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30문 30답

1. 나는 내 이름에 만족한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으나 과거에는 만족은 커녕 용서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 나 많이 무뎌졌다.

2. 나는 공부하는 머리보단 잔머리쪽이다.

그렇다. 나는 공부는 안하고 못한다. 내신 15등급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3. 나는 요리를 잘한다.

그렇다. 나는 요리를 잘 한다. 단. 내가 먹었을때는 아주 맛있으나 남이 먹었을때는 어떤지 알수없다. (해먹이면 모두 얼굴에 빗금을 그은 채 말없이 먹기만 했다.) 

4. 때려 죽여도 외박은 못한다.

과거 집에서 살때 내가 제일 잘 하던게 외박이었다. 난 늘 외박을 밥먹듯 할 자신이 있다. 지금은 혼자 살아서 굳이 외박할 필요를 못 느낀다.

5. 땡땡이 쳐 본 적이 있다.

땡땡이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6. 잘생긴(이쁜) 남자(여자)보단 귀여운 남자(여자)가 좋다.

다 좋다. 잘생긴 남자나 귀여운 남자 중 가릴 정도면 그건 아직 안 급하다는 증거.  

7. 조그만 거에 쉽게 감동 받는다.

그럴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다. 사람 손으로 한건 다 감동받는데 그렇지 않은건 좀처럼 감동 안받는다.

8. 예쁘다는(잘생긴) 소리를 들어 본적이 있다.

물론 있긴 있다. 근데 암만 생각해도 농담이었거나 인사치례였던것 같다.

9. 나 자신도 예쁘다(잘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장난하나 지금?

10. 군것질을 많이 한다.

보통정도. 확실히 과자는 잘 안사먹게 되었지만 초컬렛과 아이스크림은 아직도 좋아한다. 냉장고에서 떨어질 날이 없다.

11.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죽는 시늉을 해야 할 사랑이라면 안하고 만다.

12. 이별에 대담한 편이다.

그렇지 않다.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겉으로 표는 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헤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을꺼라고 남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속으로는 절대 안그렇다. 다만 입 다물고 참을 뿐이다.

13. 친구들이 많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 안된다. 주변에 아는 사람 전부를 친구라고 친다면 많겠지만 내가 인정하는 친구는 기껏해야 4명 정도.

14. 나는 착하다.

다시 태어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15. 나는 털털하다.

털털하게 보이려고 한다. 까탈스러워 보여서 좋을꺼 없으니까.

16. 나는 뽀뽀를 해봤다.

당연하다.

17. 그럼 키스는?

이런 질문 계속 하다가는 맞을껄? 차라리 이성과 자 봤냐고 물어라.

18.나는 자주 몸이 아프다.

거의 건강한 편인데 일년에 한번 정도는 심하게 아프다.

19. 집에 박혀 있는 걸 좋아한다. 

필요한걸 사다주기만 한다면 지금부터 죽을때까지 안나가도 될것같다.

20. 결혼은 빨리하고 싶다.

내 나이가 스물 아홉이다. 이제 빨라봐야 얼마나 빠르겠는가.

21. 신혼여행은 국내보단 국외가 좋다.

그럴것 같다. 여태 해외여행을 한번도 못 해본 나에게는 더더욱

22. 아기는 되도록이면 많이 낳을 것이다.

어쩌다 결혼은 하게 될지라도 나는 무자식으로 살 것이다.

23. 데이트 장소는 조용한 곳보단. 시끌시끌한 곳이 좋다.

아무대나 상관없다.

24. 미친듯이 넋이 나가 본 적이 있다.

없다.

25. 멀하겠다고 맘 먹으면 꼭 해내고 만다.

좀처럼 뭘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지 마음을 먹으면 한다. 단 마음 먹기가 너무너무 힘들고 귀찮고 그렇다. 

26. 가만히 3시간만 움직이지 말라고 하느니 차라리 춤을 추겠다.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죽으란 소리다. 어릴때도 벌 서면 다른 고통보다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게 더 고통스러웠다. 정신이건 육체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건 다 싫다. 3시간 동안 추는건 좀 버겁긴 하겠지만 그래도 춤추는 편을 택하겠다.

27. 나는 칠칠 맞다.

물건 같은건 잘 흘리고 다니지 않는데 어딜 잘 박는다. 덕분에 온 몸이 멍이다.

28. 양다리를 걸쳐 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잘 그랬는데 요즘은 양다리는 커녕 한다리도 없다.

