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바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알바를 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또한 어른들 사이에서도 '알바'란 단어는 참 흔하게 쓰인다. 그래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알바'라는 단어가 심심하지 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그만큼 '알바'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있는만큼 쉽게 내쳐질 수 있는 자리. 책임감을 원하지만 책임감을 갖기 힘든 자리. 그 자리가 힘들다는 걸 뻔히 알지만 막상 내가 아닌 다른 이가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할 땐 독하게 굴기도 하는 자리. 알바는 그런 자리다. 그런 '알바'가 제목으로 내세워진 소설책이 나왔다고 해서 흥미를 가지고 지켜봤다. '알바 패밀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만큼이나 <알바 패밀리> 속의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민, 로라 남매는 학자금 대출로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이자를 걱정하며 알바를 한다. "내 나이 스물 세 살, 전 재산 9820원. 어제 현금 인출기 앞에서 180원 때문에 절망했다"(p.102)고 이야기하는 로민에게 어쩌면 알바는 당연한 선택이다. 아빠는 '호두가구'라는 자신이 운영하던 가구점이 망하게 된 시점부터 가족들 몰래 알바를 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빠가 '호두가구'를 살리려 동분서주할 때부터 집을 위해 가족을 위해 시간제 마트 알바를 시작했다. <알바 패밀리>의 알바는 꽤 치열했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자꾸 일이 꼬이기만 한다.


요즘같이 좋지 않은 경기에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알바를 구하러 다닌다.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퇴직 후 할 일을 찾아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알바 전선에 뛰어든다. 엄마들은 조금이라도 집안에 보탬이 될 거리를 찾아 알바를 찾아 나서고, 취직을 하지 못한 취업 준비생과 수많은 백수 백조들 또한 알바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한다. 사실, 온 가족이 알바를 하는 집이 드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퇴직한 아빠들이 모두 퇴직 후 편하게 놀러 다닐만큼 연금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높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지 못한 아빠들은 어쩔 수 없이 알바를 찾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가족이 모두 시간제 알바로 연명하는 삶이 좀 과장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p.227)라고 평한 작품해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여 놓긴 했지만, 일가족 모두 시간제 알바로 연명하는 집이 없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알바 패밀리>의 집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집은 누구나의 예상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알바 구직 사이트 CF의 '이런 시급'이라는 말이 욕처럼 표현된 건 웃프지만 꽤 사실적이다. 물론 소설 속에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일반적인 상황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고군부투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또 부정하기 힘든 면이 있다. 이 책 <알바 패밀리>는 그런 알바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알바의 단점을 담았다기엔 그 강도가 세지 않지만, 그래도 알바가 당하는 모습을 조금을 살펴볼 수 있다. (적어도 알바비를 밀렸다거나 하는 류의 에피소드는 나오지 않으니 아주 보편적인 단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들의 이상한 행동들과 이상한 우연, 그리고 일어나는 일들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지만 이해가 되는 게 더 서글퍼졌다. 왜 이들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작가의 시선에 자조적인 웃음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긍정적인 마음을 이야기 한다. "사는 게 원래 굴곡이 있는 거야.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거란다. 우리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보면 안 될까?" (p.162) 라고 말이다. 희망을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만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엄마는 오르막이 있을거라 굳게 믿으며 알바를 한다. 나는 이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마냥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 좀 많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면, 당연히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간다. 나는 이런 책을 읽는데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읽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는 이에게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도 싶어진다. 책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높아지고 그와 비례해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누군가의 '서재'에 관한 책이 나오면 한 번씩은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책을 보다보니 작년 14기 신간평가단에서 읽었던 <장서의 괴로움>이 생각났다. <책이 좀 많습니다>와 <장서의 괴로움>은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책이 왜 이렇게 많은지에 대해 질문하는 그런 점들이 참 비슷하다. 자연스럽게 두 책이 연관지어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장서의 괴로움>은 반어법을 사용해서 애서가들을 소개하는 반면, <책이 좀 많습니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조금은 별난 듯 책을 많이 갖고 있음을 멋쩍어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제목과 내용의 뉘앙스가 어떻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중요한건 이 두 권의 책에는 모두 '책쟁이'들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서재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찌보면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보고 싶지 않은 책은 어떡해서든 처리를 하게 될테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고 쓸모없는 책은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해서라도 그런 책은 미리 정리를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집에 있는 책들은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란 얘기다.

