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 & 미러리스 사진촬영 길라잡이
김근봉(봉조아) 지음 / 정보문화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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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들의 대부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기본서' 혹은 '입문서' 같은 책일 경우가 많다. 제목에서부터 '책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홍보해야 타겟으로 한 사람들이 들춰볼 것이니까. 이들은 대개 타겟이 정해져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되도록이면 많이 눌러 담으려 노력한다. 최대한 쉽게 풀어쓰여 있는 이 책 <혼자서도 잘찍는 DSLR & 미러리스 사진촬영 길라잡이>도 마찬가지다.

 

요즘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잃어버리면 식욕을 잃어버릴 정도로 그 몸값도 대우도 귀중했던 물건이 카메라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에도 굉장히 좋은 카메라가 달려 있을 정도로 카메라는 '귀한 몸'에서 '친근한 몸'으로 대중화되었다. 예전에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무슨 일이 있을 때 (졸업식 입학식 결혼식 등 연례행사) 뿐이었는데, 이제는 '셀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자신을 찍어대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즐거운 상황이 발생해도 다들 카메라부터 꺼내든다. 필름 카메라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디지털 카메라로 변화했고, 필름이 모자랄까 바들바들 떨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 얼마든지 찍고 지울 수 있는 시대-

 

카메라 성능이 디지털화 된 만큼, 사진을 직접적으로 찍을 때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설정만 해 놓으면 알아서 손떨림 보정도 해주고, 화면 색상을 바꿔 주기도 하며, 가장 좋은 사진 찍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카메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기에도 카메라가 공장에서 만들어진 첫 설정 그대로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사진은 카메라 성능을 아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그래도 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 카메라 성능과 조작 방법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혼자서도 잘찍는 DSLR & 미러리스 사진촬영 길라잡이>에는 처음 카메라를 샀을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일 먼저 카메라를 사고 나서 해야 할 일은 손목 스트랩을 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말이다. 팬시점에 많이 있는 예쁜 손목 스트랩들을 보면서 이런건 멋으로 다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 카메라를 잘 모르는 사람이 카메라를 덜컥 샀을 때라는 상황을 대비, 책은 차분히 하나하나씩 설명한다. DSLR과 미러리스의 차이점, 조리개가 하는 일과 사용방법, 렌즈를 마운트 하는 방법, ISO를 조절하는 방법, 구도를 잡는 방법, 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 하다 못해 자신의 사진에 자신만의 각인을 달아놓는 방법까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많은 사진들이 경우의 수에 따라 나열되어 있고, 사진들에 설명이 붙어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아도 보는데 큰 지장이 없으며, 설명들은 최대한 자세하게 아주 디테일한 부분 하나까지 짚어준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책을 펼쳐놓고 하나씩 따라해보며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확인해 볼 수도 있고 말이다.

 

말하자면 <혼자서도 잘찍는 DSLR & 미러리스 사진촬영 길라잡이>는 일종의 해설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카메라를 혼자서 배우는 이들을 위한 고급 해설서. 카메라 문외한이 본다고 해도 따라할 수 있을만큼 쉬운, 하지만 전문성도 놓치지 않는 아주 좋은 책. 생각보다 책의 퀄리티가 좋아 초보자인 나는 엄청나게 만족스럽다. 이제 막 미러리스 카메라에 발을 내딛으려 하는 나에게는 말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잘 가르쳐 주는 이 책은, 아마도 미러리스 카메라가 손에 완전히 익고 나서도 내 곁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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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댓글의 기준은 알 수 없으나, 영화는 궁금하니까 응모,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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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신간평가단의 운용이 잠시 멈췄었다. 그리고 나는 내 SNS에 왜 우리가 멈춰야만 하는 거냐며 맘에 안든다 꿍얼꿍얼 웅얼거림을 늘어놓았었고 말이다. 당시에는 진짜 신간평가단이 이대로 끝인 줄 알았거든ㅠ 그런데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반갑고, 즐겁고 그러하다. 소설 분야의 책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신간평가단 중단 소식에 힘이 쪽 빠졌던 게 사실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다시 돌아왔으니, 무조건 17기도 지원할테다!!라는 말도 안되는 다짐을 하며,

