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초콜릿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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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초콜릿이다. 왠지 낯간지러우면서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여자를 달콤한 먹거리에 비교하며 성적인 요소를 은연중에 풍자한 책과 제목들은 많이 만나봤지만 그와 반대되는 상황의 제목은 처음이라 흥미롭기도 했다. 그래서 제목만 봐도 이 책이 무엇을 알하고자 하는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게다가 표지에 친절하게도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라고 적혀있기까지 해서 이 책의 성격과 내용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학에 갓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세상에 대해 눈 뜨게 되면서 이런저런 조언이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당시 유행하던 처세술 책과 자기 계발서를 꽤 많이 읽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얼마간 그런 독서가 지속된 이후에 더 이상 그런 책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필요치 않다는 것을 느낀 시점부터 그런 류의 책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성격의 책은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것인지라 꽤 신선하고 색달랐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해서 뭐라고 정의 해야할까? 처세술과 자기계발서의 성격을 반반씩 지니고 있기에 그 정의를 단칼에 내리기는 어려워보인다. 이 책을 읽을 때 처세술과 자기계발서의 성격 중 보다 중점을 두고 공감대를 형성한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쪽으로 책을 정의 내리는 것이 옳다고 느껴진다. 딱히 한가지 장르라고 객관적으로 칼같이 구분 짓기엔 이 책이 가진 성격이 너무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패미니스트의 시각과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그 분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다면 조금 난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미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남성들이 읽기엔 참 많이 불편한 책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갓 패미니스트로 입문 했거나 패미니스트들의 입장과 그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살짝 엿보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책의 첫장을 넘기고 이 책의 추천사와 작가의 들어가는 말을 읽으며 이 책의 성격이 섹스앤더시티에 극중인물인 캐리 브레드쇼에 킬럼과 비슷한 성격의 책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나 점점 읽어가면서 내 처음짐작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중 캐리의 칼럼에서는 여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과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 책은 그것보다 패미니스트의 입장에서 연애에 대한 경험담과 조언을 적은 것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스스로의 제목인 초콜렛 맛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달콤쌈싸름한 맛이 났다.  

오랜만이지만 간만에 읽은 남자는 초콜릿이다와 같은 장르의 책은 꽤 흥미로웠다. 한참 이런류의 책을 읽던 때의 내모습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 시절의 내 감정들도 다시 살아났다. 요즘 느끼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다. 모든 책들이 딱히 읽을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마음에 와닿는 시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내가 한참 이런류의 책을 필요로했던 시기에 만났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여러가지 상념들에 취해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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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새드 일루전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2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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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번 뱀파이어 아카데미에서 알싸한 뒷맛을 남기며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3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이 두번째 이야기 새드 일루전이 시작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두번째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의 원제는 Frostbite, 즉 동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동상이라는 단어는 버리고 한눈에 들어오는 새드 일루전이라는 영어 단어를 선택했다. 슬픈 환상과 동상이라는 얼핏보면 결코 닮아보이는 않는 이 두 제목은 이 책의 주인공 로즈에게 슬픔이 닥칠 것을 짙게 암시하며 서서히 그 이야기의 막이 올라간다.  

전작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총 다섯권의 시리즈에 대한 출발점이였다. 그래서 소설속 세계와 처음만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선택한 세계의 설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때때로 이야기가 좀 늘어지고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드 일루전부터는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올라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편에 비해 배제되다보니 이야기가 전편보다 스피드하며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편보다 더 재밌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주인공 리사의 성장에 대한 것이였다. 전편의 리사는 무모하고 용감한 소녀였다. 제 아무리 17살의 아가씨라고 용감하게 소리쳐보아도 허세로만 가득찬 그녀의 모습은 철딱서니 없는 여느 철부지 십대와 다를바 없었다. 그래서 전편에선 이런 충동적인 로즈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로즈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마음이 진실함과 용기를 동반한 것이 아니였다면 난 진작에 이 로즈라는 "소녀"를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드 일루전에서는 이런 로즈가 한단계 성장을 해서 비로소 진정한 한명의 성인이 되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비록 여전히 다혈질이고 무모하지만 자제심이라는 미덕과 책임감을 배우고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심을 깨달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그녀의 변화는 포기하지 못했던 디미트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희생하면서 다른 여인에게 떠나보내는 것과 자신의 이기심으로 헛된 기대를 품게한 메이슨에 대한 사과의 마음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그러나 로즈의 이런 변화는 그녀가 겪은 후회와 슬픔 위에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그런 로즈의 모습이 기특하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안쓰러웠다. 

