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눈길을 준 사람들 중 열의 아홉은 아마 이 제목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방송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상표'인 빼빼로를 이렇게나 대놓고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더군다나 '빼빼로포비아'라는 빼빼로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인간군상을 만들어냈다는 서평을 보고 책이 궁금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로 인해 만들어진 상상력은 늘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이 책도 기대했는데- 나는 이 책이 조금 어렵다.

 

한나리라는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카페 사장이 빼빼로포비아라면서 민형기라는 의사를 찾아가 상담하는 이야기가 이 책의 첫 부분인데, 알고 보니 이건 현실이 아니라 대학생이 쓰는 소설 속 이야기였다. 소설 속 민형기에게는 이진아라는 주부가 있는데 현실에서는 이진아라는 상담사가 있다.(김만철이라는 남자는 실리칸이라는 외계인을 만난 이야기를 하러 상담실에 간다) 등장인물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이들은 각각의 등장인물로만 끝나지 않는다. 현실이든 만들어진 이야기 속이든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조금만 정신을 놓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읽게 되고,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말 그대로 정신집중!해서 봐야한다는 말이다.

 

실리칸이라는 외계에서 온 존재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김만철, 한나리, 최향기 등의 등장인물들의 성격 뿐만 아니라 실제에도 존재하는 빼빼로포비아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소설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그렇고 뭐 하나 특별히 평범한 것들이 없다. 괴상하고 기상망측하고 정신도 없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소설을 읽다보면 어떤 사람이 진짜인지 또 어떤 이야기가 가짜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모호한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고나 할까.

 

이렇게 불분명한 이야기들을 좋아하지는 않는 스타일이라 책을 덮고 난 후 기분이 묘했다. 뭐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힘을 가진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딱떨어지는 깔끔함을 원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기발한 상상력이 춤을 추는 소설인 것만큼은 분명한 듯 하다. 박생강이라는 작가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엉뚱함을 닮은 소설인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2014년의 마지막이 조금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로였으면 좋겠다 - 최갑수 빈티지트래블, 개정판
최갑수 지음 / 꿈의지도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은 포옹과 같아요."
책의 첫 시작 문장이다. 솔직히 여행이 포옹이라는 의미는 잘은 모르겠지만, 추측해보건대 여행은 포옹처럼 따뜻하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막상 다닐땐 힘들고 고생스러운 기억들이 있더라도 그곳의 바람, 그곳의 햇살, 그곳의 추억들을 담고 원래 있던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것들이 모두 다 따뜻하게 변화되곤 하니까 말이다. 그 따뜻함은 아주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 본 사람은 안다. 힘이 들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여행이라는 따뜻함을- 꿈처럼 아득하지만 깨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꿈 같은 것 말이다. 나에게도 여행을 다녀온 후의 느낌은 '햇볕에 바싹 말라 햇빛 냄새가 나는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느낌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깔끔하고 개운하면서 기분 좋은 느낌이랄까. 여행의 좋은 점이야 구구절절 몇 박 몇 일을 이야기해도 모자랄테니 이 얘기는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사실 첫 문장부터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이 책의 글들은 사람들의 취향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진들은 빛 바랜듯 빈티지스러운 느낌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언제나 느껴왔던건데 빛바램은 묘한 느낌을 준다. 쓸쓸함과 따뜻함의 공존이라고 해야하나.. 색상이 뚜렷한 것들을 찍을 때는 따뜻함을 내뿜고 무채색 계열을 찍을 땐 쓸쓸함을 내보인다. 변화의 폭이 굉장히 다양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사진도 예쁘게 잘 나온다. (이래서 다들 빈티지 빈티지 하나보다.) 이런 빈티지를 찾아내는 작가 또한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것들보다는 그곳에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법한 사물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뷰파인더 속 세상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모퉁이를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모퉁이를 만나면 괜히 어슬렁거린다.
모퉁이를 돌면
내가 간절히 사랑했던, 잊고 있었던, 찾고 싶었던, 만지고 싶었던 당신과 부딪힐 것만 같다.
모퉁이. 당신과 나의 삶이 기적처럼 겹치는 곳.
- 45쪽/모퉁이에서는 멈추고 싶어진다


우리 인생은 저 별빛처럼
애타게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수십만, 혹은 수억 광년의 거리를 훌쩍 날아가려는 시도입니다.
-63쪽/모든 별들이 내게로 향했던 시간


우리는 우리 생이 고달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내일이 되어도 우리 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믿으려 한다. 슬픈 것은 바로 이것이다.
-200쪽/약간의 간절함

 

 

