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술사 무블 시리즈 2
이원태.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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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접하는 장르 무블(movel). 창작집단 원탁은 무블 시리즈를 만들어 하나씩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 같은 소설 혹은 소설 같은 영화로 이야기의 변화무쌍을 지향한다.'는 이들의 목표처럼, 무블은 가지고 있는 컨텐츠가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블의 두번째 이야기인 <조선 마술사>도 그렇다. 애초에 '원소스 멀티유즈'를 염두에 둔 채 만들어지는 무블이었기에, <조선 마술사>는 책의 내용만으로도 흥미로웠지만 그것이 시각화 되었을 때의 화려함까지 모두 계산을 한 채 글을 쓴 듯 했다. 이것들이 시각화 되었을 때 어찌될까 궁금증이 더 일었고 말이다.

 

시각화에 대한 궁금증은 곧 개봉하는 영화 <조선 마술사> 때문이다. 책에는 존재하지 않는 설정이 덧붙여졌다거나, 악역이 좀 더 악독해졌다거나,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인물도 등장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의 각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마술들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을 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유승호가 제대한 후 처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던 데다가, 지금 차례로 공개되는 스틸과 포스터, 티저와 트레일러들을 살펴보면 마술사의 비쥬얼이 심쿵사 당할 정도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원작이 꽤나 매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을 빼 놓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왕과 후궁 사이의 딸로 태어나 굉장히 고귀한 목숨을 타고났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저히 버림받은 채 생활하던 옹주 청명,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마술사 환희. 옹주와 마술사 둘의 사랑이야기가 <조선 마술사>의 중심 이야기다. 중반 즈음의 청국 사신단이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일들이 새로운 줄기를 형성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끌리듯 다가서면서 알아가는 이야기가 본 초점이고, 마술은 환희를 신비롭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선택했다. (굳이 옹주를 조수로 만들어 제 곁에 붙여 두면서 마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 등이 말이다)

 

사실 높은 신분의 공주 혹은 왕자와 낮은 신분(대체로는 천민 출신)의 백성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 소설은 신데렐라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마술사와 오히려 자신이 왕족임을 거추장스러워 하는 옹주의 등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것도 그리 새로운 포맷은 아니다만 시대가 조선시대였으므로!) 애초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옹주와 천민이 결혼할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다. 마술사는 인기가 있을 지언정 광대로 치부될 수 밖에 없고, 광대는 천민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신분 차이 때문에 둘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하지만 청명은 '결혼 할 것도 아닌데 왜 안되는데!'를 외치는 꽤나 당찬 옹주였고, 환희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청명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 뿐인, 심장에 총알이 박히는 것보다 이별을 더 싫어하는 남자(365쪽) 사랑꾼이었을 뿐이다. "당신은 보통 조수가 아니오. 당신은... 내게 새로운 마술을 떠올리게 하는 조수라오."(237쪽) 청명은 환희의 뮤즈기도 했지만.

 

꽤나 본격적으로 마술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 흥미로움은 배가된다. 주인공인 환희가 말도 안되는 마술들을 성공해 낼 때마다 이건 소설이라 가능한 것은 아닐까 재고 있는 나를 발견하긴 하지만, 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눈속임? 사기? 손장난? 마술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앞뒤 좌우를 따지지 않고 박수 치게 만드는 일. (51쪽) 책에서는 마술을 이렇게 정의했다. 마술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일 뿐이라고. 누군가를 속이면서 이익을 취하는 부정적인 잡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연 채 '말 그대로의 마술 공연'을 즐기는 시간동안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책 속에서 누군가는 마술이 아니라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 뿐이라고도 이야기 했다. 그럴 때 환희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마술사는 마술을 통해 관객들을 낯선 세계로 데려가옵니다. 가난이 없는 세계, 아픔이 없는 세계, 전쟁이 없는 세계, 원통함이 없는 세계, 분노가 없는 세계이옵니다."

"그 세계는 거짓이 아니더냐? 환상일 뿐이지 않느냐?"

"고통 가득한 현실보다 행복 넘치는 거짓이 때론 삶을 버티게 하옵니다." (155~156쪽)

하루를 잘 버티고 즐겁게 지나가면 단지 그 뿐인데 굳이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무엇하랴. 힘든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겐 마술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현실을 견디기 힘든 사람은 저마다 황당한 꿈을 꾸옵니다. 이뤄지기 힘들지만 그 꿈을 꾸는 동안엔 위로를 받사옵니다. 마술은 그들의 꿈을 판 위에 잠시 옮겨 보여 주옵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마술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마술을 만드는 것이옵니다." (158쪽)

현대처럼 많은 것을 누릴 수 없는 시대이다보니 이런 말을 마구마구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마술을 믿지 않는 나조차도 책을 읽는동안은 마술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무슨 트릭이 숨어 있나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술에 온전히 내 마음을 내맡긴 채 즐기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이처럼 환상인 듯 환상이 아닌 마술. 작가는 마술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술같은 사랑도 서로를 자신보다 더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니, 마술을 믿고 싶다면 그 전에 누군가를 믿는 연습부터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대는 누군가를 믿는 것보다 누군가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일반적인 사회라서 말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내게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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