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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
김홍탁 지음 / 이야기나무 / 2015년 8월
평점 :
일단 책에 대해 이야기 하기 이전에, 김홍탁이라는 사람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겠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광고인인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책을 다 읽은 후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로 미루어 보아 그가 광고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책 날개에 적힌 그의 약력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명하고 알려진 사람이었더라) 솔직히 책을 고를 때 '저자의 이력'은 내 관심 밖이다. 이공계를 졸업했건 예술계를 졸업했건 그것이 '글'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책은 컨텐츠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정말 시덥잖은 흔한 이야기들을 나열한다면 읽다가 금방 내팽겨쳐 버릴테니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관심이 있었던 것은 꽤나 많은 뜻이 들어 있을 것 같았던 책의 제목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라는 것, 그리고 몇 문단 밖에 안되는 책 미리보기였다.
책 소개에 등장하는 책 미리보기 속에 발췌되는 글들은 아주 짧은 글들이다. 불과 대여섯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글. 하지만 그 글들을 읽고 나서 책 속에 담긴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100가지나 되는 이야기들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짧은 글들 속에서 느껴지는 생각들이 나머지에는 어떻게 녹아들어 있을지. 그리고 예상대로 역시나. 처음부터 '본질'이란 것을 꿰뚫어 보는 내용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앞으로는 어떤 날카로움이 숨어 있을까 두근두근하게 됐다.
애초에 작가는 '이 글은 그동안 우리의 생각에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서, 혹은 우리 문화의 생태계에서 부족했다고 느꼈던 것들에 대한 단상입니다.' 라는 문장으로써 못박아 두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핑크빛이나 예쁘기만 한 것들이 아니고 아름답지 않더라도 어떤 미화를 하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라는 그의 또 다른 문장 속에는 그런 것들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365일을 꽉꽉 채워 행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본질에서 벗어난 어리석음과 어이없음으로 마음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본'에서 시작해 봅시다. 삶의 '질'을 높여 봅시다. (7쪽)
사실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는 제목은 책에 등장하는 100가지 이야기 중 하나의 제목이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요약하면, 우리가 금반지를 볼 때 눈앞의 반짝임에 가려져 '금'에 포커스가 맞추곤 하는데, 금반지에서 중요한 것은 금이 아니라 '반지', 그러니까 손에 끼워지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요약된 이야기만 보더라도, 왜 이 이야기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이야기와 제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 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겪으면서 생각하게 됐던 것들도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광고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경제나 문화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든 주객전도 되어버린 것들에 대한 짧은 생각들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들이라 100가지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을 추린 것이기에 글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던 까닭이었겠지만, 그 짧은 분량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해 내는 데 능숙한 저자의 글솜씨는 새삼 감탄스럽다. 짧게는 2페이지, 길게는 5페이지 사이의 이야기 속에서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는 아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라고 독자에게 묻는 느낌도 난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빈티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인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만이 그것을 해결한다. 빈티지는 단지 낡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물 또는 어떤 집단의식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총량이자 축적된 가치다.
빈티지 감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간의 가치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는 감동 또한 영원하기 때문이다.
ㅡ빈티지의 가치 (20-22쪽)
내 온몸의 감각으로 부딪힌 체험들이 훌륭한 멘토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셀프 모티베이션을 생성시키기 때문이다. 한 개인을 성장시키는 가장 큰 동력은 셀프 모티베이션이다. 그것은 그 무엇도 당할 수 없는 강력한 동인이자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셀프 모티베이션은 몇몇 귀에 감기는 달콤한 얘기로는 결코 얻어지지 않는다. 결국 나의 멘토는 나 스스로 부딪쳐 얻게 되는 낯선 체험과 그것을 통해 자가발전하는 에너지의 총합인 것이다.
ㅡ멘토 (132쪽)
남을 의식하지 않을 때 자유로워진다.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남 창피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내 두 발로 뛰어 얻은 교훈이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주위의 모든 사람과 함께 똑같이 교육받은 내용은 레퍼런스일 뿐이다. 타인의 눈에 보기 좋으라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과 같아야 마음이 놓이는 건 잘못된 습관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 인생에 해법을 줄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유일자로 태어났다.
ㅡ우리 모두는 원본으로 태어났다 (299쪽)
고개를 끄덕이기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것과 알고 있으면서 직시하는 것. 저자는 후자를 택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아마 그의 글은 누군가에게는 명쾌한 해답이 될 수도 있겠고, 틀렸던 생각을 바로잡을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기도 했을테다.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본질만을 좇으며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본질을 좇으면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본질을 놓친 채 엄한 것들에 힘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남녀노소가 있듯이 게이는 그저 게이일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성숙한 사회다. 인정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무관심하시라.
ㅡ커밍아웃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