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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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책 <별도 없는 한밤에>는 '절박함'에 관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각각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떤 이유로든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절박함을 넘어 집착과 광기를 얻어가는 과정을 작가는 덤덤하게 하지만 상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며 저자가 상상해 만들어 낸 글이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절대로 이 절박함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얼만큼 구석에 몰려야 이만큼이나 독하고도 지독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안쓰러운 마음과 한 편으로는 치 떨리는 감정이 함께 드는 묘한 책이다. 이야기들 자체가 전혀 밝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므로 우울한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도 없는 한밤에>는 총 4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 4개의 소설은 각각 '1922',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고, '공정한 거래'를 제외하고는 모두 누군가를 죽인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서 이야기한 절박함은 살인을 하기 전, 그리고 하고 난 후 주인공들에게 끈질기게도 붙어 있었던 감정이다.) 얼마전에 <무녀굴>을 읽을 때 잔인한 건 이만큼 봤으니 뭐 더이상 잔인한 게 나오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웬 걸. 이 책의 첫 중편 소설인 '1922'를 읽을 때 <무녀굴>은 '죽음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소소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 속 살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각보다 많은 상상력을 키워냈다. 그리고 나는 중간쯤에 자세히 상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계속하기로 하고) '1922'를 다 읽은 후 한 숨 돌리고 그 다음 소설인 '빅 드라이버'를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는 강간이다. 강간 후 벌어지는 복수 이야기. 공정한 거래는 조금은 다른 성격의 이야기니 넘어가고, 마지막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자신의 남편이 살인자라 생각하는 부인의 이야기다.


'1922'에서 남편은 아들과 함께 아내를 살해한다. '빅 드라이버'에서는 자신을 성폭행 한 진범을 찾아 살해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다. 책을 읽다보면 '살인'이 당연한 것인듯 느껴진다. 모두들 모 아니면 도의 마인드로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별도 없는 한밤에를 쓰면서 나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저지를지도 몰는 일, 또 그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행동 방식을 기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등장인물들은 희망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의 간절한 희망조차도 때로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런 경우는 빈번하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 싶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깃드는 것이며... 우리가 그 노력을 다하지 않을 때, 또는 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 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600쪽)


작가가 생각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건가..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찌됐든 내 스타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소설들이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절박함을 마음 속에 담고 쫓기듯 무섭게 사는 사람들을 좋아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가 스티븐 킹이 아니랄까봐 이야기들은 모두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만큼 자세히 묘사된 부분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고결함을 잃은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일부러 그 어려움에서 고개를 돌려버렸을 때 행했을 법한 극단의 상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 묻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일부러 이렇게나 어두운 소설을 써서 인간에게 내재된 감정의 저 끝까지 한 번 밟아보고 오란 뜻이었을까.

어찌됐든 나는 이 소설들 속에서 순수한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들을 구상했을 당시의 상황들을 적어놓은 부분들은 꽤나 흥미로웠다. 아주 평범한 소재들과 상황들을 작가는 이렇게 풀어냈다. 소재와 결과가 전혀 다른식으로 풀어져 있어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생활 속에서도 잔혹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찾아내는 작가의 상상력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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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의 소설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소설은 처음 등장하는 소설 '1922',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던 건 '공정한 거래'였다. '빅 드라이버'와 '행복한 결혼생활'은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약간씩은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갔기에, 적어도 그녀들의 살인에는 정당방위성 어떤 것이라도 있었다. 그것이 그녀들의 망상이건 아니면 실제이건 말이다. 하지만 '1922'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부부 사이라는 게 싸움 없이 함께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그럴 수 없으므로 다툼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의견차이도 있을 수 있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부인을 죽일만큼의 감정이 솟아오를 수가 있냐는 말이다.


남자는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아가게 마련이다. 자기가 모르는 낯선 남자, 즉 '음흉한 남자' 말이다. (13쪽)

농부 윌프리드 제임스의 마음속에 사는 음흉한 남자는 자기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리고 그녀의 최후를 결정했다고.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사형 판결이기도 했다. 성서 말씀에 따르면 은혜를 모르는 자식은 독사의 이빨과 같다지만, 은혜를 모르고 잔소리만 해대는 아내는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한 것이니까. (13-14쪽)

이렇게 이야기하는 남편의 속마음.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분통이 터지는 '남자'의 심리였다.


'1922'는 남편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쓰인 소설인데, 자신이 한 짓을 고백하는 내용의 글로 쓰여 있었다. 아내가 유산으로 받은 땅과 자신이 농장으로 가지고 있는 땅의 판매를 두고 다투다 아내를 죽였고, 그 살인 과정에 아들을 동참시켰다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차라리 이 고백으로만 끝났다면 좋으련만, 아내의 살인 이후에 남편과 아들이 살아간 이야기도 상세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아내(엄마)를 죽였다는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쓰럽게 보이기 충분했으며, 남편이 맞이한 최후도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사실 1922년 한 해에 일어난 일들이 너무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뭘 이렇게까지 자세히 적어놓나' 생각했었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니 남편은 그때의 일을 하나도 잊지 않을만큼, 심지어 자신이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고 상대방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 일에 강박을 가졌다는 소리가 된다.


처음부터 그러지 말 걸 잘못했어요 (72쪽)

1922년 그해에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안 좋은 일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더 끔찍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그때에도 당신의 머리는 멀쩡하다. 그래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버텨야 한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그럼에도 버텨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77쪽)

아들 헨리의 대사와 남편의 대사로 알 수 있 듯, '아무렇지 않았었다'라고 회고하지만 실제로는 무척이나 트라우마를 가진 상태였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이 죽을 때까지 강박으로 쫓아다니는데, 그건 아무래도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아내는 이미 죽었고 그 죽음을 감췄으니 이미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계속 앞으로 걸어나가야 했고, 그 끝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왜인지 당연하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내를 죽여놓고도 남편은 잘 살았습니다' 따위의 결말이었다면 더 열이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공정한 거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에게 누군가 나타나 '당신의 삶을 연장해주겠다. 대신 당신의 삶이 연장되는 대신 당신의 액운을 가져가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라고 물었고, 그에 대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엮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질투심을 수면 밖으로 꺼내 보여줬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라면,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꼭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데, 그것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전가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가할 것인가. 굉장히 어려운 선택임에는 분명한데 소설 속 주인공은 그 누군가를 자신과 제일 친한, 일명 불알친구에게 전가함으로써 삶을 연장했다. 마치 <내 행운을 돌려줘>의 바뀐 남녀주인공같은 삶을 사는 설정이 조금은 진부하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주인공이 하는 말은 모든 걸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자신조차도 말이다.

"인생은 공정한 거야. 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주사위 두 개를 굴리다가 어느 날 휙, 던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어떤 사람은 7이 연달아 나오기도 하지.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1이 두 개씩 나오기도 하고.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곳이야."(460쪽)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질투, 미움. 결국 처음 바뀐 이후 아무런 반전도 일어나지 않는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끔찍한 인간의 본모습인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이 없는 건, 저자의 글솜씨가 유려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앞에 깔린 설마가 사실이 되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이 책을 보면 그 설마의 법칙이 또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살아가면서 절대로 맞닥뜨리지 않고 싶은 절박함에 대해 보여준 이 소설은, 생각하기 싫지만 생각해야 했던 책이었고 단순히 오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다가오는 것이 많았던 그런 책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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