시 같은 짧은 에세이는 여행시 느꼈던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 그 공간에서밖에 느낄 수 없던 이야기들을 내가 그대로 전달받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여행자의 망막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져요. 그가 어떤 풍경 속을 걸어왔는지, 어떤 심정으로 그 풍경 속에 있었는지, 궁금해요. 언젠가는 나도 그 풍경 속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라는 책 속의 이야기처럼, 최갑수 작가의 망막 속으로 들어온 느낌.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작가가 다녀온 여행에 동참해 떠났다 온 것 같다. 터키 케코바와 더블린, 런던과 루앙프라방 등 따뜻한 사람들과 만났고,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자연도 만났다. 수첩에 썼다 찢어버린 이야기들과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하염없이 쌓이는 여행자의 방을 함께 다니며 마음을 뻥 뚫어버릴만큼의 큰 위로를 받지 못할지라도 작가는 괜찮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자신을 통해서 여행의 맛보기만으로도 맛볼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이 누군가에게 그저 새의 발자국처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세상에 다녀오지도 않고 느끼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작은 위로에 자극을 받았다면 직접 가까운 곳 어디라도 떠났다 올 것을 추천한다.
훌쩍 잠시라도 내게 익숙했던 것들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따뜻해지고 머리는 차가워지고 기억에 많이 남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행이 누군가에게 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흔들리지 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박은지 지음 / 강이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축복을 받을 만 하다. 하지만 그런 축복을 받지 못하는 생명들이 있다. 바로 길 위에서 나고 자란 길고양이들이다. '도둑고양이' '요물'이라면서 고양이를 나쁘게 생각했던 시대를 지나, 애묘인들이 늘어나고 고양이에 대한 인식들이 조금은 유해지면서 길거리의 고양이들을 마주함에 있어서 옛날만큼 야박스럽지는 않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칼만큼 날카로운 사람들의 야박함과 잔인함이 존재하고 위험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거리에서의 생활은 길고양이들에게는 녹록치 않다. 새끼 길냥이 2마리를 키워봤던 전력이 있던지라 우리집은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지금은 곁에 노견 한 마리 뿐이지만, 그래서 집 주위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들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를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할 뿐이다.

 

사실 길고양이들의 귀엽고 예쁜 표정을 다룬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나는 그런 책들은 잘 찾아 읽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이하 흔들리지마)도 마찬가지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길 위에서도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장난스럽고 개구진 개냥이들 혹은 도도하고 예쁜 길냥이들의 모습이 담긴 책. 제목이 참 감상적이구나 생각은 했었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넘겼는데, 이 책에는 깔끔하고 예쁜 고양이들이 아닌 길 위에서 지친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동차 바퀴 사이에서 발견한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가 고양이라던가,

길 위에 자기 한 몸 뉘일 수 있음에 만족하는 고양이의 모습이라던가,

누군가의 공간에서 자리잡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까지.

아주 다양한 모습의 고양이들이 등장하지만 총천역색 밝음이 존재하는 모습들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조용하고 처연하며 무언가를 초월한 듯하게도 보이는게 책에 담긴 고양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안쓰러웠다. 근데, 이 고양이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린 작가의 말들이 그 안쓰러움과 쓸쓸함을 배가 시키는 듯 해서 책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그들은 좀처럼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는 일이 없다. 언제든 달아날 수 있도록 한껏 경계하고 있는 눈빛, 얕보이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매순간 맞닥뜨리면 나는 그 단단함에 도리어 속이 상한다. (중략) 상대에게 어떠한 도움도 바라지 않는 마음, 울타리 안에 당신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고집은 결국 기대었다가 상처받지 않겠다는 의지와 다를 바 없다. 기댈 줄 아는 것도 강해지는 것만큼이나 연습이 필요하다. 

ㅡ36쪽/약해지는 연습

 


사랑도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서로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결국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쪽이 상처받고 만다.
ㅡ47쪽/미처 하지 못한 말

 

 

그들은 어쩌면 적절한 사랑의 거리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다움을 지켜보는 것,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것,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거리에서 사랑하는 법을 말이다.
ㅡ95쪽/당신의 것, 혹은 당신의 것이 아닌

 


모두들 거대한 세계를 짊어진 채 나지막한 걸음으로 터덜터덜 걷는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세계는 우리들이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같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행성처럼 가로등 아래마다 세계 하나가 떠돌다 스쳐가고, 또 다른 세계가 다가와 머물다 간다.
ㅡ204쪽/스쳐가는 세계들

 

 

길 위의 고양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하지만 또 그 이야기가 온전히 고양이의 것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묘한 느낌의 책이었다. 고양이였다가 사람이었다가 읽는 내내 마음이 바뀐다. 그리고 내가 읽은 이 느낌이 작가가 의도한 느낌인 것 같았다. 작가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사람과 길고양이가 서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길 위의 고양이만큼이나 외롭고 아픈게 사람이란 뜻일테다. 그러니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할 테고. 내가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봤다고 빗자루를 들고 쫓아가서 휘두르며 내쫓는 그런 거 말고, 고양이가 사람에게 가까이 오거들랑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따지고 보면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 아니니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서로 외로우니까.

