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의 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자학의 시 1 세미콜론 코믹스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학의 시라는 제목과 표지의 산뜻한 색상을 보고 책의 내용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예상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삶에 고단함과 즐거움에 대한 위트 넘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였다. 하지만 책의 첫페이지부터 나의 이런 예상은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다. 분명 이 책은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 뿐,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이라던지 보람같은 것은 그 어떤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너무나 척박하고 안타까운 시궁창같은 현실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처음에는 이런 감정들이 단순히 내가 예상한 책의 내용과 달랐기 때문에 오는 당황스러움이라 생각했지만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니 이렇게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만화가 존재한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을 꺠달았다.  

툭하면 밥상을 뒤짚어 엎어버리는 백수남편 이사오와 그런 남편 곁에서 행복하다며 열심히 일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유키에의 모습에서 현실의 씁쓸함과 서글픔이 진하게 베어나와 나는 몇번이고 이 책을 중간에서 덮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불쌍한 유키에의 삶이 언젠가는 행복해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백수남편 이사오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하는 희망으로 덮었던 책을 펴고 다시 읽어가길 반복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유키에는 왜 이사오를 떠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백수에다 식당일을 하며 힘들게 번 유키에의 돈을 허구언날 밥먹듯이 뜯어가서 노름과 술로 탕진해버리는 남자가 무엇이 그리 좋다고 두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가득 차버린 마음으로 1권을 끝내고 2권으로 접어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유키에가 왜 이사오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곁에 남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학이란 글자 그대로 자기 스스로를 학대한다는 뜻이다. 즉 스스로에 대하여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에 억눌려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려하지 않고 체념해버린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단어들은 이 책의 주인공 유키에를 가리켰다. 지독한 가난과 그로 인해 자신을 외면하고 버리기만 하는 주변사람들 속에서 유키에는 항상 자학하고 사랑을 갈구한다. 이런 착박한 상황속에서 유키에의 마음을 받아주고 곁에 있어 준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사오였다. 그래서 유키에는 결코 이사오 곁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두 자신을 떠나갔지만 이사오만은 그렇지 않았기에 유키에는 그의 곁에 있음으로써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지만 이제는 자학이라는 단어가 유키에에게는 괴롭고 슬픈것이 아니라 지나간 추억이 되어버린 과거를 회상하는 단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시를 읽을 때처럼 천천히 음미하듯, 그러나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회상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1권을 읽는 내내 느꼈던 답답한 감정을 2권을 다 완독하고서야 상쇄하고, 비로소 이 책의 상반된 제목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유키에의 모습에서 찡한 감동과 함께 결국 사람의 행복이란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른 것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언제나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유키에는 절망했지만 결코 멈춰서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안에 숨겨져 있던 행복을 찾아냈다. 나는 이런 유키에의 모습이 우리들 모두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척박하고 거친 인생살이지만 그래도 자신안에 있는 행복을 발견함으로써 살아갈 용기를 얻어가는 모습이 꼭 닮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못생겼고 바보같이 착하기만한 유키에지만 이제는 행복을 찾은 그녀가 진정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부디 앞으로는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자학의 시가 아니라 행복의 시를 읇게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을 마지막으로 읽은게 언제일까? 도통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을 기억해내기 위해 기억을 더듬다 어느순간 내가 한국문학을 읽지 않게 된 까닭이 무엇이였는가로 생각이 옮겨갔다. 아마도 그 까닭은 중학교 때 읽었던 한국 근현대문학이 한국인의 질곡한 역사와 그 감정들을 담은 이야기였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고 사색보다 밝고 즐거운 것들에 무게를 두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 사색과 정한으로 점철되어 있던 한국문학은 읽는 것 자체가 여간 고역이 아니였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에 씌여져 교과서와 시험에 단골손님으로 나온다는 한국문학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설움과 고통이 가슴을 저며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애써 외면하려고만 했다. 후에 대학에 진학해서 좀더 다른 주제들을 다룬 한국문학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스스로 책들을 피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더 흐르고 어느순간 문득 내 자신이 한국문학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다잡고 읽어보려 해도 그동안 계속 피해온 한국 문학을 다시 마주할 용기는 쉽사리 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한국문학은 어렵고 사색적이며 내가 감당하기 힘든 정한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주하고 싶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에 휩쌓여 있던 내 앞에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이 나타났다. 대상은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서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가슴에 담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는 생각과 감정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기에 묻고 또 묻으며 그런 것은 없다고 되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느날 갑작스레 가슴 깊숙한 곳에서 튀어나와 스스로를 놀라게 만든다. 이것은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가슴에 담아둔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불편한 마주침이다. 나의 경우엔 한국문학에 대한 불편함이 그것이였고, 이 책의 주인공에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였다.  