29. 잠이 많은 편이다.

두말 하면 잔소리다.

30. 이거 재밌다.

So So..

[초은님 블로그 http://igloo.cafe24.com 에서 보고 따라한 "느림"님 서재에서 퍼와 수정한 "물장구치는 금붕어"님의 서재에서 퍼와서 재구성한 너굴님의 서재에서 퍼와서 또 재구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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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우맘 > 4teen, 마법의 숫자로 변모하다
4teen_포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열 세 살 무렵까지 나는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다. 생활기록부에 '교우 관계의 폭이 좁다.'고 기록되던, 새학년이 되면 도시락을 같이 먹을 단짝 하나 구하는 것이 굉장히 피곤한 일이던...그런 아이.
그러던 내가 평생지기가 될 친구들을 만나고, 성격 또한 180도로 바뀐 것은 열 다섯 살 때였다. 열 다섯 살의 나는 친구들의 고민상담과 연애편지 대필, 수정에 하루가 짧던 바쁜 아이였다.
그렇다면, 열 네 살은?
열 네 살의 나는 어땠지? 급격한 변화가 열 네 살을 지나가며 이루어졌다는 결론이 나오건만, --------- OFF. 암전. 다시 태어나기 위한 치열함이 벅찼던 것일까? 피곤하고 힘들었던 열 세 살도, 즐겁고 유쾌했던 열 다섯 살도 생생한데, 유독 열 네 살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때의 나는, 도대체 어떤 아이였을까?

각설하고.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나는, 열 네 살, 그 무렵의 남자아이들이 싫다.
출근길 마을버스에 바글바글 들어 찬 중학생 소년들은 불균형, 혹은 어떤 부조리의 표상들 같아 보인다. 아직 어린 몸에서 겉도는 양복 스타일의 교복, 잘 씻지 않기 때문인지, 요동치는 호르몬 때문인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체취, 입만 열면 게임 얘기, 뇌 전부를 컴퓨터 하드웨어에 심어 놓고 온 듯한 그들의 대화.
하긴, 만원의 마을버스 안에 몰아 넣으면 소년 아닌 그 어떤 존재도 그리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어리지도 않고 어른도 아닌 애매한 시기의 그들에게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정말, 각설하고.

여기, 괜찮은 네 녀석이 있다. 조로증으로 입원한 친구녀석을 위해 원조교제 하는 소녀를 선물하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면. 아, 맞다. 그 녀석들은 폭력서클에 잘못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한데 뭉쳤지 않은가? 의리 있는, 괜찮은 녀석, 맞다.
게다가 더 이상 완벽할 수가 없는 구성이다. 뚱보, 비실이, 뿔테 안경의 똑똑이에 '평범한' 화자까지. 이제껏 봐 왔던 책, 영화, 어린이 드라마에서 수 없이 되풀이되었던 진부한 구성이 전혀 지겹지 않고 신선하기만 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열 네 살의 평범한(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닥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은 묘한 흡인력이 있어서, 순간순간 독자를 자신의 열 네 살로 끌어내린다. 
열 네 살의 그들과 나는 실상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가지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들 나이의 두 배가 넘는 나. 나는 그 의문들을 모두 해결했나? 그 혼란들을 다 정리했나? ------- NO.
그 의문과 혼란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들과 항상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 졌을 뿐.

열 네 살, 그들은 순수하다. 포르노 잡지를 달고 살고, 유부녀와 바람이 날 뻔, 동급생과 섹스를 할 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순수하고 정의롭다.
'웃음, 눈물, 감동과 재미' 진부한 영화의 선전문구처럼 모든 것을 겸비한 그들의 이야기는 내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들을 일깨운다. 그리고 책을 덮은 순간, 내겐 불가해하고 매력 없던 열 넷이, 4teen, 마법의 숫자로 변모했다.

버스 안의 소년들도, 식별 불가한 교복 깃 그 안에 생생하게 날뛰는 가슴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진다.  

암전상태였던 나의 열 네 살, 그 때의 나도 이토록이나 생생하게 날뛰는 가슴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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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냐 > 한번보고 두번보고..자꾸만 보고싶은..
서늘한 미인 -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솔직히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이라는 부제나...'미술과 사랑에 빠진 김지은 아나운서의 '즐거운 미술 읽기'라는 띠지 설명..."난 미술평론가는 아니지만, 그저 사랑하기에 눈이 멀었다!"며 활짝 웃는 뽀샤시한 그녀의 미소.....이런게 내 취향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니 취향이 뭔데..라고 물으면,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암튼 그렇다.

