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이다 : I AM THAT I AM -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라
네빌 고다드 지음, 홍주연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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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다

2025.4.12.()

제목만으로는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저자의 주장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 차례를 살펴보아야 의식과 감각, 태도가 우리의 삶을 완성한다는 내용으로 구성함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사실이나 이론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들로 이끌어간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성경으로부터 典故를 살핀다. 유물론자이거나 무신론자에겐 수용하기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나 기독교인에게는 좋은 책이라고 판단할 듯하다. 나는 그것이다는 신학과 자기 계발을 통합한 시도로 본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해 나갈 때 우리는 개인의 혁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에서 동양의 인식 방법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연결할 수 있다. 신독, 구방심과 같은 단어나 개념을 연결해도 무리가 없는 문장이다. 본질적인 혁명은 우리 안아서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자신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다는 말도 특정 종교에서만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도 같은 맥락이다. 한 걸음 나아가면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고 의식은 행동을 결정한다는 자명한 철학적 원리까지 연상할 수 있다.

당신이 믿는 대로 세상은 움직인다는 장의 내용 중 우리가 최초의 원인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원인에서 파생된 결과가 원인과 절대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P.26 이는 불교 철학의 기초랄 수 있는 연기론을 풀어쓴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은 변하므로 변화에 영향을 미칠 가설을 세우는 과정에서 독립적인 변인과 종속적인 변인이 있듯 원인이 있어 결과를 낳는다.

당신이 심리적으로 사는 장소가 외부의 가시적인 세계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를 결정한다는 문장은 볼테르가 나에게 알려 주었고, 한때 내 삶의 좌우명이었던 ‘Paradise is where I am’이란 말이다.

 

변화를 열망하고 이상을 실현하려거든 가정의 힘을 믿으라 한다. 곧 내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열망하고 집중하고 상상하라고 한다. 가정의 법칙을 실천한 사람들의 8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무신론자에겐 우연이나 과장이 심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강연(저자 소개에 20세기 중반 미국 전역을 다니며 강연했다고 한다)에서 이런 사례를 소개할 때 끄덕이며 수긍하는 청중들이 보인다. p51. p.165에 소개된 할머니의 반대 속에서 콜리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소년이 기도의 방법을 알게 돼 기도함으로써 콜리 강아지를 선물 받아 키우게 됐다는 이야기가 중복된 점은 아쉽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려면 “ ‘이상을생각하지 말고 이상에서부터생각하라. 모든 상태는 그것을 생각하는 한 그저 단순한 가능성에서 그치지만 그것에서부터 생각하면 압도적 현실이 된다.”(p.75)라는 문장에 눈길이 간다.

 

목표를 향한 내면의 힘을 키우려면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집중력은 반복되는 연습 또는 습관을 통해 강화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빚어내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 속에서 창조한 사실이다. 일상에서 겪는 갈등은 대부분 상상력이 약간 부족한 탓에 자기 눈에서 들보를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잊어라. 마음의 안식처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며 상상하는 대로 삶을 이끄는 의식의 힘을 강조한다.

멈춰 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을 이길 수 없다. 능동적인 행동은 수동적인 태도를 압도한다는 문장에서 유목인 칭기즈칸의 정착민 정복 과정을 떠올리고, 러시아인이 동양에 대해 갖고 있는 황화(yellow peril)를 연상한다. 물질적인 성공보다 의로운 일에 집중하라.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감사하라는 말로 꿈과 현실을 연결하는 감각의 힘을 언급한다.

 

저자 네빌 고다드는 인격이란 스스로 방향을 선택해 주의를 기울이고 지속한 결과로 본다. “사람은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모습대로 됩니다.”(잠언 23:7)는 오늘날 자기 계발에서 사용하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인드 컨트롤의 개념이고, 자기 효능감으로 연결할 수 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으로 나타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격을 형성한다는 출발점에 대한 글이다. 실패와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삶의 태도를 늘 점검하라 한다. 자신의 예민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글로 태도는 내면의 감정을 결정하는 힘을 갖는다고 한다. 사람이 자신이 아닌 외부의 힘을 믿는 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빼앗기게 되니 내면에 숨어 있는 확신을 찾으라며 존재함으로써 완성되는 삶을 살자고 한다.

