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은 첨단사회로 나아가며 과거보다 좀더 사용하기 쉽고, 보관하기 편리한 물건들을 대량생산 해 내고 있다. 그래서 더이상 과거처럼 한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구입비용을 손에 쥐고 판매하는 곳까지 먼길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집에서 TV를 보며 전화기를 들고 주문하거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방문해 버튼하나만 누르면 손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손쉽고 간편한 세상이 되어 갈수록 사람들은 불편하고 까다로웠지만 대신 따뜻하고 특별했던 과거의 물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첨단시대에 아날로그의 향수가 되살아 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런 마음에 변화 속에서 한 빈티지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마침내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까지 한 피비는 친구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갈망한다. 그래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오랜 꿈이던 빈티지 샵을 연다. 피비에게 빈티지 의상이란 누군가의 인생이 숨겨져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괴로운 현실에 아파하던 그녀에겐 빈티지가 주는 특별한 변화가 꼭 필요했으리라. 그 특별함이란 빈티지 의상에 원래 주인이 미처 이루지 못했거나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놨던 사연들을 다시 꺼내어 의상에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과거에는 현실의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그리고 현재의 새로운 주인에게는 과거의 낭만과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런 피비의 철학 때문이였는지 샵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의상을 구입하러 오기도 하고, 때로는 판매하러 오기도 하며 서로 인연을 맺고 각자의 마음에 담겨있던 아픔을 털어내며 행복한 마음을 안고 샵의 문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결국 피비 자신도 주변의 도움과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친구를 잃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피비가 변화를 위한 특별함이라는 대전제하에 빈티지 샵을 열었던 이유는 자신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의상들이 간직한 못다 이룬 꿈을 다시 꿈 꿀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서 친구를 미처 도와주지 못했던 자신이 과오를 반성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던 까닭인 것 같다. 

이 책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감동적이며 때때로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자칫 무거워질수 있는 분위기에서도 작가는 적절하게 이야기의 무게를 조절해나간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이야기,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라고도 느껴졌다. 인생이 모두 다 해피엔딩일수는 없다. 때로는 아프고 괴롭고 쓰기도 하지만 그런 역경과 고난이 있기에 인생은 재밌고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통이 없다면 지금의 감정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착하고 행복한 이야기들만 담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 중간중간에 약간의 씁쓸함과 갈등도 있지만 그런 소소한 문제들이 우연을 핑계삼아 너무나 쉽게 해결되고 인물간의 격렬한 감정이 공감가지 못하게 급작스레 해소되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것이 마음으로 와닿지가 않았다. 

이 책은 소설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안에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자연스럽게 내포할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작가는 자연스러운 내포보다는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를 선택했다. 빈티지 의상에 대한 설명조의 이야기를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쉽게 해결해 버린 것이다. 그 내용이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설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감동 선사해주기 위한 것이지 작가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작가의 자잘한 지식자랑, 혹은 정보제공은 탐탁치 않았다. 게다가 이런 요소들이 반복되다 보니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는 거추장스럽게 보이고 어떤면에서는 작위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밸 부인에 대한 에피소드외에 샵과 관련된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샵 운영에 대한 설명조의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피비와 에마의 갈등, 아버지와 가족간의 관계에 대한 갈등을 조금 더 다루는 편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원작이 368페이지의 하드커버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568페이지의 제법 두툼한 두께를 가졌다는 것이였다. 솔직히 책표지와 중간중간에 삽입된 일러스트도 간결하고 깜찍하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번역본이 200페이지나 늘어난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런 여유로운 페이지 구성이 요즘 출판시장의 트랜드라 하더라도 굳이 200페이지나 늘릴 정도로 넉넉하게 편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나는 이 책을 중고로 구입했다. 빈티지 샵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빈티지 책으로 읽은 셈이다. 자금 사정상 빈티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을 빈티지로 읽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빈티지의 특별함에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피비가 빈티지 의상은 누군가의 인생이 숨겨져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말한것처럼 나도 나의 빈티지 책들에 그런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빈티지 의상처럼 세탁이 가능한것도 낡은 모습을 새롭게 고칠수도 없지만, 다른사람의 손에 길이 들어 부드럽게 넘겨지는 책장을 넘길 때면 혹은 먼저 읽은 사람이 표시한 가늠끈을 보면서 과거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이 책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기쁘다. 이런 감정들이 빈티지가 주는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와 감동이 아닐까? 역시 나도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중 한명이기에 아날로그의 따스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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