전반적으로 새드 일루전은 전편보다 재미가 배가 됐지만 여전히 눈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 바로 스토리의 연결의 어색함이다. 이야기 전반에 깔아 둔 복선에 비해 후반 스토리 전개가 너무 어설펐다. 이야기의 후반에 납치당한 로즈일행이 탈출하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는 그들이 납치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것이 더 수월하고 효과적이 였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엔 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며칠을 굶주리고 나서야 떠오르게 되다니. 모로이와 댐퍼의 지능지수는 그들이 그렇게 무시하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일까? 무력과 마법을 가진 로즈 일행이 얼렁뚱땅 납치 당하는 장면은 너무 어설펐다라는 말외엔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다. 그들이 비록 17살이라지만 크리스마스가 갓 지난 시점이였으니 18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치면 한국나이로는 19살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사리분별과 꾀도 없다니. 물론 이 상황을 통해 로즈가 한단계 성장을 하게 되지만, 로즈의 성숙을 위해 선택한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이야기 간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무리수였다고 생각됐다. 

새드 일루전은 솔직히 말해서 전편에 이어 빅토르의 시커먼 야심에 대항하는 로즈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 진행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보통 연작 소설들의 특징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아직 뒷편 새드 키스를 읽어보지 않아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아마도 연작이라는 작품의 연계성을 생각해 볼 때 이번편에 나온 스트리고이들과 빅토르가 3편이후부터는 모슨 모종의 결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내심 하게 된다. 원래 권성징악이자 해피엔딩 스토리의 대미는 결국 악은 쇠한다 라는 만고불변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제 고작 2편이고 아직 한 이야기보다 할 이야기가 더 많은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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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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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뱀파이어 붐이 불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그 어느때 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성공은 기본의 뱀파이어 소설들의 판도를 뒤짚어 놓았고, 덕분에 후발 뱀파이어 소설들의 롤모델이 되어 뱀파이어 소설의 범람 시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뱀파이어 소설들의 홍수속에서 나타난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기존의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선택해 책의 첫페이지부터 특이하게 다가온다.  

그간 나온 뱀파이어 소설은 불멸하는 뱀파이어와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의 사랑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완벽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매혹적인 연인 뱀파이어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이런 소재는 후발주자들에게는 양날의 칼로 다가왔다. 안전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이제는 식상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은 뱀파이어 소설이지만 기존의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의 틀을 깨고 출발한다. 뱀파이어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뱀파이어 아카데미에서 인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선한 뱀파이어인 모로이에게 피를 제공하는 존재로 몇번 등장 할 뿐, 그외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선한 뱀파이어 모로이와 악한 뱀파이어 스트리고이와의 대결과 모로이에서 파생된 인간 혼혈종족인 댐퍼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온전히 뱀파이어들 세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라는 장애물을 만들어 새로움에 기존의 안전한 소재를 더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여기에 뱀파이어가 마법을 쓰고 이들이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기숙생활을 한다는 설정은 이 소설이 단순히 트와일라잇만으로 롤모델로 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익숙한 설정은 우리에게 해리포터를 이 소설에 투영하게 만든다. 사실 이미 뱀파이어와의 로맨스는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준다는 것이 불가능해졌기에 작가는 해리포터의 마법과 기숙사라는 요소를 차용해 보다 더 폐쇄적이며 신비로운 뱀파이어 세계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로즈가 기존의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들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과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에 있다.  보통 로맨스 서설의 여주인공들은 수동적이며 남자 주인공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연약한 모습이다. 하지만 로즈는 모로이를 보호해야 하는 댐퍼라는 종족의 특징을 태성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타인의 도움을 받고 보호받길 거부한다. 게다가 호기심 강하며 다혈질에 앞뒤를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무모함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기존 여주인공들의 성격을 뒤엎는 캐릭터다. 이런 로즈의 성격은 로즈의 절친한 친구이자, 로즈자신이 그녀를 지키는 수호인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 리사와 대비되면서 그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신선한 요소들을 가지고도 기존 로맨스 소설의 진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 점도 존재한다. 바로 결국 여주인공의 생명을 구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신과 같이 완벽하고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이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남자 주인공이 위급한 상황에선 머리털 한올 보이지 않다가 사건 해결뒤에 유유자적하게 나타나 여주인공을 위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캐릭터라면 그 매력이 반감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왕 기존의 틀과 다른시도를 한 이상 좀더 로즈의 캐릭터에 맞게 신선한 결말을 시도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한다. 일례로 또 다른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인 수키 스텍하우스 시리즈의 수키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남자 주인공들 없이 자신의 힘으로 결말을 맞는다. 물론 수키는 성인이고 로즈는 아직 미성년자라는 차이가 있지만 로즈가 좀 더 자기 주도적인 사건의 해결이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로즈가 리사를 지키기 위해 아카데미에서 도망친 이유였다. 단순히 리사의 상태가 평소와 달라지고 카프 선생님의 충고과 행보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해도 고작 이 두가지 때문에 리사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태라고 직감하였다는 것은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였다. 당시엔 아무런 위협도 당하지 않았을 뿐인데 단순히 심적으로 불안하다고 도망치다니? 아무리 1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이며 로즈와 리사가 섬세한 감정의 사춘기 소녀들이라지만, 그녀들이 그들의 세계를 등지게 된 계기가 고작 저런 이유들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으로 보였다.  