 

20세기 중반 에티오피아의 랍비에게 7년간 끌어당김의 법칙을 배우고, 미국 동·서부 주요 도시에서 강연으로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깨우려 했던 저자 네빌 고다드의 생각과 강연을 되새겨 보는 토요일 아침이다. 나는 그것이다는 출판사 터닝페이지에서 보내준 것으로 종교와 자기 계발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바라는것이아니라존재하라

#나는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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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고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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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필요한 시간 - 진리, 과학, 신앙, 그리고 신뢰에 관하여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음, 이은진 옮김 / 포이에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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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필요한 시간

2005. 4. 5()

 

2005. 4. 4.() 11:22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탄핵 소추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인용하였다. 헌법과 법률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대한 국민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하였다. 2024123일 비상계엄이란 초현실적 사건을 바라보며, 맹자맹자 사람의 길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었다. 맹자에서 수오지심을 모르는 개인으로 인간 대통령의 모습을 견주니 인간이 아니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통해 미국에서 있을 법한 일이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시스템을 파괴하는 과정을 확인했다. 지난 4개여 월의 시간은 진실과 거짓, 현실과 주장이 뒤섞인 듯 보였으나, 어떤 주장에 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일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겪은 계엄이란 상황에 비해 강도가 낮아도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이를 타개할 대안을 생각하는 프랜시스 콜린스의 생각이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란 이름으로 내게로 왔다. 종교적 색채가 강할 거라는 선입견은 과학자이자 의사로 전개한 논리와 사례로 묽어졌고(인용한 잠언에 공감한다), 오히려 여러 문장과 논리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분열과 극단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객관적 진리를 분별하는 것의 중요성, 자연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과학, 인생의 의미와 도덕적 존재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신앙, 다양한 메시지가 신뢰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신뢰를 지혜로 삼아 시대를 헤쳐 나가자고 한다. 저자가 진리, 과학, 신앙, 신뢰를 분열과 냉소에 빠진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지혜를 되찾는 법이라 주장하는 근거와 논지를 살펴본다. 무신론자로 신앙의 영역에 관해서는 발췌독하였으나 나머지는 정독한 결과다.

 

잠언 2416절은 의인은 일곱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을 만나면 망한다.”고 전하며 저자의 경험과 이성을 토대로 책을 내놓았다. 지혜가 지식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지식이 곧 지혜는 아니다. 지혜에는 도덕적 틀을 이해하고 이를 삶에 통합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지혜는 진리를 분별하도록 이끌고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려 준다. 지혜에는 경험, 상식, 통찰이 포함된다.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원망의 벽을 녹이는 강력한 용제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지혜는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과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데서도 나온다.

진리와 신뢰의 위기가 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히 생각이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며 독설을 퍼붓게 되면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견해를 확신할 수 있는 거품 속에 잠긴다. 이는 갈등을 부추긴다. 적대감은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편향을 강화하여 높아만 가고 정치도 극단주의를 부추긴다. 약화된 가족간의 유대,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기에 부족한 교육시시템은 우리 사회의 점진적 붕괴를 막아내기에 힘에 부친다. 양극단이 아닌 중도층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진리를 겸손하고 진지하게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진리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과학이 중요한 특정 영역에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인정하며, 신앙이 초월적 진리를 밝혀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신뢰가 진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 지혜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P. 42)고 말한다.

 

