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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필요한 시간 - 진리, 과학, 신앙, 그리고 신뢰에 관하여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음, 이은진 옮김 / 포이에마 / 2025년 3월
평점 :
지혜가 필요한 시간
2005. 4. 5(토)
2005. 4. 4.(금) 11:22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탄핵 소추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인용하였다. 헌법과 법률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대한 국민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하였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란 초현실적 사건을 바라보며, 『맹자』와 『맹자 사람의 길』과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었다. 『맹자』에서 ‘수오지심’을 모르는 개인으로 인간 대통령의 모습을 견주니 인간이 아니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통해 미국에서 있을 법한 일이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시스템을 파괴하는 과정을 확인했다. 지난 4개여 월의 시간은 진실과 거짓, 현실과 주장이 뒤섞인 듯 보였으나, 어떤 주장에 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일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겪은 계엄이란 상황에 비해 강도가 낮아도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이를 타개할 대안을 생각하는 프랜시스 콜린스의 생각이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란 이름으로 내게로 왔다. 종교적 색채가 강할 거라는 선입견은 과학자이자 의사로 전개한 논리와 사례로 묽어졌고(인용한 잠언에 공감한다), 오히려 여러 문장과 논리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분열과 극단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객관적 진리를 분별하는 것의 중요성, 자연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과학, 인생의 의미와 도덕적 존재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신앙, 다양한 메시지가 신뢰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신뢰를 지혜로 삼아 시대를 헤쳐 나가자고 한다. 저자가 진리, 과학, 신앙, 신뢰를 분열과 냉소에 빠진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지혜를 되찾는 법이라 주장하는 근거와 논지를 살펴본다. 무신론자로 신앙의 영역에 관해서는 발췌독하였으나 나머지는 정독한 결과다.
잠언 24장 16절은 “의인은 일곱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을 만나면 망한다.”고 전하며 저자의 경험과 이성을 토대로 책을 내놓았다. 지혜가 지식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지식이 곧 지혜는 아니다. 지혜에는 도덕적 틀을 이해하고 이를 삶에 통합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지혜는 진리를 분별하도록 이끌고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려 준다. 지혜에는 경험, 상식, 통찰이 포함된다.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원망의 벽을 녹이는 강력한 용제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지혜는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과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데서도 나온다.
진리와 신뢰의 위기가 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히 생각이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며 독설을 퍼붓게 되면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견해를 확신할 수 있는 거품 속에 잠긴다. 이는 갈등을 부추긴다. 적대감은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편향을 강화하여 높아만 가고 정치도 극단주의를 부추긴다. 약화된 가족간의 유대,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기에 부족한 교육시시템은 우리 사회의 점진적 붕괴를 막아내기에 힘에 부친다. 양극단이 아닌 중도층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진리를 겸손하고 진지하게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진리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과학이 중요한 특정 영역에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인정하며, 신앙이 초월적 진리를 밝혀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신뢰가 진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 지혜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P. 42)고 말한다.
진리
평평한지구협회, 큐어넌 음모론, 부정선거 의혹, 진보 매체와 보수 매체의 황당한 주장은 사실과 의견, 진리와 소문, 음모론을 구분하는 능력을 의심하게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 운동이 객관적 진리 개념을 침식하고 있다는 저자의 관점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눈을 크게 뜨게 한다. 2세계대전, 대공황,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대두되면서 20세기 중반에 18세기 계몽주의로 시작된 근대성에 대한 반발로 형성되었다. 이성, 문화, 또는 신앙 전통에 기반한 기존의 거대 담론을 모두 거부한다. 사실상 모든 것에 대한 객관적인 진리가 심각하게 의심을 받게 되었다. 1980년대 서구 학계에서 유행한 이 관점은 문학과 예술 비평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했고, 이후 아이디어가 과학과 역사 분야로 스며들어 기존에 확립된 진리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과학사회학이란 분야에서 모든 이론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며 기존에 연구된 중력, 상대성, 열화학, 화학, 유전학에 대한 이론조차 신뢰하지 못하고 이론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라고 본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한 일은 악한 행위였고, “진리와 사실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지적 유행을 일으킨 데 책임이 있다”(P.68)고 한다. 이런 관점을 독서가 아니면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거짓 정보의 유형을 무지, 거짓, 거짓말, 망상, 개소리, 선전으로 정리한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 On Bullshit》는 주문을 넣어 두었다. 진실이 중요하나 진실을 분별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전문가에 대한 신뢰의 약화, 스스로 정보를 잘 찾고 이해할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기 떄문으로 본다. 르네 데카르트가 이성의 시대 기초를 닦았다면, 18세기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라고 한다. 정념은 감정이나 이전 경험에 기반한 편향을 포함할 수 있다.