 

책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딱딱하고 네모난 책의 매력을 물으면 말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글자와 종이로 만든 단순한 물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와 다른 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책은 웬만하면 사서 보려고 한다던 사람이나, 아예 사고 싶은 모든 책을 살 수 없을 바에야 아예 책을 사지 않는다던 사람이나, 밑줄을 긋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나 밑줄을 긋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나. 책을 접어두는 사람 메모지를 붙여놓는 사람. 책에 대한 여러가지 습관만 적어도 한 챕터는 될 법한, 사람 특성마다 각기 다른 습관들에 눈이 갔다. 나랑 다른 점을 찾는다기 보다는 또 어떤 습관들을 갖고 있나 궁금해져서랄까. 책에 관한 습관에 관한 얘기들이 따로 생각이 난 건,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여러가지 습관들을 보고 나니 요것도 참 재미있다 느껴졌다. 아니, 난 그냥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책쟁이'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르게 살지만, 그 이름을 하나로 모아 '삶'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위인전이나 평전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노벨상이나 막사이사이상을 받지 않았어도 한 사람의 삶은 소중하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한마음으로 인정하고 모든 사람을 연인처럼 사랑하며 살 때,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작가의 에필로그에 쓴 말처럼, 모든 인생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인생 하나하나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그려진 책 한 권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 인생을 그들이 읽는 혹은 좋아하는 책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더군다나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만의 리스트를 갖고 있는 진정한 '책쟁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언제쯤 이들처럼 '나의 책 리스트'에 확신을 갖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책쟁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 알라딘 공식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보면서 또 엄청 울겠구나, 너무나 당연한 생각을 하고 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울어서 책을 여러 번 덮었다. 한 번 책을 보면 끊지 않고 다 읽는 게 평소의 습관이자 스타일이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미 1년이 다 되어가는 이 이야기들이, 이제는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하면 안되겠느냐"란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지금에도, 읽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이라서다.

 

나는 지난 4월 16일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문득문득 기억이 날 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뉴스를 즐겨보는 아빠 덕분에 나는 늘 BGM으로 뉴스를 듣곤 하는데,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뉴스에 속보가 계속 떴고, 나는 그 얘기를 트위터에 적었다. 그때까진 일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전원구조 소식이 나올 때라서 "즐거운 수학여행이 악몽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트위터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고, 그 후엔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민국 전체가 상가집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이 이야기를 쓰면 이렇게나 참 간단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시간은 더디게도 흘렀고, 그 더딘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답답함이 하늘을 치솟았고, 날씨마저 마음처럼 맑지 않았고, 물살 또한 거셌다. 물 속에서 건져낸 아이들의 소지품 속에서 동영상들이 발견될 때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실망과 함께 울기도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새삼스럽다고 느껴지지만, 책을 읽다보니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시작은 4월 16일부터였고, 책 속에 소개된 학부모님들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날도 그 날부터였으니 말이다.

 

모든 이야기에서 눈물을 쏟았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가득 차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으니 책을 읽는 것이 곤욕스럽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직접 듣고 정리한 '작가기록단'들은 또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눈물을 삼켰을까.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구요.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도 있을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책에는 처음에는 그저 울기만 하던 부모들이 거리로 국회로 방송국으로 따라 다니면서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240일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결코 짧지 않은 240일동안 부모들의 입장은 많이 변했다. 누구는 자식을 위해 앞에 나서 싸워야 했고, 흐지부지 묻혀버린 사고 원인 파악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쫓아 다녀야했다. 정부는 세월호 사건에서 눈을 뗀 지 오래고, 설상가상 유가족의 폭력 사건까지 겹쳐 이제는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의 실상을 그들의 육성을 통해 그대로 전달한다. 자신들이 실망한 이유와 꿈에도 자꾸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과 옛날 이야기와 못 해 준 이야기 잘 해 준 이야기. 이야기 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모자라다.