11월의 주목 신간을 꼽아본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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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_장강명 (은행나무)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그믐>과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에 대한 믿음이 있는 상태에서 작가는 '흥미로운 상황'에 대한 소재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을 써 냈다. 인터넷 세상이 사실은 기둥 몇 개만 무너뜨리면 금방 무너지는 허약한 공간이라는 것, 누군가 불순한 의도로 작전을 벌인다면 누구라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에 어떤 살을 붙였을지, 그 내용들을 보면서 작가가 상상했던 것은 어떤 상상이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작가들의 전쟁 VS : 어른아이 _김시우, 은하 (떡밥스토리)

문화 얼리어답터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라기에 관심이 갔다...는 과장된 말이지만, 소설의 형식이 굉장히 신선했다. 작가 둘이서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각각 3편의 단편을 써 냈다. 독자는 그 책을 읽은 후 한 쪽의 손을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작가들이 같은 모티브를 놓고 글을 쓰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결을 펼친 적은 없었던 것 아닌가. 같은 주제로도 수천가지의 이야기가 만들어 질 수 있는데, 그것들이 어떤 상상으로 이루어졌을지 궁금하다. 나도 출판사의 변에 동의한다. 소설을 읽는 것 또한 '즐거움'을 위한 것. 누가 이기고 지고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게임같은 느낌을 책을 통해서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처럼 보이니까.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라 끌리고, 그 주제가 어른아이인 것이 더 끌린다. 과연, 어떤 소설들이 들어 있을런지.

 

 

 

 

 

 

 
해질 무렵 _황석영 (문학동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작가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다. 엄청난 갯수의 100자평들이 말해주는 신뢰감은 져버리기 힘들었다.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무게가 주는 네임벨류 또한 져버리기는 힘들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다. 전혀 다른 2개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섞이는지, 그것이 어떤 울림을 줄지가 말이다. 해질 무렵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또한 무엇일지.

 

 

 

 

 

 

_두리안 스케가와 (은행나무)

영화가 개봉했을 때부터 궁금했던 영화다. 일본 특유의 조용하면서도 슬쩍 울림을 주는 이야기 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영화에 원작이 있단다. 영화 제목과 같은 '앙'이라는 제목의 원작. 앙은 단팥을 뜻하는 일본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단팥을 만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간다는 것의 대견함'이란 문장이 왜 그리 눈에 밟히는 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소재들의 소설들 사이에서 유독 위로를 줄 것만 같은 책이라 눈길이 갔다. 아무래도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한데, 그 울림이 얼만큼 다가올지 잘은 가늠이 안되지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근데 아마도 선택되지 않을 것 같아...ㅠ)

 

 

 

 

 

허공에서 춤추다 _낸시 크레스 (폴라북스)

과학소설이라고 한다. 13편의 중단편이 모두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그 글이 얼만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과학소설에서 독보적인 존재'라는 작가에 대한 찬양은 도대체 작가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살펴보니 아마도 미래에 도래할 지도 모르는 일들을 미리 상상을 해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은데, 그의 상상이 실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이라는 것과 함께 미리 알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것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지금껏 읽어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의 소설일 것만 같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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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을 고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이 중에서 한 권은 선택되길 바라 보면서-

다시 시작하게 된 신간평가단을 축하합니다.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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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술사 무블 시리즈 2
이원태.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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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접하는 장르 무블(movel). 창작집단 원탁은 무블 시리즈를 만들어 하나씩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 같은 소설 혹은 소설 같은 영화로 이야기의 변화무쌍을 지향한다.'는 이들의 목표처럼, 무블은 가지고 있는 컨텐츠가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블의 두번째 이야기인 <조선 마술사>도 그렇다. 애초에 '원소스 멀티유즈'를 염두에 둔 채 만들어지는 무블이었기에, <조선 마술사>는 책의 내용만으로도 흥미로웠지만 그것이 시각화 되었을 때의 화려함까지 모두 계산을 한 채 글을 쓴 듯 했다. 이것들이 시각화 되었을 때 어찌될까 궁금증이 더 일었고 말이다.