하지만...영민한 후배 N이 미리 리뷰한 대목을 빌려오자....

서문이 흥미롭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BRACE'란 유명 식당을 찾다가 엉겁결에 `BRUGIA'라는 작은  피자집에 들어갔단다. 그러나 토핑이 치즈와 토마토, 계란뿐인 BRUGIA의 피자는 맛이 기가 막히고...서빙하는 소년은 `모델 뺨치는' 청소년 축구 대표선수. 게다가 처음에 가려고 했던 `BRACE'는 알고보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그렇고 그런 식당이었다. 오히려 길을 잃은 게 감사할 일 아닌가....책에는 곳곳에 `BRUGIA'가 숨어있다.

(음, 그 많고 많은 신간 서적 중에서, 괜히 주류 언론이 관심가지지 않을법한 이 책을 콕 찍어 과감히 단신 소개가 아닌 박스 기사로 리뷰하겠다고 결심한 내가 아니었으면, 아무리 N이라 해도 영민할 기회조차 없지 않았겠는가..음화화핫.)

음...왠지 이 리뷰는 점잖고 우아하게 해치울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무래도 전염된게다. 휘리릭 책장 좀 넘기는 사이, 편견을 깨부수고 나를 사로잡았던 그 작품들...그리고 만날 때마다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고, 들뜨게 하고, 괴롭히던 그 작품들의 발랄함과 광기...거기에 당한게다.

일단 '서늘한 미인'...이건 강영민씨 작품이다.


심상치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가? 책이 만나고 있는 21명의 미술가들....예술 보는 눈이라곤 조금도 없는 나로서도 당혹스럽다거나, 가슴을 쿵쿵 울리는게...장난이 아니었다. 몇가지 작품을 더 구경해보자. 작품에 대해, 작가에 대해...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떠는 건 김지은 아나운서 만으로 족하니...여기선 그저 작품만 보여주련다.

 

  낸시 랭.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에서, 전시장에서....관객들을 도발하는 퍼포먼스.

음지에서나 보던 '젊은 여자의 싱싱한 몸'을 고상한 공간에 던져놓고 당혹해하는 수컷들을 조롱하는걸까...(물론 그녀는 한국인이다)


 

 

 

 

 

 

 

 

 

 

 

이번엔...함진의 '애완'....깜찍한 제목...물론, 더 깜찍한 작품. 함진에 대한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이번엔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시리즈...아톰+미키마우스..인데, 이 작품으 이름은 '가상 정신병'이다.


  김지은은 아토마우스를 가지고 아예 소설을 썼다.....좀 상투적이지만, 꽤 웃긴...아토마우스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출생의 비밀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항간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 미키마우스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아톰이 한국문화를 지배한데 대한 슬픔과 분노로 홧김에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아토마우스 당신이 오랫동안 정신 분열에 시달려왔다는게 사실입니까?"

 

 

 

 

 

 


이누리...이장호 감독의 아들이라는 이 친구의 그림은 김지은의 말을 빌자면...완벽한 공간을 휘어잡는 치명적 얼룩...이 눈에 띈다....오염에 펄쩍 뛰지 말기를....얼룩은 바로 당신 것이라네.

 

 

 

 

 

김정욱의 얼굴들은 어떠신지....김지은은 '비극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얼굴들'이라는 챕터 제목을 붙였다. ...고통스러운 얼굴들 화가는 "행복만큼 불행도 삶의 한 부분이고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다"고 대답했단다.


 

 

 

 

 

 

 

 

 

 

 

 

 

 

 

 

 

 

 

 

 

 

그리고......너무 강렬하게 째려보는 통에...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이태경의 '알렉상드르' 그림을 열심히 찾았는데...실패했다. 대신 그의 다른 작품 사진...

 
좋긴 한데...'알렉상드르'와 사뭇 다른 분위기...좀 아쉽군...

암튼....이 리뷰는 알라딘 서재질 시작한 이래...가장 노동력이 많이 투입된 거다. 저 작가들 사이트 뒤지고 다니며 그림을 퍼 나르다니...

(판다님같은 고수가 아닌지라...이건 내게 쉬운 일이 아니다..뭐, 책에 각 작가별 사이트를 소개해놓긴 했는데...도움 안되는 경우가 많고..몇몇 작가는 귀찮았는지, 이메일만 공개했다)

이 리뷰는 또한...그림만 소개할 뿐, 별로 할 말이 없는....날로 먹는 독후감이라 하겠다.

