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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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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채 펴 보지 못한 꽃인 것만 같은 이름 김광석. 짧은 생을 살다가 갔고, 그러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김광석은 김광석이라는 이름만으로 울림을 주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가수이다. 그의 목소리는 삶에 지친 현실의 누군가에게 언제나 위로가 되어 주었고, 아마도 훗날의 누군가에게 또 위로를 주고 있을테다. 나는 그가 활동했던 시기를 같이 보내지는 못했다. 그때 나는 고작 어린 아이였던 걸. 하지만 그의 노래는 안다. 그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안다. 그의 노래와 그의 목소리는, 참 따뜻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만든 노래조차 자신의 이야기로 소화해서 부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의 '서른 즈음에'나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모두가 김광석 본인이 쓴 가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모든 이야기는 김광석을 거침으로써 나에게도 와닿는 이야기가 된다. 그의 깊이 있는 목소리는 일반화되지 않은 이야기를 일반화 시켜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는 묘한 마법을 부린다. 노래를 깊숙히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능력,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내 살아생전 또 볼수나 있을런지.

 

 

 

가끔씩 우리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사랑이라 말하지만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거지.

남지 않을 그 무엇이어도 좋다.

우리는 미워하며 사랑을 배우는가.

27쪽. <흐린 마음>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의 끝은

끝없는 관념 속의 바다 그 심연을

오르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다.

118쪽. <심연>

 

 

 

 

<미처 다 하지 못한>이라는 김광석의 에세이는 김광석이라는 사람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책 구석구석, 왜인지 김광석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저 짤막하게 적어놓은 일기와 메모들을 모아 놓았을 뿐인데, 그 글들이 묘한 울림을 준다. 나는 일기에 저렇게 누군가가 읽으면 울림을 받을만한 글들을 쓴 적이 있던가. 괜스레 내 일기와 비교해보게 되면서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의 글들은 불안한 청춘들의 마음이 실려 있다. 아픈 사랑의 상처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실려 있다. 아버지로서 느끼는 감정들도 실려 있고, 늦은 밤 술에 취해 두서없이 던진 말들도 실려 있다. 근데 왜인지 이 책은 김광석의 예의 그의 노래들처럼, 그냥 마음에 와 닿는 바가 크다. 설사 그게 별 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가 적은 글들을 보고 있자니, 그가 너무 일찍 간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의 생각을 잠시나마 들여다 본 것만으로 느껴지는 바가 꽤 있는데, 그가 나이를 먹어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됐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줬을 거란 말인가. 나는 아쉽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 없다는 것이 말이다. 목소리를 들어봤다면 이 글들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렸을 테니 말이다.

 

 

 

 

 

 

 

너를 만난 세상

우연 속에서 잊히지 않는

너의 모습 그리며 우네

긴 세월 흘러간 줄 알았는데

모두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이 밤 또 다가와 내 마음을 울려요

 

꿈처럼 흘러간 줄 알았는데

흔적 모두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지나는 가로수 잎새마다 이슬이

눈물처럼 다가와 마음처럼 흘러요

206-207쪽. <무제 21>

 

 

 

 

책에는 미처 발표되지 못한 미완의 가사들이 실려 있다. 5집을 준비하다 세상을 떠난 그이기에 그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곡과 함께 앨범에 실렸을지도 모를 그런..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가사는 노래의 일부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의 글들은 모두 가삿말 같았다. 피식 웃음 나는 글들도, 툭 던진 말로 생각을 해보게끔 하는 글들도, 미처 완성되지 못한 가사들도 모두 다.

 