진리

평평한지구협회, 큐어넌 음모론, 부정선거 의혹, 진보 매체와 보수 매체의 황당한 주장은 사실과 의견, 진리와 소문, 음모론을 구분하는 능력을 의심하게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 운동이 객관적 진리 개념을 침식하고 있다는 저자의 관점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눈을 크게 뜨게 한다. 2세계대전, 대공황,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대두되면서 20세기 중반에 18세기 계몽주의로 시작된 근대성에 대한 반발로 형성되었다. 이성, 문화, 또는 신앙 전통에 기반한 기존의 거대 담론을 모두 거부한다. 사실상 모든 것에 대한 객관적인 진리가 심각하게 의심을 받게 되었다. 1980년대 서구 학계에서 유행한 이 관점은 문학과 예술 비평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했고, 이후 아이디어가 과학과 역사 분야로 스며들어 기존에 확립된 진리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과학사회학이란 분야에서 모든 이론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며 기존에 연구된 중력, 상대성, 열화학, 화학, 유전학에 대한 이론조차 신뢰하지 못하고 이론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라고 본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한 일은 악한 행위였고, “진리와 사실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지적 유행을 일으킨 데 책임이 있다”(P.68)고 한다. 이런 관점을 독서가 아니면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거짓 정보의 유형을 무지, 거짓, 거짓말, 망상, 개소리, 선전으로 정리한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 On Bullshit는 주문을 넣어 두었다. 진실이 중요하나 진실을 분별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전문가에 대한 신뢰의 약화, 스스로 정보를 잘 찾고 이해할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기 떄문으로 본다. 르네 데카르트가 이성의 시대 기초를 닦았다면, 18세기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라고 한다. 정념은 감정이나 이전 경험에 기반한 편향을 포함할 수 있다.

뉴스 매체, 소셜 미디어는 진리를 찾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진실을 가볍게 여기고 무책임하게 다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면 경청을 많이 하고 나와 상대방 모두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

 

[과학]

저자가 스푸트니크호 발사 이후 편성된 교육과정에 따라 학창시절 경험한 밀봉된 정육면체에서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사고력 실험 설계를 소개하며 과학자로 걸어온 과정을 돌아 본다.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원자의 분열, 인간의 달 착륙과 함께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업적이라 평가한다. 게놈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며, 모두 아프리카인이다.”(p.115) 과학이 인간의 번영에 가장 직접적으로 이바지한 분야는 건강으로 그 중 하나는 백신이다. 코로나 19 당시 겪은 백신의 개발 과정과 불신을 소개한다. “실험실 유출설은 근거 없는 의견이 과학적 사실을 대체한 경우로 코로나 19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 사례 중 하나이다.”(p. 153) 덴마크와 한국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 강제 명령 없이 공중보건 권고가 대체로 받아들여졌다. 선진국에서 근절된 것으로 여겼던 홍역과 소아마비가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은 과학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사례다. 과학은 21세기 말까지 기온이 섭씨 3.2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는 데 종의 멸종, 인간의 사망률 증가, 물 부족, 식량 생산 감소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신앙

저자는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혜의 다른 원천들과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가 생각만큼 험난하지 않다고 본다. 아이작 뉴턴은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하느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감상하는 방식으로 여겼다고 한다. ‘과학자라는 단어는 1834년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다. 파스칼의 팡세가 과학, 신앙, 진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 추천한다. 잠언 2717절은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p.221)고 한다.

 

신뢰

신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네 가지 중요한 기준으로 정직성, 역량, 겸손, 공유된 가치관을 든다. 이 중에서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다. 자신의 전문성에서 벗어난 영역에서 과도한 주장을 하지 않는 조심성을 의미한다. 현재와 같이 분열된 사회에서 신뢰를 보내는 기준으로 공유된 가치관을 요구하게 되면, 우리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객관적 전문가에게 배울 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 특히 반향실(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려 동질적 정보만 접하는 환경) 효과는 신뢰 결정에 강력하나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에 의하면 사회 분열의 심각도와 회복 가능성에서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스웨덴이 양극화가 심각하고, 한국, 브라질, 프랑스, 영국, 일본 , 이탈리아, 독일 등은 양극화가 심해질 위험에 처한 국가로 분류한다.(p. 277) 신뢰에는 시간, 사실 탐구,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개인이나 기관에 신뢰를 보낼지 말지를 결정할 때는 정직성, 역량, 겸손, 공유된 가치라는 네 가지 기준의 중요성과 신뢰성, 잠재적 한계를 평가해야 한다.

