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로 타오르다 - 낡은 슈즈를 들고 찾아간 스페인에서의 1000일, 그리고 플라멩코와의 2000일
오미경 지음 / 조선앤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떤 춤인지 잘은 모르겠고, 구체적으로 어떤 춤인지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탱고, 왈츠 등 여타 다른 춤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 춤이 연상되는 반면 플라멩코는 그렇지 않으니, 한국에서는 플라멩코가 작가의 말대로 낯선 장르이다. 모르는 장르여서일까. 이 책의 첫 느낌은 '모르겠다'였다. 그렇지만 제일 먼저 책의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정열적인 빨간색. 띠지를 벗겨내면 온통 빨간색인 책이 나를 반긴다. 책 색깔이 빨간색인 것과 플라멩코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빨간색은 플라멩코를 함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색인 것이다.

책의 첫번째 파트는 플라멩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플라멩코의 A to Z부터 스페인의 어느 곳에서 어떤 플라멩코를 배울 수 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플라멩코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플라멩코를 추면서 느꼈던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두번째 파트는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그 중 대다수는 플라멩코와 연관된 것이지만,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봄직한 '플라멩코 추는 여자의 스페인'이라는 시선이 꽤 신선하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올린 공연에 관한 이야기.

 


작가는 플라멩코와 하나가 된 듯 보였다. 그녀가 쓴 글 모두에는 플라멩코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고, 나처럼 플라멩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플라멩코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알기 쉽게, 이 춤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글을 써 놓았다. 플라멩코의 매력을 도도함으로 표현하지 않고, 플라멩코를 만들고 향유한 집시의 이야기들을 담아 정서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그녀의 정서적인 접근은 플라멩코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큰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집시의 자유로우면서도 한없이 쓸쓸한 느낌이 많이 전해져왔으니까. 직접 보지는 않고 책을 보면서 상상한 것 뿐이지만, 정열적인 춤인 것만은 분명하다.

 

플라멩코와 하나가 된 작가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작가의 모든 사고는 플라멩코로 귀결된다. 그 어떤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더라도 결국에는 플라멩코로 연결되는, 요즘말로 '기-승-전-플라멩코 돋는다'라고나 할까. 이는 작가가 그만큼 자신이 하고 있는 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여전히 스페인의 작은 지방에 있는 스튜디오에 찾아가서 춤을 사사받는 열정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 플라멩코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는, 말은 안되지만 '순수 플라멩코쟁이'.

헤매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 아무것도 찾지 않는 사람은 헤매지도 않는다.
'그래, 그리워만 하느니 한걸음 내디뎌보자.' (43)


플라멩코를 따라 예술혼에 불을 지피기 위해

작은 보따리를 메고 세비야로 모여든 학생들의 하루하루는

땀과 고독을 발효시켜 집시의 예술이라는 술을 빚는 과정의 연속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향기로 이 골목도 취해가겠지. (97)

 


'땀과 고독을 발효시킨다'라는 표현과 마지막의 '언젠가는 우리의 향기로 이 골목도 취해가겠지'라는 말이 와 닿아서 줄을 그어 놓았었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술을 빚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이 단락은, 꽤 깊은 울림이 있었다.

 


모두가 일사불란한 정박자의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엇박자라는 파격과 반항. 그리고 긴장된 세계를 사랑한다. (114)

 

otra vez 오트라베스, 다시.

넘어질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오트라 베스'. 어감도 왠지 마법의 주문 같지 않나요? (177)

 


'오트라 베스'라는 주문같은 단어를 알게 됐다.

작가가 적어놓은 것처럼, 아무일도 없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그런 주문.

감성적인 느낌의 단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게 이 단어가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집시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어떤 한이 있는지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자주 씻김굿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네 '한'의 정서와 닮아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무언가를 털어내고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씻김굿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플라멩코를 춤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플라멩코를 추면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고, 그를 통해서 아픔을 잊는 일련의 과정들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플라멩코와 어울리는 색깔은 붉은색이라고 생각했다. 정열속에 숨어있는 아픔의 정서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린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이 책을 덮으면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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