 

문득 책을 읽다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들의 자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의 모든 부모들은 '과거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 말이다. 과거형으로 더이상 보고 만질 수 없는 아들 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슬픔을 형언할 수 없어 지칭하는 말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그들은 과거형인 자신의 아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야기 한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관계들이 언젠가는 다시 이어지는구나.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어요."라고. 한 사람의 온기가 자신들에게는 많이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 하면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 하는데, 과연 우리가 '지겹다'고 이야기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외면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나의 힘은 되어주지 못할지라도, 다음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책은 결코 세월호에 스러져간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한 기록이 아니다. 후세에게 알리고 길이길이 기억되어야 할 '사람의 잘못'을 기록한 것이다. 보는 동안은 슬펐지만 그리고 보고 나서도 후련해지는 것은 없었지만,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얼만큼 아팠는지를 보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초기의 잘못된 대응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처절하게 반성하며 고쳐내야 하고, 조금이나마 관심을 이들에게 두면서 그 관심을 끊지 않는 것.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또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는 부모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가 보고 싶거든 -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를 기다리는 한 소년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소년의 친구로 보이는 강아지도 한 마리 있다.
어떻게 하면 고래를 볼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소년은 그래도 기다린다, '고래'를 말이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 '기다림'의 시간에 당신은 무얼 했는가.
이 책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고래를 기다리고 있는 소년에게 '고래를 만나려면 무얼 하지 말아야 해'라고 일러스트 속 소년에게 타이르는 듯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어떻게 하면 고래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임과 동시에 '고래를 만나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 말란 것들 투성이어서 어른의 시각으로 보기에 "뭐 고래를 만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 고래를 만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생각해 보면, 2013년에 만들어진 이 책은 (원작은 2013년에 출간됐다.) 고래쯤은 아쿠아리움 같은 데서 꽤나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에서 나온 책이다. 그런데도 소년은 고래를 보고 싶어한다. 방점은 여기에 찍힌다.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소년'.


'고래'를 보는 거라면 현재는 어디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정말 바다에 나아가 직접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소년이라면, 이야기는 180도 바뀐다. 고래는 영물에 속한다. 그 모습을 사람에게 쉬이 내보이지 않는 특성 탓에 살아있는 고래를 직접 바다에서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극소수가 아닐까.) 누가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처럼 '고래'를 보기 위한 순간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고래가 나타날 때에 그 고래가 있는 바다를 쳐다보는 타이밍.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할 것들이 참 많다.

 

 

 


우선 창문과 바다가 있어야 하고,
조금은 불편한 의자와 적당히 추운 담요도 필요하다.

마음을 뺏길만 한 장미, 하늘 구름, 펠리컨 등에게는 조금 쌀쌀맞아져야 한다.
고래 대신 얘네들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래'에는 다른 것들을 넣어 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바라는 그 '무언가'. 그것은 원대한 '꿈'일 수도, 눈 앞의 '작은 목표'일 수도, '생물'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고래'의 숨은 뜻은 '무언가'를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사랑을 기다리던, 꿈을 기다리던 모든 '바람'에는 기다림이 필수로 따라다닌다. 기다림이 길수록 힘들어지겠으나 마지막에 얻는 과일은 달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건,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무엇에 대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 지친다고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고래를 기다리는 책 속의 소년처럼 말이다.

