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름없는풀 > 지독히 책과 부대껴 본 사람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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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창밖으로 단비가 내린다. 속살거리는 빗소리에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겹쳐져, 난 미치도록 행복하다. 그 행복의 무게는 내가 살아있음의 명징한 증명이기도 하다. 빗소리야 내가 개입할 꺼리도 없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는 얼마든지 내가 창조해낼 수 있는 쉬운 꺼리이다. 난 그 쉬운 꺼리를 참 까탈스럽게 고르고 골라, 어떤때는 나자신에게 불쑥 화를 내기도 한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어, 고르지 말고' 그러나 그 화는 '아냐, 책도 책나름이야, 그러니 고르고 찾아서 읽어'라는 또 하나의 마음속 소리에 이내 꼬리를 내리게 된다. 이제 그 까탈스럽게 고른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대한 정직한 나의 느낌, 소위 리뷰라는 것을 적으려고 한다.
정직한 나의 느낌이라고 먼저 밝혔다. 그건 무수한 리뷰들의 유혹에 혹해 몇번 고꾸라진 쓰린 경험이 있는 내가 적어도 리뷰의 사기만은 하지 않겠다는, 엄중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랬다. 난 서점과 언론의 책에 대한 리뷰가 유일한 책의 올바른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기도 했지. 덥석 미끼 문 물고기처럼 화려한 리뷰의 유혹에 넘어가 내가 사들인 책이 얼마이던가. 그 책들은 여인네의 달거리처럼 한달에 한번씩 책장 정리하는 그 잔인한 심판의 날에 제일 먼저 집행되는 사형서이기도 했다. 그런 비생산적인 과정의 반복을 겪으며 적어도 리뷰를 온전히 믿지는 말자고 냉정히 나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되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이보슈, 그럼 당신은 이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어떻게 읽었수, 읽을만 하오?' 라고 , 나또한 미적거리는 것 싫어하기에 간단히 먼저 알려드리겠다. ' 적어도 속았다는, 아깝다는 생각은 안들거요'
무더운 날의 연속에서 어쩌면 외줄타기의 아찔함이 먼지 풀풀 나는 일상을 견딜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럼 미텐메츠의 부흐하임으로의 길나섬에 동참해보기를, 소름 짝 끼치는 그 생경한 두려움이 일상의 반복을 견딜 색다른 삶의 맛이 된다면, 지하미로로 ?겨난 미텐메츠를 따라 가보기를, 그곳에서 만나는 그 무수한 놀라운 상상력의 창조물들이 당신의 몸을 들썩들썩 하게 할것이다. 그러나 몇가지 전제를 미리 밝혀야겠다.
그 전제는 첫째, 판타지문학에 폐인이라고 자부하는 그대들은 이 책을 기웃거리 말기를, 그건 이 책의 상상력의 창조물에 대한 경멸과 조롱의 소리를 직접 네 귀로 듣고 싶지 않으니까. 달리 말하면 적어도 이 책은 번쩍번쩍 하는 레이저검과 슝슝하는 과학의 변종에 대한 환상의 두리뭉실은 아니기에, 만약 판타지문학에 취해 지독히 중독된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 담긴 의외의 담백함을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다.
둘째, 책을 굴리고 던지고 깔고 그렇게 괴롭히고, 사랑하고 즉 책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 책은 이해할 수 없는 단지 공룡과 그림자와 상어구더기와 난장이, 외눈박이등 그저 단순한 상상의 유희로 인식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두권이란 곱배기의 책값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조건이라면, 책을 그저 모신 사람이 아니라 던지고, 깔고, 굴리고 그렇게 책과 지독히 부대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때야 비로소 이 책의 결말이 투시안경처럼 선명히 느껴질것이다.
이 책의 독특한 구미는 읽을수록, 즉 부대낄수록 더 확실히 당겨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부흐하임의 지하미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지하의 탁한 공기와 어둠속에서 나는 눈부시도록 더 생생한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네 머리속에 담지 않은 새로운 상상력의 놀라운 창조물에 대한 경외감때문은 아니다. 지하미로의 그 숱한 등장배우들, 부흐링, 흡혈괴조, 살아있는 책들, 책사냥꾼, 그림자제왕, 거인,등, 그 배우들의 속살에 초점을 맞추고 읽고, 또 읽고, 부대낄수록 그들이 상징하는 현실의 맨얼굴을 직접 맞부딪히면, 그 순간 받는 충격에 난 악하고 비명을 지를뻔 했다. 그 비명이 이 책의 비밀, 메세지와 상통하는 접신의 자리이다.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성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하르펜슈톡의 말을 기억해 두시길. 잊혀진 시인들의 공동묘지, 구덩이 광장을 기억하기를.부흐하임의 지배자입니다. 제가 바로 차모니아의 문학입니다라는 스마이크의 말을 기억하기를.
이제 내가 왜 책과 지독히 부대껴 본 사람들만이 이 책을 읽고 비명, 접신의 기회를 갖는다고 했는지 알것이다. 위에 언급한 그 말과 장소가 단지 책속 지문으로서만 읽혀지는가. 그 속살을 상상해보기를, 그리고 떠오르는 현실의 상황, 장소, 모순등 직접 대입해보기를, 현실의 책과 부대끼며 우리가 가져본 온갖 추측, 기대, 의혹등이 어떤가.마치 비밀암호처럼 작가는 책과 지독히 부대껴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그 암호를 상상이란 도구로서 잠시 위장해 놓은 것이다.
독서처럼 아주 고도의 정신적인 일을 하면 음식을 소화할 때와 같은 평범한 현상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부흐링의 말이다. 네겐 이말이 국민교육헌장이고 애국가이다. 그건 까탈스러운 나의 독서 편식에 대한 승리헌장이기도 하다. 네 입에서도 형식적이 아닌 순수한 진정을 담아 부흐링의 고백이 나오기를, 앞으로의 나의 독서 편력에 대한 소망과 목표로 삼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신도 리뷰 사기꾼 아니오?, 아니 어떻게 찬사만 늘어 놓소' 미리 내가 밝힌 이 책에 기웃거리지 말기를 그 전제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오직 흠집과 상처만 볼 것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엄연한 현실의 속살에 대해 상상이란 도구로서, 치밀하게 한뜸한뜸 수놓은 이 책의 공력과 내공을 제대로 전이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책을 단순히 모셔놓은 책장 치장파가 아니라, 책을 던지고 깔고, 구기고, 때론 찢기 까지 한, 지독히 책과 부대낀 그 사람들이라면, 한번 읽고 던져놓고, 다시 읽고 깔아 놓고, 다시 읽고 구겨보고, 또 읽고 할수록 부대낀, 그래서 더 애정을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되는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이 책의 담긴 작가의 메세지와 접신하는 충격의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리뷰가 또 다른 리뷰 사기꾼의 무리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