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스타일링 100가지 법칙 - 좋아요를 부르는 사진 연출법
구보타 치히로 지음, 문희언 옮김 / 터닝포인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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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길어서 제목을 따로 달지 않았다. 본격 '제곧내' 책이 아닐수 없다.(제곧내 = 제목이 곧 내용..!)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린 게 얼마 전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뭐 길어봐야 10년 안팎일 테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시장은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린 후부터 급속도로 커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핸드폰 카메라의 화질이 좋아질수록 디지털 카메라의 화질 또한 좋아졌으니까. 처음부터 따라올 수 없는 화질을 가진 DSLR은 논외로 두고 말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디서든지 핸드폰만 꺼내들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쉽게 찍고 쉽게 지운다. 어디에 초점을 줄 지, 배경을 흐리게 할지 아닐지, 일단은 찍어본다. 마음에 들 때까지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찍고 보자는 생각을 갖고서. 마음에 안 들면 수 백, 수 천 컷을 다시 찍으면 되니까 망설이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려있기 때문에 카메라는 늘 함께 생활하고 있고, 사진을 찍는 것이 더이상 연례행사가 아니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온 국민이 파파라치다'라며 볼 멘 소리를 하는 것도 과언은 아닌 시대다.


그런만큼 좀 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전문카메라 DSLR 카메라 시장이나 그에 준하는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밖에 나가보면 핸드폰 카메라 외에도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출사를 다니는 전문적인 사진가들 뿐만 아니라, 핸드폰 카메라로 인해 사진이 취미가 된 사람들의 카메라 구매가 늘었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많이 컴팩트한 크기와 무게가 대중화에도 큰 힘을 보탰겠지만 말이다. 카메라는 더이상 누군가가 찍어줘야만 하는 전문적인 기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전문가들처럼 사진을 잘 찍기를 원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다.


사진관련 책들은 시중에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새삼스럽거나 새롭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아요를 부르는 사진 연출법 포토스타일링 100가지 법칙>이라는 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스타일링과 관련된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이다. DSLR 카메라 조작법같은 어려운 내용이 담기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책. 구보타 치히로라는 일본 포토스타일링협회 회장이 쓴 책인데, 여기서 일단 알아두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포토스타일링'이라는 단어. 이 단어는 책의 저자인 (방금 위에서 말했던) 구보타 치히로가 2007년에 제안한 사진기법이다. 일종의 신조어인 셈이다. 사진촬영을 할 때 물건의 배치와 선택 방법 등 여러가지 오리지널 기법들을 일컫는 말인데, 현재 일본의 등록상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기존에는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를 어떻게 찍는 것만이 중요하게 생각됐던 것이라면, 이제는 피사체를 놓는 배경 배치 카메라 위치 등의 여러 기법들까지도 카메라 촬영 기술 안에 포함됐다는 말이다.

단순해 보이는 컵을 매력적이게 보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신은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포토스타일링은 그 답을 알려주는 사진의 매력을 빛나게 하는 기술입니다.

당신이 만든 작품이나 당신이 알리고 싶은 상품을 매력적으로 빛나게 만드는 방법을 100가지 법칙으로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1쪽)

