발은 공맹이다. 자가발전이나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동서 문물 교류, 융복합과 통섭의 소산이었다. 칸트의 고민인 선악 논리,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진리의 정도 여부를 따지는 발상의 전환은 <중용>의 근대화였다.

쇠락하는 프랑스어보다는 이슬람 문명의 보편어인 아랍어가 세계어로서의 위상을 (다시)누릴 날이 머지않았다.

- 프랑스 역사학자 엠마뉘엘 토드의 시각 : 어떤 공화국이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 특정 종교를 모욕할 수 있는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문화적, 종교적으로 박해하는 반동적 행위다. 프랑스는 부지불식간 자기반성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비공화주의적 공화국이 되었다. 안정된 사회는 관용적이나 불안정한 사회에서 도리어 획일화, 동질화가 심해진다.

이란 혁명은 이슬람에 바탕한 현대적인 공화정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제시하여 전 지구의 무슬림 공동체(움마)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서세동점은 200년 묵은 적폐다. 색다름을 새로움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고약한 장애물이다. 낯선 것을 익숙한 틀로써 재단하기 일쑤다.

1차 대전의 의의는 제국의 해체다. 합스부르크, 오스만, 러시아, 독일제국이 붕괴하고 민족주의, 국민국가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유고 공습의 본질은 자본주의도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실험을 추구했던 유고를 지워버리려고 했다는 거다.

만사를 토론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회합이 없다. 동등하게 토론할 실력과 토의할 만큼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중구난방과 횡설수설이 오고가다 오리무중으로 빠져 허무하게 끝난다.

- 크로아티아의 젊은 리더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시각 : EU는 붕괴하고 있다.

-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시각 : 공산당의 선전기구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짜뉴스는 같다. 유럽의회는 야당 없는 의회로 주요 의사 결정은 지배 카르텔에서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왕년의 소비에트 연방과 유사하다. EU는 민주주의와 전혀 거리가 먼 기구다.

동서유럽은 통합된 것이 아니라 동유럽이 서유럽에 흡수되고 병합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나 세계시민이란 개념은 실제 공동체와 동떨어진 극단적인 추상체에 불과하다.

미국이 소련을 침공해 체제를 전환 시킨 게 아니라 지레 무너진 거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적인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20세기 핵가족화의 결과로 평균화, 획일화 되었다. 민주화가 아니다. 민주화된 가족에서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점점 일천해 지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학교도 민주화로 사제 관계가 증발하고 똑같은 인조인간을 양성한다.

그리스의 독립과 희랍 일체론이 발칸에서 저마다 민족주의적 각성을 불러 일으켜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19세기 러시아와 오스만의 수차례 전쟁은 그리스 정교도와 무슬림간 문명으 충돌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서방의 승리이자, 혁명주체들의 입장에서는 성과 속, 고와 금의 대결에서 오래된 영성이 승리한 역사의 귀환이다.

-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의 시각 : 프랑스 혁명이 문명의 파과가 아니라 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앙시엥레짐에서 유효했던 태도와 관습을 통째로 버려서는 안 된다. 근대사회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통 사회의 원리가 기저에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자유는 절제되고 평등은 조율도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혁명이 후 대혼란이 일어나고 그 대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극심한 독재 체제가 자리 잡는 것이다. 문명사회는 혁명파의 시각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수주의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불평등한 시간관을 거부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한다. 뿌리에서 자란 줄기와 열매가 더 진보한 것이 아니다. 뿌리는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니고 과거 미래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트나 부르주아를 기각한다.

소련이 1979년 아프카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미국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슬림의 각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후세인 제거와 카디피 축출에는 달러 결제가 아닌 유로화, 아프리카 통화인 디나르를 결제수단으로 쓰려했기 때문이다.

‘~의 파리라는 서술은 비서구의 서구화, 적폐의 소산이다.

 

2. 개념 :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쌓여 공간을 이룬다. 그렇게 축적된 시공간의 지층이 바로 역사다.

유고슬라비아의 자화상 : 7(국경)-6(공화국)-5(민족)-4(언어)-3(종교)-2(키릴과 로마문자)-1(하나의 국가)

서구문명을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은 19세기에 발명한 전통이다.

러시아의 고의식파(古儀式) : 동방정교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옹호하며 저항한 세력(프로테스탄트). 신의식파가 러시아의 주류로 등극한다.

시간이 누적되어 공간을 이룬다. 공간은 시간을 소환한다.

 

3. 사실 :

아르헨티나에서 예수회는 십자군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원주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프란체스코 현 교황은 경제학 교과서의 낙수효과는 가짜 이론’Fake Theory라고 성토한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간의 비극을 양산하는 경제체제의 선진화를 비판한다. 20110년 가톨릭교도의 7할이 남반구에 살고, 4할이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다. 가톨릭 세계의 제1 언어는 스페인어다. 프랑스 인권 선언(1789)이 여성과 노동자, 유색인종을 배제한 미완의 것이다. 반면에 예수회 선교사들이야말로 성서가 가르치는 인류 평등에 바탕하여 노예와 원주민을 보호했다(?)

칸트의 비판<중용>의 주석서였다. 중국 위협론의 기원은 17~18세기 신을 부정한 중국의 유학이 유럽에 전해진 것에 있다. 케네, 볼테르, 라이프니츠, 빌핑어, 칸트, 헤겔이 중국의 유학을 유럽에 확산 시켰다. <대학>이 처음 번역된 것은 1592년이다. 쿠플레의 저서 <중국의 철학자, 공자>17,18세기 유럽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특히 <맹자>는 혁명을 설파한 불온서적이었고, 주권재민을 설파하고, 성선설로 원죄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의예지의 존중으로 인권과 민권에 눈을 뜨게 된다.

자크아탈리는 사회주의자에서 신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원로 지식인이다.

에밀 뒤르켐의 <프랑스의 자살>은 근대사회에 만연한 의미의 상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의의 부재를 예민하게 포착한 고전에 값하는 명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담론 분석에 그쳤으나, 푸코의 이란론은 서구를 역사의 생산자로, 비서구를 역사의 소비자로 간주하는 주객 관계자체를 허물어뜨렸기에 더 급진적이다.

20세기후반 구축해 두었던 일국 단위 복지 모델이 EU 통합과 더불어 크게 흔들리는 것은 세계화의 덫이다. 어떤 체제와 이념과 사상도 영구불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또한 성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유고는 남쪽이라는 뜻. 보스니아까지가 서로마 영역이었고, 세르비아부터는 동로마 강역이었다.

