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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평점 :
알바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알바를 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또한 어른들 사이에서도 '알바'란 단어는 참 흔하게 쓰인다. 그래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알바'라는 단어가 심심하지 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그만큼 '알바'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있는만큼 쉽게 내쳐질 수 있는 자리. 책임감을 원하지만 책임감을 갖기 힘든 자리. 그 자리가 힘들다는 걸 뻔히 알지만 막상 내가 아닌 다른 이가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할 땐 독하게 굴기도 하는 자리. 알바는 그런 자리다. 그런 '알바'가 제목으로 내세워진 소설책이 나왔다고 해서 흥미를 가지고 지켜봤다. '알바 패밀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만큼이나 <알바 패밀리> 속의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민, 로라 남매는 학자금 대출로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이자를 걱정하며 알바를 한다. "내 나이 스물 세 살, 전 재산 9820원. 어제 현금 인출기 앞에서 180원 때문에 절망했다"(p.102)고 이야기하는 로민에게 어쩌면 알바는 당연한 선택이다. 아빠는 '호두가구'라는 자신이 운영하던 가구점이 망하게 된 시점부터 가족들 몰래 알바를 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빠가 '호두가구'를 살리려 동분서주할 때부터 집을 위해 가족을 위해 시간제 마트 알바를 시작했다. <알바 패밀리>의 알바는 꽤 치열했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자꾸 일이 꼬이기만 한다.
요즘같이 좋지 않은 경기에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알바를 구하러 다닌다.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퇴직 후 할 일을 찾아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알바 전선에 뛰어든다. 엄마들은 조금이라도 집안에 보탬이 될 거리를 찾아 알바를 찾아 나서고, 취직을 하지 못한 취업 준비생과 수많은 백수 백조들 또한 알바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한다. 사실, 온 가족이 알바를 하는 집이 드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퇴직한 아빠들이 모두 퇴직 후 편하게 놀러 다닐만큼 연금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높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지 못한 아빠들은 어쩔 수 없이 알바를 찾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가족이 모두 시간제 알바로 연명하는 삶이 좀 과장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p.227)라고 평한 작품해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여 놓긴 했지만, 일가족 모두 시간제 알바로 연명하는 집이 없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알바 패밀리>의 집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집은 누구나의 예상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알바 구직 사이트 CF의 '이런 시급'이라는 말이 욕처럼 표현된 건 웃프지만 꽤 사실적이다. 물론 소설 속에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일반적인 상황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고군부투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또 부정하기 힘든 면이 있다. 이 책 <알바 패밀리>는 그런 알바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알바의 단점을 담았다기엔 그 강도가 세지 않지만, 그래도 알바가 당하는 모습을 조금을 살펴볼 수 있다. (적어도 알바비를 밀렸다거나 하는 류의 에피소드는 나오지 않으니 아주 보편적인 단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들의 이상한 행동들과 이상한 우연, 그리고 일어나는 일들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지만 이해가 되는 게 더 서글퍼졌다. 왜 이들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작가의 시선에 자조적인 웃음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긍정적인 마음을 이야기 한다. "사는 게 원래 굴곡이 있는 거야.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거란다. 우리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보면 안 될까?" (p.162) 라고 말이다. 희망을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만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엄마는 오르막이 있을거라 굳게 믿으며 알바를 한다. 나는 이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마냥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