책을 열자마자 보이는 문장들이다. 신뢰감이 확 가는 문장이기도 하거니와 1쪽에 위의 문장과 함께 찍혀 있는 하얀 컵의 다양한 스타일링을 몇 쪽에 걸쳐서 직접 보여준다. 그냥 하얀 컵일 뿐이었던 밋밋한 사진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포토스타일링은 어렵지 않다고. 두근두근거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책은 카메라에 대한 언급부터 한다. 포토스타일링을 하기 위해서는 DSLR을 추천한다고. 아무래도 DSLR은 교환할 수 있는 렌즈가 다양해서 조리개와 셔터 속도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으면서도 밝기, 아웃포커스 등을 그대로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13쪽) 화질 또한 충분하므로 아무래도 전문가 입장에서는 DSLR을 추천한다고. 그렇기에 책은 DSLR을 기본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DSLR이 없다해도 상관은 없다. 이 책은 사진 찍는 센스를 키우는 데 중점을 둔 책이 아니던가. 내가 생각하기엔 미러리스나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 카메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것들만 우선적으로 사용하면 된다. 고급기술은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뤄두면 그만. 장비가 없다고 슬퍼만 하지 말고 책을 계속 살펴본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포토스타일링의 기본 10가지 법칙을 설명한다. 기본컷은 세로컷으로 찍고, 자연광에서 촬영하며, 주인공을 클로즈업하고, 밑바닥과 배경을 신경써서 배치하는 등 아주 기본적이지만 뼈와 살이 되는 10가지 법칙. (실상은 9가지 법칙이다. 10번 법칙은 9가지 원칙을 완벽하게 하기!니까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장소세팅 하는 법과 빛과 그림자, 배경과 바닥 세팅 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포토스타일링을 눈으로 보여줘야 하는 책이다 보니 전후 사진이 분명히 차이가 나는, 한 눈에 봐도 어떤 점이 다르구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진들이 책에 담겨 있다. 아주 사진으로 꽉꽉 눌러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진들이 쓰인 책이다. 거기에 작은 글씨로 깨알같은 팁들이 들어가 있는데, 한 글자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것이 1페이지당 1개의 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책의 모든 페이지 속의 글들 중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제목에서 언급한 100가지 법칙 중 기본적인 것을 설명하는 데 18번까지 사용됐다. (책으로 직접 확인해라.) 그리고 19번부터는 본격 실전 훈련이다. 70번까지 여러가지 사물, 혹은 사람, 동물에 대한 촬영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식으로 센스를 찾아야 하는지 아주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 세세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하나씩 따라하다보면 사진 센스는 바로 늘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71번부터는 카메라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아무래도 DSLR의 사용법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심화과정으로 나아갈 수 없을 테니까. 이렇게 총 100가지의 팁이 담겨 있다. 카메라에 대한 조언을 제외한다면 70가지의 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쁜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방법만 알면 순식간에 예쁘게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거기서부터 '어느 수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예쁘게'는 한 순간에 만들 수 있지만, '항상 예쁘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사진'이 될 수 있게 지속적인 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116쪽)

저자는 포토스타일링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순간적인 예쁨에 취하지 말고 좀 더 계속 노력하기를 주문한다. 방법만 알면 예쁘게 찍을 수 있기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면서 말이다. 붓글씨로 예를 들어보면 붓글씨를 막 배운 사람과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의 결과물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 센스를 얻었다면 이제는 그 센스를 발전시킬 차례이다. 조금만 사진에 관심을 두면 더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노하우를 나의 노하우로 탈바꿈할 차례. 좋아요를 부르는 사진, 절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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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재미 - 내 손글씨가 예뻐지는 재미난 연습장 Let's Write Series 1
김소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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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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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책 <별도 없는 한밤에>는 '절박함'에 관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각각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떤 이유로든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절박함을 넘어 집착과 광기를 얻어가는 과정을 작가는 덤덤하게 하지만 상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며 저자가 상상해 만들어 낸 글이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절대로 이 절박함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얼만큼 구석에 몰려야 이만큼이나 독하고도 지독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안쓰러운 마음과 한 편으로는 치 떨리는 감정이 함께 드는 묘한 책이다. 이야기들 자체가 전혀 밝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므로 우울한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도 없는 한밤에>는 총 4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 4개의 소설은 각각 '1922',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고, '공정한 거래'를 제외하고는 모두 누군가를 죽인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서 이야기한 절박함은 살인을 하기 전, 그리고 하고 난 후 주인공들에게 끈질기게도 붙어 있었던 감정이다.) 얼마전에 <무녀굴>을 읽을 때 잔인한 건 이만큼 봤으니 뭐 더이상 잔인한 게 나오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웬 걸. 이 책의 첫 중편 소설인 '1922'를 읽을 때 <무녀굴>은 '죽음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소소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 속 살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각보다 많은 상상력을 키워냈다. 그리고 나는 중간쯤에 자세히 상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계속하기로 하고) '1922'를 다 읽은 후 한 숨 돌리고 그 다음 소설인 '빅 드라이버'를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는 강간이다. 강간 후 벌어지는 복수 이야기. 공정한 거래는 조금은 다른 성격의 이야기니 넘어가고, 마지막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자신의 남편이 살인자라 생각하는 부인의 이야기다.


