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우리가 얼마나 먹어대는데! 기쁠 때도먹고, 괴로울 때도 먹고, 놀랐을 때도 먹고, 낙담했을 때도 먹고, 우리의 감성은 근본적으로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천성적으로 민주주의자인 이유는 옛적부터 ‘모든 인간은 먹어야 한다‘ 라는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자들은 회개기도는 대충대충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을 꿇고 한다. 확신컨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상징으로서의 ‘빵‘이 아니라 저울에 달아 파는 독일 빵 한덩이다.
- P63

타인의입을 통해 진실을 확인하는 건 얼마나 민망한가. 아침에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온전히 차리기 전, 하루 중 남은 시간동안 남들에게 보이고 또 남들을 보게 될 가면을 쓰기 전, 누구나 적대심과 자기원망이 가득 찬 씁쓸한 허튼소리를 내뱉는 시간을 갖기 마련인데 차마 그럴 때에도 선뜻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그런 진실이라면 특히 더 민망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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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이의 첫 책이다. 책을 쓰는 동안 인생의 다른 부분이 엉망진창을 향해 엔트로피를 늘려나가도, 오로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조금 덜 불행했다. 이글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갖추어 사람들에게 전달될것이며, 적어도 그때까지는 확실한 목표를 향해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했다. 감히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도있었다.  - P8

사실 이 자리에서 내가 읽었던 책을 모두 나열할 수도 없고, 나열해봤자 별 의미도 없다. 중요한 건 책이 나의 피와 살이라는 것이고, 인생의 삼할 정도는 책장을 넘기는 데에 썼다는 것이다. 이할 정도는 책장을 넘길 책을 살 돈을 버는 데에 썼다. 나머지 오할은 막연하고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몇 권 안 되는 책을 안고 비틀거리는 데에 썼다. 이 책도 비틀거림의 일환이다. 좀 비틀거리더라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 다리에 힘이 좀 없다.
- P116

나의 방 한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책장을 바라볼 때, 수천 년 전의 인간이 남긴 말부터 지금의 인간이 그 말을 해석한 책까지 있는 광경을 바라볼 때, 나는 인간이란 죽으며 한낱 활자만을 남길 수 있는 존재임을, 동시에 그 활자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상기한다. 책에 대한 소유욕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자 애정의 발로다. 구체적인 하나의 인간에 대한 소유욕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의 정신성에 대한 소유욕인 셈이다.
- P137

이는 활자의 배열 속에서 자신만의 진리를 발견하든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지, 검열관 (소설 내에서 우주와 시간의 기원을 기록한 책을 발견하고자 모험을 하는 수색자들)이 되어 부서진 층계를 포함하든지, 세계에 어떤 ‘진리‘가 있어서 죽어서야 그걸 깨달을수 있다면 이런 곳에서 밖에는 깨달을 수 없을 테다. 파주에 위치한 지혜의 숲에 갔을 때 티끌만큼이나마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신이시여, 제가 믿지 않아서 염치는 좀 없지만 혹시 죽게 되면 영혼은 이쪽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 P217

나는 더 좋은 책‘과 ‘덜 좋은 책‘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에 우열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 엘리트주의자로 매도되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봐도 르누아르가 그린 그림과 내가 그린 그림은,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든 상관없이, 가치도 수준도 전혀 동일할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선호를 무조건 취향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각 분야에서 쌓아 온 규칙과 역사, 성취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는 예술을 논함에 있어 취향을 존중해달라‘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 말은 때로 무지(無知)에 대한 좋은 명분이 될 뿐이다. 책에 주어지는 상은 더 좋은 책에 주어진다. 여기서 ‘더 좋음‘과 ‘덜 좋음‘을 구분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작가의 성취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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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씨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dollC 2021-09-19 18:5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캇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이모지 모르는 고인물이라 부끄럽네용🤭 헤헤ㅋ)
 
