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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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하다.

저자의 호연지기가 독자의 가슴에도 불을 댕기고 바람을 넣는다.

글과 사진은 고전이 주지 못하는 생기를 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조망하는 스케일만 큰 게 아니다. 유라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미래까지 꿰어본다. 특히, 발칸의 젊은 리더와 폴란드 사상가도 만난다. 러시아 푸틴의 책사와 인터뷰는 성과 속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폭도 넓다.

저자의 비정상의 정상화란 개념은 독서를 통해 처음 만난다. 서유럽과 미국이 중심인 서구 세계가 동양 세계를 침탈했던 20세기가 가고 21세기는 중국과 러시아, 아랍, 유럽이 유라시아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고, 그래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구대륙의 문명(유학, 힌두, 이슬람, 그리스 정교)이 서구의 억압과 침탈을 털고 일어나고 있음을 3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2019년 저자는 41살이다.

 

<유라시아 견문 1>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를 읽고 <유라시아 견문 2>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를 선택해 읽었고, <유라시아 견문 3>을 기다렸다. <유라시아 견문 3>에서 리스본, 바티칸, 파리, 테헤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브뤼셀, 사라예보, 베오그라드, 크로아티아, 코소보, 폴란드, 부다페스트, 아테네, 키예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아스타나, 타쉬켄트, 바이칼, 블라디보스토크, 삿포르, 하얼빈, 선양이 견문을 위해 거친 곳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 없다. 1A4 9, 2A4 7장으로 요약했었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 저자의 관점(비정상의 정상화), 개념, 알지 못했던 사실로 구분해 보려한다.

 

1. 관점 :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시간은 중세의 시간’(De-Modern Time)이다. 서구는 서양의 일부분으로 책에서 유럽 기독교 국가로 제한한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의 발견은 이베리아의 확산, 중세의 확대라고 본다. 아조레스 미군 기지를 걸프전, 유고내전, 이라크 전쟁에 폭격의 전초기지로 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포르투갈 총리가 EU 수장에 오른 것처럼, 반기문의 UN총장 당선은 이라크 전쟁 부역의 공. 사서삼경의 유입은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계몽철학 곳곳에 중국의 충격(17~18세기 기독교 없이도 문명국가가 가능한가?)’이 아로 새겨져 있다.(황태연의 <공자와 세계>,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에서 다룬) 계몽주의의 출발은 공맹이다. 자가발전이나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동서 문물 교류, 융복합과 통섭의 소산이었다. 칸트의 고민인 선악 논리,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진리의 정도 여부를 따지는 발상의 전환은 <중용>의 근대화였다.

쇠락하는 프랑스어보다는 이슬람 문명의 보편어인 아랍어가 세계어로서의 위상을 (다시)누릴 날이 머지않았다.

- 프랑스 역사학자 엠마뉘엘 토드의 시각 : 어떤 공화국이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 특정 종교를 모욕할 수 있는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문화적, 종교적으로 박해하는 반동적 행위다. 프랑스는 부지불식간 자기반성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비공화주의적 공화국이 되었다. 안정된 사회는 관용적이나 불안정한 사회에서 도리어 획일화, 동질화가 심해진다.

이란 혁명은 이슬람에 바탕한 현대적인 공화정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제시하여 전 지구의 무슬림 공동체(움마)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서세동점은 200년 묵은 적폐다. 색다름을 새로움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고약한 장애물이다. 낯선 것을 익숙한 틀로써 재단하기 일쑤다.

1차 대전의 의의는 제국의 해체다. 합스부르크, 오스만, 러시아, 독일제국이 붕괴하고 민족주의, 국민국가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유고 공습의 본질은 자본주의도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실험을 추구했던 유고를 지워버리려고 했다는 거다.

만사를 토론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회합이 없다. 동등하게 토론할 실력과 토의할 만큼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중구난방과 횡설수설이 오고가다 오리무중으로 빠져 허무하게 끝난다.

- 크로아티아의 젊은 리더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시각 : EU는 붕괴하고 있다.

-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시각 : 공산당의 선전기구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짜뉴스는 같다. 유럽의회는 야당 없는 의회로 주요 의사 결정은 지배 카르텔에서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왕년의 소비에트 연방과 유사하다. EU는 민주주의와 전혀 거리가 먼 기구다.

동서유럽은 통합된 것이 아니라 동유럽이 서유럽에 흡수되고 병합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나 세계시민이란 개념은 실제 공동체와 동떨어진 극단적인 추상체에 불과하다.