공산당 간부들과 그 체제에 부역했던 이들이 민주화 이후 신흥 지배층으로 이행한 것은 동유럽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해방후 한국의 정국과 유사하다. 체제는 변했으되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정교도 130만은 그리스 영토로,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 60만은 터키로 이주했다.

냉전의 전초전은 그리스에서 노쇠한 영국을 대신한 싱싱한 미국이 반공 정책의 총대를 메고 봉쇄정책을 편다. 그리스가 발칸에서 유일하게 공산화되지 않은 나라였다. 이는 한국전쟁, 베트남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원형이 되기도 했다.

미국 소프트 파워의 힘으로 서구의 기원으로서의 그리스가 학문적으로 정립되고 그리스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신화가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문화 냉전의 소산이자 발명된 전통이다.

동방 정교의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이 <죄와 벌>이다. 국가와 사회와 종교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동방정교의 핵심 사상이다. 러시아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리스 고전을 원전으로 배운다. 러시아 교양의 양대 축이 정교와 그리스 사상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은 유라시아 문헌 번역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1991년부터 이후부터 태어난 신입생에게 <코란><논어>를 읽으라고 가르친다. 러시아인 가운데 2,000만이 무슬림이다. 모스크바에는 200만 무슬림이 살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거주하는 도시는 모스크바다.

카잔은 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튀르크화를 선도하는 전위였다. 그 카잔을 복속시킴으로써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굴기할 수 있었다. 레닌, 트로츠키, 마르크스는 러시아내 무슬림에 대해 무지했다.

비단, , 종이, 터키석, 커피, 우유와 요구르트, 버터와 치즈는 튀르크인의 유목망을 따라 유라시아 저역으로 확산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당시 시베리아에서 결전이 벌어졌고, 미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물자를, 일본은 7만 명의 군사를 출병하여 백군을 지원했다. 소련을 우랄 서쪽으로 봉쇄하고 동쪽에 울란우데나 치타를 수도로 삼아 극동 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1918년 이르쿠츠크까지 장악했던 일본군이1925년 최종적으로 물러났으나, 이 실전 경험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관동군의 주축이 된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내준 중국은 만주에서 동쪽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잃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반도 종단철도로 연결하고 거제도까지 이어 거제도를 러시아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일본 정보장교 후쿠야마 야스마사는 단기필마로 1892211일 베를린을 출발하여 1893812일 도쿄에 도착한다. 14천 킬로미터. 17개월. 500. 유라시아를 견문하고 보고한다. 다시 1895년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인도,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카프카즈, 바그다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견문하고 32편의 공식보고서를 제출한다. 둘 다 일본 대외정책의 초석이 된 문헌이다. 대단하다. 후일 영일동맹 체결의 일등 공신이다.

저자 이병한은 홋카이도 대학에 있는 슬라브-유라시아 연구소, 북극연구소를 참관하고, 1880, 1881년 메이지 일본이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사절단을 파견했음을 확인하고 자괴감과 열패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메이지 일본이 서구 편향적이지만은 않았고, 이슬람 세계로, 슬라브 세계로, 전방위적이고 전면적인 개화를 추진했다.

강희제는 라틴어를 배웠고, 공맹의 철학이 한글로도 유통되기 전에 벨기에 예수회 선교사 쿠플레는 <중국의 철학자, 공자>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그 소산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소현세자는 환국 두 달 만에 숨을 거둔다. 여장부였던 아내 강빈마저 역모로 몰려 죽는데 아비 인조가 함량 미달이었다.

 

4. 평가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 넓고 깊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더 넓고 깊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와 냉전이란 국제사회 이해를 뛰어 넘는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로마 문자 공론장만 읽어서는 진실의 절반도 접근할 수 없다. 키릴문자와 한문, 아랍문자 공론장을 보태어 관점의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세력 균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21세기는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한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반전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세기 국민 국가가 아니다. 21세기의 새판, 유라시아의 중원이다.

 

출판사의 평가 : 좌우, 근대와 전근대, 서구와 비서구라는 3중의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유라시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뒷표지에서)

 

<유라시아 견문 1. 2. 3>는 본문이 1,833쪽 분량으로 대작이다. 지리나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시야를 한반도란 고립 된 섬에서 밖으로 돌리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어보길 바란다. <유라시아 견문 3>은 서해문집에서 20191월 본문 67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흥미진진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단문으로 쓰여 읽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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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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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시사자키 정관용과 추석이란 무엇인가되묻는 인터뷰를 글로 읽었다. 누군가의 글에서 필사하기 좋은 책이란 평도 있었다. 인터뷰는 미혼, 여성, 취준생, 학생들이 좋아할 소리였다. 필사하기 좋은 책이란 평은 필사하기 좋은 칼럼이 실린이어야 한다. 독자 주관에 따른 평가로 두 문장이 최대치다. 저자가 서울대 교수이자 철학과 정치사상을 가르친다는 걸 감안하면 절대값은 더 떨어진다. 많이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인 것만은 아니다. 책의 인기도는 글보다 대중매체, 쏠림 현상 같은 외적인 요인의 영향이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술과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책은 사서 봐야한다고 믿는다거나, 공부는 폭넓게 해야 한다거나(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해석함), 행복에 대한 평가, 직관,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와 맞는다. 논어, 대학, 맹자, 중용을 일 년 단위로 돌아가며 원문으로 읽는다는 게 부러워 나는 완역본이라도 그리해야겠다. 그럴 기회가 없을 터, 책보다는 사람으로 만나면 좋을 것이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 시각이 오전 430분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에 독서노트를 정리하자 마음먹었으니 나는 저자와 달리 죽음보다 삶을 선택했다. 저자의 책 제목이 역설임도 안다. 아침을 맞이하는 태도에 좋고 나쁨은 없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문장과 우리는 시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불쌍한 영혼들에 불과하다는 에픽테토스의 말을 프롤로그에 실었다. 책의 제목이 담은 역설을 이해하라는 안전장치인가.