 

저자는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질문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해 가족, 친구, 아이들, 공동체, 국가로 확장해 가자고 한다.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기에 힘써야 하고, 가족 및 친구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며, 젊은 세대를 돕고 지역 사회와도 변화를 함께 만들어야 하며, 국가도 함께 변화될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를 맺는다. 프랜시스 콜린스의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미국 사회를 토대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대안 찾기이다. 독자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녹음이 짙은 숲에서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과정을 보았다면, 지혜가 필요한 시간활짝핀 꽃을 오래도록 볼 수 있다는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두 권의 책을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 시간을 내어 도올 김용옥의 맹자 사람의 길 上下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구성하는 개인 차원의 관점을 만나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란 제도가 완벽하지 않음과 깨어있음의 절박함을 깨닫고, 지혜가 필요한 시간을 읽어 양극화된 사회의 분열과 냉소를 극복하고 내 삶을 지키고 지혜를 찾는 방법을 찾아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좋은 책을 보내준 <포이에마>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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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택리지 - 시공간 초월 조선 핫플 탐방기
권재원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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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택리지

2025. 3. 28()

 

택리지는 이중환이 지은 조선 후기 최고의 인문지리서다. 양반 신분으로 살기에 알맞은 곳과 알맞지 않은 곳을 찾아 서술한다. 장풍득수가 전통적 풍수였다면, 이중환은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기준으로 가거지(可居志)를 선정하였다. 지리는 물길, 산의 모양, 흙을 성질을 다루고, 생리는 생활에 얼마나 이로운가, 즉 산업과 고통을 고려하였다. 인심은 주민의 예절, 도덕, 풍습을 포함하며, 산수는 훌륭한 경치를 즐기며 놀 만한 장소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생리를 기준으로 남원~구례, 성주, 진주를 꼽는다. 인심을 기준으로 보면서 주관적 편견이 보이기도 한다.

 

21세기 택리지33년간 중학교 사회교사로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월별로 주제를 삼아 12 지역을 소개하고 청송, 진주, 남해, 공주와 부여, 거제시를 덧붙이고 있다. 선정한 지역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피고 산업과 인구 등의 특성을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여행을 다녀올 만한 곳임을 밝힌다. 여행안내서의 성격과 지리서의 성격을 조금씩 담고 있어 여행하려는 사람이라면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읽고 선택하도록 돕는다.

 

평창, 정선, 태백 1960년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연탄 수요의 폭발로 탄광 주변으로 인구가 급증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 사실상 탄광이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눈과 관련된 축제가 활성화되었다. 수도권 인구의 급증시기에 고랭지 농업이 성하다. 이를 저자는 흑색, 백색, 녹색이란 색감으로 지역성을 표현한다.

안동 전통 정신문화의 보물 창고라고 부를 수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이상향이었으나 근대화 이후 소외되었지만, 사찰과 서원이 빚어내는 풍경이 안동이 가진 큰 자원이다.

통영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란 점을 활용해 만든 가장 훌륭한 클래식 음악당이 있다. 파란 바다, 항구, 배들, 섬들이 그리는 선과 어우러진 풍경, 벽화마을인 동피랑 마을 이 매력이다. 수군통제영에서 통영을 명명했고, 임진왜란이후 평화시기에 수공업 제품, 특히 나전칠기를 만든다. 작은 도시이지만 통영이 가진 매력 탓에 오버투어리즘과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된다.

구례~하동 봄이 아름다운 고장인 구례와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합작품이다. 토산인 지리산 자락에 맑은 섬진강이 흐르나 역사의 곡절과 아픔을 겪은 곳이다. 구례중학교 산악회 연하반의 노력으로 지리산이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화엄사, 쌍계사, 천은사는 지리산 3대 사찰이다. 대표적 문학 작품인 토지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경주 젊은이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로 관광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다. 황리단길도 오버투어리즘의 문제를 안고 있다. 경주 인구의 30%가 울산에 살면서 출퇴근한다고 한다.

광주 권율 장군의 왜군 격파, 광주학생항일운동, 5.18 민주화 운동 등으로 나라를 구하고 구했으나 보답 대신 편견으로 고통받았다. ‘무등이란 평등이 너무 당연해 평등이라누 개념조처 사라진 상태를 일컫는 불교 용어다. 인구 중 문화, 예술인 비율이 다른 도시 보다 높아 예향이라 부른다.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정신을 알리는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려 한다.

