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였으면 좋겠다 - 최갑수 빈티지트래블, 개정판
최갑수 지음 / 꿈의지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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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포옹과 같아요."
책의 첫 시작 문장이다. 솔직히 여행이 포옹이라는 의미는 잘은 모르겠지만, 추측해보건대 여행은 포옹처럼 따뜻하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막상 다닐땐 힘들고 고생스러운 기억들이 있더라도 그곳의 바람, 그곳의 햇살, 그곳의 추억들을 담고 원래 있던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것들이 모두 다 따뜻하게 변화되곤 하니까 말이다. 그 따뜻함은 아주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 본 사람은 안다. 힘이 들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여행이라는 따뜻함을- 꿈처럼 아득하지만 깨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꿈 같은 것 말이다. 나에게도 여행을 다녀온 후의 느낌은 '햇볕에 바싹 말라 햇빛 냄새가 나는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느낌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깔끔하고 개운하면서 기분 좋은 느낌이랄까. 여행의 좋은 점이야 구구절절 몇 박 몇 일을 이야기해도 모자랄테니 이 얘기는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사실 첫 문장부터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이 책의 글들은 사람들의 취향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진들은 빛 바랜듯 빈티지스러운 느낌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언제나 느껴왔던건데 빛바램은 묘한 느낌을 준다. 쓸쓸함과 따뜻함의 공존이라고 해야하나.. 색상이 뚜렷한 것들을 찍을 때는 따뜻함을 내뿜고 무채색 계열을 찍을 땐 쓸쓸함을 내보인다. 변화의 폭이 굉장히 다양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사진도 예쁘게 잘 나온다. (이래서 다들 빈티지 빈티지 하나보다.) 이런 빈티지를 찾아내는 작가 또한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것들보다는 그곳에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법한 사물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뷰파인더 속 세상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모퉁이를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모퉁이를 만나면 괜히 어슬렁거린다.
모퉁이를 돌면
내가 간절히 사랑했던, 잊고 있었던, 찾고 싶었던, 만지고 싶었던 당신과 부딪힐 것만 같다.
모퉁이. 당신과 나의 삶이 기적처럼 겹치는 곳.
- 45쪽/모퉁이에서는 멈추고 싶어진다


우리 인생은 저 별빛처럼
애타게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수십만, 혹은 수억 광년의 거리를 훌쩍 날아가려는 시도입니다.
-63쪽/모든 별들이 내게로 향했던 시간


우리는 우리 생이 고달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내일이 되어도 우리 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믿으려 한다. 슬픈 것은 바로 이것이다.
-200쪽/약간의 간절함

 

 

시 같은 짧은 에세이는 여행시 느꼈던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 그 공간에서밖에 느낄 수 없던 이야기들을 내가 그대로 전달받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여행자의 망막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져요. 그가 어떤 풍경 속을 걸어왔는지, 어떤 심정으로 그 풍경 속에 있었는지, 궁금해요. 언젠가는 나도 그 풍경 속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라는 책 속의 이야기처럼, 최갑수 작가의 망막 속으로 들어온 느낌.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작가가 다녀온 여행에 동참해 떠났다 온 것 같다. 터키 케코바와 더블린, 런던과 루앙프라방 등 따뜻한 사람들과 만났고,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자연도 만났다. 수첩에 썼다 찢어버린 이야기들과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하염없이 쌓이는 여행자의 방을 함께 다니며 마음을 뻥 뚫어버릴만큼의 큰 위로를 받지 못할지라도 작가는 괜찮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자신을 통해서 여행의 맛보기만으로도 맛볼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이 누군가에게 그저 새의 발자국처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세상에 다녀오지도 않고 느끼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작은 위로에 자극을 받았다면 직접 가까운 곳 어디라도 떠났다 올 것을 추천한다.
훌쩍 잠시라도 내게 익숙했던 것들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따뜻해지고 머리는 차가워지고 기억에 많이 남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행이 누군가에게 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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