'1922'에서 남편은 아들과 함께 아내를 살해한다. '빅 드라이버'에서는 자신을 성폭행 한 진범을 찾아 살해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다. 책을 읽다보면 '살인'이 당연한 것인듯 느껴진다. 모두들 모 아니면 도의 마인드로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별도 없는 한밤에를 쓰면서 나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저지를지도 몰는 일, 또 그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행동 방식을 기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등장인물들은 희망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의 간절한 희망조차도 때로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런 경우는 빈번하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 싶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깃드는 것이며... 우리가 그 노력을 다하지 않을 때, 또는 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 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600쪽)


작가가 생각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건가..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찌됐든 내 스타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소설들이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절박함을 마음 속에 담고 쫓기듯 무섭게 사는 사람들을 좋아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가 스티븐 킹이 아니랄까봐 이야기들은 모두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만큼 자세히 묘사된 부분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고결함을 잃은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일부러 그 어려움에서 고개를 돌려버렸을 때 행했을 법한 극단의 상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 묻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일부러 이렇게나 어두운 소설을 써서 인간에게 내재된 감정의 저 끝까지 한 번 밟아보고 오란 뜻이었을까.

어찌됐든 나는 이 소설들 속에서 순수한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들을 구상했을 당시의 상황들을 적어놓은 부분들은 꽤나 흥미로웠다. 아주 평범한 소재들과 상황들을 작가는 이렇게 풀어냈다. 소재와 결과가 전혀 다른식으로 풀어져 있어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생활 속에서도 잔혹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찾아내는 작가의 상상력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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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의 소설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소설은 처음 등장하는 소설 '1922',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던 건 '공정한 거래'였다. '빅 드라이버'와 '행복한 결혼생활'은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약간씩은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갔기에, 적어도 그녀들의 살인에는 정당방위성 어떤 것이라도 있었다. 그것이 그녀들의 망상이건 아니면 실제이건 말이다. 하지만 '1922'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부부 사이라는 게 싸움 없이 함께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그럴 수 없으므로 다툼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의견차이도 있을 수 있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부인을 죽일만큼의 감정이 솟아오를 수가 있냐는 말이다.


남자는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아가게 마련이다. 자기가 모르는 낯선 남자, 즉 '음흉한 남자' 말이다. (13쪽)

농부 윌프리드 제임스의 마음속에 사는 음흉한 남자는 자기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리고 그녀의 최후를 결정했다고.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사형 판결이기도 했다. 성서 말씀에 따르면 은혜를 모르는 자식은 독사의 이빨과 같다지만, 은혜를 모르고 잔소리만 해대는 아내는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한 것이니까. (13-14쪽)

이렇게 이야기하는 남편의 속마음.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분통이 터지는 '남자'의 심리였다.


'1922'는 남편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쓰인 소설인데, 자신이 한 짓을 고백하는 내용의 글로 쓰여 있었다. 아내가 유산으로 받은 땅과 자신이 농장으로 가지고 있는 땅의 판매를 두고 다투다 아내를 죽였고, 그 살인 과정에 아들을 동참시켰다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차라리 이 고백으로만 끝났다면 좋으련만, 아내의 살인 이후에 남편과 아들이 살아간 이야기도 상세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아내(엄마)를 죽였다는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쓰럽게 보이기 충분했으며, 남편이 맞이한 최후도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사실 1922년 한 해에 일어난 일들이 너무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뭘 이렇게까지 자세히 적어놓나' 생각했었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니 남편은 그때의 일을 하나도 잊지 않을만큼, 심지어 자신이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고 상대방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 일에 강박을 가졌다는 소리가 된다.