 

내가 사는 오늘 하루는 자살한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지 않았던 하루다. C 일보 Bang의 아내 자살이 석연치 않다는 씁쓸함이 떠오른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 수명 연장이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이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시간은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든 가상현실. 거리를 두어야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다는 미학자들의 주장.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한 필요조건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 -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에서 밥의 시작은 장보기요 마지막은 설거지. 밥 짓기와 설거지를 다른 영역으로 본 중년 남성 독자의 의식을 바꾼다.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그대로 먹느냐와 예쁜 접시에 덜어 먹느냐가 문명이냐 야만이냐를 구분한다는 글을 아내에게 강조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으나 화가 나에게 미치리라. 주례사는 신랑신부가 처한 상황에 맞게 해야. 경험하지 못한 것은 말하지 말아야한다, 알 수 없으니.(자식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한문에서 이자가 대상어의 앞에 올 때와 뒤에 올 때의 뜻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건 찬근이에게 물어봐야한다.

 

저자는 입시공부의 공부가 공부의 전부라는 착각이 문제라고 보는 데, 독자는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A가 부패했다는 사실이 B의 실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쉽게 판단할 수 없으니 억지로 꿰맞추려 하지 말아야한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무어냐는 질문에 어느 소설가의 답변은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 부정이 관행을 넘어 정의의 반열에. ‘위력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니, 저자는 논문을 읽지 않고 심사한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이 통과된 것을 수치의 기억으로 갖고 있다. 내 논문에 빨강 색연필로 수정할 부분을 체크해 다시 돌아보도록 지도해주신 고려대학교 권혁재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니다.(스가 아스코) 하나, 아무 말 잔치를 벌이는 사람은 이성적 질의응답 능력이 없다. , 모순을 참아내는 정신의 굳은살은 서슴없이 부정을 저지르게 한다. , 불의와 헛소리에 대한 알레르기를 고독한 독백으로만 표현하는데, 세 가지는 주입식 교육의 결과다.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할 줄 알아야 질의응답, 저항, 참여하는 사람을 기를 수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자 해독률은 높지만 문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OECD 국가 중 최하위(p. 205)라는데 근거를 찾아 봐야겠다.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헌신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크롬웰은 복음서에 근거가 없다고 성탄절을 금지했음을 역사서가 아닌 에세이에서 배운다.

공모 당선작인 영화평론 안토니아스 라인>과 문예지에 실었던 글은 책과 어울리지 않아 불편하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어크로스에서 본문 343쪽 분량으로 20181130일 초판 1쇄가, 나왔고 두 달 만에 8쇄를 찍어냈다. 사회적 지위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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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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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동안 한 가지에 몰두했다. 기억하는 지식을 열거하고, 영화를 다시 보고, 책을 읽어가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테마는 스페인 현대사다. 마인드맵을 그려보면 이것저것이 떠오른다. 미얀마와 버마처럼 에스파니아와 스페인도 같다. 피레네 산맥의 소국 안도라에 대한 기억과 아라곤과 카스티야 왕과 여왕의 정략결혼으로 만들어진 에스파니아, 레콩퀴스타, 대항해시대, 영국 엘리자베스에게 청혼 했다가 거부당한 펠리페 2세와 무적함대, 로욜라와 예수회, 알람브라 궁전, 가우디의 건축 사그라다 파밀리아,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투우, 마드리드를 기억한다. 요즘 까미노 데 산티아고 800km가 인기이고 레알 마드리드라는 프로축구팀, 카탈로니아와 바스크의 지역성, 700년 넘게 이슬람의 영역이었고,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에 등장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적어 본다. 목축 형태로서의 이목,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에게 키스할 줄 모른다는 증거로 코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묻던 장면이 떠오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 게르니카랜드 앤드 프리덤을 다시 본다. <스페인 내전>을 읽어 영화 세 편의 배경이 스페인 내전임을 확인한다.

 

<스페인 내전>의 원제는 ‘SPAIN IN OUR HEARTS’. “조지 오웰, 헤밍웨이 그리고 세계의 지식인, 시민들은 왜 스페인으로 갔는가?”,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출판사의 유혹은 영화 랜드 앤드 프리덤을 보면서 느낀 이념의 충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스페인 내전>을 읽기로 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어야겠다. 스페인 내전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민주주의와 나치즘, 파시즘이라 불리는 전체주의와 공산주의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나를 선택해달라고 하던 시기인 193611월에 시작되어 1939331일에 끝난다. 2차 대전의 시작을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193991일로 하고 있으니 스페인내전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사이에 끼어 있었던 내전이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공화파 정부와 프랑코라는 군인 독재자가 스페인의 패권을 두고 벌인 내전이다. 내전이지만 내전이라고 내팽겨 쳐 둘 수 없는 내전이었다. 당시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념을 따르던 사람들과 군부, 노동자, 학생 지식인, 특히 스페인의 국교랄 수 있는 가톨릭이 서로 다른 편이 되고 독일, 이탈리아, 소련이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영국,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의용군들이 스페인에 개인자격으로 들어와 국제여단을 조직하고 내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이끈 국가주의자군과 공화파 정부군의 내전이다. 공화파 정부는 선거로 구성된 합법정부인데 독재자 프랑코의 쿠데타로 위험에 처하자 유럽의 무정부주의자들, POUM(스탈린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스탈린의 지원을 받는)이 연합하여 대항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바르셀로나에 근거지를 두고 민병대를 조직하고, POUM도 혁명의 순수성을 가지고 민병대를 운영한다. 공화국 정부는 경찰과 군대로 대항하는데 크게 두 개의 파벌로 분열돼 저항한다. 경찰과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이 협력하고, 무정부주의자들과 POUM이 협력한다. 외국에서 공화파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용병이 된 사람들은 알바세테에 본부를 둔 국제여단 본부의 지휘를 받는다. 3인터네셔널(코민테른)이 스페인 공산당의 요청에 따라 조직한 국제여단은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국제여단의 각국 부대 중 미국 의용병으로 구성된 에이브러햄 링컨 대대의 활약과 관점에서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 책이 <스페인 내전>이다. 국제여단은 이념은 제각각 이었으나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세계는 전보다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질 각오를 지녔던 무명의 보통 사람과 다수의 유명인을 끌어들였다. 훗날 독일 수상이 된 빌리 그란트, 조지 오웰,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이태리 외무장관이 되는 피에트로 넨니 가 참전하였고, 셍떽쥐베리와 인도의 네루도 스페인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스페인 내전은 이념의 전쟁터 였고, 프랑코를 지원한 히틀러는 신무기 실험장으로 여겼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신무기를 사용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스페인의 현대사를 다시 보았다.