나는 이 책을 펼쳐들고 읽어 나가면서 마침내 그 불편함과 마주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쉽게 자신의 문제와 마주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책을 펼치고 덮음으로써 불편함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문제와 대항할 수 있었지만 주인공은 문제에 다가갈수만 있을뿐 주도권은 문제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란 존재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불편한 마주침을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쌓이고 쌓여서 마치 불어난 강물처럼 이성이란 둑을 세차게 두들겨 버린다. 결국 그 강물을 가까스로 막고 있던 둑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겨버리자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아버지를 향해 그 감정의 홍수들을 쏟아내 버리고 만다. 그 감정들은 29년간 쌓인 기대, 분노, 실망, 아픔들이였기에 자기자신과 주변 모두를 당황시키고 상처입힐만큼 거셌다. 마침내 이 혼란스러운 감정속에서 주인공은 결단을 내린다. 아버지란 존재의 처분을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이 불편한 마주침을 끝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주인공의 끝맺음과 함께 불편한 마주침에 작별을 보냈다. 

주인공의 불편한 마주침은 성공적이였을까? 나는 성공적이라고 본다. 처음 주인공이 아버지의 부재란 불편한 감정을 깨닫고 두려움에 휩쌓였던 것은 그 불편함의 대상에 대한 긍정의 감정도 그 반대의 감정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 대상이였다는 것에 있었던 까닭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불편한 것이 또 있을까? 이제는 그런 불편함에서 해방되어 무의 대상이였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그 어떤 감정과 기억을 지니게 되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에서 부족했던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울 수 있었으니 그의 불편한 마주침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불편한 마주침은 성공적이였다. 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작가 이승우의 글솜씨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도 놀랄정도 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승우의 글쓰기 방식은 내가 그토록 피하려고 한 한국문학의 불편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사색적이고 내면관찰에 치중한 한국문학 특유의 스타일을 이야기였지만 이런 요소들이 어쩐일인지 내게 전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의 비유와 복잡미묘한 심리 변화에 대한 서술은 나로 하여금 책 속으로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동안 주로 읽었던 외국문학의 번역체에서 오는 한단계 걸러진듯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였기 때문에 더욱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며 나를 책 속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와 책속의 "나"인 주인공은 서로 같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둘은 모두 불편함과 마주하고 그것과 얽힌 감정들을 스스로 정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책 속에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불편함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그 불편함의 인식 전으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때가 되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된 것은 그 "때"가 되었던 까닭인 것 같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존재를 찾게 된 때가 온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만족스러운 감정으로 한국문학의 "재"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좀 더 많은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그 작가들의 첫번째 목록에 이승우를 올려놓고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이만 줄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을 산다
오히라 미쓰요 지음, 김인경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10여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오히라 미쓰요씨의 스토리가 방송 된 적이 있었다. 당시엔 그저그런 일본사람의 성공스토리라고 생각하고 방송분을 다 보지않고 그냥 넘겨 버렸다.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변호사가 된 당찬 여인네의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몇년이 지나 오히라씨의 첫번째 책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읽고 그녀 인생의 굴곡과 참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과 관심은 시작되었다. 

오히라 미쓰요씨 책들은 나에게 많은 위로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을 주었다. 오히라씨에게 매료된 나는 그녀의 저서 중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은 다 구해서 읽어 버렸다.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내 주먹을 불끈쥐게 만들었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야지, 그때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용기와 자극을 북돋아 준 오히라 미쓰요씨가 행복해지길 바랬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바램과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산다"로 오히라씨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드시 행복해지길 바랬던 사람이기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런 내 동정과 생각들은 참 어리석은 것이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다름아닌 바로 오히라 미쓰요였기 때문이다.  