조금더 그와 공감할 수 있을 무언가가 있다면 좀 더 깊숙히 내게 다가왔을테지만, 왜인지 겉면만 핥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읽음으로써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인지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만 커져서다. 아쉽다. 좀 더 일찍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면 지금 이 책이 참 소중했을텐데. 아저씨는 왜 그렇게나 젊은 나이에 간거예요, 도대체!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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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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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에도 역시나 내가 선택했던 책이 도착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나 내가 선택한 책들은 채택되지 않는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6개월째라서 그런지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아무런 정보 없이 받아든 최인호 유고집 <눈물>. 따끈따끈하게 도착한 택배박스를 뜯어서 책을 받아들고 첫 책장을 넘겼을 때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첫 장을 넘겼을 때 본 사진이 띠지에 새겨져 있던 묵주여서다. 설마, 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입장은 갖고 있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책이면 아무래도 낯설고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최인호 작가의 글은 읽기 쉽고 편한 글인데,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던 걸 보면 내게는 조금 힘든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모든 상황을 이기고 꽤 진득하게 읽은 <눈물>은, 암선고를 받고 투병하는 기간동안 작가가 편지형식으로 쓴 글이다. 받는 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여러 편의 편지를 통해 구구절절 간절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신앙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생각한게, '뼛속까지 개그맨'을 지칭하는 요즘말 '뼈그맨'이 있듯이 최인호 작가는 '뼈작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글을 쓰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아픈 와중에도 열정을 가지고 소설 하나를 2개월만에 탈고 해 냈으니 말이다. 강한 항암제때문에 손톱과 손가락에 진물이 나와 연필을 잡을 수도 없을만큼 힘들었지만, 손에 골무라도 끼고 집필을 마무리했다던 그의 이야기는 일반 범인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 물론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작가의 글들로 인해 죽음이라는 것도 생각해보게 만들었지만, 그보다 내게 더 많이 다가왔던 것은 '열정'이라는 한 단어였다. 나는 언제 이리도 열정적인 순간이 있었던가, 아니 그보다 먼저 죽는 순간까지도 놓고 싶지 않은, 내가 평생에 이렇게나 열정을 바칠만한 일을 찾을 순간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들로 말이다.

 

많은 이들은 이 책을 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고 한다. 잘 가는 방법, 혹은 이별하는 방법 등등. 하지만 내게 죽음보다 열정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정이라는 단어가 죽음보다 더 가까운 나이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요즘의 무던하고 답답한 상황들에 대한 자기 반성이기 때문에.


아아, 주님. 그래도 난 정말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죽.고.싶.습.니.다. 33

 

천주교의 성서 이야기들과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고백 사이, 제일 와 닿았던 그의 글 한 구절. 죽는 그 순간까지 작가이고 싶었던 그의 열정이, 금새 포기하고마는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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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로 타오르다 - 낡은 슈즈를 들고 찾아간 스페인에서의 1000일, 그리고 플라멩코와의 2000일
오미경 지음 / 조선앤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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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떤 춤인지 잘은 모르겠고, 구체적으로 어떤 춤인지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탱고, 왈츠 등 여타 다른 춤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 춤이 연상되는 반면 플라멩코는 그렇지 않으니, 한국에서는 플라멩코가 작가의 말대로 낯선 장르이다. 모르는 장르여서일까. 이 책의 첫 느낌은 '모르겠다'였다. 그렇지만 제일 먼저 책의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정열적인 빨간색. 띠지를 벗겨내면 온통 빨간색인 책이 나를 반긴다. 책 색깔이 빨간색인 것과 플라멩코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빨간색은 플라멩코를 함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색인 것이다.

책의 첫번째 파트는 플라멩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플라멩코의 A to Z부터 스페인의 어느 곳에서 어떤 플라멩코를 배울 수 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플라멩코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플라멩코를 추면서 느꼈던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두번째 파트는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그 중 대다수는 플라멩코와 연관된 것이지만,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봄직한 '플라멩코 추는 여자의 스페인'이라는 시선이 꽤 신선하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올린 공연에 관한 이야기.

 


작가는 플라멩코와 하나가 된 듯 보였다. 그녀가 쓴 글 모두에는 플라멩코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고, 나처럼 플라멩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플라멩코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알기 쉽게, 이 춤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글을 써 놓았다. 플라멩코의 매력을 도도함으로 표현하지 않고, 플라멩코를 만들고 향유한 집시의 이야기들을 담아 정서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그녀의 정서적인 접근은 플라멩코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큰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집시의 자유로우면서도 한없이 쓸쓸한 느낌이 많이 전해져왔으니까. 직접 보지는 않고 책을 보면서 상상한 것 뿐이지만, 정열적인 춤인 것만은 분명하다.

 

플라멩코와 하나가 된 작가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작가의 모든 사고는 플라멩코로 귀결된다. 그 어떤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더라도 결국에는 플라멩코로 연결되는, 요즘말로 '기-승-전-플라멩코 돋는다'라고나 할까. 이는 작가가 그만큼 자신이 하고 있는 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여전히 스페인의 작은 지방에 있는 스튜디오에 찾아가서 춤을 사사받는 열정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 플라멩코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는, 말은 안되지만 '순수 플라멩코쟁이'.