 

저자 애덤 호크실드는 들어가는 말에서 유럽에서는 스페인 내전이 도덕과 정치의 시금석, 다가올 세계대전의 서막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은 그 뒤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에 묻혀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서는 대체로 사라졌다고 본다. 저자는 공화파 정부에 무기금수조치를 취한 미국 정부와 달리, 일반 미국인들은 공화파와 국가주의자 양쪽 모두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내놓는데, 미국 정유사 텍사코가 프랑코군에게 무상으로, 외상으로 석유를 수출 했고 미국 정부도 모른 체 하고 지나갔다. 알베르 카뮈가 쓴 글을 소개한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가슴 속에 모두 스페인을 간직하고 있다. ... 옳은데도 패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이길 수 있으며, 용기가 보상 받지 못한 시대가 있다는 것을 체득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라고. 스페인의 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선명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마치 여기서 저항하지 않으면 어디서 저항하겠느냐는 것과 같았기에 후일 미국의 인권운동 시위,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시위, 80년대 중앙아메리카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기억할 것은 공화파 정부에 무기를 팔았던 유일한 소련은 스페인 공화파 난민을 굴라크(강제노동수용소)에 가두고 스탈린이 씌운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힘이 없으면 지배층보다 힘없는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음을 역사에서 배운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스페인 내전으로 달려간 것은 당대의 공산주의가 왜 그처럼 강한 호소력을 지녔고, 그 시대 소련이 왜 많은 지식인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비쳐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 운동을 했던 것과 가은 맥락이다. 의열단장 김원봉이 이념 탓에 남북 어디서도 인정하지 않는 아픔의 기원도 이념 탓이다. 저자는 이상주의와 용기가 지혜와 언제나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알아가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며 본문을 전개한다. <스페인 내전>11장의 전투 상황 지도를 배치하여 이해를 돕는다. 그럼에도 구글 지도를 열어 전투지역을 찾아가 지형을 살펴보는 일은 지리학을 전공한 독자이기에 해야 하는 즐거움이다.

 

책을 읽어가며 당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밑줄 친 부분을 옮겨 본다.

경제공황 당시 소련 정부가 미국의 기술자와 전문가들에게도 취업의 기회를 개방하자 여덟 달 사이에 10만 명 이상이 응모했다.(p. 38)

소련에 어떤 결점이 있든 간에, 파시즘에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p.52)

스페인에서 19362월 자유주의파, 사회주의당, 스페인 공산당 등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의회 다수당이 되기 위해 돈을 물 쓰듯이 쓴 우익 정당을 꺾고 총선에서 승리했다(p.54)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의 국제연맹 연설 오늘은 우리 차례지만, 내일은 당신들 차례일 겁니다.”(p.57)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각 나라에서 지원한 조종사들로 조직한 비행대대 또한 공화파를 지원했다(p.68)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혹은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믿는 무정부주의자들은 경찰, 왕실, , 세금, 정당, 가톨릭교회, 사유재산을 사라져야할 것들로 보았다. 무정부주의는 산업화 이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였다.(p.80)

공화파 정부가 급히 필요했던 것은 원조가 아닌 무기를 살 수 있는 권리였다. 스페인은 세계 4위의 금 보유국이었다.(p.82) 그러나 영국, 프랑스, 미국은 무기를 파지 않았고, 멕시코만 신속한 도움을 제공했고 무기와 탄약을 판 나라는 스탈린의 소련이었다.(p.84~86)

무정부주의자는 가톨릭교회를 증오하여 당신을 신에게 맡기겠습니다라는 뜻의 아디오스(adios) 대신 살루드(saiud 건강히)로 작별 인사를 했다.(p.95)

프랑코의 생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내주느니 마드리드를 파괴하겠다.”(p.115)

공산주의자들의 문제점은 자신들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점에 있었다. 그들에게 두 가지 길이란 없었다. 하늘아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아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작품만 죽어라 연구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은 편협한 종교 집단들이 그들의 경전만을 믿듯 그것들만을 맹목적으로 믿었다.”(p.149)

공산주의자들은 이교도보다도 오히려 이단자들을 극렬하게 증오한 오래된 종교 형태를 보였다.”(p.151)

독일 공군의 게르니카 융단 폭격은 유럽의 한 도시를 거의 초토화한 역사상 첫 폭격이었다.(p.262) 마드리드 폭격에 분노하고 있던 피카소는 벽화 형태로 <게르니카>를 그렸다. 게르니카 폭격이 큰 분노를 일으킨 이유는 프랑코와 스페인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그 사건 자체를 강력하게 부인했기 때문이다.(p.260)

공화국의 유일한 무기 공급원은 소련이었고,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은 그 대가로 경찰과 군대 요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POUM 지도부에 대해 모스크바 스타일의 숙청 재판을 하라고 까지 요구했다(P.277)

미국은 중립을 지켰지만, 텍사코는 전쟁을 한 것이다.(P.363)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편을 들고 있다는 미국의 중립 정책이 미칠 영향을 강조하는 글(P.401)

공화파에 대한 공습은 지중해 서부 마요르카 기지에 있던 이탈리아 공군기지에서 무솔리니의 폭격기와 독일의 폭격기가 15분이면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까지 닿았다.(P.403)

중요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여 그 이유의 정당성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P.425)

19381028, 바르셀로나의 대로인 디아고날 거리에서 국제여단 잔여병력 2,500명의 고별 열병식이 열렸다. 26개국 의용병들이 모두가 참가했다.(P.476)

1939년부터 36년간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의 통치 기간 보다 길게 스페인을 통치한 뒤 치매기를 보이다가 82세를 일기로 숨졌다.(P.496) 프랑코통치 기간 내내 스페인은 가톨릭이 막강한 힘을 보유했고 여성의지우가 매우 열악했다. 고문이 일상화된 경탈국가였고, 교수형구로 죄수를 처형했다. (P.496)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았던 스페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어 추축국에 가담하지 않은 까닭은 프랑코가 프랑스의 일부 지역과 아프리카의 많은 영토를 원하는 요구를 히틀러가 들어주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주요 해군 기지를 제공해 독일 U보트의 활동 범위를 크게 늘려 주었다. 스페인령 모로코와 카나리아 제도도 독일 잠수함들의 연료 보급창이 되었다. 스페인 병사 45천 명은 히틀러를 지원하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이 얻은 것들 : 보급로가 길 때는 차량의 종류를 최소화할 것, 폭격기에는 전투기 호위를 붙일 것, 조종사에게 악천후와 야간 항공에 대비한 추가 훈련을 시킬 것, 소련 전차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전차 개량이 필요하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을 터득했다.