미국이 소련을 침공해 체제를 전환 시킨 게 아니라 지레 무너진 거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적인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20세기 핵가족화의 결과로 평균화, 획일화 되었다. 민주화가 아니다. 민주화된 가족에서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점점 일천해 지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학교도 민주화로 사제 관계가 증발하고 똑같은 인조인간을 양성한다.

그리스의 독립과 희랍 일체론이 발칸에서 저마다 민족주의적 각성을 불러 일으켜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19세기 러시아와 오스만의 수차례 전쟁은 그리스 정교도와 무슬림간 문명으 충돌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서방의 승리이자, 혁명주체들의 입장에서는 성과 속, 고와 금의 대결에서 오래된 영성이 승리한 역사의 귀환이다.

-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의 시각 : 프랑스 혁명이 문명의 파과가 아니라 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앙시엥레짐에서 유효했던 태도와 관습을 통째로 버려서는 안 된다. 근대사회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통 사회의 원리가 기저에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자유는 절제되고 평등은 조율도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혁명이 후 대혼란이 일어나고 그 대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극심한 독재 체제가 자리 잡는 것이다. 문명사회는 혁명파의 시각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수주의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불평등한 시간관을 거부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한다. 뿌리에서 자란 줄기와 열매가 더 진보한 것이 아니다. 뿌리는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니고 과거 미래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트나 부르주아를 기각한다.

소련이 1979년 아프카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미국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슬림의 각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후세인 제거와 카디피 축출에는 달러 결제가 아닌 유로화, 아프리카 통화인 디나르를 결제수단으로 쓰려했기 때문이다.

‘~의 파리라는 서술은 비서구의 서구화, 적폐의 소산이다.

 

2. 개념 :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쌓여 공간을 이룬다. 그렇게 축적된 시공간의 지층이 바로 역사다.

유고슬라비아의 자화상 : 7(국경)-6(공화국)-5(민족)-4(언어)-3(종교)-2(키릴과 로마문자)-1(하나의 국가)

서구문명을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은 19세기에 발명한 전통이다.

러시아의 고의식파(古儀式) : 동방정교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옹호하며 저항한 세력(프로테스탄트). 신의식파가 러시아의 주류로 등극한다.

시간이 누적되어 공간을 이룬다. 공간은 시간을 소환한다.

 

3. 사실 :

아르헨티나에서 예수회는 십자군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원주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프란체스코 현 교황은 경제학 교과서의 낙수효과는 가짜 이론’Fake Theory라고 성토한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간의 비극을 양산하는 경제체제의 선진화를 비판한다. 20110년 가톨릭교도의 7할이 남반구에 살고, 4할이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다. 가톨릭 세계의 제1 언어는 스페인어다. 프랑스 인권 선언(1789)이 여성과 노동자, 유색인종을 배제한 미완의 것이다. 반면에 예수회 선교사들이야말로 성서가 가르치는 인류 평등에 바탕하여 노예와 원주민을 보호했다(?)

칸트의 비판<중용>의 주석서였다. 중국 위협론의 기원은 17~18세기 신을 부정한 중국의 유학이 유럽에 전해진 것에 있다. 케네, 볼테르, 라이프니츠, 빌핑어, 칸트, 헤겔이 중국의 유학을 유럽에 확산 시켰다. <대학>이 처음 번역된 것은 1592년이다. 쿠플레의 저서 <중국의 철학자, 공자>17,18세기 유럽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특히 <맹자>는 혁명을 설파한 불온서적이었고, 주권재민을 설파하고, 성선설로 원죄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의예지의 존중으로 인권과 민권에 눈을 뜨게 된다.

자크아탈리는 사회주의자에서 신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원로 지식인이다.

에밀 뒤르켐의 <프랑스의 자살>은 근대사회에 만연한 의미의 상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의의 부재를 예민하게 포착한 고전에 값하는 명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담론 분석에 그쳤으나, 푸코의 이란론은 서구를 역사의 생산자로, 비서구를 역사의 소비자로 간주하는 주객 관계자체를 허물어뜨렸기에 더 급진적이다.

20세기후반 구축해 두었던 일국 단위 복지 모델이 EU 통합과 더불어 크게 흔들리는 것은 세계화의 덫이다. 어떤 체제와 이념과 사상도 영구불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또한 성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유고는 남쪽이라는 뜻. 보스니아까지가 서로마 영역이었고, 세르비아부터는 동로마 강역이었다.