헤매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 아무것도 찾지 않는 사람은 헤매지도 않는다.
'그래, 그리워만 하느니 한걸음 내디뎌보자.' (43)


플라멩코를 따라 예술혼에 불을 지피기 위해

작은 보따리를 메고 세비야로 모여든 학생들의 하루하루는

땀과 고독을 발효시켜 집시의 예술이라는 술을 빚는 과정의 연속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향기로 이 골목도 취해가겠지. (97)

 


'땀과 고독을 발효시킨다'라는 표현과 마지막의 '언젠가는 우리의 향기로 이 골목도 취해가겠지'라는 말이 와 닿아서 줄을 그어 놓았었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술을 빚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이 단락은, 꽤 깊은 울림이 있었다.

 


모두가 일사불란한 정박자의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엇박자라는 파격과 반항. 그리고 긴장된 세계를 사랑한다. (114)

 

otra vez 오트라베스, 다시.

넘어질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오트라 베스'. 어감도 왠지 마법의 주문 같지 않나요? (177)

 


'오트라 베스'라는 주문같은 단어를 알게 됐다.

작가가 적어놓은 것처럼, 아무일도 없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그런 주문.

감성적인 느낌의 단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게 이 단어가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집시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어떤 한이 있는지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자주 씻김굿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네 '한'의 정서와 닮아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무언가를 털어내고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씻김굿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플라멩코를 춤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플라멩코를 추면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고, 그를 통해서 아픔을 잊는 일련의 과정들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플라멩코와 어울리는 색깔은 붉은색이라고 생각했다. 정열속에 숨어있는 아픔의 정서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린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이 책을 덮으면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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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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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에 대한 퀄리티를 의심않고 거침없이 집어들 수 있는, 나의 신용도 100퍼센트의 작가 정철. 내가 내 믿음 모두를 내어주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다. 나는 그의 '생각의 재기발랄함'이 좋고, '꼬아서 말하기'도 좋고, '어이없는 피식 개그'도 좋다. 카피라이터,라는 그의 직업답게 그의 생각은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고, 그 평범하지 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들에 늘 격하게 공감하고는 한다. 그래서 서평단으로서 책을 선정하라 했을때 제일 먼저 이 책을 꼽아두었다. 마이 페이보릿 (my favorite)이라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작가 정철을 만난 것은 대학생때의 일이다. 그 때의 나는 도서관을 아주 자주 들락거렸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도 자주 갔지만, 보고 싶은 책들을 모두 사서 볼 수 없는 주머니 사정때문에 늘 새로운 신간들은 학교에 신청했다가 입고 되면 제일 먼저 도서관에서 빌려봤었다. 어김없이 신청한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고 향했던 도서관에서, '신간코너' 속 작은 책 한권- <내 머리 사용법>이었다. 그때까지는 내 책읽기는 소설에 한정되어 있었다. 가끔씩은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의 염원을 담아 여행에세이를 보는 정도. 근데 이 책으로 인해서 좋아하는 독서 방향도 한가지 더 생겼다. 새롭고 신선한 시각이 가득한 책. 그래서 카피라이터나 창작활동을 했던 이들의 책들을 보면 다리를 멈추고 꼭 책을 들춰보곤 한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니!

나의 기대감은 최고조였고, 이 책은 내 기대감을 충족하고도 남을만큼의 이야기였다.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

책은 이 물음으로 시작된다. 당신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를 3개만 꼽는다면 어떤 것을 꼽겠냐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선택한 여러가지 단어들이 정철의 생각과 만나 책에 펼쳐져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내준 단어들을 통계내서 제일 많이 선정된 44개의 단어들과 작가가 임의로 선정한 6개의 단어를 합한 총 50개의 단어들의 이야기.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행복, 친구, 사람, 믿음, 우리, 열정, 너, 도전, 지금, 희망, 돈, 건강, 자유, 이름, 추억, 감사, 밥, 아버지, 여유, 웃음, 실패, 재미, 생각, 시작, 책, 마음, 여행, 변화, 다름, 배움, 만남, 일, 다시, 오늘, 왜, 보통, 휴식, 매력, 길 + 그러나, 굳은살, 자식, 술, 스무살, 그냥.

 

 

정철은 설문 결과에 대해 정리해 놓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떻습니까? 동의하십니까? 수긍이 가는 것도 있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단어들을 거울로 놓고 나를 비춰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목적어를 찾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에 말입니다.     - p.14

 

나만의 목적어. 이 단어들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 평생의 모토로 삼을 단어를 고르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책을 다 읽어나간 지금도 단어를 고르기 쉽지 않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일까.

 

 

 

 

 

 

 

가족에 관한 단어들, 자신의 주변에 관한 단어들이 많이 존재한다.

엄마, 아버지, 나, 너, 우리, 가족, 친구, 사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관한 단어들이 순위에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퍽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 엄마.

