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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박은지 지음 / 강이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축복을 받을 만 하다. 하지만 그런 축복을 받지 못하는 생명들이 있다. 바로 길 위에서 나고 자란 길고양이들이다. '도둑고양이' '요물'이라면서 고양이를 나쁘게 생각했던 시대를 지나, 애묘인들이 늘어나고 고양이에 대한 인식들이 조금은 유해지면서 길거리의 고양이들을 마주함에 있어서 옛날만큼 야박스럽지는 않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칼만큼 날카로운 사람들의 야박함과 잔인함이 존재하고 위험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거리에서의 생활은 길고양이들에게는 녹록치 않다. 새끼 길냥이 2마리를 키워봤던 전력이 있던지라 우리집은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지금은 곁에 노견 한 마리 뿐이지만, 그래서 집 주위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들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를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할 뿐이다.
사실 길고양이들의 귀엽고 예쁜 표정을 다룬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나는 그런 책들은 잘 찾아 읽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이하 흔들리지마)도 마찬가지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길 위에서도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장난스럽고 개구진 개냥이들 혹은 도도하고 예쁜 길냥이들의 모습이 담긴 책. 제목이 참 감상적이구나 생각은 했었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넘겼는데, 이 책에는 깔끔하고 예쁜 고양이들이 아닌 길 위에서 지친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동차 바퀴 사이에서 발견한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가 고양이라던가,
길 위에 자기 한 몸 뉘일 수 있음에 만족하는 고양이의 모습이라던가,
누군가의 공간에서 자리잡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까지.
아주 다양한 모습의 고양이들이 등장하지만 총천역색 밝음이 존재하는 모습들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조용하고 처연하며 무언가를 초월한 듯하게도 보이는게 책에 담긴 고양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안쓰러웠다. 근데, 이 고양이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린 작가의 말들이 그 안쓰러움과 쓸쓸함을 배가 시키는 듯 해서 책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그들은 좀처럼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는 일이 없다. 언제든 달아날 수 있도록 한껏 경계하고 있는 눈빛, 얕보이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매순간 맞닥뜨리면 나는 그 단단함에 도리어 속이 상한다. (중략) 상대에게 어떠한 도움도 바라지 않는 마음, 울타리 안에 당신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고집은 결국 기대었다가 상처받지 않겠다는 의지와 다를 바 없다. 기댈 줄 아는 것도 강해지는 것만큼이나 연습이 필요하다.
ㅡ36쪽/약해지는 연습
사랑도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서로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결국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쪽이 상처받고 만다.
ㅡ47쪽/미처 하지 못한 말
그들은 어쩌면 적절한 사랑의 거리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다움을 지켜보는 것,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것,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거리에서 사랑하는 법을 말이다.
ㅡ95쪽/당신의 것, 혹은 당신의 것이 아닌
모두들 거대한 세계를 짊어진 채 나지막한 걸음으로 터덜터덜 걷는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세계는 우리들이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같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행성처럼 가로등 아래마다 세계 하나가 떠돌다 스쳐가고, 또 다른 세계가 다가와 머물다 간다.
ㅡ204쪽/스쳐가는 세계들
길 위의 고양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하지만 또 그 이야기가 온전히 고양이의 것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묘한 느낌의 책이었다. 고양이였다가 사람이었다가 읽는 내내 마음이 바뀐다. 그리고 내가 읽은 이 느낌이 작가가 의도한 느낌인 것 같았다. 작가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사람과 길고양이가 서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길 위의 고양이만큼이나 외롭고 아픈게 사람이란 뜻일테다. 그러니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할 테고. 내가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봤다고 빗자루를 들고 쫓아가서 휘두르며 내쫓는 그런 거 말고, 고양이가 사람에게 가까이 오거들랑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따지고 보면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 아니니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서로 외로우니까.
늦은 밤 집에 가던 길 발견한 고양이 한 마리가 곁에 있음으로 해서 그 고양이가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기분. 이 어둡고 무서운 거리에 나 혼자 있지 않음을 위로받는 기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겠지- 이렇게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날이 오길 나는 바라고 있다. 캣맘 캣대디들이 늘고 있단다. 이렇게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므로, 고양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