19391월 루즈벨트는 각료회의에서 스페인에 취한 금수조치가 중대한 실책이었던 것 다고 발언하였다.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는 그가 죽기 전 10년 동안 800부만 팔렸으나, 냉전기에 소련의 배신행위를 보여 줄 수 있는 초기 사례로 지적되며 수백만 부가 팔렸다. 1945년 연합군은 동유럽 각지에 퍼져 살던 독일인 처만 여명을 강제 추방하였고 그 과정에서 50만 명 이상을 죽게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누구에게나 좋은 전쟁일 수 없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 2,800명은 2016년에 모두 죽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주고자 하는 의지를 펼침으로써 세상이 더욱 공평해지고 자유로워졌다고도 말했다. 또한 그런 봉사 정신과 희망이 가득한 정신이야말로 심오한 영감의 원천이다.”(P.532) 현대 스페인 역사의 이면에는 이렇게 민간인 전투원들의 엄청남 희생이 수반된 피비린내 나는 내전과 이후 36년에 걸친 프랑코 독재의 어두운 내막이 숨어있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SPAIN IN OUR HEARTS’는 갈라파고스에서 20171211쇄를 본문 614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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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가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1
The School Of Life 지음, 김한영.오윤성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위대한 사상가

2019.3.3.()

누구나 사상가라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사상가를 중심에 놓고 마인드맵을 그려보면 공자, 소크라테스, 니체 등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여러 사상가를 떠올릴 수 있다. 떠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학자다. 톨스토이와 마르셀 프루스트, 프로이드, 건축가, 화가를 사상가로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위대한 사상가를 이야기 할 때 철학자로만 국한시키지는 않을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관점에서 세상을 배운다. 사상가라면 철학자만 떠올리는 정형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화가, 건축가, 정신분석학자도 사상가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됐다. 독서가 도끼로 의식을 깨는 것이어야 한다면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에서 지은 <위대한 사상가>는 좋은 책이다.

박인환의 시와 박인희의 노래 목마와 숙녀에서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페니미즘의 강령이 자기만의 방임과 존 볼비 덕분에 20세기 초 영국식 유아 교육의 변화가 가능했음을 배운다. 앤디워홀이 말하는 “‘원화한 장이 훌륭하면 전부 훌륭하다.”(‘원본이 작품이면 사본도 작품로 이해한다)로부터 김정운의 창조는 편집이다를 끌어낼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을 통해 우리의 삶이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타인의 욕망에 내 욕망을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나만의 삶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삶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자신의 책이 인류에 공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삶이 나만의 삶이다.

 

알랭 드 보통이 한국어판 서문에 실어 둔 문장을 기억하려 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직 잘 모르는 사람뿐이다.’이는 남녀관계에서 누구나 문제가 있고 함께 살기 힘든 사람이란 의미다. ‘누구도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학생으로 남아 평생 배워야 한다.’는 관점은 공자와 같다. ‘문학은 우리를 타인의 경험 속으로 데려다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매슬 로우의 욕구 단계 중 최상층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알랭 드 보통은 위대한 사상가란 지금 우리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생각을 제시한 사람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15명의 철학자, 10명의 정치이론가, 5명의 동양철학자, 사회학에서 7, 정신의학 분야에서 5, 미학과 건축 분야에서 13, 문학에서 5명을 위대한 사상가로 소개 한다.

 

1: 철학

더 열심히 생각하라. 더 현명하게 사랑하라(‘나를 사랑한다며 나를 바꾸려 들지마의 정반대로 헌신적으로 상대를 돕고 상대가 나를 바꾸려 해도 이를 거부하지 않는 것).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사회는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며, 검열과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유년기를 보낼 수 있어야 변화한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플라톤은 철학을 도구로 삼아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바랐다.

아리스토텔레스 산책하며 인간의 삶과 인간 사회를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질문한다. 모든 미덕은 상반된 두 악덕의 중간이다. 도덕선은 습관의 결과이니 시간, 연습, 격려가 필요하다. 예술은 카타르시스를 위해 존재한다. 생각은 바쁜 세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스토아학파는 모든 철학 중에서 불확실하고 공황에 빠진 우리 시대에 가장 관련이 깊고 쓸모 있는 철학이다. 걱정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생각하라. 최악의 가능성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이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는 결국 대처한다. “삶이란 원래 눈물이다.” 집착하지 마라. 현명한 사람이라면 행운의 선물(명성, , 권력, 사랑, 건강)을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손에 쥐었을 때에는 항상 가볍게 여기고 신중해야한다. 눈을 돌려 넓게 보라. 거대한 우주 안에서는 걱정이나 실망, 또는 희망도 부질없다.

에피쿠로스는 행복과 사랑은 거의 별개다. 돈과 명예보다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껴라. 사치를 꿈꾸지 말고 평안 하라. 그래야 행복해 진다. 실제 그는 친구들과 자아실현을 위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에피쿠로스 철학의 더 큰 버전이다."(p.66) 에피쿠로스는 나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사회를 변화시키라고 권유한다 .

원죄의 개념을 만들어 낸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모두는 지상에서 행복에 이를 가망이 전혀 없는 정욕, 광기, 변덕, 미혹에 사로잡힌 일탈자이다.” 모든 계급구조는 불평등하고, 사회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계급의 고하와 선은 상관관계가 없다. 지상에서 완벽한 공정분배를 기대하지 마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도인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이라도 신이 부여한 이성을 이용하면 위대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는 지식의 보편화에 이바지했다. 이성과 종교는 양립할 수 있다.

미셸 드 몽테뉴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떤 것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할 때 자신의 삶에 미치는 유용함과 적절성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영리한 사람들의 현학과 거만에 압박감을 느끼지 말라고 위안한다.

라 로슈푸코는 알랭 드 보통이 보기에 최고의 아포리즘을 완성한 사람이다. <잠언집>에는 504개의 아포리즘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읽어보리라.

