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보고 싶거든 -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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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는 한 소년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소년의 친구로 보이는 강아지도 한 마리 있다.
어떻게 하면 고래를 볼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소년은 그래도 기다린다, '고래'를 말이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 '기다림'의 시간에 당신은 무얼 했는가.
이 책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고래를 기다리고 있는 소년에게 '고래를 만나려면 무얼 하지 말아야 해'라고 일러스트 속 소년에게 타이르는 듯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어떻게 하면 고래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임과 동시에 '고래를 만나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 말란 것들 투성이어서 어른의 시각으로 보기에 "뭐 고래를 만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 고래를 만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생각해 보면, 2013년에 만들어진 이 책은 (원작은 2013년에 출간됐다.) 고래쯤은 아쿠아리움 같은 데서 꽤나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에서 나온 책이다. 그런데도 소년은 고래를 보고 싶어한다. 방점은 여기에 찍힌다.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소년'.


'고래'를 보는 거라면 현재는 어디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정말 바다에 나아가 직접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소년이라면, 이야기는 180도 바뀐다. 고래는 영물에 속한다. 그 모습을 사람에게 쉬이 내보이지 않는 특성 탓에 살아있는 고래를 직접 바다에서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극소수가 아닐까.) 누가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처럼 '고래'를 보기 위한 순간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고래가 나타날 때에 그 고래가 있는 바다를 쳐다보는 타이밍.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할 것들이 참 많다.

 

 

 


우선 창문과 바다가 있어야 하고,
조금은 불편한 의자와 적당히 추운 담요도 필요하다.

마음을 뺏길만 한 장미, 하늘 구름, 펠리컨 등에게는 조금 쌀쌀맞아져야 한다.
고래 대신 얘네들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래'에는 다른 것들을 넣어 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바라는 그 '무언가'. 그것은 원대한 '꿈'일 수도, 눈 앞의 '작은 목표'일 수도, '생물'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고래'의 숨은 뜻은 '무언가'를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사랑을 기다리던, 꿈을 기다리던 모든 '바람'에는 기다림이 필수로 따라다닌다. 기다림이 길수록 힘들어지겠으나 마지막에 얻는 과일은 달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건,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무엇에 대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 지친다고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고래를 기다리는 책 속의 소년처럼 말이다.

 

 

 


결국, 작가는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볼 어린 아이들에게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기다림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가질 수 있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은 오히려 낯선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설렘'을 작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기다림'과 '설렘'은 같이 존재하는 단어고, 그 기분들이 사람을 얼마나 흥분되고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건지를 말이다. 또한 그렇게 기다려서 얻은 것들은 무엇보다 값지고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처음에는 엄청나게 마음에 쏙 드는 일러스트가 눈을 사로잡았다면, 책을 점점 읽을 수록 책 속의 내용들이 많이 와 닿은 책이다. 한 번 읽을 때보다 두 번 읽을 때가, 2번보다는 3번 읽을 때가 더 좋은, 자꾸 내용을 곱씹어보게 되는 책이다. 비단 아이들에게만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의미를 던지는 책.


전 세계적인 작가의 위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을 사는 힘든 젊은 세대들에게, '고래'를 볼 수 없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라고. 기다리다보면 '고래'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힘들다고 '기다림'의 '설렘'을 잊지는 말고, '고래'까지 도달하기 위해 여기 저기 들러 갈 때 그곳에 주저 앉아 스스로 합리화 하지 말라고 말이다. 틀린 말이 없는데도 선뜻 동의하기 힘든 건 아마도 고래를 보기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이 짧은 위로가 기나긴 그 누구의 위로보다 와 닿는 건 과연 어떤 힘 때문인걸까.

 

 

 


소년은 결국 고래를 만났을까? 아니, 나는 고래를 만날 수 있을까.
자꾸 읽고 싶어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막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그래서 계속 옆에 두고 한 번씩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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