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모어 이모탈 시리즈 1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을 너무 늦게 먹은 탓이였을까? 결국 잠자리에서 계속 뒤척거리던 나는 잠이 올 때까지 잠깐 읽어볼 요량으로 에버모어를 펼쳐들게 되었다. 마침 에버모어는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었기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읽기 나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위한 내 선택은 썩 훌륭하지 못했다. 난 그날 밤 이 책을 읽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전부 잃고 그 사고로 인해 초능력을 얻게 된 16살 소녀 에버는 자신을 후드와 썬글라스로 감춘 채 가족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한가지 위안은 동생 라일리가 유령으로나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 뿐. 그런데 이런 에버의 앞에 데이먼이라는 그야말로 지구제일의 완벽한 남자가 전학을 온다. 그리고 이 완벽남 데이먼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에버와 러브스토리를 꽃피워 간다. 하지만 사랑이 더 불타오르기 위해선 장애물이 존재해야 하는 법. 데이먼과 과거에 로맨스로 얽혔던 느낌이 풍기는 드리나라는 여자가 나타나고, 의문에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 된다. 게다가 이 모든 일들에 데이먼이 얽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에버는 엄청난 시련과 맞닥들이게 된다. 

이 책을 완독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것이였다. 분명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흡입력도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로맨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꼬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총 6권의 시리즈 중 도입부에 해당하는 1편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스토리에 대한 포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설정의 부족함이 계속 눈에 밟혔다. 재미는 있지만 그와 비례하게 헛점도 많은 소설이라니, 칭찬을 해야할지 비판을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경험하고 초능력을 지니게 된 소녀 에버와 신비로운 남자 데이먼의 사랑이야기는 모든 여자들이 한번쯤은 꿈꿔봤음직한 로맨스처럼 달콤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이 책이 포스트 트와일라잇이라는 평을 받으며 국내에 당당히 출판된 것에도 백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난 트와일라잇보다 에버모어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란 부분에서 트와일라잇보다 더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버모어는 복잡한 감정을 지닌 다양한 캐릭터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작가의 뒷심부족으로 설득력있게 다 끌어가지 못했기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야기의 풍성함만큼 헛점도 적지 않게 보인다.  

에버모어는 로맨스의 전형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처음 읽는 순간부터 친근함을 느끼게 하여 책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진부한 로맨스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독자가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야기 전반에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넣고, 에버가 가족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는 것에 대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글의 후반부에 그 이유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미숙함으로 빛이 바래고 에버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갉아 먹어 버렸다.  

에버는 이야기 내내 가족이 죽은 것은 내탓이야. 이런 이상한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은 내 업보야. 난 이렇게 우울하게 살다가 죽어야 마땅해라며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런 자아혐오성 발언도 한두번이지, 매 챕터마다 계속 이런 독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다보니 중반 이후부터는 자신이 실수 해서 생기는 모든 불행까지도 이 불운한 과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걸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즉, 여주인공 에버에게 더 이상 감정 이입이 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까지 났다. 차라리 이야기 초반, 에버가 갖는 죄책감의 이유에 대해 먼저 꺼내놓았다면 이야기의 집중력은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최소한 설득력에는 더 힘을 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 후반부에 에버가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부분의 이야기 구성방식 역시 눈에 거슬리는 부분 중에 하나였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서술방식의 문제인지는 원문을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챕터에서 장소의 이동은 에버가 고주망태로 학교 화장실에서 주차장으로 그리고 마일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일즈의 집으로 가서 다시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순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갑자기 나타난다. 둘의 대화도중 에버의 생각으로 학교관계자들에게 음주로 붙잡혔었다라는 내용이 단 한줄 나오는데 그것만으로 이 갑작스런 전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학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장소 이동중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용의 전개 방식도 뒤죽박죽이라 이 부분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번역이 매끄러웠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었을지 모르나 번역도 혼란인 상태라 이부분의 내용은 그냥 에버가 음주로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는 것을 이해한것만으로 만족하고 넘어 가야했다. 

사실 작가의 서술방식과 뒷심의 부족에서 나오는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작가는 묘사보다는 감정의 이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묘사와 설명의 부족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어느정도 수긍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의 설명이 빠져 있는 것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알 수없는 장소의 이동, 서 있고 앉아 있는 모습, 물건과 캐릭터가 이동한 동선 등등, 묘사가 부족하여 상상으로 넘겨야 했던 부분이 꽤 많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렇게 자잘한 부분들이 자꾸만 공백으로 남겨져서 정작 클라이막스에선 그 절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작가가 미처 묘사하지 못한 부분의 공백을 이해하고 수긍하기 위해 한참을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솔직히 번역은 칭찬 반, 비판 반의 마음이다.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읽을 수 있게 번역을 한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이야기는 부드럽고 쉽게 읽힌다. 그런데 의역이 아닌 직역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한 문장안에서도 앞뒤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물론 의역이 무조건적으로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번역이란 문장 그 자체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적절하게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에버모어의 경우에선 문장 원문의 해석에 중점을 둔 나머지 직역에 집중했고 그래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며 의문이 많이 남는 번역이 되고 말았다.  

에버모어는 처음에 언급한대로 달콤한 로맨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여심을 뒤흔들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덕분에 밤을 새며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말이다. 물론 밤을 새며 읽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에버모어가 재밌었고 그래서 이 시리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이렇게 에버모어의 후속작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마도 에버가 데이먼을 볼때마다 느끼는 그 두근거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브레이킹 던을 끝으로 떠나보내고 가슴에 뻥 뚫린 허전함을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자잘한 단점을 상쇄할만큼 에버모어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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