처음부터 그러지 말 걸 잘못했어요 (72쪽)

1922년 그해에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안 좋은 일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더 끔찍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그때에도 당신의 머리는 멀쩡하다. 그래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버텨야 한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그럼에도 버텨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77쪽)

아들 헨리의 대사와 남편의 대사로 알 수 있 듯, '아무렇지 않았었다'라고 회고하지만 실제로는 무척이나 트라우마를 가진 상태였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이 죽을 때까지 강박으로 쫓아다니는데, 그건 아무래도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아내는 이미 죽었고 그 죽음을 감췄으니 이미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계속 앞으로 걸어나가야 했고, 그 끝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왜인지 당연하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내를 죽여놓고도 남편은 잘 살았습니다' 따위의 결말이었다면 더 열이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공정한 거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에게 누군가 나타나 '당신의 삶을 연장해주겠다. 대신 당신의 삶이 연장되는 대신 당신의 액운을 가져가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라고 물었고, 그에 대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엮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질투심을 수면 밖으로 꺼내 보여줬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라면,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꼭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데, 그것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전가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가할 것인가. 굉장히 어려운 선택임에는 분명한데 소설 속 주인공은 그 누군가를 자신과 제일 친한, 일명 불알친구에게 전가함으로써 삶을 연장했다. 마치 <내 행운을 돌려줘>의 바뀐 남녀주인공같은 삶을 사는 설정이 조금은 진부하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주인공이 하는 말은 모든 걸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자신조차도 말이다.

"인생은 공정한 거야. 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주사위 두 개를 굴리다가 어느 날 휙, 던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어떤 사람은 7이 연달아 나오기도 하지.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1이 두 개씩 나오기도 하고.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곳이야."(460쪽)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질투, 미움. 결국 처음 바뀐 이후 아무런 반전도 일어나지 않는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끔찍한 인간의 본모습인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이 없는 건, 저자의 글솜씨가 유려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앞에 깔린 설마가 사실이 되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이 책을 보면 그 설마의 법칙이 또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살아가면서 절대로 맞닥뜨리지 않고 싶은 절박함에 대해 보여준 이 소설은, 생각하기 싫지만 생각해야 했던 책이었고 단순히 오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다가오는 것이 많았던 그런 책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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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끼를 부탁해 - 칼로리는 반으로, 밥도 빵도 면도 없이
백만점순이.나초례 지음 / 콜라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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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이어트와, 특히 음식과 관련된 책들은 꼭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이어트할 때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식이요법 아니던가. 기존에 다이어트 식단을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알게된 레시피들은 만드는 방법이 복잡하거나 재료가 고급이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먹기 싫거나 셋 중의 하나였다. 도저히 돈 없는 사람은 해 먹을 수 없는 요리들로 어찌 다이어트를 한단 말인가. (다이어트하면서 소고기 등심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도 아니면 전복이나 비싼 해산물 기타등등.) 물론 그런 책들 중에서도 꽤나 내게 맞는 책들은 있기 마련이라 잘 두고 있는 책들도 많이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기름기를 적게 섭취하는 쪽의 요리법이다보니 오븐 사용이 많아 내가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이 책 <0.5끼를 부탁해>가 내 눈에 띈 이유? 별것 없다. 12페이지의 0.5끼가 뭐냐고?라는 소개페이지에 적힌 5가지 법칙 때문이다. 초간단하다/ 살찔 걱정 없다/ 밥-빵-면 아웃!/ 최소의 재료 수/ No 오븐, No 전자레인지 이 5가지는 다이어터들이 간편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기 위한 필수아니던가. 사실 0.5끼를 창시한 백만점순이, 나초례 작가들은 삼시 세끼를 모두 이 책에 등장하는 레시피대로 먹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얻은 레시피들로 하루의 마지막 한 끼 저녁, 피곤하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 간단하면서도 살이 덜 찌는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쓴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자들에게는 그런 게 있다. 아침 점심을 거나하게 먹었더라도 저녁을 눈꼽만큼 먹으면 '오늘 하루 많이 먹지 않았다'는 자기 최면을 거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이 책은 그것에 딱 알맞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요리사의 책'이 아닙니다.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요리 책'이죠. (중략) 전문가에겐 너무 당연해서 건. 너. 뛸. 수 있는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두 초보요리사들과 함께 그날의 기분에 딱 맞는 메뉴로 만족스럽게 하루를 마무리하길 권합니다. (11쪽)