사실 이미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성공을 거둔 시점부터 뱀파이어 소설의 후발 주자들은 본의 아니게 비교를 당하게 되고 동시에 아류작으로 취급받기 쉬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이런 점을 간파하고 영리하게 자신들 특유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여기에 기존 여주의 틀을 뒤짚은 로즈라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물론 로즈라는 캐릭터는 아직 성인이 아니기에 답답하고 어리석은 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5권이라는 거대한 시리즈이기에 미완성의 이 시리즈가 완성 될 동안 주인공 로즈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후속작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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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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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첨단사회로 나아가며 과거보다 좀더 사용하기 쉽고, 보관하기 편리한 물건들을 대량생산 해 내고 있다. 그래서 더이상 과거처럼 한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구입비용을 손에 쥐고 판매하는 곳까지 먼길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집에서 TV를 보며 전화기를 들고 주문하거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방문해 버튼하나만 누르면 손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손쉽고 간편한 세상이 되어 갈수록 사람들은 불편하고 까다로웠지만 대신 따뜻하고 특별했던 과거의 물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첨단시대에 아날로그의 향수가 되살아 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런 마음에 변화 속에서 한 빈티지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마침내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까지 한 피비는 친구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갈망한다. 그래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오랜 꿈이던 빈티지 샵을 연다. 피비에게 빈티지 의상이란 누군가의 인생이 숨겨져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괴로운 현실에 아파하던 그녀에겐 빈티지가 주는 특별한 변화가 꼭 필요했으리라. 그 특별함이란 빈티지 의상에 원래 주인이 미처 이루지 못했거나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놨던 사연들을 다시 꺼내어 의상에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과거에는 현실의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그리고 현재의 새로운 주인에게는 과거의 낭만과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런 피비의 철학 때문이였는지 샵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의상을 구입하러 오기도 하고, 때로는 판매하러 오기도 하며 서로 인연을 맺고 각자의 마음에 담겨있던 아픔을 털어내며 행복한 마음을 안고 샵의 문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결국 피비 자신도 주변의 도움과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친구를 잃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피비가 변화를 위한 특별함이라는 대전제하에 빈티지 샵을 열었던 이유는 자신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의상들이 간직한 못다 이룬 꿈을 다시 꿈 꿀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서 친구를 미처 도와주지 못했던 자신이 과오를 반성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던 까닭인 것 같다. 

이 책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감동적이며 때때로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자칫 무거워질수 있는 분위기에서도 작가는 적절하게 이야기의 무게를 조절해나간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이야기,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라고도 느껴졌다. 인생이 모두 다 해피엔딩일수는 없다. 때로는 아프고 괴롭고 쓰기도 하지만 그런 역경과 고난이 있기에 인생은 재밌고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통이 없다면 지금의 감정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착하고 행복한 이야기들만 담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 중간중간에 약간의 씁쓸함과 갈등도 있지만 그런 소소한 문제들이 우연을 핑계삼아 너무나 쉽게 해결되고 인물간의 격렬한 감정이 공감가지 못하게 급작스레 해소되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것이 마음으로 와닿지가 않았다. 

