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서평에서 밝혔듯이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은 '러프'이다. 그리고 요즘 세대들에겐 '터치'의 90년대형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는 'H2'가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터치'는 80년대초를 대표하는 만화인 동시에 아다치 미츠루의 재능이 완성된 시기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당시 일본에서 '터치'가 나왔을 때는 '내일의 조'같은 열혈스포츠만화가 유행하던 시대였다는데, 이 만화가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런지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타즈야는 단순히 동생과 비교되기 싫어서 야구를 그만두고, 그 주인공처럼 보이던 쌍둥이 동생 카즈야가 초반에 어이없이 죽어버리고, 졸지에 평범하던 덜렁이가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그리고 여운이 남는 등장인물들의 표정들, 그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몇마디의 지나가는듯한 대사들... 아다치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이 '터치' 또한 가슴 속에 오랫동안 잔잔한 충격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닥터 노구찌'. 예전에 한 잡지에서 평가한 글을 읽고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만화였다. 역시 그 명성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감동적인 인생드라마가 또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늘 비슷한 이야기라고 투정하면서도 매번 감동하게 되는 것 같다. 노구찌박사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정말 눈물나게 감동적인 작품이다. 장애를 지닌 손으로 고군분투하는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개의 햄버거가 사치였던 시절, 워커홀릭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연구에 대한 집념... 하지만 노구찌박사의 피눈물 나는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가 의학계에 남긴 업적은 미미한 것이었다. 비록 의학자로서의 노구찌박사의 인생이 실패작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보여준 용기와 집념, 의지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기고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허접한 그림체, 평면적인 등장인물들, 작위적은 스토리전개... 만화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저 그런 수준일지 모르지만 감동만큼은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나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해피'는 전작 '야와라'와 비슷한 설정이면서도 인물들과 사건전개등 여러면에서 업그레이드된 작품이다.(마치 '파인애플 아미'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는 '마스터 키튼'을 보는듯하다.)처음에는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린 '캔디'인 것 같지만 확실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다. 중독성이 가장 강하다는 그의 작품답게 끝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나 또한 그녀처럼 좋아하는 일에 100퍼센트 이상으로 즐겁게 최선을 다 한다면 못할 게 없을 거라는 식의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철저하게 통속적인 스타일의 만화이면서, 다른 통속만화들처럼 어설프지 않은 '해피'. 누구라도 읽기 시작하면 해피해지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걸작이다.
'이나중 탁구부'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저주할만한 작품이다. 요즘은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아무데나 갖다붙이곤 하지만, 그 단어는 이 만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이나중 탁구부'는 엽기적으로 웃긴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몸에 털이 많은 외국계학생의 겨드랑이 냄새에 질식한다든지, 서브를 하고 꼬추를 내놓으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동안 금기시되어왔던 소재들이 유쾌한 웃음의 코드로 변해버린다. 하나같이 개성넘치고 못생긴 주인공(만화 속에서는 미남인 등장인물도 어쩜 그리 이상하게 생겼을까)들이 엮어가는 유치찬란하고 엽기발랄한 이야기들은 지루한 일상의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유태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다른 인종은 돼지나 소같은 동물로 표현한 또 한권의 유태인 고난기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책이다.책 속의 내용 중에 더 이상 유태인의 이야기는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비슷한 내용이 많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독자들도 그 시절의 참상에 무감각해졌고 식상하기 때문에 말이다.하지만 이 작품을 그러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표현형식이 만화이기 때문도 아니고, 유태인과 나치의 관계를 쥐와 고양이에 비유했기 때문도 아니다.선굵은 그림으로 강렬하게 표현해놓은 아우슈비츠의 이야기가 너무도 가슴 저미는 슬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색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슬픔과 감동을 잘 전달했다는 의미에서 퓰리처상 수상도 합당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