춘천 낭만이 필요했던 70년대 낭만을 찾던 도시다. ‘예맥 천년 고도’, IT, 바이오 기업이 자리잡아 오면서 젊은 인구가 늘어날 예정이다. 서울에서 전철이 다니고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수도권과 가까워졌으나 땅값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영동지방 기온이 온화하고 풍경이 아름다워 조상들도 인정한 최고의 피서지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1970년대 이후 관광산업이 성장세를 띈다. 양양은 젊은이의 성지로 불린다. 영동지방은 오버투어리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철원 한탄강은 길이에 비해 유량이 많다. 동강, 내린천과 함께 래프팅의 성지다. 유네스코는 한탄강 일대를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궁예가 도읍으로 삼았고 강원도 제일의 곡창지대이다. 비무장지대는 지질학적, 역사적, 환경적으로 한반도의 타임캡슐이다.

내포지방 이중환도 인정한 가거지다. 당진시, 아산시, 평택시, 서산시 지역은 대기업 공장들이 많아 창원, 부산, 울산 일대의 동남권 벨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천안시는 비수도권도시 중에서 청년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 한용운, 이동녕, 김좌진, 윤봉길 등 애국지사를 낸 곳이다.

군산, 익산, 완주 근대화와 일제 수탈의 탁류가 흐른다. 새만금은 주민들의 희망을 모두 모아 놓기만 한 것은 아닐까

강화 해돋이와 해맞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고인돌, 고조선(첨성단) 시대부터 근현대사, 분단의 역사까지 품고 있다.

 

청송 신성계곡과 응회암 지형인 주왕산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농경지의 절반 이상 면적이 사과 재배지이고 고추 농사의 비중이 높다. 청양고추는 청송과 영양군에 있는 종자회사 시험재배장의 앞 글자이지 충남 청양과 무관하다. 몬산토로 유전자 정보가 넘어간 것이 아쉽다. 독특한 것은 공장, 축사 건설을 금지하고 2023년 대중교통 완전무료를 선언했다. 대신 공해가 없는 교도소를 유치하는 발상의 전환을 본다.

진주 이중환이 부러워했던 진주는 천 년이 넘도록 경주, 상주와 함께 경상도 3대도시 역할을 했던 풍요로운 도시다. 충절의 도시, 교육의 도시, 청춘의 도시다. 조선시대 경사 우도는 좌도에 비해 부유했으나 오늘날은 역전된 상태다.

남해 대부분이 바위산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남해도엔 다랑이 논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남해대교, 노량대교, 삼천포대교, 창신대고 덕분에 육지와 다르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장과 독일마을이 있다.

공주와 부여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어 남아 있는 유적이 적어 아련하고 애틋하다. 익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무령왕릉과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거제 부산에서 거제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고 한다. 몽돌해수욕장, 매미성, 외도, 조선산업의 핵심지역이다.

 

저자는 21세기 택리지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창문으로 풍경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지도를 펼치거나 구글 위성 지도를 봐가며 지역을 확인하고 떠날 여행지를 골라보자. 책은 중학교 교사의 안목으로 여러 지역을 살피며, 쉽게 서술하고 있어 청소년이 읽기에도 적합하다. 교과서 배운 것 외에 역사, 환경, 산업, 문화, 인구와 관련한 사실들은 성인에게도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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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 -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고병권 지음 / 돌베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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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

2025. 3. 25()

야학이란 단어를 들을 때 내 인식은 4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서울에서 운영하는 노들야학 철학 교사의 글을 현재 시점에서 읽는다는 것은 두 가지 지점에서 일상을 벗어난 일이다. 하나는 21세기 지식과 정보가 자본과 함께 집적된 서울에서 야학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고, 야학에서 기초적인 문해 교육이 아니고, 양보해서 인문학 강의도 아니고 철학을 가르친다는 점도 일반 상식 범위 밖에 있다.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 고병권이 가진 관점의 폭과 깊이를 알아가며 내가 아는 세상은 구멍이 숭숭 난 그물이지 싶다. 다만,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으며 느꼈던 것과 프롤로그에서 과거에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소한 장미 한 다발은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문장에서 저자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 있어 위안을 얻는다.