뉴스 매체, 소셜 미디어는 진리를 찾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진실을 가볍게 여기고 무책임하게 다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면 경청을 많이 하고 나와 상대방 모두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
[과학]
저자가 스푸트니크호 발사 이후 편성된 교육과정에 따라 학창시절 경험한 밀봉된 정육면체에서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사고력 실험 설계를 소개하며 과학자로 걸어온 과정을 돌아 본다.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원자의 분열, 인간의 달 착륙과 함께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업적이라 평가한다. 게놈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며, 모두 아프리카인이다.”(p.115) 과학이 인간의 번영에 가장 직접적으로 이바지한 분야는 건강으로 그 중 하나는 백신이다. 코로나 19 당시 겪은 백신의 개발 과정과 불신을 소개한다. “실험실 유출설은 근거 없는 의견이 과학적 사실을 대체한 경우로 코로나 19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 사례 중 하나이다.”(p. 153) 덴마크와 한국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 강제 명령 없이 공중보건 권고가 대체로 받아들여졌다. 선진국에서 근절된 것으로 여겼던 홍역과 소아마비가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은 과학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사례다. 과학은 21세기 말까지 기온이 섭씨 3.2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는 데 종의 멸종, 인간의 사망률 증가, 물 부족, 식량 생산 감소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신앙
저자는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혜의 다른 원천들과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가 생각만큼 험난하지 않다고 본다. 아이작 뉴턴은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하느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감상하는 방식으로 여겼다고 한다. ‘과학자’라는 단어는 1834년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다. 파스칼의 팡세가 과학, 신앙, 진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 추천한다. 잠언 27장 17절은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p.221)고 한다.
신뢰
신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네 가지 중요한 기준으로 정직성, 역량, 겸손, 공유된 가치관을 든다. 이 중에서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다. 자신의 전문성에서 벗어난 영역에서 과도한 주장을 하지 않는 조심성을 의미한다. 현재와 같이 분열된 사회에서 신뢰를 보내는 기준으로 ‘공유된 가치관’을 요구하게 되면, 우리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객관적 전문가에게 배울 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 특히 ‘반향실(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려 동질적 정보만 접하는 환경) 효과’는 신뢰 결정에 강력하나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에 의하면 사회 분열의 심각도와 회복 가능성에서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스웨덴이 양극화가 심각하고, 한국, 브라질, 프랑스, 영국, 일본 , 이탈리아, 독일 등은 양극화가 심해질 위험에 처한 국가로 분류한다.(p. 277) 신뢰에는 시간, 사실 탐구,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개인이나 기관에 신뢰를 보낼지 말지를 결정할 때는 정직성, 역량, 겸손, 공유된 가치라는 네 가지 기준의 중요성과 신뢰성, 잠재적 한계를 평가해야 한다.
저자는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질문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해 가족, 친구, 아이들, 공동체, 국가로 확장해 가자고 한다.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기에 힘써야 하고, 가족 및 친구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며, 젊은 세대를 돕고 지역 사회와도 변화를 함께 만들어야 하며, 국가도 함께 변화될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를 맺는다. 프랜시스 콜린스의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미국 사회를 토대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대안 찾기이다. 독자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녹음이 짙은 숲에서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과정을 보았다면, 『지혜가 필요한 시간』 활짝핀 꽃을 오래도록 볼 수 있다는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두 권의 책을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 시간을 내어 도올 김용옥의 『맹자 사람의 길 上下』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구성하는 개인 차원의 관점을 만나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란 제도가 완벽하지 않음과 깨어있음의 절박함을 깨닫고, 『지혜가 필요한 시간』을 읽어 양극화된 사회의 분열과 냉소를 극복하고 내 삶을 지키고 지혜를 찾는 방법을 찾아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좋은 책을 보내준 <포이에마>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