레시피들만 존재한다면 작가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완전 초보용'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만큼 책에는 사소한 이야기들이 가득 실려있다. 일단, 요리할 때 쓰인 재료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부터 비슷한 재료들의 비교들을 주로 이야기하는 TIP 코너가 있다. 그리고 5개씩의 메뉴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작은 부록같은 식습관에 대한 이야기, 기본 재료 고르는 법에 대한 이야기, 비린 맛이나 누린 맛 잡는 법에 대한 이야기 등 초보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또한 각 요리들이 끝날때마다 자체평가를 해 별점으로 나타내곤 하는데, 초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에 관한 이야기나 바꿔먹을 수 있는 팁을 전해주기도 하는 코너도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면 어지러울 법도 한데, 그 모든 코너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잘 잡고 있어서 보는 내내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보기가 깔끔하단 얘기다. 이것은 이 책이 초보들을 위한 쉬운 요리책이라는 것 이외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책에는 요리를 꽤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도 요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레시피들도 있다. '콜라비 코코넛 우유'(49쪽, 콜라비 껍질을 잘 벗긴 후 물에 씻은 다음 - 적당하게 잘라 코코넛 밀크와 함께 믹서기에 간 후 -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라든가 '콩고물 곤약' (80쪽, 곤약을 적당히 썬 뒤 -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 끓는 물에 곤약을 데친다 - 물기 제거 후 콩고물을 묻힌다 - 소금 간을 살짝 한다) 라든가. 이런 레시피들은 레시피라는 단어가 무색할만큼 무척이나 간단하고 실상 한끼의 메뉴라기 보다는 간식에 더 어울리는 레시피들이다. 하지만 책에는 이것보다 약간 더 복잡한, 그러나 절대 어렵지 않은 레시피가 42개나 더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절대 이런 레시피만 들어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더불어 깨알같은 정보들까지 들어있고 말이다. 근데 이 모든 요리들은 칼로리까지 낮다. 애초에 0.5끼를 의미하는 것은 칼로리가 낮기 때문이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작가들이 작정하고 칼로리가 낮은 요리들만 소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칼로리도 낮고 부담스럽지 않아서 필요에 따라서는 저녁 한끼 뿐만 아니라 간식이나 아침에 식사대용으로도 가능할 알찬 레시피들이 가득한 책. 요리는 하기 귀찮고 어려워서 싫은데 살찔까봐 걱정하는, 특히 20~30대 혼자 사는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할 책. 맨 처음에 눈에 띄었던 'No 오븐, No 전자레인지'라는 문장보다 이제는 레시피에 더 관심이 가는 책. 이 모든 책이 가리키는 것은 <0.5끼를 부탁해>이다. 이 책을 통해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조금이나마 칼로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싶다. 물론 다이어트는 이렇게 한 끼만 낮은 칼로리로 섭취한다고 가능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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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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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연속성, 거대한 틀을 이루는 서사.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하나의 이야기를 누구의 시점이든지간에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내 생각일 뿐 꼭 그래야만 한다는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한 방향으로 펼쳐지면 그만큼 읽는 이가 주인공에게 쉽게 이입해서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도 하고, 시공간을 초월하기도 하며 그들 나름대로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그래도 역시 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열린 결말이든 정해진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이든 간에 하나의 결말을 향해서. 하지만 여기, 이야기가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라 생각하기 힘든 소설이 하나 있다. 바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야기를 이루는 서사가 뒤엉켜 있다고 해도 이야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여러 소설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고 딱히 다를 것은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사랑이야기 (고등학교 시절의 풋풋함과 현재에 다시 만난 2가지의 사랑), 남자주인공이 살인을 하게 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 여자주인공의 컴플렉스가 되어버린 가정환경 이야기와 이름이 같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 남자주인공이 고등학교 때 죽인 영훈이란 아이의 엄마가 남자주인공에게 보이는 집착 이야기까지. 늘어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도 극히 간소하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순서의 의문.