 

저자는 학교란 먹고 사는 삶의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나 야학은 삶의 현장, 생산 현장에 자리 잡은 학교라고 본다. 복지시설에 위문품을 전달하듯이 인문학자가 들고 오는 지식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인식한다. 말의 한계라는 지점의 시각은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풀어놓았다.

 

역사유물론의 핵심은 역사를 관통하는 영원한 법칙 따위는 없으며, 각각의 사회형태는 고유한 법칙을 갖는다”(p.55)는 점이다. 이는 역사 연구에 소홀하지 말야야 한다는 의미다. 레닌은 자본에 대해 통상적인 경제서적과 달리 노동자 계급에서 자본가계급을 비판한 유일한 경제서적이라고 말한다(p.55) 이제야 이런 이론들이 현실 세계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만, 저자는 사유하는 인간이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했을 때 심오한 ’, ‘사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2장은 <개가 짖지 않는 밤>이라 제목을 두고 사회적 모순들을 비판한다.

두 개의 눈. 보여지는 눈과 보는 눈. 타자의 시선의 대상이 된 눈과 그 타자의 시선을 보는 눈. 장애인의 한 쪽 눈은 위선을 꿰뚫어 본다.

저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주제에 감히해외여행을 한 해에 두 번씩이나 다녀온 사람들을 존경한다. 한편으로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존경하고, 사회적 권리를 사회적 채무로 바꾸려는 권력자들의 음흉한 음모에 굴하지 않는 그 정신을 존경한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맞아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탐욕은 멈추지 않으면서도, 감히 주제넘게 두 번이나 해외여행을 했다고 가난한 사람들 목줄을 흔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정부다.

삶이 막연할 때는 기본적이고 절실한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잘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여력이 되거든 애인들을 돌봐야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 만든 선감학원은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p. 93) 8세에서 18세까지의 아이들을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놀랍게도 1982년까지 운영되었다. 정부 인식은 일제 식민주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제레미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이 널리 알려졌으나 그에 따르면 인류의 쓰레기들은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저자는 한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자들에게 인문학은 언어를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들이 정치적 존재가 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정치적 존재로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들은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들을 수 있는가이다.

현행법령은 동물 사체(반려견 등)는 일반 쓰레기라고 한다니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가? 나는 모르겠다.

내 고통은 타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고통이란 너무나 고유한 것이어서 누구도 그 고통을 가져갈 수 없다.

유대인 난민이 밀려왔을 때, 독일이 강요했을 때, 저항했던 국가는 덴마크와 불가리아 뿐이다. 이는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과 토니 주트가 지은 포스트 위 1945~2005에서 언급되어 있다.

 

비워둠은 삭제함이 아니라 마련함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그를 위한 자리, 그가 깃들어 우리에게 말 건넬 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장애에 관한 두 차원의 생각은 큰 차이가 있다. 장애를 기술만 충분하다면 극복할 수 있는 기능 부전의 문제, 마치 의료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장애를 만들어 내는 것, 장애해방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를 생산하고 차별하는 사회와 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디오게네스가 말하는 장애인이란 배낭을 메지 않은 사람이다에서 배낭은 종속되지 않고 자율적인 삶, 보호장치로서 울타리 바깥에서의 삶,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돌보는 삶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주권자로서 투쟁할 수 없는 삶을 의미한다.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를 비교하는 관점을 배운다.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풀러 줄 영웅이 올 것이란 예언을 실현한 자는 헤라클레스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마음속에 맹목적인 희망을 심어놓았다. 희망이란 미래를 보면서 갖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없는 맹목에서 나온다.

 

묵묵에서 저자 고병권의 삶을 본다. 실천적 지식인의 삶이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검색하게 한다. 소개글을 보니 사야 할 듯하다. “고병권은 책과 세상을 리뷰하지만, 그가 관찰자나 평론가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글에서 낯설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거리'의 낯섦은 고병권이 삶에 대한 긍정과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투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극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기에 가지는 낯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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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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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2025. 3. 16(일요일)

흔히 보는 철학책과 다른 제목이다. 아마도 기획자가 TV 프로그램 알뜰신잡에서 쓸모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잘 팔리는 철학책이지만, 감동을 준다거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아쉽다.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번역도 껄끄럽지 않지만, 단문으로 벌려 놓아 만연체의 글이란 느낌이다. 철학의 쓸모는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관하여 어떤 태도와 자세로 풀어가는 것이 좋을까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답하려고 시도한다.