엄마를 네 글자로 표현하면, 미안해요

열두 글자로 표현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 p.20~21

 

끝까지 아빠라 부르고 싶었떤 사람 아버지.     - p.214

 

우리는 이상하게 '엄마'는 영원히 '엄마'인데 어느순간 '아빠'는 '아버지'가 된다. 엄마와의 거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인데, 아빠와의 거리는 생각만큼 줄지를 않는다. 슬프게도 현재 아빠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아버지 사직서'가 아빠라는 단어의 카테고리에 들어 있다. 읽으면서 여러번 울컥했다. 현실의 아빠들이 느끼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한가득 조곤조곤하게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건 아빠라는 자리를 떠나면서 남기는 마지막 문장. "큰 의미는 없겠지만 한때 아버지라 불린 사람이 너희들 곁에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마음이 팡 터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아래에 손글씨를 적어 두었다. "아빠 딸이어서 행복해"라고 쑥스러워 평소엔 절대 전하지 못할 말을 말이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파트들이 나와 관련된 주변의 것들이라 그렇지 읽다보면 심하게 감정이입을 할 부분들이 꽤 된다. 작가는 별 것 아닌 것들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자물쇠를 여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한순간에 무장해제가 되는 듯 했다. 그게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고..

 

작가는 에세이를 계속 쓸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라서 그렇다고. 사물을 오래 두고 관찰하는 특성상 자신은 눈으로 글을 쓴다고. 눈으로 쓰는 그의 다음 글을 기대하며 다시 한 번 책을 편다. 생각했었으나 읽느라 미뤄뒀던 내 생각들을 조금 적어 넣고, 나도 관찰을 시작한다. 내 인생의 목적어,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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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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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가득 적어뒀던 적개심이 가득한 리뷰를 싹 지워버리고 하얀 메모장에 다시 글을 써 내려간다. 리뷰를 다 써 놓고 나니 '정말 이 책이 그렇게나 남자들에 대해 안좋은 쪽으로 적은 책인가'란 생각이 들었고 내 리뷰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리뷰를 지워버리고 책을 다시 뒤적거렸다. 그래서 아까의 감정과는 한발자국 떨어져서 다른 쪽을 좀 더 들여다 보기로 했다. 분명 작가가 의도한 바가 내가 느낀 적개심은 아닐테니 말이다.

검색을 통해서 작가는 중년의 남성들에 대한 칼럼을 써 두었던 것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러니까, 이 책의 이야기는 모든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또래의 중년 남성에 대한 시선이라는 얘기가 된다.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가 존재했을 때에 이루어진 생각들로 현재를 살아가는 중년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가졌던 적개심을 걷어낼 수 있었다. (21세기의 남자들은 책 속의 이야기와 많이 들어맞지 않아 가졌던 적개심이었으니.)


적개심을 걷어내고 내가 포커스를 맞춘건,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남자들의 어깨에 짊어진 그 책임감이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여자들의 사회진출도 늘어났건만, 아직까지도 남자들에게 가족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요구한다. (똑같은 일례로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났음에도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건 여자에게 요구하는 또 다른 책임감일테다.) 그러나, 남자에게서 그런 책임감의 의무를 없애버리면 남자는 자신의 자존감을 잃어버린다고 '셔터맨'의 예를 통해서 책은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남자는 책임감을 놓을수도 그렇다고 안을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늘 경쟁심리에 내던져 있는 남자들은 경쟁에 관한 한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반응하고 신나하며 특히 자신이 다른이보다 우월하다 느끼기를 좋아한다는 것. 혈연관계라 할지라도 형제에게 느끼는 경쟁심은 끝이 없을 수 있다는 것.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경쟁심이라는 것. 즐겁게 읽었던 건 이런 것들 정도. 


"남녀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한 조언"이라는 책표지의 이야기는 대체로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작가와 나와의 생각차이를 꽤 많이 느꼈다고나 할까. 우리는 여러가지 책을 통해서 찌질하고 슬프고도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왔다. 이 책에서 내가 공감했던 부분들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부분들이었으니까. 남자들 입장에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이 책 속엔 존재하고 그로인해 책의 껄끄러움도 존재한다. 



태어날때부터 남자다움을 강요받았던 지금의 우리 부모님 세대들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부모님들은 하지 않았던 고민을 지금 우리 또래들은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것들을 미리 안다고 해서 얼마나 인생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의 조카들을 위해서 책을 엮었다고 했는데, 그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허나, 단 한가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남자라고 해서 세상이 정해놓은 틀안에 너무 갇혀있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다. 세상이 원하는 그 틀이 버겁다면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다른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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