김지은 아나운서는 그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탓에....정말 속닥속닥 이야기를 잘도 풀어나간다. 그녀의 수다스러움에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고나 할까.

그림에 대해, 작가에 대해....그런 감상은 전문가의 해설에 너무 기대고 싶지 않다. 친절한 저자의 해설은 내가 이 '서늘한 미인'들을 만나면서 껴안는 그 무수한 감정 중의 하나를 설명할 뿐이다.

책 속 그녀의 수다에 즐겁게 고개를 끄덕이다가도....나름, 다른 생각을 하면서 짐짓 먼산을 쳐다본다고나 할까.

사족...

저자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감탄도 빼놓지 말아야겠다. 미셸 투르니에의 그저  '왕 팬'으로서 팬레터를 보내고, 급기야 친필 사인이 들어간 사진에 따뜻한 교감까지 얻어낸 그녀의 열정은 대단하다.

또, "엄마, 이 하트만 보면 가슴속에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나"라며....미술을 영혼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아들 이야기...어릴 적부터 엄마와 전시회 다니는 호사를 누렸던 그집 아들은 정말 남다른 감상을 내놓는다. 엄청 감탄하는 동시에...당근 불안함...애들에게 그림 한번 보여주지 않는 이 엄마는 왠지 아이의 창의력과 꿈을 키울 생각을 포기한 나쁜 엄마가 된 듯...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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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냐 > 다를게 없는 결혼, 일상.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신혼때 나의 연적은 라라였다.
그때는 안방 침대 발치에 컴퓨터가 있었다. 대체 이 남자가 마눌을 버려둔채, 라라하고만 놀다니! 사실 그녀는 진정 쭉빵 미인인데다 매번 신음소리도 근사했다. 라라 크로포드. 도저히 경쟁이 안되자 나도 '툼레이더'를 시작했다. 근데, 게임의 달인인 옆지기와 달리 나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었다. 당연히 시들해졌다.

부부가 함께 모든 걸 할 수 있으면 과연 좋을까. 일단 신혼때 진작 알아봤지만 내 경우, 게임조차 '타인의 취향'일 뿐.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윈도XP에 딸린 스파이더. 최첨단 게임을 좋아하는 옆지기 눈엔 어이없다는 게임이다.

이른바 '오디오 파일'인 옆지기는 나와 음악 함께 듣는게 꿈이라는데, 나는 결혼 이후 늘 오디오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놓고 눈에 쌍심지만 키웠다. 음악을 제대로 즐길리 없었다. 오히려 음악에 질렸달까. (내가 음악에 다시 젖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밤중 웹질엔 음악이 고마운 벗이지..) 반면 옆지기는 책과 거리가 좀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함께 나눌 것이 매우 부족한 부부인 셈이다.

그게 때로는 불만이고, 때로는 아쉽기도 했다. 물론 때로는 그저 편하기도 했다. 나 책 읽는거 방해 않고 자기는 음악 뽐뿌하고 있으니...^^;;;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에쿠니 가오리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이 얇은 책에서 내가 기꺼이 낚아올린 표현은 바로 저거다. 책은 에쿠니 가오리가 신혼 무렵에 여성지에 연재하던 '결혼에 대한 에세이'들이다. '냉정과...'가 당시 메마른 나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녀의 글을 다시 만난건 이게 처음이다.

그저 짝을 찾아 구구거리는 연애가 아니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결혼. 그녀의 감상 어딘가에는 낯익은 풍경들이 있을법하다.

"비 구경하자니까...남편은 읽고 있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응, 아니, 어어, 하고 무심한 대답만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서는 일이 좀처럼 없기에,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일을 한다. 서로의 생활 패턴을 속으로는 우습게 여기면서 겉으로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간섭하지 않는다...."

"때로, 외간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외간 여자란 요컨대 아내가 아닌 여자."

"월요일 아침, 나는 회사로 가는 남편이 싫어서 그만 입이 부루퉁해진다. 어서 다음 주말이 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현관에다 구두를 내 놓는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난 순간,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의 안도감의 물결이 밀려온다..."

그저 담담하게 또박또박 쓴 에세이다. 그녀의 쿨한 분위기도 강하다. 사랑, 결혼, 남자에 대한 그녀의 고백들은 도발적이었다가 나른했다가 그냥 그렇게 자유롭게 흘러간다. 하지만...감동은 기대보다 적다.