 


늦은 밤 집에 가던 길 발견한 고양이 한 마리가 곁에 있음으로 해서 그 고양이가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기분. 이 어둡고 무서운 거리에 나 혼자 있지 않음을 위로받는 기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겠지- 이렇게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날이 오길 나는 바라고 있다. 캣맘 캣대디들이 늘고 있단다. 이렇게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므로, 고양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스민, 어디로 가니?
김병종 글.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래도 노령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보면 어쩔 수 없이 끝을 생각하게 된다. 점점 사물을 잘 못 보고, 소리도 잘 못 듣고,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던 녀석이 차츰 걷는 게 느려지고 반응이 무뎌지고, 잠이 더 많아진다. 앞으로 얼마나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마음을 매번 다잡지만, 우리집 노령견 '똘이할배'를 보면 노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오랜시간 함께 있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누군가의 책이 보이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떠나갈 것을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보다는 떠나간 녀석의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우는 지가 궁금해서랄까. 동병상련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자스민 어디로 가니?> 속 자스민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작가인 김병종은 이미 세상에 없는 자스민을 생각하면서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은 자스민에게 보내는 편지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절필을 선언했던 그가 마음을 돌려 글을 쓰고 싶었다고 이야기한 것부터가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자신도 자스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힘겹게 고백하는 듯 했다. 떠난 지 3개월이면 무엇이든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쉽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던 녀석을 떠나보내기엔 함께 한 세월과 추억들이 너무도 많아서 말이다. 아마도 1년이 지난 어느날에도 문득 생각이 날 테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무심코 의자 아래를 보는 경우가 있다. 거기 늘 앉아 있던 녀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한 줄기 엷은 바람 같은 것이 가슴으로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역시 늦은 밤 거실 탁자에 혼자 나와 앚아 와인을 조금 마실 때 치즈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다가 탁자 아래 발치 쪽을 무심코 보는 때도 있다. ....없구나, 하고 확인할 때면 역시 가볍긴 해도 바람 한 줄기가 탁자에서 가슴으로 휘익 불어온다.

 

책은 내 생각과는 달리 자스민과 행복했던 기억들로 주를 이뤘다. 작가는 자스민으로 인해 어린시절의 추억에도 놀러 갔다, 잠시 현실을 잊기도 했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스민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어느 집이나 있는 투닥거림은 애교로 봐주자면 말이다.) 그러다 자스민이 온 지 15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의 "잘 가라 자스민"이 여섯 글자를 보면서는 대성통곡을 했다. 우리집 똘이할배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나 서러웠다. 자신과 유대가 강했던 작가의 둘째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 사이 하늘로 가버렸기에 둘째 아들 방을 보면서 눈을 감지 못했다던 이야기가 비단 남 이야기 같지만은 않아서다.

 

대체 나고 죽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 있는 것의 소멸은 왜 이다지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으로 남는 것인가.

자스민, 얼어붙은 땅으로 내려가는 너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꽃 피는 새봄이 와도 돌아올 수 없는 너,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 너.

잘 가라, 자스민.

 

이 부분은 몇 번을 봐도 울컥한다. 이 짧은 글을 옮겨적는 와중에도 눈물이 떨어진다. 이건 아마 노령견을 키우고 있는 누구나가 느낄 감정-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에 대한 슬픔 혹은 그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위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절절하게 적은 책은 아니지만 사랑받고 있던 자스민을 보던 기분은 썩 괜찮았다. 이 녀석은 사랑받고 있으니 잘 되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우리 똘이할배는 언제쯤 내 곁을 떠나게 될까 생각해보면 또 슬프다. 할배도 우리 곁에 온지 13년이 넘었다. 아직까지 왈왈거리며 짖는 목청이 여전한 걸 보면 뜬뜬함은 어떤 개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아 안도가 되지만, 할배가 떠난 뒤 겪을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가끔씩 할배가 잠을 잘못자서 다리만 절어도 가슴이 철렁하곤 하니까 말이다.