오히라 미쓰요씨는 여전히 밝고 씩씩하고 용감했다. 아이의 장애를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받아 들였다. 그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늦게 크고 조금 부족할 뿐인 개성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중한 생명이기에 자신의 건강과 맞바꾼 힘든 출산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부드러움과 여유를 지니고 행복해 한다. 그렇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보물이 바로 딸이라며 그 끝없는 애정의 깊이와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런 오히라씨의 행복한 마음이 책속에서 계속 느껴져서 읽는 내내 나도 마음이 흐믓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의 요소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처음 오히라씨의 책을 읽게 된 순간부터 꽤 시간이 흘렀고 오히라씨도 나도 많이 변했다. 그녀는 묵직한 서류가방을 든 비행 청소년 전문 변호사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모습으로, 나는 꿈많은 학생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비록 지금은 각자가 꿈꾸던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난 자리에 있지만 아직은 이 모습과 위치가 인생의 완성점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오히라씨도 나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여전히 멋지고 당당한 오히라 미쓰요씨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한번 용기를 얻고 간다. 하지만 이제 그녀와 만나는 것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작별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피천득씨의 글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중략)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버모어 이모탈 시리즈 1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을 너무 늦게 먹은 탓이였을까? 결국 잠자리에서 계속 뒤척거리던 나는 잠이 올 때까지 잠깐 읽어볼 요량으로 에버모어를 펼쳐들게 되었다. 마침 에버모어는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었기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읽기 나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위한 내 선택은 썩 훌륭하지 못했다. 난 그날 밤 이 책을 읽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전부 잃고 그 사고로 인해 초능력을 얻게 된 16살 소녀 에버는 자신을 후드와 썬글라스로 감춘 채 가족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한가지 위안은 동생 라일리가 유령으로나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 뿐. 그런데 이런 에버의 앞에 데이먼이라는 그야말로 지구제일의 완벽한 남자가 전학을 온다. 그리고 이 완벽남 데이먼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에버와 러브스토리를 꽃피워 간다. 하지만 사랑이 더 불타오르기 위해선 장애물이 존재해야 하는 법. 데이먼과 과거에 로맨스로 얽혔던 느낌이 풍기는 드리나라는 여자가 나타나고, 의문에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 된다. 게다가 이 모든 일들에 데이먼이 얽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에버는 엄청난 시련과 맞닥들이게 된다. 

이 책을 완독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것이였다. 분명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흡입력도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로맨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꼬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총 6권의 시리즈 중 도입부에 해당하는 1편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스토리에 대한 포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설정의 부족함이 계속 눈에 밟혔다. 재미는 있지만 그와 비례하게 헛점도 많은 소설이라니, 칭찬을 해야할지 비판을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경험하고 초능력을 지니게 된 소녀 에버와 신비로운 남자 데이먼의 사랑이야기는 모든 여자들이 한번쯤은 꿈꿔봤음직한 로맨스처럼 달콤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이 책이 포스트 트와일라잇이라는 평을 받으며 국내에 당당히 출판된 것에도 백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난 트와일라잇보다 에버모어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란 부분에서 트와일라잇보다 더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버모어는 복잡한 감정을 지닌 다양한 캐릭터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작가의 뒷심부족으로 설득력있게 다 끌어가지 못했기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야기의 풍성함만큼 헛점도 적지 않게 보인다.  

에버모어는 로맨스의 전형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처음 읽는 순간부터 친근함을 느끼게 하여 책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진부한 로맨스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독자가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야기 전반에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넣고, 에버가 가족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는 것에 대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글의 후반부에 그 이유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미숙함으로 빛이 바래고 에버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갉아 먹어 버렸다.  

에버는 이야기 내내 가족이 죽은 것은 내탓이야. 이런 이상한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은 내 업보야. 난 이렇게 우울하게 살다가 죽어야 마땅해라며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런 자아혐오성 발언도 한두번이지, 매 챕터마다 계속 이런 독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다보니 중반 이후부터는 자신이 실수 해서 생기는 모든 불행까지도 이 불운한 과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걸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즉, 여주인공 에버에게 더 이상 감정 이입이 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까지 났다. 차라리 이야기 초반, 에버가 갖는 죄책감의 이유에 대해 먼저 꺼내놓았다면 이야기의 집중력은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최소한 설득력에는 더 힘을 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 후반부에 에버가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부분의 이야기 구성방식 역시 눈에 거슬리는 부분 중에 하나였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서술방식의 문제인지는 원문을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챕터에서 장소의 이동은 에버가 고주망태로 학교 화장실에서 주차장으로 그리고 마일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일즈의 집으로 가서 다시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순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갑자기 나타난다. 둘의 대화도중 에버의 생각으로 학교관계자들에게 음주로 붙잡혔었다라는 내용이 단 한줄 나오는데 그것만으로 이 갑작스런 전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학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장소 이동중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용의 전개 방식도 뒤죽박죽이라 이 부분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번역이 매끄러웠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었을지 모르나 번역도 혼란인 상태라 이부분의 내용은 그냥 에버가 음주로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는 것을 이해한것만으로 만족하고 넘어 가야했다. 