바뤼흐 스피노자는 스토아철학에게서 양향을 받았다. <에티카>를 통해 유대교의 핵심 교의에 정면으로 도전한다.(신은 자연 바깥에 서 있는 개인이 아니다. 아무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의 악행을 벌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이 선택한 피조물이 아니다.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이 쓴 것에 불과하다 등) 에티카는 삶을 차분하고 균형 있게 바라보고, 미신적인 종교를 현명하고 위안이 되는 범신론으로 대체하였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불교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서양 철학자였다. 우리 내면의 기본적인 힘을 삶의 의지라고 명명했다. 삶의 의지는 우리를 앞으로 떠밀고, 존재에 집착하게 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변치 않는 힘이다. 우리가 삶의 의지에 이끌려 가장 집중하게 되는 대상은 성이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존재 한다는 생각은 타고난 오류다. 이 오류에 빠져 있는 한 세게는 모순 덩이리다. “모든 삶은 고통의 역사다.”

게오르그 헤겔은 철학에 엄청남 영향을 끼쳤지만 그의 글은 난해하다. 역사를 중요하게 다뤘으며 싫어하는 생각에서 배우라고 한다. 진보의 세계는 비틀거린다. 변증법이 나온 까닭이다. 예술의 요점은 좋은 생각을 마음에 새기는 것, 이념의 감각적 표현이다. 어떤 생각이 세상에 나아가 힘을 발휘하려면, 그것이 단순히 옳은 생각이라는 점보다 훨씬 큰 조건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보와 개선을 갈망하지만 갈등과 장애물에 끊임없이 직면한다. 성장에는 이견의 충돌이 따르고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느리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나면 우리는 그런 문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복잡하게 여길 필요가 없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19세기 대중 민주주의의 확산과 무신론의 확산이란 분위기에서 질투를 인정하라. 기독교를 믿지 말라. 술은 입에도 대지 말라.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최고로 난해한 독일철학자다. 무의 편재와 존재의 짧음을 이해하고 살아있음에 주목하라. 피투성, “세계에 던져진존재, 남들이 만들어놓은 엄격한 태도, 낡은 편견, 현실적 필요에 둘러싸인 채 생을 시작한다. 피투성을 극복하라.

장 폴 샤르트르는 158cm였다. 노벨상은 부르아주적이라 거부했다. 세계는 생각보다 기이하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우리는 자유롭다. 불안은 성숙함의 징표다. 사람들이 자유를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돈이다. 타인의 욕망과 내 욕망을 혼돈하지 마라. 인간의 잠재력을 믿고 키울 것을 강조한다. 청소년기나 중년기에 도움이 될 실존주의 철학이다.

알베르 카뮈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라고 하고, 평범함을 옹호한다. 소설가가 아닌 사상가로 만난다.

 

2: 정치이론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좋은 정치가가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은 가능한가? 질문하고 답한다. 우리가 늘 좋은 사람일 수도, 모든 일을 잘할 수도 없다. 때로 우리가 선택하는 분야는 우리가 어려운 결정이라고 얼버무리는, 윤리적 희생을 요구한다. 실리적인 효율성을 얻으려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친절함을 포기할 수도 있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전통적 권위와 사회계약론을 결합한 독자적 사상을 전개한다. 홉스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의 삶은 더럽고 잔혹하고 짧다.” 혼란이 무섭고 두려워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홉스는 보호와 순종을 함께 기대한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질투와 경쟁을 멀리하고 온전히 제 자신을 바라보며 자기가치를 찾아내라고 권한다. 비교하지 마라.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서 생산성 향상과 인간 소외라는 양면성을 발견했고 부자는 돈보다 명예와 존경을 중시한다고 파악했다. 인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은 기업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다.

칼 마르크스는 현대의 분업화는 극단적인 분업화로 소외에 이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생산요소로 추급되어 고용은 불안정하다. 노동자의 임금이 줄수록 자본가의 이익은 늘어난다. 자본주의는 불안정하다.’는 점을 파악했다. <공산당 선언>에서사적 소유가 없고, 부의 상속이 없고, 소득세가 액수에 따라 가파르게 변하고, 은행과 통신, 운송산업과 모든 어린이의 무상 공교육을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사회를 그린다.(p215)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당양하게 해석하기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존 러스킨은 자연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뿐이다. 자연처럼 존재하고 인위적 추함을 경계하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나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할 때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소로는 환경운동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사색할 시간을 마련하라. 간디, 2차 대전 중 덴마크인의 나치저항, 마틴 루터 킹에게 시민 불복종을 가르친 것은 소로다.

메슈 아널드는 종교가 힘을 잃은 지금 무질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윌리엄 모리스는 경제성장은 그 자체로 발전을 나타내는 신호가 아니라고 말하며 노동에서 즐거움을 찾고, 좋은 경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노력은 우리의 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일을 즐기는가. 숲과 풀밭이 있는 곳에서 사는가. 평균 식단은 건강한가. 도시들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가)

존 롤스는 현 세계는 명백히 불공정하다. ‘무지의 베일사고실험(어떤 종류의 사회라면 태어나기에 안전하다고 느낄까?)을 바탕으로 어떤 환경의 부모에게 태어나든, 어떤 종류의 동네에서 태어나든 전혀 상관이 없다고 떳떳하게 마할 수 잇을 때 우리는 마침내 공평한 사회를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다.

 

3: 동양철학

부처는 고통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도는 중도. 양극단을 피해라. 세상에는 고통과 끝없는 불만이 널리 존재한다. 이 고통은 우리의 욕망에서 생겼으니 집착이 고통의 뿌리다. 집착을 억제하거나 고통을 초월하려면 관점을 바꿔라. 팔정도로 고통을 극복하라.(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새김, 바른 정신통일) 지혜는 단지 깨달음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생각은 서양인에게는 놀라운 것이다.

노자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유지하여 본모습을 잃지 말라.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 고요함과 비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일러준다.

공자는 에의 중요성, 부모 공경,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 순종, 창의성(통찰)보다 보편적 지혜야 말로 중요하다.

센리큐는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법을 가르쳤다. 일본인의 마음에 소박하고 진정한 것, 장식이 없고 겸허한 것에 대한 미감을 새겨 넣었다.

마츠오 바쇼는 하이쿠(575 형식)는 두 개의 이미지와 그것을 수렴하는 결구로 구성된다. 문학에서 가벼움(카루미)를 높이 평가했다.