 

인간은 육체적 고통, 영혼의 고통, 사회적 고통을 겪는 존재라는 전제와 범주에서 벗어난 흥미로운 고통들도 마주한다고 전제한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삶의 대부분은 본질적이면서도 무상하고 무엇도 예측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무상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불교의 연기론은 스피노자의 인과율과도 다르지 않다. 철학의 쓸모는 이런 전제를 두고, 철학이란 우리의 고통을 진정시켜 주는 진통제와 연고를 처방해 주는 일종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키르케고르는 철학의 역할을 정신의 가장 큰 불행, 즉 인생을 살아가면서 절망에 빠져 고통을 겪는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 바꾸거나 위임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이같은 교훈을 이끌어낸 이들은 스토아학파다. 스토아 철학이 제시하는 치료의 원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시몬 드 보봐르의 시선을 말하며 자크 데리다의 고양이의 시선이라는 낯선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몽테뉴 같은 이들은 삶이란 사소한 것이며 중요한 것은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인문학이 출발한다고 본다. “병에 걸렸을 때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병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 뿐이다라는 문장에서 현대의학의 역할을 기대하지 못했던 시대의 말이라고 제처 둘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늙음에 대한 처방으로 한나 아렌트가 소개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즉 탄생성(natality)의 실천에 귀를 기울인다.

열정에 대하여소개하는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이야기한다. 두려움에는 용기, 쾌락과 고통에는 절제, 분노에는 온유함이 중용이다. 이에 견주어 스토아학파는 중용이란 치명적 열정의 치료법이 될 수 없으니 열정을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본다. 어떤 것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의연함인 아파테이아(apatheia)’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은 토론의 기술도, 감정의 공유도 아닌 이성으로 개념을 생산하는 일종의 개념 제작소.(p. 109)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나는 어떤 삶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삶에서 실패나 좌절을 겪을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이 문장도 인문학의 출발점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헤겔은 자기 하인에게도 영웅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영웅은 일상에서 벗어나 있을 때만 영웅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선지자는 가족과 이웃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은 매일 반복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학과 예술, 철학이라는 향미제와 조미료가 필요한 것이다.

 

p. 142에서 세이렌의 노래에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 범선의 돛대에 자신을 결박한 오디세우스의 방법, 즉 거부함이 의지박약을 극복하는 방법이란 점에 끄덕이기 쉽지 않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의 상처에 빠져 무기력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오직 행동하는 것뿐이다. 누가 뭐라해도 권태나 우울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육체노동이다.

 

실패를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여기고 이상화하면서 경험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보며, 현실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더 멋있게 실패하는 법 뿐이라는데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다. 아둔한 칠면조가 되고 싶지 않다면, 경험의 힘을 믿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대신,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고독을 그저 외롭고 부정적인 상태로 여기지 말고 진정한 자유를 체득하고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여라.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정치인이든 상인이든 관리든 학자든 노예에 불과하다는 니체의 말이다.(p.241) 우리를 구별 짓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있다가 퇴임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귀 기울여야 할 문장이다.

 

투머치토커, 잘난 체하며 여성들을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이너(mansplainer), 혼잣말하는 사람들을 사회악으로 보는(p.269) 관점은 새롭다. 침묵은 우리를 더욱 현명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서로 다른 원칙에 따라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불화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국가를 약화시키니 어린이들의 교육을 공동체에 위탁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플라톤은 p.277에서 전사들의 아내는 모두가 공유해야 하고, 어떤 여인도 특정한 남성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되며, 아이들 역시 아버지는 자식을, 자식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게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현재는 수용할 수 없는 플라톤의 의식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면서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감정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부른다.(p.194)는 사실을 엊그제 브런치에서 읽고, 오늘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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