"등뒤에서 껴안으면 남편은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외로움만이 늘 신선하다."...

이런 표현에 한번씩 숨죽였다가...가만 생각해보니, 요즘은 이 정도 쓰는 글쟁이들은 많다 싶기도 하다. 또, 나도 솜씨가 없다 뿐이지 결혼이라는 재료는 엄청 많은 에피소드와 감상들을 제공해주는 덕분에 할 말은 많지 않은가. 웹질하다가 외로워진 한밤중, 코고는 옆지기에게 괜히 고양이처럼 찰싹 붙기도 하고...그냥 등돌려 조용히 눕기도 하고...결혼생활은 여전히 변덕과 한숨, 무관심과 사소한 웃음, 따뜻한 이불속..같은 거.

휘리릭 읽어치울 얇은 책...관심있는 분들은 온라인에서 그냥 사지 말구...서점에서 한번 들춰보고 그 감성과 코드가 맞는지 먼저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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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우맘 > 다크써클까지 사랑해주마!
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운동 중독자들이 그런다지. 우리몸은 사점(Deadpoint)을 지나면 운동의 희열을 느끼는데(검색해보니 이 상태를 second wind 라고 한단다) , 최근 발견된 사실에 의하면 그 시기에 엔돌핀과 유사한, 마약에 비할만한 어떤 물질이 생성된다고 한다. 한 번 그 희열에 발을 들이면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워서 운동 중독에 빠져든다는 것.

폴 오스터의 소설도 그렇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별적인 코드로 뒤엉켜, 조금은 난삽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전반부...그 전반부를 넘어, Deadpoint를 통과하면, 소설은 글이 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희열을 맛보여준다. 몇 권의 폴 오스터로 단련되어 second wind가 빨리 다가오는 것인지 아니면 <신탁의 밤> 자체가 좀 더 탁월한 재미를 선사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책을 몇 장 안 넘기고(대개, 기존의 폴 오스터 소설은 1/3 지점 정도까지는 지루했다.^^;) 확 빠져들었다.

문장을 가로지르는 눈의 속도가 머리 속의 궁금증을 못 이겨 단락을 건너뛴 것이 몇 번인지! 사실, 어찌보면 말초적인 궁금증을 자극하는 부분에서 저런 일을 저질렀다. 존 트로즈가 준 원고를, 지하철에서 잃어버릴 것인가? 제이콥이 과연 그레이스를 때릴 것인가? 이런 류의 궁금증은 단순한 호기심이라 취급될 수도 있겠지만, 그 호기심을 1초도 품고 있을 수 없을만큼 나를 흥분시켰다는 점....그 짧은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죠스>의 OST가 울려퍼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는 점은, 작가의 필력 이외에 어떤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껏 많은 작품에서 폴 오스터는 작가가 화자 본인이라는, 그래서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뉘앙스를 교묘하게 풍겨왔다. 환상과 실제의 경계선을 지우는 작업에 매혹을 느꼈던 것일까? <신탁의 밤>에서는 한 술 더 뜬다. 소설 속 문장에 달린 기나긴 주석들은 작중 화자 시드니 오어의 것이면서, 그것이 '주석'이기에 폴 오스터의 것이기도 하다는, 무언의 주장을 펼친다. 정말이지, 본문보다 주석이 더 재미있었던 경우는 처음이지 싶다. (아,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황당무계한 주석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즈음 해서 고백하건데....사실, 얼마 전까지만해도 폴 오스터는 내게 <좋아하는 작가>이기보다는 <좋아하고 싶은, 좋아해야 할 것 같은 작가>였다. 그의 이름, 그의 소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풍기는 묘한 분위기에 현혹되어, 내 과도한 지적 허영심이 채근을 해댄 탓이었다. 그런데, 최근 <환상의 책>과 <신탁의 밤>을 거치면서 그런 불온한 의도(?)가 말끔히 걷혔다. 이제 난 정말 폴 오스터가 좋다. 얼른 읽으라고 몰아대는 격렬한 후반부가 좋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가 건 마법에서 쉬이 깨어나질 못하는 멍한 상태가 좋다. 이 미남 작가의 눈 밑, 다크써클까지도 좋아질 것 같다.^^

야...행복하다. 신탁의 밤 표지 속, 작품들을 세어 보니, 나는 앞으로도 이 매혹적인 작가와 최소 9번 이상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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