꿈 (2021 서울국제도서전 리커버 특별판)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수아 옮김, 신신 디자인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국제도서전 못가는 아쉬움을 이 책으로 달래본다.(하드커버가 아니네? 이웃집 댕댕이 빵댕이처럼 뭔가 빵실빵실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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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일기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마크 트웨인 지음, 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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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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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진실한 허구를 생산한다면, 철학은 ‘허구적인 진실‘을 보여 준다. 여기서 허구는 문학적 창조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허구는 진실에 도달하려는 야망을 가진 담론이 취하는 수많은 전략에 기반한다. 여기서 글 쓰는 주체가 자신을 구성하고 스스로에 대한 재현을 변형시키게 해 주는 심리적 몰입이 일어나는데, 이는 주체의 주관적 책임을 유보시키고 그만큼 그를 좀 더 쉽게 허구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게 해 주는 언어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 P162

사상가는 자기 개념들의 힘에 연루되는 동시에 그 개념들에 의해 정의된다. 따라서 그는 어떤 개념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그 개념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어나 주장이 그를 규정하여, 그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존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따라서 때때로 그는 그에게 재갈을 물리는 이 개념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음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 노력한다. 사색의 에너지는 그러한 자유를 촉발시키고 또 동결시키는 단어들과 투쟁해야만 한다. 이처럼 사상가들은 등대 개념을 수정해 가면서 자신의 자율성을 주장한다. 때로는 그 개념을 초월한다는 구실하에 포기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 P199

어떤 개념의 문체적 기능을 관찰하는 것은 그것을 평가절하하거나 이론적 타당성을 과소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철학자의 ‘언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체가 장식이 아닌 언어 질료임을 알게 해 준다. 사상은 합리적 논리를 따르면서도 정서와 상상계를 가지고 그 언어 질료에 참여하고 그것을 드러낸다. - P226

작가 철학자의 자아는 투명하지 않으며 인격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자들은 이 지점에서 기만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반대로 심지어 이론적 언어에서도 다중 인격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독자에게는, 거짓말은 곧 글쓰기의 무대에서 자아를 분열시키고 확대하는 주체의 유연성이 될 것이다. 소설이든 고백록이든 편지는 철학 개론이든, 그것을 쓴 사람 역시 문을 열고 커튼을 걷은 뒤 가면을 착용한 채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무대 뒤로 사라지는 한 명의 등장인물이다. - P261

가명은 저자의 가면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그 저자이다. 그와 무관하면서 동시에 그와 거리를 둔, 다시 말해 모든 가능태들,
그이면서 그가 아니고 그일 수도 있는 인격들의 긴장 속에 독특한 방식으로 있는 저자인 것이다. 그는 이들을 통해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 P275

하지만 보관되어 구성된 자료나 사후 찾아낸 사실이, 저자가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발언한 것보다 더 많은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진실은 외부의 시선으로 작성되었기에 분명 다른 성격을 지닌, 실존의 다른버전일 뿐이며, 진실의 특정한 개념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게 바로 재확립된 진실" 이라느니 "저자의 여러 이야기 중 이게 진짜 진실"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글 쓰고 사유하는 자기의 흩어짐에 대해 우리가 분석해 온 바에 따르면, 삶은 오히려 담론과 실천 사이의 긴장에서 구축되며, 진실은 거짓말을 통해 말해진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이론과 삶의 명백한 모순은 허구, 사상, 이미지, 개념 속에 스스로를 투사한 의식의 다중적 삶의 일부다. 사후 발견된 사실들의 진실을 갖다대며 거짓말을 규탄하는 것은 유혹적이지만, 우리는 거짓말이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언어적 존재로서 실존하는 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른바 일상적 삶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론적 삶‘ 또한 실제 삶에 속한다. 그것이 잠재적이라는 점은 그것을 무효로 만들지도, 거기서 어떤 현실을 제거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사상이 담긴 책을 낳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픽션이든 이론서든, 책은 실존의 확장이자 실제 체험한명제이며, 진실의 지위를 획득한다. - P296

추상적 단언의 심리적 동기에 관심을 가지면, 그 주장을 일상적 사유 행위와 관련짓게 되고, 저자의 ‘삶‘에서 진술의 역사적 · 개인적 맥락과 그 상황을 관찰하게 된다. 물론 삶이니 인격이니 저자니 하는 단어들은 여전히 매우 모호하며, 세부사항이 더 필요하다. 이 단어들은 실제로 확인 가능한 어떤 현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구성물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인생은 선험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야기를 통해 연속성을 창조하는 전기와는 다르다. 모순되는 단편과 해석으로 구성되는 삶이 보여 주는 것은 개인적 진실보다는 체험과 담론 사이의 유기적 결합이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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