 

시각화에 대한 궁금증은 곧 개봉하는 영화 <조선 마술사> 때문이다. 책에는 존재하지 않는 설정이 덧붙여졌다거나, 악역이 좀 더 악독해졌다거나,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인물도 등장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의 각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마술들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을 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유승호가 제대한 후 처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던 데다가, 지금 차례로 공개되는 스틸과 포스터, 티저와 트레일러들을 살펴보면 마술사의 비쥬얼이 심쿵사 당할 정도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원작이 꽤나 매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을 빼 놓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왕과 후궁 사이의 딸로 태어나 굉장히 고귀한 목숨을 타고났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저히 버림받은 채 생활하던 옹주 청명,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마술사 환희. 옹주와 마술사 둘의 사랑이야기가 <조선 마술사>의 중심 이야기다. 중반 즈음의 청국 사신단이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일들이 새로운 줄기를 형성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끌리듯 다가서면서 알아가는 이야기가 본 초점이고, 마술은 환희를 신비롭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선택했다. (굳이 옹주를 조수로 만들어 제 곁에 붙여 두면서 마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 등이 말이다)

 

사실 높은 신분의 공주 혹은 왕자와 낮은 신분(대체로는 천민 출신)의 백성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 소설은 신데렐라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마술사와 오히려 자신이 왕족임을 거추장스러워 하는 옹주의 등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것도 그리 새로운 포맷은 아니다만 시대가 조선시대였으므로!) 애초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옹주와 천민이 결혼할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다. 마술사는 인기가 있을 지언정 광대로 치부될 수 밖에 없고, 광대는 천민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신분 차이 때문에 둘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하지만 청명은 '결혼 할 것도 아닌데 왜 안되는데!'를 외치는 꽤나 당찬 옹주였고, 환희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청명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 뿐인, 심장에 총알이 박히는 것보다 이별을 더 싫어하는 남자(365쪽) 사랑꾼이었을 뿐이다. "당신은 보통 조수가 아니오. 당신은... 내게 새로운 마술을 떠올리게 하는 조수라오."(237쪽) 청명은 환희의 뮤즈기도 했지만.

 

꽤나 본격적으로 마술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 흥미로움은 배가된다. 주인공인 환희가 말도 안되는 마술들을 성공해 낼 때마다 이건 소설이라 가능한 것은 아닐까 재고 있는 나를 발견하긴 하지만, 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눈속임? 사기? 손장난? 마술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앞뒤 좌우를 따지지 않고 박수 치게 만드는 일. (51쪽) 책에서는 마술을 이렇게 정의했다. 마술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일 뿐이라고. 누군가를 속이면서 이익을 취하는 부정적인 잡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연 채 '말 그대로의 마술 공연'을 즐기는 시간동안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책 속에서 누군가는 마술이 아니라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 뿐이라고도 이야기 했다. 그럴 때 환희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마술사는 마술을 통해 관객들을 낯선 세계로 데려가옵니다. 가난이 없는 세계, 아픔이 없는 세계, 전쟁이 없는 세계, 원통함이 없는 세계, 분노가 없는 세계이옵니다."

"그 세계는 거짓이 아니더냐? 환상일 뿐이지 않느냐?"

"고통 가득한 현실보다 행복 넘치는 거짓이 때론 삶을 버티게 하옵니다." (155~156쪽)

하루를 잘 버티고 즐겁게 지나가면 단지 그 뿐인데 굳이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무엇하랴. 힘든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겐 마술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현실을 견디기 힘든 사람은 저마다 황당한 꿈을 꾸옵니다. 이뤄지기 힘들지만 그 꿈을 꾸는 동안엔 위로를 받사옵니다. 마술은 그들의 꿈을 판 위에 잠시 옮겨 보여 주옵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마술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마술을 만드는 것이옵니다." (158쪽)

현대처럼 많은 것을 누릴 수 없는 시대이다보니 이런 말을 마구마구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마술을 믿지 않는 나조차도 책을 읽는동안은 마술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무슨 트릭이 숨어 있나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술에 온전히 내 마음을 내맡긴 채 즐기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이처럼 환상인 듯 환상이 아닌 마술. 작가는 마술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술같은 사랑도 서로를 자신보다 더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니, 마술을 믿고 싶다면 그 전에 누군가를 믿는 연습부터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대는 누군가를 믿는 것보다 누군가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일반적인 사회라서 말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내게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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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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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괴이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뭔가 어긋나는 것들의 연속. 읽으면 읽어나갈수록 이상한 것 투성이인, 여기의 시대적 배경이 영국이라고 했는데 토끼굴이라니 이건 뭐지? 도대체 이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무언가 뚜렷하지 않고 계속 '안개' 속에 쌓인 느낌의 소설. 1장을 지나갈 때까지도 이 소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럴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꽁꽁 숨겨 놓은 채, 답답함만을 가득 안은 채. 수수께끼들을 풀기 위해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는 없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읽히지 않아도 읽어내야만 했다.