 

 

 


결국, 작가는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볼 어린 아이들에게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기다림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가질 수 있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은 오히려 낯선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설렘'을 작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기다림'과 '설렘'은 같이 존재하는 단어고, 그 기분들이 사람을 얼마나 흥분되고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건지를 말이다. 또한 그렇게 기다려서 얻은 것들은 무엇보다 값지고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처음에는 엄청나게 마음에 쏙 드는 일러스트가 눈을 사로잡았다면, 책을 점점 읽을 수록 책 속의 내용들이 많이 와 닿은 책이다. 한 번 읽을 때보다 두 번 읽을 때가, 2번보다는 3번 읽을 때가 더 좋은, 자꾸 내용을 곱씹어보게 되는 책이다. 비단 아이들에게만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의미를 던지는 책.


전 세계적인 작가의 위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을 사는 힘든 젊은 세대들에게, '고래'를 볼 수 없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라고. 기다리다보면 '고래'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힘들다고 '기다림'의 '설렘'을 잊지는 말고, '고래'까지 도달하기 위해 여기 저기 들러 갈 때 그곳에 주저 앉아 스스로 합리화 하지 말라고 말이다. 틀린 말이 없는데도 선뜻 동의하기 힘든 건 아마도 고래를 보기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이 짧은 위로가 기나긴 그 누구의 위로보다 와 닿는 건 과연 어떤 힘 때문인걸까.

 

 

 


소년은 결국 고래를 만났을까? 아니, 나는 고래를 만날 수 있을까.
자꾸 읽고 싶어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막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그래서 계속 옆에 두고 한 번씩 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서도 나온지 얼마 안되는 근간,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로 마스다미리 공감단 6기의 활동을 하게 됐다. 이 책은 40살 딸과 69살 엄마, 70살 아빠가 함께 사는 집의 이야기. 말 그대로 평균 연령이 60살인 집의 이야기다. 작가는 고령화, 비혼, 만혼, 저출산 등의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쭈욱 나열해 보다가 '사와무라 씨 집'을 떠올렸다고 한다. 나이가 많은 미혼의 딸과 함께 사는 정년 퇴직한 아빠와 주부인 엄마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 어느 곳에서도 불안함이나 조급함은 없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일상을 재미있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 앞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왜인지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으로 말이다. 

 

가만히 따져보니까, 내 나이가 40이 되면 우리 엄마 나이가 69살쯤 된다. 그리고 아빠 나이는 76살. 만약에 내가 40에도 독립하지 않고 엄마 아빠와 같이 살게 된다면 우리집도 사와무라 씨 집처럼 저런 풍경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평균 연령은 사와무라 씨 집보다는 좀 더 올라갈 테지만 말이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아직까지는 없으므로 아마 히토미 씨(극 중의 딸)처럼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낯설지가 않다. 잔소리나 결혼 안 하는 딸을 놀려먹는 것쯤은 아마도 우리 집 쪽이 훨씬 더 할테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총 3가지로 나뉜다. 엄마 노리에 씨와 아빠 시로 씨의 이야기, 딸인 히토미 씨의 이야기, 그리고 집에서 일어나는 사와무라 씨 가족의 이야기.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는 집에서 일어난 가족의 이야기 카테고리로 넣어도 무방하긴 한데, 각각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굳이 나누고 싶었다. (나눈다고 누가 뭐라는 거 아니니까!!) 
 