 

4: 사회학

성 베네틱트는 공동체의 특질을 통찰하고 규칙은 우리의 가장 좋은 가능성을 지키는 수단이라 하는 데 시대를 가로질러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수도원 공동체의 삶은 핵가족 생활의 단점을 고려할 때 의미 있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관하여 물질주의, 질투와 수치심, 다수에 의한 독재 가능성, 권위의 몰락, 사고의 자유 잠식을 낳는다는 통찰을 남겼다.

막스 베버는 개신교는 항상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노동은 신성하고, 가족 아닌 공동체가 중요하고 기적은 없다는 것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역할을 했다고 본다. 빈국에서는 칼뱅주의적 태도를 가르쳐야한다. 우리 시대는 카리스마적 권위의 시대에서 관료적 권위의 시대로 바뀌었다.

에밀 뒤르켕은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선택에 따른 특별한 짐을 지운다. 자본주의는 지나친 희망을 키우고, 개인에게 넘치는 자유를 주고 대책 없이 종교를 폐기하고 민족과 가족의 기능을 악화시킨다고 파악했다.

마거릿 미드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인류학자로 원시 문화 속에서 자유로운 성생활에 주목하고, 문화가 인간 본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큼을 밝혔다. 현대 문명과 원시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배우라고 한다.

테오도어 비젠그룬트 아도르노는 광고는 자본주의가 대중을 조작하는 수단이며 설문조사로 어디에나 잠재적 파시스트가 있음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은 좁은 의미의 정치와 경제가 아니라 문화와 심리라고 생각했다.

레이첼 카슨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마음먹은 대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철학적으로 순진하다고 결론짓고, 환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 정신의학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종교, 교육, 과학에서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절제하고 단기적 쾌락을 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안나 프로이트는 인간은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해 본능적으로 자아를 보호하려한다며 부정, 투사, 승화, 퇴행, 합리화, 반동형성, 공상 등의 10가지 방어기제를 설명한다. 방어기제의 역할은 어떤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떨쳐내는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양가감정의 개념을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양가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성숙으로 가는 것으로 아이의 심리가 발달했음을 의미한다.

도널드 위니코트는 부모 양육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존 볼비는 이 땅의 부모들이 감사해야 할 사상가로 뼈가 제대로 발달하려면 비타민D가 필요하듯이, 인성이 제대로 발달하려면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하다.”20세기 초 영국 유아학교의 교육을 변화시켰다.

 

6: 미학과 건축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건축의 목적을 평온, 조화, 위엄으로 보았고, <건축 4>라는 실용 건축 입문서 장르를 열었다. 건축에서 조화로움은 장식이 아니라 비율이 결정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우리는 쉽게 간과하지만 열심히 살피면 더없이 좋을 것을 알아보는 것이 예술가다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평범함이 특별하다.

에드워드 호퍼는 고독을 묘사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는 지역적 모더니즘을 실천한 최초의 건축가로 브라질의 정체성을 건축에 반영했다.

루이스 칸은 고대 양식을 복원한 기념비적인 기념물 건축가다.

코코 샤넬은 패션의 긍정적 가능성을 깊이 인식하고 패션에 참된 역할을 찾아준 디자이너로 리틀 블랙 드레스라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옷에서 출발해 멋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이 톰블리는 추상 미술을 감상할 때 이 작품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 나의 어떤 감정 상태를 일깨우는가? 를 느끼라고 한다.

앤디 워홀은 “‘원화한 장이 훌륭하면 전부 훌륭하다.”며 예술의 대량 생산과 보급을 강조했다.

디터 람스는 일상의 물건을 디자인한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로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드는데 능력을 발휘했다. 단순함, 수수함, 소비자의 공감, 클래식 추구, 예술과 상품 디자인의 대중성을 중시했다. 람스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계승한 곳이 애플사다.

7: 문학

제인 오스틴은 사랑과 연인을 재정의 한다. 연인이란 그저 편안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결함을 극복하고 성숙해지도록 도와주고, 나 또한 상대에게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결혼 생활의 열쇠는 성장과 교육에 있다. 적당한 경제적 토대가 없으면 결혼은 어리석은 짓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낭만주의적 사랑을 그렸다. 파우스트가 구현하는 이상은 우리가 온전히 발전하려면 위험 한 일에도 손을 대야하지만 그럴 때라도 언제나 더 높은 목적을 의식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을 오락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교육하고 개선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이반 일리치의 죽음>등 대작으로 양면적 인물을 통해 도덕적 용기와 관용을 그렸다. 위대한 글은 정서적 건강과 윤리적 양식에 이르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공식기록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소설을 쓴 20세기 초 프랑스 작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살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책이 알려주는 세 가지 인생의 의미는 사회적 성공(다른 어딘가의 삶은 없다), 사랑(그 누구도 그 누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예술(어린아이처럼 새롭고 예민한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프루스트적 순간이란 의지와는 무관하게 갑자기 강렬하게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어떤 냄새나 맛, 축감으로부터 과거가 현재로 풀려나오는 순간이다. 삶을 강렬하게 음미하라.

버지니아 울프는 조이스, 프루스트와 더불어 집요한 창조성으로 현대적 의식의 복잡한 양상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형식을 찾아냈다. “천재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전에는 스스로 간과했던 생각을 재발견한다.” 모든 것에 눈길을 주어라. 일상의 가치를 인정하라. 페미니스트가 되어라. 울프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갈망했다. 여성에게 자유가 없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수입을 직접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울프의 페니미즘 강령인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지적 입지에 서려면 위엄은 물론, 똑같이 교육 받을 권리와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정치적으로 요구한다.

 

<위대한 사상가>The School of Life에서 201712월 초판 1쇄를 본문 616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알랭 드 보통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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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가며 분노, 스트레스, 우울증, 강박과 같은 심리상태를 경험한다. 번 아웃, 자살로 바르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평소 관계에서 생기는 일이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겨왔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으며 내 생각이 출발점을 바로 잡았다고 느낀다.