 

책을 읽기 전에 작두 같은 걸로 제본된 부분을 잘라내는 거야. 그러면 책이 종이 수백 장으로 흩어지겠지? 그 종이를 화투 섞듯이 섞은 다음에, 아무렇게나 다시 제본을 해서 읽는 거야. (중략)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순서로는 못 읽는 건가? 맨 처음에도? 여자가 물었다.

'제대로 된 순서'라는 거 자체가 없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 사실 페이지는 늘 섞이고 있어. 책의 분량이 무한한 건 아니지만, 그 책 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독서를 할 수 있는 거지. (18쪽)

 

책의 처음을 읽어나갈 땐 위의 대화를 보고 '왜 이렇게 책을 읽어야 하는데?'라는 의문이 생겼었다. 그러나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보니, <그믐>이 '그런' 책이었다는 걸 작가가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동시에 진행된다. 동시에 진행되다가도 다시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기도 현재의 또 다른 시기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이라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이상하지 않다. 앞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행동들은 뒤에서 설명이 되기도 하고, 뒤에서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앞의 내용이 처음과는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읽었다고 책을 털어버릴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디든 이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이야기가 새로 만들어졌다.

 

비유하자면 아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과 비슷해. 이미 내용은 다 알고, 그걸 바꿀 수도 없어.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매번 읽을 때마다, 중요한 대목에서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 있잖아. 주인공이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걸 알아도 슬퍼질 수도 있고, 사건 진행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있지. 시간이란 게 책처럼 통째로 펼쳐져 있으니까. (17쪽)

 

이상하게도 봤던 부분이 새롭게 느껴진다. 남자주인공이 언뜻 의미없이 던진 말이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읽어보면 다 뜻이 있었던 부분인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으며, 기승전결을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든 기승전결을 만들어보려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로든 읽고 싶은 부분만 다시 읽으면서 책을 다시 읽어내고 있는 나에겐 처음과는 또 다른 기억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도 아마 이 책과 같지 않을까 싶다. 제목에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의 기억은 아름다운 기억만, 누구의 기억은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만 하는 것이, 어느 한 부분이 크게 부각되어 남아 있는 것이, 똑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것이 그를 대변한다. 통째로 펼쳐진 시간을 어떻게 조립하고 채워나가는지는 각자의 선택 몫.

 

기억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데도 그 상황들을 반복하는 남자주인공의 상황은, 시작과 끝이 필요없는 상태. 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자의 모든 상황을 꼬기 위해 살고 있는 아주머니의 상황은, 시작도 끝도 의미없는 이미 끝. 남자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와의 시간들을 사랑하는 여자 보람의 상황은 현재. 그래서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달려가고 있다.

 

시작이 없이는 끝도 없다. 시작과 끝이 필요없는 평행인 상태인 남자는 여자와 함께 있음에도 외로워보였고, 늘 끝이었던 아주머니의 광기는 이상하게 발현되었다. 하지만 끝이었던 아주머니는 새로운 시작을 생각했고, 남자는 죽음과 동시에 끝을 마주하고 다시 시공간연속체 속으로 돌아갔다. 어떤 것을 시작으로 정할지는 또 자신의 선택이겠지만, 또 다른 시작을 위해서라도 시작과 끝은 필요한 것 같다. 그 안의 내용들이 어떻게 뒤섞이든지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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