이 책은 소설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안에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자연스럽게 내포할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작가는 자연스러운 내포보다는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를 선택했다. 빈티지 의상에 대한 설명조의 이야기를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쉽게 해결해 버린 것이다. 그 내용이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설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감동 선사해주기 위한 것이지 작가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작가의 자잘한 지식자랑, 혹은 정보제공은 탐탁치 않았다. 게다가 이런 요소들이 반복되다 보니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는 거추장스럽게 보이고 어떤면에서는 작위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밸 부인에 대한 에피소드외에 샵과 관련된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샵 운영에 대한 설명조의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피비와 에마의 갈등, 아버지와 가족간의 관계에 대한 갈등을 조금 더 다루는 편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원작이 368페이지의 하드커버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568페이지의 제법 두툼한 두께를 가졌다는 것이였다. 솔직히 책표지와 중간중간에 삽입된 일러스트도 간결하고 깜찍하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번역본이 200페이지나 늘어난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런 여유로운 페이지 구성이 요즘 출판시장의 트랜드라 하더라도 굳이 200페이지나 늘릴 정도로 넉넉하게 편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나는 이 책을 중고로 구입했다. 빈티지 샵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빈티지 책으로 읽은 셈이다. 자금 사정상 빈티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을 빈티지로 읽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빈티지의 특별함에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피비가 빈티지 의상은 누군가의 인생이 숨겨져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말한것처럼 나도 나의 빈티지 책들에 그런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빈티지 의상처럼 세탁이 가능한것도 낡은 모습을 새롭게 고칠수도 없지만, 다른사람의 손에 길이 들어 부드럽게 넘겨지는 책장을 넘길 때면 혹은 먼저 읽은 사람이 표시한 가늠끈을 보면서 과거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이 책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기쁘다. 이런 감정들이 빈티지가 주는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와 감동이 아닐까? 역시 나도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중 한명이기에 아날로그의 따스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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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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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표 작가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만 묶어 놓았다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약간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영국은 미국과 같은 글과 문화를 소유한 정서적으로 가까운 나라이기에 문학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문학을 구별한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편선집을 구성한 쟁쟁한 작가들의 이름을 보고 미심쩍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책을 읽어나가기로 했다. 

이 책에는 찰스 디킨스부터 도리스 레씽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년에 걸친 영국 단편문학들이 담겨 있다. 이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영국은 영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고 또한 가장 극심한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전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그에 따른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되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고 변화로 인하여 계층간의 빈부격차가 가속화되고 극심한 사회 갈등이 야기된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이런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던 작가들이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서 집필한 이야기들이기에 당시의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이 여실히 엿보인다.  

이 100여년간의 시기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이전 시대에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던 여성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였다. 이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은 이제까지 사회구조에 의해 억눌려있던 의식에 표출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각성에 대한 뚜렷한 증거였다. 이들의 등장은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였던 문학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고 있는데, 달리 말하자면 아직도 당시 사회에서 야기되고 깨달은 여성문제들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의 끝맛이 조금 씁쓸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책의 제일 처음에 실려있는 찰스 디킨스의 "신호수"였다. 사실 나는 처음에 신호수라고 해서 新호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깃발을 흔드는 신호수를 일걷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혼자 폭소를 하고 말았다. 물론 이런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제체두고라도 이 단편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소재자체가 독특하고 강렬한 까닭도 있었지만 약 100여년전에 집필된 단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글솜씨와 구성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 책의 표제로 사용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와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와 구름한점도 인상 깊었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즈라는 그의 대표작 대한 선입견으로 다른 작품들을 도무지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는데 이 단편집 덕분에 그의 작품에 맛을 알게 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이 단편선집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유품이라는 작품도 눈에 띄었는데 당시 규격화 되어 있던 여성의 성역활과 그런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무관심한 시선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 이 단편선집에 대해 느낀 내 미심쩍음은 곧 현대 영국문학에 대한 아쉬움으로 변해갔다. 최근에 현대 영국문학 작품들을 몇편 읽어 보았지만 현대 영국문학들은 마치 미국에서 세계 패권을 뺏앗겨버린 후에 저물어버린 그들 나라의 힘처럼 더 이상 영국 특유의 문학이라는 개성을 뽐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 느낌이였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시절의 날카롭게 핵심을 찔러대던 영국 작가들의 정신과 기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분명 그들의 혈관 어느곳에는 그것들이 남아 있을텐데 말이다. 

이 단편선집은 상당히 잘 짜여진 책이다. 표지와 책의 구성에도 신경을 쓴 느낌이 역력하고, 처음 작품 시작 시 소개해놓은 각 작가들의 간략한 약력과 작품들의 말미에 더 읽어볼만한 책들을 추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 점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내가 신호수를 읽을 때처럼 작품에 표기에 혼동을 느낄만한 부분에 한자를 덧붙이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 몇몇 단어들의 표기에서 잠시 헷갈리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제외한다면 근래에 읽은 순문학책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였고, 그간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단편작품들을 엮어 책으로 출판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단편선집이 재미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보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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