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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발견
곽정은 지음 / 달 / 2014년 12월
평점 :
'곽정은'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섹스칼럼니스트 연애칼럼니스트라는 낯선 직함을 달고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데다, 날카로운 눈매와 함께 쎈언니 같아 보이는 분위기 때문에 처음에는 꽤 날카로운 인상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때는 마치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인양 들리게 하는 말을 잘 하는 사람, 그리고 묘하게 설득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릴줄도 알고, 좋아하는 배우 옆에 앉으면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면서,
MC들의 짓궂은 장난에 당황하는 기색도 역력한 사람다운 사람이란 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느낄 수 있다.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사연을 보낸
여자의 마음에 감정이입해서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기도 하는 그녀의 인간다운 면을 말이다.
전작 <내
사람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상대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트윗으로 알고 있었다. 새로운 책은 어떤 책일까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책은 꽤 빨리 세상에 나왔고 <혼자의 발견>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전작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직업과는 묘하게 반하는 제목이라 눈이 갔다. 깔끔한 표지 덕분에 눈이 더 갔기도 했고-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롯이 나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까? 어떤 만남이 좋을까? 이런 남자면 좋은걸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소소한 소망이나 바람을 적어놓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라서 보다보면 그녀의 의견에 동의를 할 때도 있고 책의 어느 한 켠에는 마음에 드는 말들도
있다.
연애에 대한 조언이 무의미한 이유는
결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기 때문.
ㅡ안들려요
인생은 배를 타고 강을 흘러내려가는 것. 혼자서 배를 저을 때는 그저
무섭게만 느껴지던 기암절벽이 등뒤에 누군가를 태운 순간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것. 혼자서 배를 저어갈 때는 왼쪽 길을 택했을지라도
둘이서 배를 탔다면 오른쪽 길을 택하게 되는 것. 어쩌면 결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
ㅡ이색 데이트 中
뭐 이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결론적으로 난 정말 썸이란 말이 싫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미적거리는
것이 트렌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재채기처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져나와버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촌스러운 듯 여겨지는 것이 우습다.
무엇보다, 썸이란 단어 뒤에 숨어서 무엇도 감당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싫다. 줄곧 썸만 타는 사람보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타버릴 때
타버리더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는 일은 그 자체로 그저, 사람답다.
ㅡ상처받는 것이 두려운가요? 中
이런식으로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을 때의 폭풍 공감이라던가.
(진짜 썸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아서 -물론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맥락은 같다- 속이 다 후련했다.)
어쩌면 외로움도 진짜 외로움과 가짜 외로움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 외로움을 덤덤하게 받아들여본다면
어쩌면 외로움을 가장한 분노와 같은 다른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ㅡ가짜 배고픔 中
여럿에게 관심 받아도 배고팠던 이십대를 지나
둘이어서 행복한 삼십대를 보내고 있다.
혼자여도 충만한 사십대였으면 한다.
ㅡ바람
여자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생각한 자신의 생각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전보다 짧아진 글로 책을
읽어내는 호흡은 빠르지만 내용면에서 예전책이 더 좋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건, 지난 시간동안 더해진 내공이라던가 그런 건 차치하더라도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짧은 글에서 빈 여백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건 아는 사람들은 아는 거니까. 물론 여백들이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곽정은만이 가진 날카로움과 직설적인 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섹스에 대해서 가감없이 과감하고 입 밖으로 내기가
부끄러운 것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여백이 많은 공간에서 여린 그녀의 면이 보인다고 직설적 그녀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닐테니. 이런 그녀가
전하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주변 이야기, 결국 사람 이야기. 그것은 이해가 되기도 새롭기도 심지어는 낯설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기분
좋은 공감으로 이어진다. 쉽게 읽히지만 그게 또 기분이 나쁘지 않으니 이 어찌 좋지 않으랴.
'혼자'라는 단어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둘'이라는 관계를 잘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시작부터 그랬다. 책을 읽기 전에 느꼈던 제목의 의아함은 책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제목의
'혼자'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이 쓸쓸함 혹은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말이다. 자신을 더 잘 알아서 더 행복하기 위한 것이 '혼자의
발견'이니 나도 나를 좀 더 잘 알아보기 위한 '혼자의 발견'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일단 적보다 나를 먼저 알아봐야겠다.
나에게 아직 적이 누군지
명확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