 

만약 내가 직접 구입한 책이었다면 안 읽고 중간에 포기했을 가능성이 많았던 책- 그나마 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른채 읽어나가다 보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이 책은 처음부터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니 말이다. 용이 등장하고, 원탁의 기사가 등장하고, 도깨비와 전사가 등장하는 비현실적 소설. 그러니 처음에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유추할 수 없었던 것이다.(실제에서 찾으려 했으니) 소설이 진행되는 방식이 낯설어서 자꾸 덮고 싶었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친절하지는 않아도 보여줘야 할 것들은 보여준다. 의문을 잔뜩 일으킬만한 복선 비슷한 것들을 깔아두고 그것을 나중에 해결하는 식으로 말이다. 의문들이 하나씩 풀려나가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일어난다. 도대체 왜?라는 근본적인 의문. 바로 어제의 기억도 없는 사람들, 섬으로 가기 위해 뱃사공에게 부부의 좋은 기억을 똑같이 말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에서 공통되는 '기억'이라는 단어 말이다.

 

"사라져서 좋은 것도 많지만 이렇게 소중한 걸 기억하지 못하는 건 잔인한 일이오."(50쪽)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당신 남편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거예요?" (71쪽)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가끔씩 흘러나왔다. 어제의 기억, 아니 방금 전의 기억도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과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과거는 기억하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것이 잘못됐다 믿는 주인공 부부와 같은 사람들도 분명 있었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은 금방 오늘의 일도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기에 '파묻힌 거인'이라는 단어는 '파묻힌 기억'의 다른 말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과거를 잃어버리는 게 두려운 이들에게 이는 보이지 않는 거인과 싸우는 것과 진배 없는 일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액슬, 우린 그 시절을 기억조차 못 하잖아요. 그 후의 시간도요. 우리 사이에 격력했던 싸움도, 함께 소중히 즐겼던 순간들도 기억하지 못해요. 우리 아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애가 어쩌다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그 모든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요, 공주. 게다가 내가 기억을 하든 잊어버리든 내 마음속에 당신을 향한 감정은 늘 똑같이 그 자리에 있을 거예요. 당신은 늘 같은 감정 아닌가요, 공주?"

"나도 그래요, 액슬. 하지만 지금 다시 드는 생각은요, 오늘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감정이 마치 비를 머금은 잎에서 떨어지는 이 빗방울과 같은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사실 하늘은 오래전에 비가 그쳤는데 말이에요.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의 사랑도 점점 빛이 바래져 완전히 사라져버릴 뿐, 거기에 다른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71-72쪽)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사실, 과거의 기억따위 없어도 앞으로 나아가는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허나, 이것은 사람의 '감정'의 문제다. 과거를 잊는 일은 지나온 모든 것을 잊는 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롯이 나 한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지나온 시간 속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나'를 잃어버리면 과연 그건 '나'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소설 속의 사람들의 감정은 흐르는 것 같았다. 분노와 증오, 사랑등의 감정은 여전히 생겨나고 흘러간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에서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증오했다. 다른 이들에게 우르르 동조하고 자신의 줏대는 없어져 버리는 것.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기보다 대세를 따라가는 것. 기억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좋은 일인걸까.

 

"하지만 안개는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 모두 덮고 있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부인?"

"우리에게 나쁜 기억도 되살아나겠지요. 그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로 몸을 떨기도 할 거고요. 그래도 그건 우리가 함께했던 삶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럼, 나쁜 기억이 두렵지 않은가요, 부인?"

"뭐가 두려워요, 신부님? 아무리 이 안개가 위험을 숨기고 있더라도 기억을 되찾는 길이 우리에게는 어떤 위험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건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 (235쪽)

 

어떤 것도 받아들이는 기억이야 말로 '나'를 만드는 가장 큰 본질. 기억은 거인처럼 커다랗다. 그리고 어쩌면 그 거인이 나를 밟아 죽이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파묻힌 거인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거인을 마주하는 편이 좀 더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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