사실 작가의 서술방식과 뒷심의 부족에서 나오는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작가는 묘사보다는 감정의 이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묘사와 설명의 부족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어느정도 수긍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의 설명이 빠져 있는 것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알 수없는 장소의 이동, 서 있고 앉아 있는 모습, 물건과 캐릭터가 이동한 동선 등등, 묘사가 부족하여 상상으로 넘겨야 했던 부분이 꽤 많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렇게 자잘한 부분들이 자꾸만 공백으로 남겨져서 정작 클라이막스에선 그 절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작가가 미처 묘사하지 못한 부분의 공백을 이해하고 수긍하기 위해 한참을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솔직히 번역은 칭찬 반, 비판 반의 마음이다.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읽을 수 있게 번역을 한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이야기는 부드럽고 쉽게 읽힌다. 그런데 의역이 아닌 직역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한 문장안에서도 앞뒤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물론 의역이 무조건적으로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번역이란 문장 그 자체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적절하게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에버모어의 경우에선 문장 원문의 해석에 중점을 둔 나머지 직역에 집중했고 그래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며 의문이 많이 남는 번역이 되고 말았다.  

에버모어는 처음에 언급한대로 달콤한 로맨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여심을 뒤흔들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덕분에 밤을 새며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말이다. 물론 밤을 새며 읽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에버모어가 재밌었고 그래서 이 시리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이렇게 에버모어의 후속작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마도 에버가 데이먼을 볼때마다 느끼는 그 두근거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브레이킹 던을 끝으로 떠나보내고 가슴에 뻥 뚫린 허전함을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자잘한 단점을 상쇄할만큼 에버모어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세상이 온통 노란 은행나무 빛깔로 물들어 가던 늦가을날 그 가을빛깔을 닮은 가스미초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노란빛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어쩐일인지 이 책 표지의 노란 은행나무 빛깔만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아사다 지로라는 것을 알게됨과 동시에 나는 가스미초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가스미초 이야기는 이미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그 아련한 추억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8편의 단편으로 엮여져 있다. 보통 단편집의 책 제목은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든 챕터의 제목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스미초 이야기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펼쳐든 순간 첫 단편의 제목이 가스미초 이야기라는 것에 당황하고 말았다. 보통의 책이라면 제목을 담고 있는 단편은 중간 그 이후 부분에 배치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첫 챕터부터 이 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아사다 지로의 공격에 KO해버린 나는 당황함을 마음 속 저 깊은 곳으로 꾹꾹 눌러 넣고 차근차근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단편으로 엮어져 매 챕터마다 각자의 이야기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지만 이 모든 단편의 화자가 “이노“라는 주인공을 구심점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8개의 이야기들은 단편이 갖는 산만함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깔끔하고 질서정연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의 이야기 안에 드러난 주인공의 단편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뭉쳐져 버린 감정이 폭발해 버린다. 그 감정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가슴속의 사라진 추억들과 그에 대한 애뜻함, 그리고 가슴 뭉클한 그리움인 것 같다. 그 폭발한 감정들은 어느순간 한없이 묵직한 감정의 잔상으로 내 가슴에 남아버렸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억은 두가지의 상반된 감정으로 다가온다. 지나간 시절의 향수에서 오는 애잔함과 아직 어렸던 시절의 실수들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가스미초 이야기의 화자 "이노"의 지나간 기억 역시 그 두가지 감정으로 가스미초에 살던 시절의 기억들을 펼쳐놓는다. 그 기억들은 이미 지나갔기에 그리고 어렸던 날들의 방황과 아픔들이 있었지만 그로인해 한걸음씩 성장 할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이 더없이 아름다웠노라 이야기한다. 즉, 가스미초 이야기는 단순히 그가 살았던 그 시절의 그 지역의 추억만을 이야기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절에 애잔함과 부끄러움에서 오는 인간의 성장과 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의 인생 이야기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딱 한부분 존재하긴 했지만, 그외의 그에 감성에 모두 동의 하므로 그런 점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아사다 지로의 책을 처음 만난것은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였다. 당시 중학생이였던 소녀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그의 소설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를 다시 만난 소설이 과거 기억에 대한 향수를 담은 이 가스미초 이야기라니. 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엔 줄곧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감성적이였던 사춘기 소녀시절 내 가슴에 인을 새긴 그의 작품은 어느새 팍팍한 어른이 되어버린 내 가슴에 또 다른 인을 남겨 놓으니까. 앞으로 10년뒤에 또다시 아사다 지로의 작품을 만난다면 과연 그때는 어떤 감성으로 내 가슴에 또다른 인을 남겨줄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그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