수많은 문장이 나를 깨우고 실천하라한다. 맹자의 마음공부와 가르침만이라도 살아가는 날 동안 지켜보자 다짐한다. 인과 의를 중요하게 생각한 맹자는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을 인간 본성으로 본다. 착한 본성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 네 가지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실천하여 인과 의를 이루라는 가르침이다. 이렇게만 행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주자(朱子)의 제자였던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가 편찬한 <심경>을 조윤제가 풀이를 덧붙인 책이다. 저자는 시작하는 글에서 <심경>에 대한 연구가 중국에서 이어지지 않았으나 퇴계, 율곡, 다산 등 학자와 정조까지 마음 공부로서 <심경>에 주목했음을 알려준다. 정조는 마음 다스리기에 <근사록> 못지않다고 평가했다. 특히 다산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며, 학문의 끝이라고 여겨 37개 문장으로 이루어진 <심경>을 마지막 공부로 여겼다고 본다. 퇴계도 매일 새벽마다 <심경>을 공부했다니 나를 바로 잡고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마음 공부하기에 좋은 책이다.

<맹자>에 실린 다음 문장으로 이 책이 살아가면서 잃지 말아야할 것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알지만,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이란 다른 거시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학문지도무타구기방심이이의 학문 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

 

<다산의 마지막 공부>3부로 구성됐다.

1: 약동섭천(若冬涉川 겨울 살얼음 얼은 내를 건너듯 조심함 : 당당함은 삼가고 반추하는 데에서 나온다) : 욕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이다. 인심(人心)은 감정과 욕망으로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이다. 도심(道心)은 맹자가 말한 선한 천성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이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누군가를 믿으려면 자신부터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어떤 자리에 있든 반드시 지켜야할 덕목이다. 비범한 힘은 평범한 일상에서 축적된다. 당당함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에서 나온다. 부끄러움이란 고요히 스스로를 점검할 때 느끼는 어른의 감정이다. 신독이란 자기 홀로 아는 일에서 신중을 다해 삼간다는 것이다. 신독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들어 가려는 간절함이다.

평범한 일상을 정성스럽게 쌓아나가라. 겉과 속을 같게 하기보다 어우러지게 하라. 사람은 내면과 외면을 균형 있게 성장시켜야 한다. 장점을 키워야 하지만 부족한 점도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부족한 다른 문제로 인해 곤궁에 빠지게 된다. 화가 날 때와 욕심이 날 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멈추라. 그것으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좋지 못한 결과 생각하라. 인간은 격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라 잠시 멈췄을 때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감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다.

매일 스스로를 허물어 거듭 시작하라. 타인의 허물을 보면 스스로의 빈 곳부터 점검하라, 하루의 끝이자 시작인 새벽은 어제의 허물을 벗고 보다 나은 오늘을 맞을 수 있는 기회다.

인간의 일에서 가장 긴박하고 중요한 때는 잘못이 벌어진 순간이 아니라, 언제나 그 이후다.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스스로를 버리게 된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아는 데에서 시작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보고 들어 받은 외부 자극을 내가 통제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의 선택이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내면이 충분히 수양 되어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예에 맞을 수 있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사랑하라’(공자의 기소불욕 물시어인’, ‘마태복음 7:12’, 3C 로마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의 액자 글은 사람들이 지켜야할 도덕률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르침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혈구지도(絜矩之道) 추기급인(推己及人)은 배려의 다른 표현이다.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나다운 나를 지켜라. 초연함이란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중심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

 

2: 거피취차(去彼取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이상에 취하지 말고 일상에 몰두하라 )

청렴과 四知(天知神知我知子知). 자존심이란 나를 무시했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느낄 줄 아는 감정이다. ‘내면의 성실함’, 존재의 올바름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바로 지금, 오늘에 모든 정성을 다하라.

주변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스스로 바꾸고 싶다면 마음부터 지켜야 한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습관으로 만들어라.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공부하며 축적해갔던 사유의 시간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모든 자극을 막고 스스로를 비우는 고립이 아니라 내부를 좋은 것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어른으로 사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평온하고 너그러워야지 근심하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습관을 바꾸는 위해서는 칼로 베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진정한 어른이란 살아온 경험과 겪어온 세월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새벽이란 밤낮으로 만물을 키우고 맑은 기운을 주는 하늘의 이치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시간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학문의 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 스스로 뱉은 말과 써내려간 글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조화를 이루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를 보지 못하면 눈을 감고 걷는 것과 같다. 이기주의에 주목한 사상은 한비자. 전국시대 양주학파, 애덤스미스가 있다.

 

3: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벗어나 열반을 깨닫는 마음에 이름 : 껍질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중심을 세워라) : 귀와 눈과 같은 기관은 생각을 할 줄 모르니 사물에 가리어진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욕망의 자제)을 한다. 생각을 하면 얻지만 생각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 이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준 것이다. 다산시문집(“만일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평생토록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리고 한 상자의 글도 전할 것이 없다면, 삶이란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일컬어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성찰 없는 지식의 축적은 무의미하다. 어른이란 많이 아는 이가 아니라, 배운 것을 깊이 고민함으로써 작은 욕망과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제 환공과 관중의 대화 : 부에는 한계가 있는가? 우물은 물이 마르는 것이 한계고, 부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니 부의 한계는 파멸이다.

스스로 완성해 나간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공허한 말이라고 쉽게 포기한다며, 스스로를 지킬 수조차 없게 될 것이다. 성찰 없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뜻 없는 공부는 공부하는 이를 집어삼킨다. 삶에서 목적이란 완성을 실현하려는 의지이며 목표는 목적을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목적과 목표를 혼동하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새벽의 시간, 날마다 스스로를 회복해나갈 때 평단지기(平旦之氣 : 새벽동이 틀 무렵의 기운)가 우리를 돕는다. 욕심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도, 선한 본성은 점차 회복해나갈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배움에서 나온다. 먼 길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나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말과 행동은 모든 일의 중심이다.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되면 본성이 된다. 큰 창고에 한 톨의 낱알에 불과한 인간이 삼재의 하나임은 오직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물질의 부림을 당하면 짐승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우선 몸가짐부터 정돈하라.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지만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쉽게 이루어진 것 같은 평범함 안에는 무수한 어려움을 거치며 형성된 비범함이 숨어 있다. 짐은 무겁고 길은 머니 부지런히, 그러나 쉬엄수엄 가라. 나의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서부터다.

 

출판사에서 책 제목을 심경(心經)’으로 정했다면 독자가 쉽게 책을 선택하지 못했을 거다. 저자 조윤제의 내공과 다산 정약용의 이름, 청림출판사의 매력적인 편집이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선택하고 깨닫게 한다. 본문 303쪽 분량으로 20181211, 내가 읽은 것은 20191115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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