히토미(딸)의 이야기는 어느새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님의 약함을 보게 되는 딸의 마음, 자꾸 나이를 먹는 본인에 대한 마음과 같은 이야기들. "아빠가 회전초밥 먹고 싶다고 해서 갔거든. 맛있었지만, 아빠가 그러는 거야. 젊을 때라면 더 먹었을 텐데, 라고. 매번 그러시는데, 그게 뭔가 있지, 좀 슬프더라." (p.35) 이런 말을 하는 히토미 씨나 히토미 씨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엄마도 건강했었지.'하고, 오늘을 떠올릴 날이 올까. (p.39) 이런 생각을 하는 히토미 씨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라 좀 더 책장을 천천히 넘기게 됐다. 또한 나이가 든 지금은 아니지만 어린시절 보살핌을 받던 것을 추억하는 지금은 이렇게 어른끼리 얘기하지만, 이 사람들은 '꼬꼬마' 시절의 나를 알지. (p.53) 어린 시절, 푸딩은 꼭 접시에 푸슝해서 먹고 싶어했던 히토미 씨. 긴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는 기억하시는군요. (p.97) 옷을 고르던 히토미 씨는 문득, 어린시절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계절이 바귀는 걸 어머니가 알려주었던 시절.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p.57) 이런 이야기들은 '같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 같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한 느낌. 야마다 씨의 뱃속에서 아기가 커가는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야마다 씨의 10개월과 나의 10개월, 같은 무게일까. (p.95)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여성의 생각 또한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와중에 가장 아팠던 나이듦에 관한 시로 씨와 노리에 씨의 담담함,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할아버지라고 불린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난 시로 씨. 당신들의 아들도 '할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그런 얘기를 함게 하고 싶어졌을지도 모릅니다. (p.117)
돌아가신 노리에 씨의 어머니 스웨터. 노리에 씨는 한 번 불러보고 싶어졌습니다. "엄마" 그리운 그 울림. 부를 수 없게 된 그 말. (p.59)
아빠와 엄마가 되면서 잊고 살았던, 사는 게 더 바뻐 뒤로 미뤄두었던, 자신들에게도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는 그 사실들과 함께 지금은 부를 수 없다는 그 말도 조금은 슬펐다. 책 속에는 노년 부부이기 때문에 만약 엄마 아빠가 없다면이라는 생각을 가끔씩 히토미 씨가 하곤 하는데, 그게 또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건 내게도 언제든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니까.
 
엄마 노리에 씨는 결혼하지 않은 딸을 짓궂게 놀리는 재미로 딸을 슬슬 긁는다. 하지만 가끔은 "아빠가 퇴직한 뒤 연금으로 살게 되니 불안하다고 할까, 왠지 잘 못 버리겠더라. 나도 늙었나보다. 마음이 약해졌어." (p.103) 이렇게 쓸쓸한 말을 하기도 하고, 눈에 훤히 보이는 남편 시로 씨의 행동에 남몰래 웃음 짓기도 한다. 생각날 때 영정사진을 찍어두겠다는 아빠 시로 씨의 이야기(p.77)는 조금 슬펐고, 처음 간 수영장에서 첫 입사할 때의 기분을 떠올렸던 에피소드(p.79)는 조금은 쓸쓸했다. 하지만 스포츠 센터 등록을 하기 위해 몸 스캔을 해서 젊다는 말을 듣고는 계속 기록카드를 보고 있는 에피소드(p.23)나 부인 노리에에게 시덥잖은 이야기를 꺼내며 헛헛 거리는 시로 씨의 모습은 귀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서평을 쓰는 와중에 우리 엄마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해서 잠깐 적어본다. 
오늘 아빠가 탄산수를 사왔다. 엄마는 탄산수를 제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방송에서 탄산수 타령을 하는 게 궁금하긴 했었나보다. 그래서 기세 좋게 탄산수 뚜껑을 열고 벌컥 마셨는데, 마시자 마자 하는 말이 "달지 않은 사이다 같아"였다. 그러면서 "내가 단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거보단 사이다가 좋아"라면서 단호하게 내 앞에 탄산수를 내려놓고 가셨다. 탄산수를 사온 아빠는 순간 당황하면서 나 먹으라며 탄산수를 내게 마저 밀어놓고 엄마따라 총총. 별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롭고 낯선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엄마가 귀엽게도 느껴지기도 하는 날이었다.
 
뭐 우리집의 별 것 아닌 이야기처럼, 이렇게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들이 책 안에 많이 들어있다. 소소하면서도 읽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 말이다. 비록 그 출발이 사회문제들 이었다지만, 끝이 이렇게 사랑스럽다면 마스다 미리 그녀가 사회문제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하하) 여전히 마스다 미리의 책들은 사랑스럽고, 곁에 있는 이야기이고, 따뜻하다. 아직도 연재하는 중이라고 하니 사와무라 씨 집의 2번째 이야기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