 

나는 작가처럼 이렇게나 담담하게 떠나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언제까지나 내 옆에 머물러줬으면...하는 생각만 하고 싶다. 왜 <TV 동물농장> 같은데 보면 나오는 25년동안 건강하게 살고 있는 반려견들의 이야기도 있으니까. 조금더 곁에 머물러줬으면 하는 마음, 계속 내 가족이었으면 하는 마음. 너는 알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의 발견
곽정은 지음 / 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곽정은'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섹스칼럼니스트 연애칼럼니스트라는 낯선 직함을 달고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데다, 날카로운 눈매와 함께 쎈언니 같아 보이는 분위기 때문에 처음에는 꽤 날카로운 인상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때는 마치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인양 들리게 하는 말을 잘 하는 사람, 그리고 묘하게 설득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릴줄도 알고, 좋아하는 배우 옆에 앉으면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면서, MC들의 짓궂은 장난에 당황하는 기색도 역력한 사람다운 사람이란 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느낄 수 있다.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사연을 보낸 여자의 마음에 감정이입해서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기도 하는 그녀의 인간다운 면을 말이다.

 

전작 <내 사람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상대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트윗으로 알고 있었다. 새로운 책은 어떤 책일까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책은 꽤 빨리 세상에 나왔고 <혼자의 발견>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전작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직업과는 묘하게 반하는 제목이라 눈이 갔다. 깔끔한 표지 덕분에 눈이 더 갔기도 했고-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롯이 나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까? 어떤 만남이 좋을까? 이런 남자면 좋은걸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소소한 소망이나 바람을 적어놓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라서 보다보면 그녀의 의견에 동의를 할 때도 있고 책의 어느 한 켠에는 마음에 드는 말들도 있다.

 

연애에 대한 조언이 무의미한 이유는

결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기 때문.

ㅡ안들려요

 

인생은 배를 타고 강을 흘러내려가는 것. 혼자서 배를 저을 때는 그저 무섭게만 느껴지던 기암절벽이 등뒤에 누군가를 태운 순간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것. 혼자서 배를 저어갈 때는 왼쪽 길을 택했을지라도 둘이서 배를 탔다면 오른쪽 길을 택하게 되는 것. 어쩌면 결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

ㅡ이색 데이트 中

 

뭐 이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결론적으로 난 정말 썸이란 말이 싫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미적거리는 것이 트렌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재채기처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져나와버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촌스러운 듯 여겨지는 것이 우습다. 무엇보다, 썸이란 단어 뒤에 숨어서 무엇도 감당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싫다. 줄곧 썸만 타는 사람보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타버릴 때 타버리더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는 일은 그 자체로 그저, 사람답다.

ㅡ상처받는 것이 두려운가요? 中

 

이런식으로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을 때의 폭풍 공감이라던가.

(진짜 썸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아서 -물론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맥락은 같다- 속이 다 후련했다.)

 

어쩌면 외로움도 진짜 외로움과 가짜 외로움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 외로움을 덤덤하게 받아들여본다면

어쩌면 외로움을 가장한 분노와 같은 다른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ㅡ가짜 배고픔 中

 

여럿에게 관심 받아도 배고팠던 이십대를 지나

둘이어서 행복한 삼십대를 보내고 있다.

혼자여도 충만한 사십대였으면 한다.

ㅡ바람

 

여자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생각한 자신의 생각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전보다 짧아진 글로 책을 읽어내는 호흡은 빠르지만 내용면에서 예전책이 더 좋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건, 지난 시간동안 더해진 내공이라던가 그런 건 차치하더라도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짧은 글에서 빈 여백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건 아는 사람들은 아는 거니까. 물론 여백들이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곽정은만이 가진 날카로움과 직설적인 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섹스에 대해서 가감없이 과감하고 입 밖으로 내기가 부끄러운 것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여백이 많은 공간에서 여린 그녀의 면이 보인다고 직설적 그녀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닐테니. 이런 그녀가 전하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주변 이야기, 결국 사람 이야기. 그것은 이해가 되기도 새롭기도 심지어는 낯설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기분 좋은 공감으로 이어진다. 쉽게 읽히지만 그게 또 기분이 나쁘지 않으니 이 어찌 좋지 않으랴.

 

'혼자'라는 단어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둘'이라는 관계를 잘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시작부터 그랬다. 책을 읽기 전에 느꼈던 제목의 의아함은 책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제목의 '혼자'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이 쓸쓸함 혹은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말이다. 자신을 더 잘 알아서 더 행복하기 위한 것이 '혼자의 발견'이니 나도 나를 좀 더 잘 알아보기 위한 '혼자의 발견'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일단 적보다 나를 먼저 알아봐야겠다.

나에게 아직 적이 누군지 명확하지 않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