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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 - 다시 읽어내는 겸재의 진경산수화
이성현 지음 / 들녘 / 2020년 4월
평점 :
미국식 교육 사조에 따라 배운 학창 시절을 지낸 독자에게 조선 후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마땅하지 않다. 서양화가의 이름은 몇몇과 르네상스니, 인상파니 하는 미술 사조에 대해 파편화된 단어만 남아있다. 우리의 미술에 대해서는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신사임당, 정선의 이름과 몇 개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미술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일반 독자가 조선의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나온 후의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서를 통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와 「화인 열전 1, 2」를 만나면서 그림을 읽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감상 자세를 알게 됐으니 학교의 미술교육이 얼마나 허접했던가를 생각한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과 「한국의 미 특강」이 준 충격은 신선한 일이었기에 오래도록 기억한다.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이 내 손에 들어온 후 ‘왜 노론의 화가’가 붙어있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지 않고 화가의 삶에 드리운 배경과 그림을 그린 맥락까지 보고 알아야 한다는 저자 이성현의 의도였다. 미술사가의 안목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기존의 정선에 대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화두로 던진 진경(眞境)은 진경(眞景)과 어떻게 다른가가 책을 쓴 동기이리라.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저자의 전작 「추사코드」, 「추사난화」의 개요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직에 있었던 독자의 경험에 비추어
오주석의 그림에 관한 책은 학생의 학습 동기를 활성화하고 유지하는 쓰임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아! 그렇구나’, ‘이거 재미있다’라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고 이후에라도 조선의 그림을 읽거나 미술관에 가보더라도 예전과 다른 태도로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이성현의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본 수업 학습과제에 해당한다. 교사의 안내가 필요하고, 팀원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는, 조금은 딱딱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수업이다.
여러 계단을 더 올라가야 멋진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듯이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을 읽으면, 독자가 가진 정서적 관점에서 겸재의 그림을 이해하려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진경의 의미가 단어가 가진 뜻 너머에 있는 숨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사회학적 용어라고 본다. 미술사가가 그림을 읽기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기울이는가를 배우는 것은 덤이다. 누군가의 그림 읽기가 와닿지 않으면, 화가의 삶과 기록, 친구 관계, 정치적인 백그라운드, 개성 등 그림에 관련된 전체를 다시 보고 재해석하려 노력한다. 한문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이성현님의 공부 결과로 풀어 놓은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얇고 넓게 보았다면 이제는 좁고 깊게 보는 첫걸음을 내딛으라 한다.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출판사 들녘에서 2020년 4월말에 본문 440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고급 교양서이자 미술학도 입문서라 할까. 저자의 땀이 흠뻑 스며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