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을 마지막으로 읽은게 언제일까? 도통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을 기억해내기 위해 기억을 더듬다 어느순간 내가 한국문학을 읽지 않게 된 까닭이 무엇이였는가로 생각이 옮겨갔다. 아마도 그 까닭은 중학교 때 읽었던 한국 근현대문학이 한국인의 질곡한 역사와 그 감정들을 담은 이야기였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고 사색보다 밝고 즐거운 것들에 무게를 두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 사색과 정한으로 점철되어 있던 한국문학은 읽는 것 자체가 여간 고역이 아니였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에 씌여져 교과서와 시험에 단골손님으로 나온다는 한국문학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설움과 고통이 가슴을 저며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애써 외면하려고만 했다. 후에 대학에 진학해서 좀더 다른 주제들을 다룬 한국문학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스스로 책들을 피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더 흐르고 어느순간 문득 내 자신이 한국문학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다잡고 읽어보려 해도 그동안 계속 피해온 한국 문학을 다시 마주할 용기는 쉽사리 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한국문학은 어렵고 사색적이며 내가 감당하기 힘든 정한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주하고 싶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에 휩쌓여 있던 내 앞에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이 나타났다. 대상은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서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가슴에 담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는 생각과 감정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기에 묻고 또 묻으며 그런 것은 없다고 되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느날 갑작스레 가슴 깊숙한 곳에서 튀어나와 스스로를 놀라게 만든다. 이것은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가슴에 담아둔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불편한 마주침이다. 나의 경우엔 한국문학에 대한 불편함이 그것이였고, 이 책의 주인공에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였다.  

나는 이 책을 펼쳐들고 읽어 나가면서 마침내 그 불편함과 마주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쉽게 자신의 문제와 마주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책을 펼치고 덮음으로써 불편함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문제와 대항할 수 있었지만 주인공은 문제에 다가갈수만 있을뿐 주도권은 문제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란 존재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불편한 마주침을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쌓이고 쌓여서 마치 불어난 강물처럼 이성이란 둑을 세차게 두들겨 버린다. 결국 그 강물을 가까스로 막고 있던 둑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겨버리자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아버지를 향해 그 감정의 홍수들을 쏟아내 버리고 만다. 그 감정들은 29년간 쌓인 기대, 분노, 실망, 아픔들이였기에 자기자신과 주변 모두를 당황시키고 상처입힐만큼 거셌다. 마침내 이 혼란스러운 감정속에서 주인공은 결단을 내린다. 아버지란 존재의 처분을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이 불편한 마주침을 끝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주인공의 끝맺음과 함께 불편한 마주침에 작별을 보냈다. 

주인공의 불편한 마주침은 성공적이였을까? 나는 성공적이라고 본다. 처음 주인공이 아버지의 부재란 불편한 감정을 깨닫고 두려움에 휩쌓였던 것은 그 불편함의 대상에 대한 긍정의 감정도 그 반대의 감정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 대상이였다는 것에 있었던 까닭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불편한 것이 또 있을까? 이제는 그런 불편함에서 해방되어 무의 대상이였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그 어떤 감정과 기억을 지니게 되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에서 부족했던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울 수 있었으니 그의 불편한 마주침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불편한 마주침은 성공적이였다. 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작가 이승우의 글솜씨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도 놀랄정도 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승우의 글쓰기 방식은 내가 그토록 피하려고 한 한국문학의 불편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사색적이고 내면관찰에 치중한 한국문학 특유의 스타일을 이야기였지만 이런 요소들이 어쩐일인지 내게 전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의 비유와 복잡미묘한 심리 변화에 대한 서술은 나로 하여금 책 속으로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동안 주로 읽었던 외국문학의 번역체에서 오는 한단계 걸러진듯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였기 때문에 더욱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며 나를 책 속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와 책속의 "나"인 주인공은 서로 같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둘은 모두 불편함과 마주하고 그것과 얽힌 감정들을 스스로 정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책 속에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불편함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그 불편함의 인식 전으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때가 되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된 것은 그 "때"가 되었던 까닭인 것 같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존재를 찾게 된 때가 온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만족스러운 감정으로 한국문학의 "재"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좀 더 많은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그 작가들의 첫번째 목록에 이승우를 올려놓고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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