공산당 간부들과 그 체제에 부역했던 이들이 민주화 이후 신흥 지배층으로 이행한 것은 동유럽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해방후 한국의 정국과 유사하다. 체제는 변했으되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정교도 130만은 그리스 영토로,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 60만은 터키로 이주했다.

냉전의 전초전은 그리스에서 노쇠한 영국을 대신한 싱싱한 미국이 반공 정책의 총대를 메고 봉쇄정책을 편다. 그리스가 발칸에서 유일하게 공산화되지 않은 나라였다. 이는 한국전쟁, 베트남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원형이 되기도 했다.

미국 소프트 파워의 힘으로 서구의 기원으로서의 그리스가 학문적으로 정립되고 그리스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신화가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문화 냉전의 소산이자 발명된 전통이다.

동방 정교의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이 <죄와 벌>이다. 국가와 사회와 종교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동방정교의 핵심 사상이다. 러시아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리스 고전을 원전으로 배운다. 러시아 교양의 양대 축이 정교와 그리스 사상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은 유라시아 문헌 번역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1991년부터 이후부터 태어난 신입생에게 <코란><논어>를 읽으라고 가르친다. 러시아인 가운데 2,000만이 무슬림이다. 모스크바에는 200만 무슬림이 살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거주하는 도시는 모스크바다.

카잔은 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튀르크화를 선도하는 전위였다. 그 카잔을 복속시킴으로써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굴기할 수 있었다. 레닌, 트로츠키, 마르크스는 러시아내 무슬림에 대해 무지했다.

비단, , 종이, 터키석, 커피, 우유와 요구르트, 버터와 치즈는 튀르크인의 유목망을 따라 유라시아 저역으로 확산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당시 시베리아에서 결전이 벌어졌고, 미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물자를, 일본은 7만 명의 군사를 출병하여 백군을 지원했다. 소련을 우랄 서쪽으로 봉쇄하고 동쪽에 울란우데나 치타를 수도로 삼아 극동 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1918년 이르쿠츠크까지 장악했던 일본군이1925년 최종적으로 물러났으나, 이 실전 경험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관동군의 주축이 된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내준 중국은 만주에서 동쪽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잃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반도 종단철도로 연결하고 거제도까지 이어 거제도를 러시아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일본 정보장교 후쿠야마 야스마사는 단기필마로 1892211일 베를린을 출발하여 1893812일 도쿄에 도착한다. 14천 킬로미터. 17개월. 500. 유라시아를 견문하고 보고한다. 다시 1895년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인도,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카프카즈, 바그다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견문하고 32편의 공식보고서를 제출한다. 둘 다 일본 대외정책의 초석이 된 문헌이다. 대단하다. 후일 영일동맹 체결의 일등 공신이다.

저자 이병한은 홋카이도 대학에 있는 슬라브-유라시아 연구소, 북극연구소를 참관하고, 1880, 1881년 메이지 일본이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사절단을 파견했음을 확인하고 자괴감과 열패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메이지 일본이 서구 편향적이지만은 않았고, 이슬람 세계로, 슬라브 세계로, 전방위적이고 전면적인 개화를 추진했다.

강희제는 라틴어를 배웠고, 공맹의 철학이 한글로도 유통되기 전에 벨기에 예수회 선교사 쿠플레는 <중국의 철학자, 공자>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그 소산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소현세자는 환국 두 달 만에 숨을 거둔다. 여장부였던 아내 강빈마저 역모로 몰려 죽는데 아비 인조가 함량 미달이었다.

 

4. 평가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 넓고 깊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더 넓고 깊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와 냉전이란 국제사회 이해를 뛰어 넘는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로마 문자 공론장만 읽어서는 진실의 절반도 접근할 수 없다. 키릴문자와 한문, 아랍문자 공론장을 보태어 관점의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세력 균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21세기는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한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반전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세기 국민 국가가 아니다. 21세기의 새판, 유라시아의 중원이다.

 

출판사의 평가 : 좌우, 근대와 전근대, 서구와 비서구라는 3중의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유라시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뒷표지에서)

 

<유라시아 견문 1. 2. 3>는 본문이 1,833쪽 분량으로 대작이다. 지리나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시야를 한반도란 고립 된 섬에서 밖으로 돌리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어보길 바란다. <유라시아 견문 3>은 서해문집에서 20191월 본문 67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흥미진진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단문으로 쓰여 읽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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